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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94화 (94/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4화

“길게 기다려 줄 생각은 없는데.”

그들이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할 걸 알았을까.

에단은 나직한 목소리로 재촉했고 벨루나와 벤야민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아.”

에단은 만족스럽게 의자에 몸을 기대며 제이드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암브로시아의 유물고 열쇠를 저 두 사람에게 내어 줘.”

“예? 하지만…….”

제이드는 잠시 망설이며 고민했다. 가문의 후계자에게만 줄 수 있는 열쇠를 저들에게 이렇게 쉽게 넘겨도 될까 싶었다.

하지만 에단은 무언가 생각이 있는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쪽에서 하지 못할 일들을 대신 해 줄 거다.”

“알겠습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제이드가 나가자 암브로시아의 유물고가 궁금해진 벤야민이 물었다.

“암브로시아의 유물고가 뭡니까?”

“가문의 힘에 대해 기록해 놓은 서류들을 책으로 엮어 보관한 곳. 이 힘이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또 무엇을 파괴했는지 전부 다 적혀 있으니 참고가 될 테지.”

“……흥미롭군요.”

벤야민과 벨루나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그들은 탐구심이 깃든 눈으로 에단 암브로시아를 응시했다.

스승과 그 힘에 관해 연구를 할 때 가장 부족했던 것이 구체적인 자료였다.

한 가문에서 하나의 핏줄로 이어지는 힘이라, 감추고 숨긴 흔적들을 대륙 곳곳에서 찾아내 겨우겨우 연구를 이어 갔다.

그런데 암브로시아의 유물고에 있는 것이 그 힘에 대한 기록이라면, 스승과 연구하던 시절보다 더 구체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스승님이 그 힘을 받아 낼 때마다 피를 토하게 되는 정확한 이유 또한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걸 저희들끼리 연구해도 좋겠습니까? 스승님께는…….”

“…….”

에단은 잠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자들은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에단의 협조가 없다면 연구를 다시 진행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자, 그대들에게 이렇게 고민할 시간은 이제 없어. 당장 가서 시작해.”

“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벨루나와 벤야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한차례 소란이 크게 일었고, 이내 제이드가 다시 들어왔다.

“진짜 좋아하시는데요.”

“스승을 위한 길을 찾았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데 주군, 곧 마탑에서 사람을 또 보내올 겁니다.”

“적당히 암브로시아에 남을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줄 거다.”

“그럼 밀런 소백작님께는…….”

에단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철저하게 숨겼다.

그 말은 에단과 클로드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일 터.

그는 사라가 감추고자 하는 걸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언젠가 말할 테지만 지금은 아니야.”

“알겠습니다.”

제이드는 에단만큼이나 복잡한 얼굴을 했다.

그도 이번에 사라의 상태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건 베론과 론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군이 꼴도 보기 싫어하는 제자들의 손까지 빌릴 생각까지 하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밀런 소백작님은 괜찮으신 걸까요?”

“괜찮아야지. 앞으로 사라에게 의지하는 일을 줄여야만 해.”

“하지만 클로드 님의 힘은 여전히 밀런 소백작님이 눌러 주어야만 하는데…….”

“그렇지.”

에단은 사라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클로드를 떠올리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 *

사라는 클로드의 낮잠을 재우기 위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은 클로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잠이 들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이었다.

“잘 자요, 클로드 님.”

클로드에게 잡힌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고 이불을 아이의 턱 끝까지 덮어 주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다정한 손길로 쓸어 주자 떨리던 아이의 눈가가 평안하게 풀렸다.

슬쩍 벌어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것을 보는 사라의 입가에도 마찬가지로 느슨한 미소가 걸렸다.

“……귀여워라.”

사라는 그렇게 한동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일매일 이렇게 평온한 얼굴로 잠들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라는 이 아이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그러다가 조심조심 조용히 일어나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아까부터 메이가 보이지 않았다. 메이가 없다면 클로드의 곁을 지켜야 할 론다 또한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저택 내부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도는 기분이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마찬가지로 저택에서 보이지 않는 제자들까지 떠올리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품 안에서 메시지 아티팩트를 꺼내 들었다.

[대장로님께서 염려하신 대로 마탑 내부에 협조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물자가 막혔는데도 바로 다른 경로를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밖과 교류가 잦았다는 뜻이겠죠.]

[와, 찾았다. 찾았어요, 대장로님! 제가 찾았습니다! 이 미친놈들 여태까지 뭘 하고 있었던…….]

[그들 모두 연구실을 불태우고 사라졌습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그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제 옆방에도 미친놈이 살았어요. 허어어어어엉. 미친놈들이 어쩐지 자꾸 제 마력석을 훔쳐 가더라니 제대로 뒤통수 맞았어요. 저 대신 죽여 주세요. 그놈들에게 피의 복수를 할 테다.]

[대장로님의 비밀 연구실 마법진을 건드린 흔적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풀어내진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한번은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장로님 비밀 연구실 진짜 멋져요! 마탑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대장로님 제자들도 이 연구실에 못 들어갔다면서요. 이번 기회에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살짝만 더 구경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듣자 하니 대장로님이 연구하던 힘이 있다던데 이번에 저도 나가게 해 주시면…….]

[2장로와 3장로가 암브로시아 공작가로 은밀하게 출발했습니다. 곧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마탑에서 온 메시지가 어지럽게 떠올랐다.

혹시 몰라 조사를 하라고 했지만 역시 그녀가 예상했던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탑에서 그저 평화롭게 마법만을 연구해 왔던 마법사들도 혼란스러운지 정말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전부 사라가 예상한 대로였다.

“올리븐……, 이 어리석은 것.”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암브로시아 저택의 복도를 걸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천천히 마력을 내보내 저택 내부의 기척들을 전부 다 훑었다.

벤야민과 벨루나는 저택의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고, 올리븐의 기척은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저택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결국 그런 선택을 했구나.”

사라는 아프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벤야민과 벨루나는 올리븐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아이인지 몰랐다.

그녀는 올리븐이 1황자에게 접근했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부터 은밀하게 그의 행적을 조사했다.

마침 에단이 마탑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마탑의 마법사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알톤 영지 근처 마물의 숲에서 올리븐이 심어 놓은 마력을 발견했습니다. 마물들이 좋아하는 향기를 뿌리는 마력이더군요.]

[마물의 숲 밖으로 튀어 나가는 마물들이 극도로 적어졌습니다. 다만, 마물들의 시체 상태가 자연적으로 죽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대장로님,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이건…….]

사라는 그녀가 조사를 명한 마법사들의 보고를 읽어 내리다가 이내 아티팩트를 다시 품에 넣었다.

싫어도 알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제자의 몸에서 느껴지던 불쾌한 향기를.

[흑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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