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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43/53)

43화

그 와중에 아빠는 날 신경 쓰지 못하는 게 계속해서 마음이 쓰이는지 여주를 안은 채 계속해서 나를 돌아봤다.

그때마다 난 웃는 것으로 괜찮다는 말을 대신했다.

“우리 딸 정말 많이 컸구나. 어른이 된 것 같아. 아빠가 미안해.”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머리에 쿠션을 받치고 여주를 눕힌 아빠는 내 옆에 앉아서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안 미안해해도 돼. 오늘 아빠 엄청 멋있었어!”

“아빠가?”

“응! 거기서 딱 나타나서, 내가 원하는 친구를 데리고 와줬잖아!”

그 말에 평소와 달리 아빠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허허 웃었다.

“이게 맞는 건지 사실 모르겠구나.”

“응?”

“저 아이에게는 그곳이 전부이자 유일한 세상이었을 텐데, 갑자기 우리 마음대로 환경을 바꾼 건 아닌지. 조금 더 알아보고, 조금 더 상황을 보고 데려왔어야 했던 건 아닐까 하고.”

줄줄이 굴비처럼 걱정에 걱정을 더해 자꾸만 작아지는 아빠의 양 볼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선 눈이보이지않을만큼 환하게 웃었다.

“난 잘 모르겠는지만, 아빠가 잘했다는 건 알아!”

“정말 잘한 걸까.”

“아프잖아! 아픈 친구를 돌봐주겠다고 데려오는 게 뭐가 나빠! 게다가 거기선 제대로 진료도 못 받게 했는걸!”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아빠는 잘한 거야. 우리 아빠 엄청 멋있어!”

누군가 그 말을 해주길 바랐던 것처럼, 아빠는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구나.”

“응. 그러니까 걱정 마! 그런데 아빠.”

“응?”

“저 아이, 내 친구로 삼아도 괜찮은 거야?”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듯 아빠가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친구는 안 되겠는데.”

“어?”

고아원 출신에 정말 병이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니까 당연한 건가…….

아빠가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조금의 주저도 없이 안 되겠다는 말에 당혹스러웠다.

우선 후작가로 데려가는 건 해결했으니까 괜찮겠지. 어차피 쌍둥이 오빠들에게 여주인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 큰 문제 될 건 없겠다.

그래도 친구라고 하고 데리고 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들려던 그때였다.

“아무래도 친구 말고 자매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뭐?”

“아빠가 저지른 일이 있으니 이제 와서 입양을 취소할 수도 없고, 입양을 하긴 해야겠으니.”

“그, 그건 그렇지.”

“친구 말고 자매는 싫어? 그러고 보니 우리 딸 언제나 외로워보였는데. 아빠가 바빠서 신경도 못써주고…….”

아니 아빠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닌 듯한데요.

“그래도 쌍둥이들이 있어서 요새 잘 어울리는 거 같긴 했지만 말야…….”

“나는 조, 좋아! 그런데 할머니는……. 괜찮을까?”

진심으로 할머니가 걱정됐다. 할머니의 성격 상 절대 이 아이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할 텐데. 가뜩이나 나라는 존재 자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물론 할머니는 나중에 여주인공을 굉장히 맘에 들어하긴 했었다. 제 손주들을 들이 밀만큼.

알고 보니 공작가의 숨겨진 아이라던가 황가에서 숨겨놓았던 아이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녀는 정말 자식 많은 어느 몰락 귀족가의 자식 중 하나였다.

그녀가 제일 큰 딸이었고, 밑으로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다.

당장 벌어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녀의 부친은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뭐든지 하려했고, 그중 하나가 돈을 받고 딸을 팔아넘기는 거였다.

독특한 머리색과 오묘한 분위기는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매력을 풍겼다.

결국 고아원장은 그녀를 잘 키우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싼값에 사오게 된다.

여주인공은 아버지에 의해 자신이 팔려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소설 속에서도 언급이 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고아원에 와서 크게 열병을 앓은 뒤 그녀는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렸고, 때문에 가족들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뻔뻔하게도 가족들은 나중에 황태자와 쌍둥이들이 그녀에게 목매고 있단 걸 알자마자 찾아왔다.

누구보다 행복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가족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가족이 아주 어린 시절, 자신을 팔아 넘겨졌다는 사실을. 부친은 폭행을 일삼았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가족들은 어디에도 내놓을 수조차 없었다.

동생 중 한 명은 사람을 죽여서 감옥에 갔고, 또 한명은 술만 마시면 사람을 때리고 다녔으며 어머니마저 사기를 치고 다녔다.

제일 행복해야 할 시기에 여주는 가족들 때문에 절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그녀를 어여삐 봤던 것은 특별한 힘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사람을 치유하는 힘.

그 힘이 알려지자마자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탐내기 시작한다. 그녀의 가족들이 나타난 것도 그녀가 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떤 병이라도 낫게 해주는 능력 때문에 신전에서는 그녀를 ‘성녀’라 여기며 보호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졌다.

