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53)

3화

“아가씨.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저는 유모로서 아가씨를 교육을 하는 것뿐인걸요.”

“교육이라.”

“네. 오늘따라 우리 아가씨께서 더 예민하시네요.”

언제나 이런식이다. 오늘도 자기가 잘 못한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거라고 몰아가는 그녀를 보며 이를 갈던 그때, 저택의 정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네트?”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유모에게 꽂혀있던 시선을 빠르게 돌렸다.

“아빠!”

“그래 우리 딸! 왜 여기 나와 있어!”

내가 부르자 아빠는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 둘의 모습은 누가 봐도 부녀지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레이제 후작인 아빠는 큰 불을 삼켜먹은 듯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밤하늘의 별빛을 담은 듯 짙은 남색 빛의 머리카락과 짙은 보랏 빛의 눈동자를 지닌 나와는 확연히 달랐다.

할머니가 내 출생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건 확연하게 다른 아빠와 나의 외모 때문도 컸다.

물론 그런 것 따윈 상관없는 듯 아빠는 다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당장 내게 달려왔을 아빠는 주저하며 뒤에 서 있던 두 아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허허. 아마네트……. 조금 이따 소개하려했는데 말이지.”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아빠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이 상황을 처음 겪는다는 듯,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진짜 데려왔어!

과거로 돌아왔지만 지난 번 생에 있었던 일들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는 예상대로 그놈들을 데려왔다.

물론 조금 바뀐 건 있다.

원래대로라면 식당에서 만났을 애들이다. 과거, 아빠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선 내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바로 왔다.

배가 고픈지 식탁에 놓인 수많은 음식들을 보던 두 아이들은 꼬르륵 소리를 냈고, 그게 싫었던 과거의 나는 들고 있던 포크를 던져 버렸었다.

바닥으로 포크를 던지긴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아주 못되처먹은 인간이었다.

덕분에 저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좋지 않았고, 이후 나를 슬슬 피하려는 쌍둥이들의 어리숙한 태도가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때문에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런 최악의 만남은 피하겠노라 마음먹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진짜 다시 만날 줄이야. 안 만나는 게 제일이 베스트긴 했는데…….

역시나 과거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난 아무런 생각 없이 나와 뒤의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웃고 있는 아빠를 노려봤다.

하. 아버지. 당신은 이번 생에도 저 놈들을 데려오셨네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환하게 웃는 아빠를 보던 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있는 저 두 명의 남자 아이가 장차 무럭무럭 자라 미친 쌍둥이가 될 아이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잖아.

이전 생에서도 바다처럼 마음이 넓은 우리 아빠는 어느 날 쌍둥이 남자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데려온 건지 납치해 온 건지 알 순 없지만, 하여튼 지금처럼.

그리고 이전 생의 나는 저 두 놈을 퍽 못마땅하게 여겼다.

누군지도 모를 아이들을 반가워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항상 나에게만 다정하게 웃어주던 아빠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한다는 건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미운 마음에 아이들을 일부러 조금 괴롭히긴 했다.

첫 번째 삶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았던 내가 후작가의 아가씨가 되어 처음으로 누려본 호사였다. 그래서 조금 더 욕심냈고 그걸 나누어야 하는 쌍둥이들을 미워했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줄 모를 것들이었으니까. 아주 조금 괴롭히면 엄청 크게 괴롭힌 게 되어 버리긴 했지만, 그때는 그런 것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쌍둥이들은 내게 있어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같은 존재였으니까.

딱히 신경은 안 쓰이지만 묘하게 내 앞길을 방해하는 존재들.

그런데 아빠가 죽고 얼마 안 돼서 쌍둥이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습게도 뒤늦게 내가 소설 속에 들어왔음을 알아차렸다. 정확히는 죽기 직전에.

솔직히 아무리 재미있게 본 소설이라 할지라도 주인공들의 애칭을 기억하지 본명을 기억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게다가 이놈들은 서브 흑막 쌍둥이였는걸.

나름의 핑계를 대보자면 그렇다.

그 사이 아빠는 내게 가까이 오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슬쩍 슬쩍 내 쪽으로 밀었다.

“아마네트. 네 오빠들이 될 거란다. 싸우지 말고.”

나는 아빠의 말에 당황하는 척 하다 이내 치마단 끝을 잡고 두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느 때보다 가식적인 미소를 가득 담은 채로.

“어서 와요 오빠들.”

