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55화 (255/256)

제255화

감기, 독감 치료제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많은 사람이 1년에 한 번 이상은 감기에 시달리고,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들은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돼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감기는 분명 흔한 병이지만, 때로는 굉장히 치명적인 질병이기도 하다.

콜드바이가 공급되는 순간 인류의 삶은 크게 변화될 게 분명하다. 감기는 더 이상 사람들을 괴롭히는 질병이 아니게 되며, 인류의 평균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게 분명했다.

명이 있으면 암도 있다. 감기 관련 제품을 주력으로 팔던 제약회사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고, 감기 치료가 주 수입원이었던 내과나 이비인후과 같은 병원들 중에는 폐업하는 곳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콜드바이 생산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순 없다. 그런 일들은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 있을 만큼 신약이 주는 효과는 크다.

더군다나 무려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신약이다. 그런 콜드바이를 누군가의 일자리 핑계로 막기엔 명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이미 개발은 완료됐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기 시작했다. 콜드바이에 부작용이 발견되거나 또는 콜드바이를 능가하는 감기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 신약은 앞으로 계속 생산되어 인류의 고통을 줄여줄 것이다.

그런 엄청난 가치의 치료제를 일본에만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일본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항의했지만 건우는 절대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일본이 건우에게 직접적으로 압박할 수단은 많지 않았다.

이전 대통령들이라면 모를까 장문오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건우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다. 이번 신약의 약국 공급 문제로 내과와 이비인후과 개업의들이 강력히 반발했을 때도 단호하게 건우 편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건우 의견을 무시하고 일본을 배려할 가능성은? 단 1퍼센트도 없다.

일본과 협력해 한국 흔들기에 나섰던 중국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발 빠르게 친한국적인 정책으로 돌아섰고, 러시아(유럽 국가이지만 아시아에 영토가 더 많다는 이유로 스트리 교수가 아시아 시장에 포함시켰다.)는 애초에 일본과 불편한 관계라서 어떤 영향력도 줄 수 없었다.

미국에게 부탁하려고 해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버티고 있어서 여의치 않았다.

물론 일본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건우의 사무실로 항의 방문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콜드바이의 1차 공급국가 명단에 일본을 뺀 것은 반인륜적인 행위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바로 대한당 의원들이었는데,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를 사야 했다.

매국노라고, 일본 앞잡이라고, 나라를 팔아먹을 놈들이라고. 그들을 욕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대한당 당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기어코 대한당 대표가 나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굴욕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편을 드는 곳은 거의 없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나 유니세프 등이 두 나라의 갈등에 죄 없는 일본 어린이들이 고통받는 게 안타깝다는 성명을 냈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의 성명엔 어떤 강제성도 없었고, 대놓고 비난하기엔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를 아낌없이 도와준 건우의 지원이 너무나 막대했다. 스트리 교수가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에이즈 치료제만 해도 건우의 경제적 후원으로 이뤄진 일들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건우가 오죽했으면 그런 결정을 내렸겠느냐며, 오히려 일본을 손가락질했다.

피해자는 일본인데, 국제적 여론은 일본에게 안 좋은 쪽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상황.

그렇지만 일본 정치가들은 건우에게 굴복하기보다 콜드바이 따위 필요 없다는 강경책을 펼쳤다.

그렇게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콜드바이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가 됐다.

- 하느님 맙소사, 이건 기적입니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처음 콜드바이를 복용했던 감기 환자가 하늘을 보며 외쳤던 말이다.

- 설마설마 했는데 콜드바이 효과 엄청납니다. 약을 먹고 5시간 정도 흘렀는데 몸이 가뿐해졌습니다.

- 와, 미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감기가 쉽게 떨어지는 거였어? 만약 내 앞에 스트리 교수가 있다면 당장 키스를 퍼붓고 싶은 심정이야.

- ㅠㅜㅠㅜ. 스트리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초이도 정말정말 감사해요. 우리 아이가 몸이 약해서 그동안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콜드바이 덕분에 이제 괜찮아졌어요. 어제 처음으로 저를 보고 웃는데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 스트리 교수와 초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준 천사들입니다. 수술 직후에 감기에 걸려 의사들이 정말 위험하다고 했는데, 콜드바이가 단숨에 그 문제를 해결해줬어요.

- 미친! 이 약이 고작 20달러밖에 안 한다는 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동안 감기에 걸리면 약 먹고 병원 다닌다고 거의 200~300달러는 써야 해서 아파도 참았는데 이제 그럴 일이 없어요.

- 고맙긴 한데요 정말정말 안타까운 건 이제 감기 핑계로 회사를 빼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감기라고 했더니 콜드바이 먹고 출근하라고 하네요. 심지어 약값도 회사에도 내준다고 합니다. 젠장. 좋은 데 싫은 이 느낌은 뭐죠?

콜드바이가 공급되기 시작하자 전 세계가 극찬했다. 실시간으로 수많은 사용 소감이 올라오면서 이젠 그 누구도 콜드바이의 효능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일본 국민들만 제외하고.

한국이 아니라 유통이 시작된 다른 나라를 통해 웃돈을 주고 들여오려고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건우와 스트리 교수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해당 국가에 대한 콜드바이 유통을 금하겠다고 선언해 일본의 꼼수를 원천 봉쇄했다.

정말 소량으로 몰래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가격이 너무나 비싸 일부 상류층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갈수록 일본 내 여론은 좋지 않아졌다. 하루빨리 한국에 사과하고 콜드바이를 들여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권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언제부터 위대한 일본인들이 콜드바이 따위에 의존했느냐며 국민정신이 나약하다고 질타하는 정치인들도 나왔다.

