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뭐? 기자회견? 우리가 아직 수사발표도 안 했는데 무슨 기자회견? 시작도 하기 전에 억울하다고 코스프레라도 하려는 건가?”
“일단 TV부터 보시죠?”
옆에 있던 부부장검사는 그렇게 말하며 TV 리모컨을 가져왔다.
“그래. 빨리 켜봐. 대체 그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대회의실 정면의 대형 TV의 켜지자 압수해온 서류를 조사하던 사람들의 시선까지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기자회견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TV 화면 밑에는 커다란 글씨로 ‘최건우 대표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서 억울함 토로’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유창석 부장검사는 세금 문제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말하던데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애초에 말이 안 됩니다. 제가 무슨 이유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세금을 아끼겠습니까?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성격이었으면 제가 지금까지 기부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10조 원 사업의 교육타운 계획도 추진하지 않았겠죠. 그 돈으로 혼자 잘 먹고 잘살지 않았겠습니까?”
많은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뻔뻔한 변명으로 들릴 수 있었겠지만, 건우의 말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현 정권과 사이가 좋은 기자들만 미리 압수수색 정보를 알고 출동한 것을 두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각종 신문사에서 총출동한 만큼 분위기가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 대표님. 검찰청이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압수수색을 했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정말 아무것도 안 나오면 뒷수습이 불가능해질 텐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모험을 할까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를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그래서 오늘 기자 회견을 연 겁니다. 기자님처럼 터무니없는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믿는 분이 계실까 봐요.”
건우의 거침없는 답변에 방금 질문을 던진 기자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하지만 이내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계속 질문을 이었다.
“단지 소문이라는 말씀입니까?”
“네. ‘단지 소문’ 수준이 아니라 아주 악의적인 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은 소문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듣기로는 상당한 검찰 인력이 동원되어 압수수색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는데, 그래도 정말 악의적인 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걸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그럼 기자님은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건우의 냉소적인 대응에 기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려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미숙하게 행동한다면 원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자회견은 제가 아니라 최 대표님이 여신 겁니다. 무죄라는 걸 증명하려고 이 자리를 만드신 것 아닙니까?”
“뭘 어떻게 증명하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보고 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라는 겁니까?”
“제가 말씀드린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검찰이 아무 근거도 없이 압수수색을 할 리가 없으니….”
“죄가 없음을 저 스스로 증명하라?”
건우는 기자의 말까지 끊으며 이죽거리듯 말했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다른 기자들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게 싫으면 뭐하러 기자회견을 연 겁니까?”
“저는 기자회견이 있다고만 각 언론사에 통보했지 무죄를 증명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게….”
평소와 다르게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건우의 모습에 이상하게 말문이 막혔다.
“지은 죄도 없는데 뭘 증명하겠습니까? 저는 한 가지 선언할 게 있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우리 학원 하도훈 선생님이 예전에 굉장히 곤란한 일을 겪었던 사건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가짜 성폭행 누명 사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회견장 뒤에 있던 젊은 기자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때의 검찰도 지금처럼 하도훈 선생님의 유죄를 확신했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재판에 가기도 전에 이미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 몰아갔었죠.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무죄였습니다.”
“그때 당시 최 대표님이 하도훈 씨의 무죄를 확신하며 전 재산을 건 것도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억력 좋으시네요.”
“당시 그 사건 취재 기자라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젊은 기자는 건우에게 굉장히 호의적인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그때 사건처럼 이번에도 검사의 실수였다는 걸 말씀하시고 싶은 겁니까?”
분위기가 잠시 화기애애해지자 무죄를 증명하라던 기자가 다시 한 번 나섰다.
“아니요. 그때처럼 제 전 재산을 무죄에 걸려고 합니다.”
“네에에?”
“다시 말씀드리죠. 만약 검찰이 저의 범죄 사실을 찾아낸다면 저는 제 전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겠습니다. 참고로 그때보다 지금이 100배 이상 재산이 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증명은 못 했지만 이 정도면 만족할 만 대답이 될까요?”
“아······.”
건우의 재산은 이미 조 단위가 훌쩍 넘는다.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이십 대의 나이에 건우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거의 없다. 자수성가한 사람 중에서는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그런데도 어떤 미련도 없이 불법행위가 드러나는 순간 그 어마어마한 재산을 내려놓고 한국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연 이것보다 극적인 방법으로 무죄가 아님을 말할 수 있을까? 또한 무리한 압수수색을 벌인 검찰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건우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상황을 이상하게 몰아가던 기자는 말문이 막혀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반면 주변 기자들은 건우의 폭탄발언 덕분에 회사에 속보를 날리느라 손이 미친 듯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부족한가요?”
“아, 아니요.”
건우가 집요하게 굴자 기자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솔직히 말씀드려 검찰이 우리 학원을 압수수색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세금을 포함한 금전적 부분은 다섯 번 이상 꼼꼼하게 크로스 체크 하고 있어서 문제가 있을 확률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왜 우리 학원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건우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천천히 기자들을 둘러봤다.
“최 대표님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한번 상상을 해봤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원인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표현이 좀 이상하죠?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도, 대, 체 누가 어떤 마음으로 내게 이런 누명을 씌우고 싶었을까?”
