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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01화 (101/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01화

일렉사는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이며 반짝이는 눈으로 사라를 보았다.

그 열렬한 시선에 화답하는 것처럼 웃어 보이며 사라는 아까 투명화 마법을 불어 넣었던 또 다른 브로치 하나를 일렉사에게 달아 주었다.

“이걸 하고 있으면 저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거예요.”

“아까 클로드가 안 보였던 것처럼?”

“네, 맞아요.”

신기하다는 듯이 제 옷에 달린 브로치를 매만지던 일렉사는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머니도 나를 못 보면 어떡해?”

“그때는 브로치를 떼면 돼요.”

“아, 그렇구나.”

일렉사는 긴장된다는 듯이 옷자락을 쥐었다가 놓았다가,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그런 일렉사를 보던 클로드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빨리 어머니를 보러 가자.”

“……응!”

클로드가 손을 잡아 주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일렉사는 이내 사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하기도 해라. 우리 클로드 님…….’

어느새 친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법을 알게 된 클로드를 보며 사라는 조용히 입을 막았다.

사라의 눈에 어떤 콩깍지가 쓰였는지는 몰라도 클로드가 일렉사에 비해 확연히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것이 기특하기도 하면서, 마냥 아이 같은 일렉사를 보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방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큰 소리를 내고 싶어도 꾹 참으셔야 해요. 이 브로치는 소리까지는 막아 주지 않거든요.”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려는 생각을 부여잡고 사라는 웃으며 말했다.

두 쌍의 아기 고양이 같은 눈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둘이 아주 나란히 귀여웠다.

“일렉사 님의 어머니 방은 기사들이 지키고 있어요.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금방 알아차릴 거예요.”

“그럼 나 어머니랑 대화도 못 해?”

“그 상태로 조금만 참아 주시면 제가 소리를 막아 주는 마법을 쓸 거예요! 그때 얘기하시면 돼요.”

“와!”

일렉사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평소 어머니의 방 근처에만 가도 막아서던 기사들을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던 것이다.

“그럼 가실까요?”

“응, 빨리 갈래!”

사라는 출발을 알리며 클로드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클로드는 일렉사의 손을 꽉 잡고 사라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클로드에게 살짝 웃어 보인 후 사라는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

그러자 순식간에 눈앞의 환경이 바뀌었다.

약 냄새가 진하게 나는 방 안은 화려하지 않고 단출하면서도 소소한 화분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페넬로아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취향과 성품이 묻어 나오는 방 안의 모습을 눈에 담던 사라는 이내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는 페넬로아를 바라보았다.

일렉사의 유모인 크라시다 오를린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던 것과는 달리 페넬로아의 상태는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

마찬가지로 페넬로아를 발견한 일렉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어머니를 본 아이는 금세 사라의 주의를 잊고야 말았다.

“어머니!”

“……?”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달려가려던 일렉사의 손을 클로드가 황급히 잡았다.

“아가?”

일렉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기력 없이 누워 있던 페넬로아가 의아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방문을 지키던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페넬로아 님!”

기사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방 안을 훑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페넬로아는 희게 질린 얼굴로 기사들에게 말했다.

“일렉사의 목소리가…….”

“저희도 방금 들었습니다. 혹시 일렉사 님을 어디 숨겨 두셨습니까?”

기사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페넬로아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나는 여태 누워만 있었는걸. 내 아들은 자네들이 잘 감시하고 있지 않나.”

“…….”

페넬로아의 말에는 옅은 비난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읽은 기사들은 멋쩍은 것처럼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나는 언제쯤 우리 일렉사를 만나 볼 수 있지?”

“병이 다 나으면 일렉사 님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크라시다 님의 말씀대로 회복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크라시다의 이름이 나오자 페넬로아는 하, 하고 짧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내가 건강할 때에도 일렉사를 못 만나게 했던 크라시다가 퍽이나 그러겠어.”

“……크라시다 님은 언제나 페넬로아 님과 일렉사 님의 평안을 바라십니다.”

기사들은 크라시다를 두둔이라도 하는 것처럼 감쌌다.

대대로 명예로운 황실 기사단 단장을 역임했던 오를린 후작 가문은 모든 기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생아더라도 크라시다는 황후의 언니이며 오를린 후작 가문의 일원이고 장녀였다.

크라시다는 작은 영지를 가지고 있는 남작과 결혼하였지만 비극적인 결혼 생활 끝에 이혼하고 다시 오를린 가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노예 출신인 동생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오를린 후작의 옆에서 헌신하였고 3황자를 위해 일렉사의 유모가 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크라시다를 고귀한 레이디로 여기며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정작 그들의 주인이 될 페넬로아를 뒷전으로 두었다는 오류를 범했지만 말이다.

