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31화 (231/256)

제231화

“얼마나 대단한 일이길래요?”

“먼저 아셔야 정보가 있습니다. 용현철은 조정 선수입니다.”

“노로 배를 젓는 경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했으니 싱글이나 페어 경기는 주종목이 아니었을 것 같군요.”

싱글은 혼자, 페어는 둘이 짝을 이뤄서 하는 조정 종목이다.

미국 북동부에 있는 8개 명문 사립대학교 또는 이들 대학으로 구성된 스포츠연맹을 아이비리그라고 부른다. 조정 경기도 그중 하나다.

하버드 출신인 건우도 몇 관람한 적이 있어서 대략적인 규칙 정도는 안다.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용현철은 에이트 종목 선수입니다.”

에이트는 조정의 꽃이라고 불리는 종목으로 배의 키를 잡는 콕스 한 명과 노를 젓는 여덟 명의 선수가 한 팀이 되어 승부를 겨루는 경기다.

“설마 콕스 담당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콕스를 하기에는 몸이 꽤 건장한 편이거든요.”

콕스는 배의 키를 잡는 사람이기 때문에 체중이 가벼워야 한다. 건장한 체격이라고 해서 콕스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속도를 겨루는 경기인 만큼 몸무게가 가벼운 쪽이 많이 유리하다.

“조정이 쉬운 종목이 아닌데 어쩌다가 그 운동을 하게 된 겁니까? 물론 그렇게 따지면 쉬운 운동이 없긴 하지만요.”

“용현철은 공부 머리가 없었고 미술이나 음악에도 재능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동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 같습니다. 운동도 재능이 없으면 힘들지만, 돈지랄을 하면 무조건 대학은 갈 수 있는 종목이 있습니다.”

“그게 조정은 아니겠죠?”

“승마입니다.”

“아…! 확실히 승마는 집에 돈이 많아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스포츠이긴 하죠. 그런데 아까 용현철 체격이 좋다고 안 하셨습니까?”

승마는 말을 타고 구조물을 넘어야 하는 스포츠이다. 그런 만큼 기수가 몸이 가벼워야 유리하다.

“역시 예리하시네요.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였습니다. 열여덟 살이 되면서 갑자기 용현철의 덩치가 커져 도저히 승마로 성적을 낼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겁니다.”

“설마 그래서 조정으로 옮긴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 왜 하필 조정을 선택한 거죠?”

“일단 용선국이 대한조정협회 회장입니다.”

“용선국 이사장이요?”

“네. 알고 계시겠지만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이 펼치는 조정 경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그런데 용선국이 옥스퍼드대학에 다닐 때 조정팀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레귤러는 아니고 후보였습니다.”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이 겨루는 스포츠 대항전은, 전 세계 대학 라이벌전의 원조 격이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한국의 연고전도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정협회 회장을 맡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네요.”

“용선국의 영향 때문인지 용씨 집안에서는 조정을 승마와 더불어 굉장히 귀족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현철이 조정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기네요. 고2부터 옮겼으면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운동기간이 2년밖에 안 되는데 그 경력으로 한강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바로 그것도 용현철이 조정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조정은 기본적으로 노를 저어서 승부를 내는 종목입니다. 기술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폭발적인 힘으로 결승점까지 노를 저어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종목은 아니기 때문에 고2부터 시작해도 괜찮았다…?”

“그렇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못하는 티가 거의 안 나는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무슨 뜻이죠?”

“피지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헬스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적당히 근육질 몸만 만들어도 일반인 눈에는 조정 선수로 그럴싸하게 보입니다. 근육의 질은 비교도 안 되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그걸 어떻게 구분하겠습니까?”

“그럼 에이트가 주종목인 것도 실력이 들통 나지 않게 하려는 꼼수였겠군요.”

“그렇죠. 조금만 연습해도 노 젓는 시늉은 할 수 있으니까요. 조정은 비인기 종목이라서 선수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최고 실력인 애들 1등부터 7등까지 데려와서 팀을 만들고 거기에 용현철을 넣어버리면 곧바로 우승입니다.”

“그런 식이면 화려한 우승 경력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네요. 그런데 그걸 다른 조정 관계자들이 그냥 보기만 하겠…. 아! 대한조정협회 회장이 용선국이니 뭐라고 할 사람도 없겠군요.”

일반인들은 몰라도 전문가 눈에는 보인다. 그렇지만 비인기 종목이라서 폭로를 해도 관심을 못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괜히 나섰다가 배신자로 찍혀 영원히 조정계에서 퇴출당하느니 한 명쯤은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다.

“솔직히 이 정도는 다른 스포츠계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모른 척 넘어갈 수 있는데, 조순희는 여기서 더 큰 욕심을 냈습니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에 고무돼 용현철을 국가대표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조정을 배운지 1년밖에 안 된 사람을 국가대표로요? 맙소사.”

“당시 우리나라 에이트팀은 아시아에서는 최강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조순희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최강 팀이니 한 명쯤 빼고 용현철을 넣어도 우승을 할 수 있을 거라고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면 군대도 합법적으로 면제받을 수 있으니 욕심이 생겼겠죠.”

“설마 금메달을 딴 겁니까?”

“아니요. 동메달로 밀렸습니다.”

아시안게임은 초일류 선수들이 승부를 겨루는 대회다. 아무리 최강팀이라고 해도 2~3위 팀과 시간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 경기에서 초일류 선수를 빼고 삼류도 안 되는 선수를 대신 집어넣었으니 우승할 리가 있나. 어떻게 보면 동메달을 딴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원래 있던 선수들은 억울했겠네요. 용현철을 데리고도 동메달을 딸 정도의 기량이었으면 금메달도 가능했을 텐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선수 네 명이 현역으로 입대했습니다. 용현철이 있는 한 올림픽 메달은 고사하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겠죠.”