건우의 마지막 말에 기자회견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일부러 최 대표님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압수수색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냥 한번 그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누군가 제 몰락을 바라는 사람이 일부러 의도한 일은 아닌가 싶어서요. 아마 피해의식이겠죠?”
건우는 어떤 단언도 하지 않았다. 치사하게 보일 만큼 영악하게 굴었다.
기자들은 흥미로운 건수가 생긴 듯 눈을 반짝였다.
딱히 내용은 없고 ‘누가 최건우 대표에게 누명을 씌었을까?’라는 제목만 만들어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습니다. 우리 학원은 어떤 불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검찰이 우리 학원 서류와 정부 그리고 컴퓨터를 압수해갔지만 그 모든 기록을 저장해둔 서버가 따로 있습니다. 미리미리 백업도 해뒀고요. 혹시나 해서 현재 직원들이 서버 기록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그 어떤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하는 분이 계시면 우리 초이스 에듀 자금 내역을 전부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유창석 부장검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TV를 껐다.
“방금 내용 들었어? 서버에 모든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는 말.”
“네, 부장님.”
“사실이겠지?”
“그러니까 기자들을 불러놓고 저렇게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게 아닐까요?”
“대체 왜 서버는 압수 안 해온 거야?”
“네?”
부부장검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료는 여기도 다 있는데 굳이 백업 파일이 담긴 서버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서버는 왜 압수해올 생각을 안 했느냐고!”
“백업 파일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본은 저희가 가져왔으니까요.”
“백업 파일이니까 가져왔어야지.”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이야기란 말인가?
“원본을 백업하면 백업 파일인데 그걸 굳이….”
“그래도 가져왔어야지.”
“그렇지만 부장님. 최건우가 백업 파일을 다시 백업해뒀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구는 놈인데 서버만 가져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부장검사는 그제야 유창석 부장검사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파일을 가지고 장난을 치자는 건데 백업 파일이 남아 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어쩌면 건우는 이미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기자회견을 통해 백업 파일을 언급했을 수도 있다. 검찰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수단으로.
“다들 일 보고 부부장검사 너만 따라와 봐.”
“네, 알겠습니다.”
보는 눈이 많자 유창석 부장검사는 같은 층에 있는 소회의실로 부부장검사를 따로 불러냈다.
“최건우 말이 사실일까?”
부부장검사가 회의실 문을 닫고 들어오자 유창석 부장검사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지…?”
“왜, 불법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자기 전 재산까지 걸겠다고 했던 그 말. 그냥 보여주기식 쇼일 수도 있잖아.”
“그게… 기자회견장에서 그렇게 말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요?”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어디 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TV를 통해서 보여준 최건우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봐, 부부장.”
“네, 부장님.”
“각 지청에서 난다긴다하는 애들을 수십 명이나 데려왔어. 그런데도 문제점을 찾아낼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사소한 거라도 괜찮으니까 무조건 찾아내. 조작을 해서…. 아니지, 아니야. 백업 파일이 있으니 그건 이미 물 건너갔고. 이런 빌어먹을! 어쨌든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무조건 찾아내, 알았어?”
“…네, 부장님.”
***
[최건우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
어제 검찰이 초이스 에듀에 대한 기습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상한 건 지금까지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 땐 명확한 사유를 밝혔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다는 사실이다.
압수수색을 지휘했던 유창석 부장검사는 세금 쪽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뉘앙스를 풍겼지만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일부 언론(공교롭게도 친정부 언론사로 분류되는 곳만 압수수색을 미리 알고 취재를 나갔다.)은 유창석 부장의 애매모호한 말 한마디만으로 최건우 대표를 극악무도한 탈세범으로 몰고 갔다. 압수수색 이후 그 어떤 경과 발표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일부 언론의 객관적이지 못한 기사가 나간 이후 최건우 대표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었다. 문제의 기사가 올라오자 기다렸다는 듯 최 대표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순식간에 1,000개가 넘는 공감을 받았다.
최 대표를 옹호하던가 비난은 검찰 발표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논조의 댓글은 엄청난 비공감을 받고 수면 안으로 가라앉았다.
굉장히 체계적인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검찰이 수사 발표를 하기도 전에 유죄를 받을 판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최건우 대표가 하루 만에 기자회견을 요청했다.
그는 탈세 혐의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돈에 욕심이 있었으면 기부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탈세 따위를 하지 않아도 이미 넘칠 만큼 충분한 재산이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또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구심을 나타냈다.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의 음모일 수도 있다는 가설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우리는 그동안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많은 범죄자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대부분은 검찰의 수사로 낱낱이 밝혀진 죄목들에 고개를 숙였다.
언뜻 보기엔 최건우 대표의 행보도 그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의 이번 기자회견은 대중들의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물론 자신의 전 재산을 거는 과감한 선택이 신뢰를 얻었겠지만 사회 약자를 도와온 최 대표의 진정성을 대중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 좋았던 여론은 한번에 뒤집혔다.
하지만 검찰은 중간 수사 경과만이라도 알려달라는 언론의 요구에 대해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후략)
- 만선일보 최영선 기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