그런데 초이스 시큐리티는 바로 그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흐흐흐. 드디어 우리가 원하던 망언이 나왔군.”

차지훈이 일본 신문을 보며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일본 정치인들이라면 역시 이렇게 나올지 알았죠. 멍청한 새끼들 같으니.”

“준비는 잘 됐어?”

“그럼요. 별로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일본에도 용현철 같은 망나니들이 많더라고요. 어떤 놈 하나가 SNS에 콜드바이 복용 후기를 남겼는데 조사해보니 관방장관 아들인 거 있죠. 크크크. 딱 걸린 거지.”

“자국민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해놓고 자기들은 뒤에서 몰래 숨어서 콜드바이를 복용했다는 거 아니야? 역시 개자식들이야. 이걸 당장 일본 언론에 퍼트릴 수 있는 거지?”

“그럼요. 이미 도쿄에 작은 인터넷 언론사를 만들어놨습니다. 거길 통해 종수가 기사를 등록하고 조회수를 늘리면 끝납니다. 이번 기사가 나가면 일본에 제2의 용현철 게이트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럼 우리야 좋지. 그놈들이 다급해지면 다급해질수록 우리가 유리해질 테니까. 당장 기사 올려!”

“넵, 실장님.”

[국민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해놓고 뒤에서 몰래 콜드바이를 복용해온 자민당의 두 얼굴]

어쩌면 별거 아닐 수 있는 기사에 일본 사회 전체가 뒤집어졌다.

뒤늦게 관방장관이 나서서 무릎을 꿇고 아들의 실수에 대해 사죄했지만 소용없었다.

초이스 시큐리티가 준비한 기사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자민당에서 중요 직책에 있던 의원들이 콜드바이를 복용한 사실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일본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방법이 없었다. 일본 정부는 당장 국민들의 성난 민심을 달래야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총리의 밀명을 받은 주한일본 대사가 건우를 은밀하게 찾았다.

“이게 뭡니까?”

일본대사가 두툼한 서류가방을 건네자 건우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희 일본이 최 대표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선물이요? 설마 돈은 아니겠죠?”

“당연히 절대 아닙니다. 최 대표님에게 돈이 충분히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물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지금 일본 내 여론이 굉장히 안 좋아서 우리 정부가 매우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래서요? 설마 그게 제 잘못이라는 겁니까?”건우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헛!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알아보니 최 대표님과 용씨 가문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일본대사의 얼굴은 건우가 시킨다면 당장 할복이라도 할 것처럼 비장했다.

“그런가요? 용씨 가문을 뒤에서 사주하는 곳이 일본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의외네요.”

“그건 오해이십니다. 용씨 가문이 옛 인연을 빌미로 자꾸 도와달라고 해서 조금 도와준 것이지, 우리가 그들을 사주한 건 절대 아닙니다.”

“변명은 됐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해주십시오.”

“앗! 죄송합니다, 최 대표님. 그래도 이 선물은 받아주십시오. 이 안에는 용씨 가문의 엄청난 약점이 들어 있습니다.”

“엄청난 약점이요? 그게 뭐죠?”

시큰둥하던 건우가 처음으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일본대사의 얼굴이 활짝 폈다. 희망을 본 것이다.

“이 안엔 대한제국 시대 이후 용씨 가문이 우리 일본에 협조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일한합방….”

“일한합방이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한일 병합조약 당시 용씨 가문이 어떻게 일본에 협조했는지,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을 어떤 식으로 탄압하고 일본에 고발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또한 무고한 사람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 자신 가문의 것으로 만든 서류도 있습니다.”

“그리고요?”

지금까지 말한 것만 해도 엄청난 정보들이지만 건우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듯 일본 대사를 재촉했다.

“에 또, 용씨 가문이 한국의 주요 정보들을 일본 호소카와 가문에 넘긴 서류들도 있습니다.”

“흠…. 간첩행위에 대한 명백한 증거라. 그 정도면 꽤 관심이 가는군요. 그래서 일본이 제게 원하는 게 뭐죠?”

과거의 서류들은 용씨 가문의 친일 행적만 추가적으로 드러낼 뿐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간첩행위는 다르다.

좀 더 검토해봐야 알겠지만 일본 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용씨 가문은 한국에서 발붙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100여 년간 개처럼 충성해온 용씨 가문이 주인에게 버림받는 순간이었다.

“최 대표님. 제발 콜드바이를 일본에도 정식으로 팔아주십시오.”

“겨우 이 정도 선물로 콜드바이 유통을 해달라? 그건 곤란합니다.”

“그럼 조건이라도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우리 일본은 정말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본이 아니라 당신 정권이 큰 위기에 처해 있겠죠. 그건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그래도 사정이 안 좋다고 하니 한 가지만 요구하겠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일본대사가 반색했다.

“일본 총리가 우리 대통령에게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입니다. 북핵으로 흔들기를 해서 미안하다고요.”

“네? 그, 그건….”

“싫으면 공급은 없습니다.”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것만 하면 됩니까?”

“그것만 해주시면 1년간만 콜드바이를 유통해 드리겠습니다.”

“이, 일 년이요?”

“네, 부족합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우선 1년간만 공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일본이 진정성을 보인다면 조건 없이 계속 공급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혹시 진정성이라는 게….”

“진정성 있는, 역사에 대한 사과죠. 그걸 보여주신다면 저도 일본에 대한 억하심정을 거두겠습니다.”

건우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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