“네 명의 선배는 동메달 때문에 군대에 들어갔는데 용현철은 동메달 덕분에 한강대에 들어갈 수 있었군요. 뭔가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 불합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서류 접수 시기상 아시안게임 동메달은 수상경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시안게임 동메달로 한강대에 입학했다면 그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한강대는 체육 분야에서 최고 명문 대학인만큼 국내 단체전 우승경력만으로 입학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합격했다면 아시안게임 동메달이 당락에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매우 높다.

“처음 말씀하신 입학비리가 이겁니까?”

“네. 맞습니다. 당시 탈락한 학생들 수상경력을 조사 중인데, 결과는 좀 더 확실해진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가대표 선발 문제와 입학 문제 이 두 가지만 해도 꽤 큰 타격을 줄 수 있겠군요. 그…런데 차 실장님 표정을 보니 아직도 나올 게 더 있는 것 같군요.”

“용현철은 지금도 조정 국가대표입니다. 수상은 못 했지만 올림픽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체 건강한 사람이 군대를 면제받았습니다.”

“허! 현 국가대표가 몸이 아파 군대를 면제받았다고요? 그럴 수도 있나요?”

“100%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긴 어려운데 그래도 정말 희박합니다.”

“그런 희박한 확률을 뚫고 용현철이 군 면제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겠죠? 이건 뭐 온통 문제투성이네요.”

차지훈이 왜 폭탄이라고 표현했는지 건우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놀라기엔 이르십니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았습니다.”

“여기서 또요?”

“용현철이 체육교육학과라고 말씀드렸죠?”

“네. 그런데요?”

“믿기 어렵게도 임용시험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네?”

순간 건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운동을 시켰는데 아무리 체육 과목이라고 해도 그 어렵다는 임용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지역이긴 하지만 임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직 면접을 남겨 놓기 있긴 한데 용현철이 거기서 떨어질 것 같진 않아서요.”

“가능한 겁니까?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면서요?”

“아시안게임 동메달이 실기점수에 가산될 수 있겠지만, 그거론 부족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고시원에 틀어박혀서 온종일 공부만 한 학생들을 선수생활을 하며 공부할 시간조차 부족했을 용현철이 누른 거니까요. 알고 보니 엄청난 천재였던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비리가 있던가, 둘 중 하나겠군요.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굳이 임용시험을 봤답니까? 용씨 가문이 운영하는 사학재단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쪽으로 갔으면 이런 의혹이 생기는 일도 없었을 텐데요.”

용씨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중·고등학교만 서른 곳이 넘는다. 그 많은 학교 중에 설마 용현철 한 명 들어갈 곳이 없을까?

건우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용선재가 용씨 가문에서 퇴출되어 그런 게 아닐까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용현철은 용선재의 장남입니다. 아버지가 퇴출되었다고 해도 용현철이 용씨 가문의 적장자인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가 용씨 가문이 운영하는 재단 교사로 들어온다면 용선국의 권위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흠… 그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만약 임용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한 걸까요? 문제 유출은 아니겠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매수해야할 사람도 한두 명이 아니라서, 그 과정에서 소문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팀에서는 일단 컨닝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도 황금숙과 조순희가 그 정도로 막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이제 제가 결정만 내리면 되는 거로군요. 차 실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대표님이 뭐로 결정하시던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의견 좀 들어보려고 했더니 교묘하게 빠져나가시네요. 허긴, 이건 오롯이 저 혼자 결정해야 할 문제이긴 하네요. 그럼 이제 어쩐다….”

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감았던 눈을 떴다. 그 사이 어떤 결심을 내렸는지 말해주듯 눈빛이 단호하게 변해 있었다.

“결정을 내리신 모양이군요.”

“네, 어차피 제가 선택할 정답은 정해져 있는데 길게 끌어봐야 뭐하겠습니까? 저는… 끝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대표님의 의사를 반영해 좀 더 세부적인 계획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중으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겠어요?”

“기자회견을요?”

차지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끝까지 가기로 했는데, 시작부터 밀리고 들어갈 순 없지 않습니까? 저쪽의 언론 플레이가 시작되기 전에 제가 먼저 칼을 빼 보려고요.”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서초구에 있는 서울 고등검찰청이 오랜만에 북적였다.

지금 이곳엔 초이스 에듀 전담 수사본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비롯해 서울에 있는 모든 검찰청에서 에이스 분류되는 검사와 수사관이 총동원됐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정부와 여당 교피아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이었다. 최대한 빨리 초이스 에듀의 문제점을 찾아 언론에 공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 떠들썩하게 압수수색을 한 의미가 사라져버리고 정부의 초이스에듀 죽이기라는 역풍만 맞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직도 제대로 나온 게 없어?”

수사본부가 마련된 14층의 대회의실에 유창석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게 부장님,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부부장검사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제대로 조사하고 있는 거 맞아? 총장님이 신경 써서 에이스들만 모았다며. 그런데 왜 아직 아무것도 안 나와?”

“초이스 에듀 이놈들이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망할 놈의 새끼들 끝까지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유창석 부장검사는 어제 차지훈에게 망신당했던 일을 생각하며 뿌드득 이를 갈았다.

뭐라도 나와야 이죽거리던 그 얼굴에 한 방 먹일 수 있는데 상황이 생각만큼 여의치 않자 괜히 짜증이 났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대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검사 한 명이 황급이 뛰어 들어왔다.

“부장님,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난리야?”

“TV, TV를 보십시오. 지금 최건우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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