“웃겨. 그 여자가 바라는 건 오를린 후작에게 인정받는 것뿐이야. 진짜 나와 일렉사의 평안을 바란다면 왜 일레온에게 내 상황을 알리지 않는 거지?”

“크라시다 님은 3황자 전하께 모든 것을 다 알리셨습니다. 그래서 의사도 보내고 온갖 약재들도 보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페넬로아의 말에 기사단은 그녀가 크라시다를 오해라도 하고 있다는 것처럼 황급히 변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페넬로아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상황을 일레온이 가만두고 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일레온이 정말 내 상황을 알았더라면 직접 왔을 거야.”

“아시다시피 지금 3황자 전하께서는 바쁘셔서…….”

“멍청이들.”

페넬로아는 기사들과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

크라시다가 중간에서 일레온과 그녀의 연락을 차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일레온은 정말 바빴고, 황위 계승 후계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야 할 때였기에 그녀도 크게 저항하지 않은 채 이리 누워 있었다.

나중에 일레온이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면 크게 분노하고 슬퍼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만 나가 줘. 우리 아들 얼굴도 못 보니까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모양이야.”

“……알겠습니다.”

그 환청이라는 것을 기사들도 들었지만, 그들은 방 안에서 일렉사를 찾아볼 수 없자 순순히 방문을 다시 닫고 나갔다.

그렇게 기사들이 방에서 나가자 클로드는 잔뜩 긴장했던 몸을 풀며 스르륵 사라에게 기댔다.

일렉사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창백히 질렸다.

분명 사라가 주의를 줬는데 그 말을 잊어버려서 저렇게 어머니와 기사들이 다투게 된 것이다.

“미…….”

미안하다고 말하려던 일렉사는 황급히 제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아이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라는 그런 일렉사에게 부드럽게 웃어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실수할 수도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니까.

머리보다 엄마를 보며 반가운 마음에 몸이 먼저 움직일 때였으니까.

따악 하고 손을 튕기자 부드러운 공기가 방 안을 감쌌다.

“괜찮아요, 일렉사 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다음부터 조심하도록 해요. 알았죠?”

“으응……. 이제 말해도 돼?”

“네, 페넬로아 님에게도 저희들의 말이 들리지 않을 거예요.”

사라의 말에 일렉사는 안심한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제 어미를 바라보았다.

페넬로아는 기사와 말씨름을 한 뒤에 지친 듯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사라는 원래 페넬로아의 건강을 염려해 그저 일렉사가 잠깐 얼굴만 볼 수 있도록 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는 페넬로아의 상태를 보아하니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해 줘도 좋을 것 같았다.

“페넬로아 님이 놀라시면 안 되니까 천천히 말을 걸어 봐요.”

“응.”

“브로치는 계속 가지고 계세요. 빼는 순간 기사들이 기척을 알아차릴 거예요.”

사라는 손에서 마력을 일으켜 일렉사의 브로치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일렉사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 증거로 방 안에 있는 거울에 일렉사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기척만을 숨긴 채 모습은 보여 줄 수 있도록 손을 본 것이었다.

“클로드 님도 이리 오세요. 우리도 페넬로아 님에게 인사해야죠.”

“……으응.”

친구의 어머니와 인사라니.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클로드는 살짝 긴장한 채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라는 작게 웃으며 클로드의 브로치도 손봐 주었다.

그리고 일렉사와 페넬로아의 만남을 방해하지 않고 그녀가 경계하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렉사 님, 한번 가 보세요. 먼저 어머니와 인사하셔야죠.”

사라가 부드럽게 일렉사의 등을 떠밀며 작게 손을 튕겼다.

이제 페넬로아가 일렉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일렉사는 긴장한 것처럼 뻣뻣한 몸짓으로 페넬로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머니…….”

“……!”

다시 일렉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페넬로아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제 옆에 와 있는 일렉사를 보고 크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벌떡 일어났다.

“일렉사?!”

“어머니, 저예요!”

“세상에, 세상에 우리 아가!”

페넬로아가 일렉사를 끌어안으며 아이의 몸을 더듬었다.

진짜 일렉사가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힘을 주어 아이를 더 끌어안았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니, 아가. 밖에는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을 텐데! 아까 내가 헛것을 들은 게 아니었다니.”

“흐앙…….”

아주 오랜만에 어머니의 품에 안긴 일렉사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뺨을 비비며 어리광을 양껏 부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클로드는 제 옆에 있는 사라의 옷자락을 꽈악 쥐었다.

“…….”

사라는 그런 클로드에게 손을 뻗어 아이의 몸을 꽉 안아 주었다.

마치 페넬로아가 일렉사를 끌어안아 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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