“아마 괜찮지않을까.”

내가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아빠도 정리가 끝났는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건너편에 누워있는 여주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그녀 옆에는 멜린지가 앉아있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겠지. 그래. 어차피 후작가로 데려오려 했었으니까 내 자매든 뭐든 입양이라는 정식 절차를 거치면 더 좋다.

나중에 결국 신전에서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데려갈 테지만, 그동안 적어도 인간답게 살게 될 테니까.

“으응…….”

“걱정 마라, 아마네트. 예전이었다면 어머니의 행동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걱정했을 테지만 이제 그리 하지 않을 거란다.”

“정말?”

“응. 지켜야할 게 너무 많아졌거든. 어머니가 뭐라고 한다면 이 아빠가 다 해결할 테니까 걱정 마렴.”

“고마워, 아빠. 내가 친구 삼고 싶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분명 이 일 때문에 할머니와 문제가 또 붉어질게 뻔했다. 그래서 손톱을 꾹꾹 눌러가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냈다.

“아니다. 오히려 아마네트 덕분에 그 안의 상황을 알게 된 걸. 우리 딸이 아니었으면 난 그 고아원장이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후원금도 계속 줬을 테고.”

“아…….”

“나쁜 인간. 아이가 아프면 당연히 진료를 받게 해야지 그딴 말을……. 어떻게 그런 곳에 아이를 가둬둔단 말인가.”

난 분노하는 아빠의 손을 냉큼 잡았다.

“이제 알았으니까 된 거지!”

“그렇지?”

“응!”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마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도착한 모양이구나. 어서 가서 진료를 보게 하자꾸나.”

“제가 이 아이를 안고 가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말랐다고는 하나 아이는 아이다. 거기에 힘없이 축 처진 사람을 드는 건 무리야. 대신 바로 의원을 불러올 수 있게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결국 아빠가 아이를 안고선 마차에서 내렸다. 난 쫄래쫄래 그 뒤를 따랐고, 멜린지는 바로 의원을 부르기 위해 달렸다.

* * *

손님용 방으로 향한 아빠는 너른 침대에 여주인공을 눕혔다. 밝은 곳에서 제대로 보니 더 처연했다. 겨울 꽃처럼, 만지면 곧 녹아버릴 것처럼 여린 여주.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럽다 느껴질 정도다. 떡 진 머리나, 안 씻어서 때가 가득 묻은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맨 처음 쌍둥이를 볼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온다.

“말랐구나.”

“응 나랑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는데 엄청 말랐어. 그리고 엄청 잘 잔다…….”

이동하는 동안 미동이라도 있을 법 한데 아이는 조용히 새근새근 잘만 잤다.

그 사이, 허겁지겁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가 아프신 겁니까.”

이제는 조금 아빠의 눈치를 보는 듯 의원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이 아이다.”

당연히 나나 아빠가 아플 거라 생각한 듯 의원은 나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침대로 시선을 옮겼다.

“외부인입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외부인의 진료는 보지 않습니다. 후작 각하. 이 부분은 정확히 계약상 명시가 되어있는 부분입니다.”

의원은 이때다 싶은 사람처럼 급히 책잡았다. 마치 아빠가 자신에게 부당한 걸 시킨다는 것처럼.

아마도 최근에 제 상황이 아빠 때문에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듯 그의 행동은 굉장히 날서있었다.

“외부인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입양한 아이다. 그러니 내 딸이지. 진료를 보도록 해.”

“아. 아니 그건…….”

“왜. 이건 계약서 상에 명시가 되어있는 내용일 텐데?”

의원은 작게 한숨을 내쉬다가 왕진가방을 찬찬히 열었다.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각하. 이 아이를 치료하고 나면 전 선대 후작부인께 보고 해야 합니다.”

“안다. 내가 그대와 함께 어머니를 보러 갈 예정이니까.”

“아.”

끝까지 외부인 진료를 하기 싫은 것처럼 그는 주절거렸지만 아빠는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결국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아이를 찬찬히 살폈다. 마음을 제대로 먹은 듯 그는 의외로 진료를 제대로 했다.

“흐음…….”

“어떤가. 이 아이를 데리고 있던 자의 말에 따르면 뭔지 모를 병을 가지고 있다던데.”

“아뇨. 건강하신데요.”

“응?”

단호한 그의 대답에 나도 아빠도 놀랐다.

“물론 일반 사람처럼 건강하다는 건 아니지만, 마른 것에 비해 이상하다 느껴질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아프거나 다친 곳은 한군데도 없어요. 그저 지금은 주무시는 겁니다.”

“건강하다고? 허약한 것도 아니고?”

“네. 너무 건강하십니다. 이상하군요. 이렇게 말랐으면 어딘가 문제가 생기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리만큼 건강합니다.”

의원의 말을 들은 나는 아, 하는 작은 탄식을 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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