내 반응에 기겁하는 두 쌍둥이들보다 더 기겁하는 아빠가 보였다.

“응? 아마네트. 화 내지 않는 거야?”

화 낼 걸 알았으면 데려오질 말았어야죠. 아버지. 이미 저지를 건 다 저질러놓고 화내지 않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성질이 날 수밖에 없네요. 하하…….

“당연하죠!”

저놈들 흑막들로 자랄 애들이거든요.

나는 그 흑막들에게 목숨을 슥삭 당할 운명이고. 그러니까 과거와 다르게 살 예정이에요.

“다, 다행이로구나. 네가 많이 싫어 할 줄 알았거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었단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 집에 있게 되었거든.”

알죠. 알죠. 그때도 절대 싫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데리고 있었으니까.

누군가와의 약속을 꼭 지켜야한댔나 뭐랬나. 절대 말할 수 없으나 꼭 지켜야만 하는 그런 거랬다.

그때만 생각하면 없던 화가 올라올 지경이다. 착하고 멍청한 아빠인줄 알았는데, 저런 악의 씨앗을 가져올 줄이야. 하아.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요. 아빠. 저는 이해해요.”

“어…… 그, 그래. 이해한다니 천만 다행이로구나.”

아빠는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어색한 듯 머리만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과거엔 쌍둥이들이 어땠더라.

아마도 첫 등장부터 거지꼴로 와서 내가 더 이곳에 둘 수 없다 난리를 쳤을 거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고생을 하고 다녔는지, 하늘을 머리에 담아놓은 듯 산들거리는 하늘색 머리칼은 뿌연 회색빛으로 변해있었다.

또 바다를 담아놓은 듯 푸른 눈동자는 불안해 보였고, 옷도 밑이 다 떨어져 헤진 거적때기를 입고 왔었더랬지.

지금 눈앞의 모습도 과거와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쌍둥이들은 거지 같은 꼴이었다.

그러나 난 그들 앞에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오빠들. 아마네트예요.”

세상에서 제일 가식적인 얼굴로 웃었다. 이미 이들이 이곳에 온 순간 내 미래는 저당 잡힌 거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잘 보여야 한다.

“…….”

물론 내가 내민 손을 쌍둥이들이 잡을 리는 없었다.

잡는 척이라도 해주던가, 사람 민망하게 하는 데는 선수라니까. 예전부터 이들은 이랬다. 언제나 내게 명백한 선을 그었고, 그 선을 느낄 때마다 난 이들을 괴롭혔다.

그때는 내가 못된 짓을 한 거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이렇게 순박하게 웃어가며 손을 내밀었는데.

하지만 거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다.

“저는 오빠들이랑 잘 지내보고 싶어요.”

사실 아빠가 불법을 저질러서 데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놈들은 놀랍게도 공작가의 사생아다. 제국의 칼과 방패라 불리는 두 개의 공작가. 그 중에서 칼이라 칭해지는 아포르타 공작가의 사생아들.

손이 귀한 걸로 소문이 자자한 아포르타 공작가의 자식들이란 말이다.

난 두 쌍둥이를 흘겨봤다.

왜 그런 놈들이 우리 집에 온 거냐구! 아니 그 전에 유약하디 짝이 없는 아빠는 저런 놈들을 무슨 깡으로 데려온 거야.

난 입술을 잘근 깨물다 아빠를 노려봤다. 그러나 내가 쌍둥이들을 반기는 것만으로도 뿌듯한지 아빠는 내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 진짜 답답하단 말야.

아빠가 어떤 연유에서 그들을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인지에 대해선 내가 죽는 그날까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어떤 의도를 가지고 데려 왔으면 그에 합당한 어떤 일이 벌어졌을 텐데, 그런 게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듣기로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납치되어 10년 넘게 어딘가 갇혀 지냈다 했다. 그리고 다시 아빠가 쌍둥이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고.

쌍둥이들은 이 집에 있으면서 자신들이 누군지 알아차리게 된다.

분명 잘 큰다고 생각했는데, 이놈들은 머리가 크자마자 냅다 공작가의 핏줄인 자신들을 납치 감금했다며 우리 집을 고발해버리고 무너뜨려버리지.

생각 만 해도 이가 갈린다. 그래도 우리 아빠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하지만 지금 와서 그걸 복수할 수는 없다. 어차피 지금의 이들도 우리 아빠를 자신들을 가뒀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간 과거와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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