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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93화 (93/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3화

그는 가벼운 손짓 하나로 메이를 집무실에서 내보냈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메이가 나가자 에단은 다시 의자에 앉아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

그리고 그 상태로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사라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이 끔찍한 암브로시아의 힘으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는 그녀의 자비에 기대서는 안 된다.

사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내라면 응당 그리하여야만 했다.

“당신은 나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옳아.”

씁쓸하게 읊조리는 에단의 목소리가 버석버석하게 메말랐다.

잠시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사라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가, 그것이 일그러졌다가, 붉은 피와 함께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

그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괴로운 듯 일그러졌던 얼굴이 점차 무표정하게 가라앉았다.

떨리던 푸른 눈동자에도 서늘한 빛이 떠올랐다.

집요하리만치 질척한 집착이 뚝뚝 묻어 나오는 빛이었다.

‘함께 소중한 것을 지키면 되잖아요.’

‘조금 다치고 힘들더라도 지켜 내는 쪽이 더 멋지지 않나요?’

‘저와 공작님이 힘을 합치면 무적이라고요!’

사라가 그에게 단단히 새겨 놓고 간 말들이 있었다.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말라고, 그에게도 그럴 자격이 있다는 듯이 말했던 그녀의 목소리를 에단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나 같은 괴물 새끼를 잘못 만난 당신의 탓이야.”

놓아줄 수 없다.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자신을 보며 맑게 웃는 고운 미성과 황홀하게 휘어지는 눈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으니까.

사라가 먼저 그를 떠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놓을 수 없었다.

‘사라가 떠난다고 해도 놓아줄 거란 보장은 없지만.’

결심을 굳힌 에단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돌아갔다.

그녀를 그의 둥지 안에서 머물게 하기 위해선 온 힘을 다해야만 했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 * *

벨루나는 정원에 앉아 클로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라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러곤 스승에게서 시선을 떼질 못하는 벤야민을 툭 하고 쳤다.

“스승님 말이야.”

“…….”

“참 평안해 보이시지 않나?”

벨루나의 말에 벤야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마탑에 있을 때는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감췄어도 그녀의 주변에선 언제나 날카로운 긴장감과 함께 강박이 느껴졌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누르는 연구에 실패할 때마다 절망하던 그녀의 몸짓이 아직도 벤야민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피를 한 움큼 토하면서도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라고 하며 계속해서 봉인 마법을 시도하던 모습 또한 아주 선명했다.

“암브로시아가 대체 스승님께 어떤 의미지?”

벤야민의 물음에 벨루나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스승님의 일부분뿐이니.”

환하게 웃는 사라의 뒤로 햇살이 쏟아졌다.

마치 후광처럼 빛나는 빛 속에서 클로드와 함께 있는 스승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들은 숨을 쉬는 것처럼 깨달았다.

더 이상 스승에게 자신들은 필요하지 않다는걸.

“인정하기 싫다고 하면 스승님께서 더 화내실까.”

“당연한 소릴.”

“올리븐은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인데.”

벤야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모습을 감춘 올리븐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은 올리븐이 없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잠시 얼굴을 굳혔지만 내버려 두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올리븐이 그들이 모르는 다른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마탑과 이야기가 정리되면 찾아내 끌고 들어가야지. 그 자식 한 번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으니까.”

“그러지.”

벤야민과 벨루나가 그렇게 결심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저 멀리서 그들을 발견한 베론이 서둘러 다가와 말했다.

“아, 두 분 여기 계셨군요. 주인님께서 찾으십니다.”

“암브로시아 공작님이 우릴 왜…….”

“할 말이 있으시답니다.”

“그럼 스승님께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군.”

“아뇨, 두 분만 은밀히 찾으십니다. 밀런 소백작님 모르게요.”

베론의 말에 벤야민과 벨루나의 얼굴이 미약하게나마 일그러졌다.

스승에게 숨기는 것 따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었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

먼저 걸음을 옮긴 것은 벨루나였다.

벤야민은 웃으며 클로드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사라를 잠시 바라봤다가 그 뒤를 따랐다.

“주군, 밀런 소백작님의 제자분들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집무실의 문을 노크한 뒤 들어온 베론은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벤야민과 벨루나를 들여보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벨루나와 벤야민이 차례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암브로시아 공작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를 건든다면 어김없이 스승의 심기도 함께 상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그대들을 이곳에 부른 건 물어볼 것이 있어서야.”

“말씀하십시오.”

“사라의 몸 상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

에단의 물음에 벨루나와 벤야민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고 가는 눈빛이 분주했다. 에단은 그 눈빛만 봐도 저들 또한 사라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군.”

“……무엇을 말입니까.”

“사라의 몸 상태와 그대들이 그녀와 함께 연구한 내 가문의 힘에 대해서.”

사라는 제자들과 함께 암브로시아의 힘에 대해 연구했다고 했다.

분명 그 힘에 대해 그녀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는 저들일 것이다.

꼭 협조를 받아 내야만 했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상대할 때마다 사라는 피를 토해. 그녀는 괜찮다고 하지만 이게 정말 괜찮은 게 맞나?”

“지난번 황궁에서의 일이라면 저희의 무모함으로 스승님께서 휘말렸을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닐 텐데?”

“…….”

벨루나는 잠시 숨을 참았다. 에단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며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그녀의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게 협조하는 건 그대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 될 거야.”

“우리들의 협조를 얻어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라를 내게서 지켜 보려 해.”

“…….”

에단의 대답에 벨루나와 벤야민은 다시 한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입 밖으로 오고 가는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선 마력을 사용한 대화가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벨루나, 저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적어도 스승님께서 신뢰하는 자야. 그리고 오랫동안 연구를 하게 만든 남자이기도 해.]

[하지만 스승님과의 맹약을 어길 순 없어.]

[그건 다른 쪽 스승님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맹약이었어. 잊었어, 벤야민?]

[…….]

[암브로시아의 힘에 대해선 더 연구해야 해. 이번만큼은 스승님이 성급하셨어. 제아무리 다른 쪽의 생명력을 끌어다 쓴다고 한들, 이쪽 몸에 타격이 없을 리가 없잖아.]

[알고 있어, 하지만 스승님께서 우리가 더 관여하는 건 허락하지 않으실 거다.]

[그렇더라도 스승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우리가 연구할 수 있으면 돼. 저자도 무언가 생각이 있어 보여.]

[미치겠군.]

[스승님의 상태를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말하고 협조를 얻어야 해, 벤야민. 그러니 그 빌어먹을 성질은 좀 죽여.]

[알고 있어. 앞뒤 분간 못 하고 날뛴 건 지난번으로 충분해.]

[좋아.]

단숨에 머릿속을 오고 가던 대화가 끝날 무렵이었다.

“상의는 끝난 건가?”

에단은 기가 막히게 그들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라도 챈 듯 말했다.

벨루나는 대체 저 남자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몰라 잠시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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