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27화 (227/256)

제227화

골드 스타는 신생 연예기획사다.

옐로우 레이디가 속해있던 늪 매니지먼트를 인수하면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청수를 비롯한 S급 연예인들을 줄줄이 스카우트한 이후 단숨에 최고 수준의 연예기획사로 발돋움했다.

골드 스타가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서호영 사장의 공이 가장 컸다. 연예계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했던 그의 이름 덕분에 S급 연예인과도 손쉽게 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연예기획사가 성공하려면 필요한 게 뭘까?

돈? 연예계가 자본 논리로 돌아가는 건 맞지만 단순히 돈이 많은 걸로는 연예기획사를 성공시킬 수 없다.

연예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방송국은 시청률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타’다.

그냥 스타도 아니고 S급 스타라면 평소 목이 빳빳한 방송국도 해당 연예기획사에 소개를 숙이며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골드 스타에는 S급 연예인이 4명에 A급 연예인이 10명이나 된다.

이정도면 케이블은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국도 골드 스타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옐로우레이디는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진 골드 스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걸그룹이다. 애초에 건우가 그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만든 게 골드 스타였으니 S급이 몇 명이든 골드 스타의 최우선 순위는 옐로우 레이디였다.

성공은 당연했고 그녀들은 순식간에 톱스타 대열에 올라섰다.

새로 나온 음반은 각종 음원 순위에서 1위부터 차례로 줄 세우기에 성공했고, 각종 연예프로그램에 고정 자리를 꿰찼다. 리더이자 가장 큰 언니인 스칼라는 자신이 가장 바라던 라디오 DJ도 맡게 되었다.

더는 불운한 일 없이 꽃길만 걷게 될 줄 알았던 옐로우 레이디. 그러나 그녀들에게 또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사장님. KBC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주말 프로그램 개편을 한다더군요.”

유태영 부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설마 또 옐로우 레이디 이야기야?”

“네.”

“KBC면 청춘시대겠네? 그 프로그램은 꽤 잘나가잖아. 동 시간대 1위로 알고 있는데 아니야?”

“압도적인 스코어는 아니지만 최근 두 달 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건 맞습니다.”

청춘시대는 두 달 전 옐로우 레이디 멤버들이 고정으로 들어간 이후 꼴찌였던 시청률이 1위로 뛰어올랐다.

“미친 새끼들. 꼴찌 하던 걸 1위로 올려줬으면 고마워할 줄은 모르고,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쳐!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 누굴 하차시킨대? 우리 애들 둘 다?”

“네. 소린과 은아 둘 다요.”

“망할. 뜬금없이 제니퍼를 하차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러는 거야.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 아닌가? 우리 애들 대신 누가 들어오는데?”

“대답은 안 해주는데 로켓소녀들로 교체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뭐어? 로켓소녀들? 씨발. 이 정도면 거의 우리 애들 죽이기로 작정했다는 거네. 예의라곤 전부 쌈 싸먹은 새끼들 같으니.”

로켓소녀들은 옐로우 레이디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걸그룹이다.

한번 고정이라고 해서 영원한 건 아니다. 방송사 사정상 고정 멤버를 하차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굳이 가장 관계가 나쁜 사람을 대신 집어넣는다는 건 노골적인 디스나 다름없다.

골드 스타는 막강한 연예인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웬만큼 감정이 상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막 나갈 리가 없다.

서호영 사장은 바로 이점이 답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KBC와 이렇게 감정싸움을 해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또 있습니다.”

“이번에도 KBC야? 설마 엘로우 레이디 말고 다른 애들도 하차 통보한 거야?”

“그건 아닙니다. MBS 측에서 스칼라고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없앤다고 합니다.”

“휴…. 이봐, 유 부장.”

“네, 사장님.”

“방송국들 하는 짓거리를 보니 뭔가 이상한데 말이야. 지금 이거 옐로우 레이디만 노골적으로 죽이려는 거… 맞겠지?”

뭔지 모르겠지만 옐로우 레이디가 누군가에게 밉보인 건 분명했다.

“다른 애들은 그대로 두고 옐로우 레이디만 퇴출시키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뭘까? 우리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이러는 이유. 이렇게 나오면 나도 우리 애들 전부 철수시킬 수 있거든.”

