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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99화 (99/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9화

눈앞에서 사라를 놓친 에단은 허무하게 뻗은 손을 거두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늘 여유 있던 사라의 얼굴에 슬금슬금 불만이라는 것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독하게 몰아붙인 그의 탓이 컸다.

론다가 면목 없는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주인님, 저희가 너무 밀런 소백작님께 부담을 드린 것 같습니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조금만 방심하면 사라가 또 다칠까 봐, 그녀가 또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할까 봐.

소중해진 만큼 극도로 조심한다는 게 사라에게 창살이 없는 감옥을 선사한 모양이었다.

“붙잡아 둔다고 붙잡아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손아귀를 벗어나는 게 그녀에겐 저토록 쉬운 일이군.”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받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초조해지는 스스로의 마음을 억누르며 몸을 돌렸다.

사라에겐 클로드와 나눈 맹약이 있었고, 그녀가 다짐해 주었던 수많은 약속들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조해지고 바라는 것이 많아지는 건 전부 그의 욕심 때문이었다.

점차 부피를 키워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사랑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

에단은 제 손끝을 스칠 듯 말 듯 하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사라가 그와 클로드의 삶에 스며드는 것은 그토록 쉬웠는데, 그녀를 잡아 두는 것은 이토록 어려웠다.

그는 이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다른 식으로 해 보도록 하지.”

절대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 * *

순식간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사라가 클로드를 편하게 고쳐 안자 그제야 아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밑으로 작은 저택이 보였고 눈앞에는 푸른 하늘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와!”

클로드는 밝은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사라의 품에 안겨 박수를 쳤다.

이런 식으로 외출을 하게 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얼이 빠진 저택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밌었고, 평생을 살아온 저택 밖으로 이렇게 손쉽게 나올 수 있는 것도 신났다.

유모와 함께 있으면, 신기하고 신나는 일들이 눈앞에서 잔뜩 펼쳐졌다.

“여긴 어디야?”

“일렉사 님이 사는 저택이에요!”

“……!”

순간 클로드의 얼굴이 환해지며 두 뺨에 홍조가 올라왔다.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고 졸라 왔던 친구를 이제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뻤던 것이다.

“나 그럼 일렉사랑 만날 수 있어?”

“그럼요!”

“하지만…….”

사라의 대답에 기뻤던 것도 잠시, 클로드는 다시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며 우물거렸다.

“왜 그러세요?”

“일렉사랑 나는 사실 만나면 안 되는 거잖아.”

“어머,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버지도 제이드 아저씨도 곧 일렉사를 만나게 해 준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늦어진다고 했어.”

어른들의 사정이었다.

3황자도 에단도 클로드와 일렉사가 친구가 되는 것에 동의는 했지만, 아직 그들 사이에 세부적인 조건은 논의가 잘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를 감추는 것에 급급한 3황자와 클로드에게 따라붙을 시선이 만들어 낼 소문을 경계하는 에단 사이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 마음이 서서히 꺼져 가며 부풀었던 흔적만을 남긴 채 쪼그라들었다.

복잡하게 엉켜 있던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것이 클로드에게 점차 체념하는 법을 가르쳤다.

“…….”

고작 여섯 살 난 아이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라는 가슴이 아파 왔다.

“클로드 님의 말이 맞아요. 일렉사 님을 만나려면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을 해결해야만 하죠.”

“그렇지?”

사라의 말에 클로드는 더욱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선 고개를 숙였다.

그런 아이를 다시 한번 고쳐 안으며 사라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몰래 만나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요?”

“……!”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일렉사 님만 살짝 보고 오는 거예요!”

“그래도, 그래도 될까?”

“클로드 님의 유모가 누군지 잊으신 거예요?”

순식간에 클로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맑고 투명한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의 두 눈을 마주한 사라의 얼굴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디 보자…….”

사라는 손끝에서 마력을 길게 실처럼 뽑아 발밑으로 보이는 3황자의 비밀 저택으로 내려보냈다.

그러자 저택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보다 두 배가 넘는 기사들이 각 방의 방문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고, 저택 주변에는 일반 시민으로 위장한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를 위한 공간이라곤 놀이방으로 마련되어 있는 곳과 정원이 전부였다.

일렉사는 그 정원 한구석에서 몸을 숨긴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저런. 쉽지 않겠네요.”

저번에 보았던 일렉사의 유모는 자신의 방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저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돌보아야 할 일렉사가 홀로 정원에 있는데 방에서 티타임이라니.

이전에 봤을 때 느꼈지만 일렉사의 유모는 지금 현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모양이었다.

3황자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다는 건 아마 3황자의 앞에서만 일렉사에게 좋은 유모가 되어 준다는 뜻이겠지.

“일렉사 님이 많이 우울해 보여요. 빨리 가서 위로해 줄까요?”

“일렉사가 우울하대?”

“그래 보여요. 정원에 혼자 앉아서 울고 있어요.”

“빨리 가자! 빨리 가서 울지 말라고 해 주자!”

클로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굴렀다.

일렉사가 우울해 보인다는 말에 아이의 순수한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이토록 순수하고도 맑은 선의에 사라는 생긋 웃으며 손안에 마력을 뭉쳐 작은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클로드의 옷깃에 달려 있는 브로치에 스며들 수 있도록 밀어 넣었다.

“이게 뭐야, 유모?”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모습과 기척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게 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브로치가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셔야 해요?”

“응, 알았어!”

사라의 말을 머릿속에 똑똑히 새긴 클로드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가 재촉하자 사라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

그러자 다시 한번 눈앞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허공에 떠 있던 발이 땅에 닿았고 푹신한 잔디의 감촉이 느껴졌다.

솨아아, 하고 부는 바람에 머리 위로 자란 커다란 나무의 나뭇잎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들렸다.

풀 내음이 잔뜩 풍겨 오는 이곳은 일렉사가 살고 있는 저택의 정원 한가운데였다.

“와, 유모 여기 엄청 커!”

밑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달리 저택의 정원은 생각한 것보다 더 컸다.

가운데 있는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미로처럼 얽혀 있는 정원은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일렉사를 위해 3황자가 특별히 신경을 쓴 곳이라고 들었다.

“이곳은 확실히 경비가 덜하네요.”

주변을 둘러보며 기척을 살핀 사라는 마음 놓고 품에서 클로드를 내려놓았다.

정원으로 향하는 입구는 총 세 곳이었는데 그곳마다 기사들이 지키고 있을 뿐 정원 내부에는 사람이 없었다.

“일렉사 님은 이쪽에 계세요.”

사라는 클로드에게 손을 내밀었고 아이는 들뜬 얼굴로 그 손을 잡았다.

일렉사가 있는 곳은 입구 세 곳 중 가장 먼 정원의 구석이었다.

까딱이는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대로 걸음을 옮기며 사라는 콧노래를 불렀다.

“일렉사랑 빨리 만나고 싶다! 그치, 유모.”

“그러게요. 저도 빨리 만나 보고 싶어요.”

사라는 클로드가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품 안을 뒤져 작은 브로치를 하나 더 꺼내었다.

원래 클로드에게 선물하려던 거였지만 일렉사에게도 나름 괜찮게 어울릴 것 같았다.

손에 마력을 일으켜 아까 클로드에게 했던 것처럼 마법을 불어 넣은 사라는 이제 더욱 즐거운 얼굴을 하고선 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놀이 시간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이곳에서 만나 볼 사람이 있었다.

‘페넬로아 드 크롬벨.’

어둠의 꽃에서 장차 크롬벨 제국의 황후가 될 3황자의 숨겨 둔 연인.

이 저택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그녀를 만나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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