“제가 생각하기엔 그러지 못하리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겁니다. 한군데가 아니라 KBC, MBS, SBC 세 곳이 짠 것처럼 거의 동시에 퇴출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전에 합의가 없었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한 곳이라면 모를까 지상파 방송국 세 곳이 작정을 해버리면 아무리 거대 연예기획사라고 해도 방법이 없다.

최근에는 케이블 방송이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규모 자체가 다르다.

“이러면 우리 애들을 빼버리겠다는 협박도 안 통할 테고. 대체 옐로우 레이디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걸까? 이유를 알아야 대책을 마련할 텐데 난 감이 안 와.”

“그게 말입니다, 사장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태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왜 그래? 유 부장 너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얼마 전에 제가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었습니다.”

“이상한 소문? 그게 애들이랑 관련이 된 거야?”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까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 소문이 무슨 내용인데?”

“정부에서 연예인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블랙리스트?”

“최건우 대표님이나 장문오 시장에게 호의적이거나 친한 연예인들 명단을 만들어서 방송에서 퇴출시키고 있다는 소문인데, 그 명단을 블랙리스트라고 한답니다.”

“미친 거 아니야? 세상이 어느 땐데 그런 걸 만들어! 그러다가 들통 나면 어쩌려고?”

“솔직히 뭐가 무섭겠습니까? 지상파 방송국 3사가 이렇게 합심해서 말을 듣고 있는 상황인데요.”

서호영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생각해도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기획사 전체를 물 먹여야 하는 거 아니야? 최 대표가 사실상 우리 물주니까, 골드 스타 자체가 친 최건우 연예기획사 아니냐?”

“그 속사정을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할 수도 있고요. 따지고 보면 우리 기획사에서 옐로우 레이디 말고 최 대표님이랑 친한 애들이 없으니까요.”

“개자식들. 최 대표랑 친한 게 뭔 죄라고 걔들을 잡아. 혹시 다른 연예인들도 피해 본 경우가 있어?”

“생각해보면 꽤 됩니다. 예전에 류명훈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던 연예인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 양반이야 국민들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으셨으니까. 그분 돌아가셨을 때 빈소에 찾아가서 연예인들이 꽤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TV에도 나왔잖아, 우는 모습이.”

“이번에 장문오 시장이 민국당에 입당하면서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류 전 대통령을 따르던 연예인 중에 장문오 시장의 복당을 축하한다고 지지 선언 비슷한 글을 SNS 남긴 사람이 십여 명 되는데….”

“설마 그 사람들이 전부 잘려나간 거야?”

“네. 일단 공중파에서는 전부 퇴출 됐습니다.”

“하여간 SNS는 역시 인생의 낭비라니까. 에휴, 그 사람들도 좀 참지. 이번 대통령 쪼잔한 성격인 거 잘 알면서 굳이 그렇게 대놓고 지지 선언을 할 필요가 있나. 안타깝네, 안타까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서호영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뭐, 솔직히 그 사람들 잘못인가요? 그걸 가지고 보복하는 정부가 웃긴 거지.”

“내가 그걸 몰라. 그냥 답답해서 하는 소리야. 그런 식으로 미운털이 박히면 얼마나 고생인데. 5년씩, 10년씩 아무도 안 찾아줄 수도 있어.”

“그 사람들도 이렇게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노골적으로 잘라낼 줄은 몰랐나 보죠. 솔직히 자기랑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연예인을 방송에서 자르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우리나라가 언제는 말이 되기는 했고? 에잇, 빌어먹을. 최근에 최건우 대표 행보가 좀 조마조마해 보이더니 결국 그 불똥이 옐로우 레이디한테 튄 거구만. 요즘은 거의 얼굴도 안 보는 것 같던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대체 걔들한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해?”

옐로우 레이디가 겪은 여러 번의 불행을 잘 아는 서호영으로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을 수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중국이랑 동남아에서 옐로우 레이디 인기가 급상승해서 섭외 요청이 많이 들어왔는데 이참에 해외 투어나 도는 거 어떻습니까?”

“솔직하게 말 안 하고?”

“굳이 현 대통령한테 밉보였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제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은 애들인데. 일단 몇 달 동안 중국이랑 동남아 쪽 돌다가 상황 좀 괜찮아지면 다시 돌아오는 걸로 하시죠?”

“그럴까? 아무래도 괜한 충격을 주는 것보다 그게 낫겠지? 전에 골드 스타 시작할 때 최 대표가 특별히 부탁한 일도 있으니 좀 아쉬워도 그렇게 하자. 이건 유 부장 네가 알아서 준비해봐.”

“알겠습니다, 사장님.”

***

“예상했던 것처럼 우리 직원들에게 손을 뻗기 시작했습니다.”

차지훈이 서류철을 건우에게 내밀며 대략적인 상황을 전달했다.

“벌써요? 빠르네요. 몇 명이나요?”

“지금까지 열한 명입니다.”

“백 명도 안 되는 직원 중에 열한 명이면, 굉장히 많네요.”

“이번 주 안에 거의 한 번씩은 다 찔러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맥 가지고 장난치는 걸로 유명한 놈들이니까요.”

교피아는 예전부터 이런 걸로 유명했다.

몇몇 사람을 포섭해 직원들끼리 심각한 불화를 일으키는 건 애교 수준이었고, 중요 기술을 빼 와서 눈독 들인 회사를 망하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수철이 제안받은 것처럼 지금보다 훨씬 좋은 자리에 로또 당첨금과 비슷 금액의 보너스를 준다는데 그걸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설사 있다고 해도 소수일 뿐이지 90% 이상은 이게 웬 떡이냐고 생각하고 냉큼 받아먹을 게 뻔하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세 명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잔 매에 견딜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교피아에 무차별 공세에 대부분은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이라면 초이스 에듀는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기업이 끼지 않은 이상 돈이라면 건우도 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교피아 측에서 돈을 제안하면 그 돈을 그대로 보상한다는 파격적인 결정까지 내린 것이다.

보상금으로 큰돈이 나갈 수도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차피 건우도 물러설 곳이 없다. 장문오와 손을 잡은 것도 현 정권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직원들 반응은 어때요?”

“다행히 미리 교육한 덕분에 대부분은 담담합니다. 그런데 두어 명 정도가 마음에 걸려 하더군요.”

“어떤 문제 때문에 그런 건가요? 혹시 보상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어휴. 아닙니다, 그건. 걔들도 이미 충분히 과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연봉만 해도 동종 업계에서 최고인 데다가 아픈 가족까지 챙겨주는데 거기서 뭘 더 바라겠습니까? 단지 그 녀석들에게 부탁해온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 얄궂어서요.”

“거절하기 쉽지 않은 관계인가 보네요.”

“걔들 말로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휴…. 정말 치졸하게 나오네요.”

건우는 검지를 세워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들겼다.

“이미 예상했던 일 아닙니까? 가족은 물론이고 애인에게 접근한 경우도 있는데요, 뭘.”

“애인이요? 애인이면 생명의 은인 만큼이나 곤란한 상황 아닙니까?”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번 일로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헤어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어쨌든 생명의 은인이 한 부탁을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죠?”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기까지는 그렇지만, 만약 장만복 회장님이 대표님에게 곤란한 부탁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냉정하게 따져서 대표님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닌 상황에서요.”

건우가 아무리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장만복 회장의 아낌없는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지 느낌이 확 오네요.”

“제가 잘 다독일 테니 너무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포섭 실패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우리가 합당하게 보상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표님이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돈질이라면 안 질 자신이 있다고.”

“그럼요.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런 지원이라면 무조건 결재해드리겠습니다.”

“예전엔 쥐꼬리만 한 활동비 좀 타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고용주께서 돈이 많으시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네요.”

“저도 이젠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라 앞뒤 가릴 수 없지 않습니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봐야죠. 그런데 차 실장님.”

“네, 대표님.”

“우리가 제대로 반격할 실마리는 찾았습니까? 이렇게 방어만 하다가는 밑천이 다 털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종수가 재미있는 건수를 몇 개 찾아서 파고 있습니다.”

차지훈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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