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06화 (206/256)

제206화

“흠흠. 그럼 두 분 이야기는 이제 끝난 겁니까?”

건우가 제안하고 백우찬이 수락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마동수가 장난스럽게 손을 들었다.

“왜, 너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와! 우찬 형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제가 언제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또라고 그러세요?”

“내가 너를 하루 이틀 봐? 아니라고 하려면 얼굴에 있는 장난기부터 없애던가.”

“에이. 그냥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이 흐뭇해서 그런 거죠. 솔직히 최 대표님은 원래 알아서 잘 나가시니 걱정 안 하지만 형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 내가 어때서?”

마동수의 이상한 딴지에 백우찬이 발끈했다.

“너무 순수하시잖아요. 사내 정치는 관심 없고 일에만 집중하는. 이대로 가다가는 이사 자리에서 끝날 수도 있는데 이번 일로 미래건설 차기 사장직을 확정지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제가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사장은 무슨 사장, 이 나이에.”

“흐흐흐. 그래도 사장이 되기 싫은 건 아닌가 보네요.”

“야! 그… 그건 아니고.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에헤이. 또 말을 더듬으신다. 제가 이런 일로 흰소리 하는 거 봤습니까? 형님은 무조건 차기 사장이 되십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 교육 타운까지 합치면 30조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매출을 혼자서 올린 건데, 형님 아니면 누가 사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게 무슨 내 힘인가? 네가 도와줘서 그렇지.”

“저는 그냥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 미래건설을 소개해준 게 전부죠. 나머지는 전부 형님이 이뤄낸 겁니다. 지금도 보세요. 제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최 대표님이 먼저 알아보고 형님을 발탁했지 않습니까?”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경우 마동수의 존재가 큰 힘을 발휘하는 게 사실이지만 실력도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길 만큼 호락호락한 회사가 절대 아니었다.

“그건 맞습니다. 마 이사님은 자신이 굉장히 좋아하는 형님이 있다고만 했을 뿐 교육 타운 관련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보세요. 저는 몰라도 최 대표님 말씀까지 의심하는 건 아니시죠? 그럼 이번 계약 깨집니다.”

“어휴, 너 이 자식은….”

“하하하. 진정하세요, 형님. 그건 그렇고 음… 최 대표님.”

“네, 마 이사님.”

“이번 교육 타운 건설에 어떤 투자도 받지 않겠다고 하셨죠?”

“네. 투자를 받게 되면 잡음이 생기니까요. 그럴 바에는 고생스럽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 생각에는 동감합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투자해놓고 거액의 투자자처럼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음… 오해는 마시고….”

마동수는 뭔가 꺼내기 쉽지 않은 듯 주저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뭔데 그러세요? 마 이사님답지 않게 망설이길 다 하시고.”

“하하하. 역시 그렇죠? 이렇게 주저하는 건 저 답지 않은 거죠? 그럼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릴게요. 투자는 받지 않지만 조건 없는 기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조건 없는 기부요?”

“아, 완전히 조건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고현호 전무님과 교육 타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고현호 전무는 고대성 회장의 셋째 아들로, 위에 있는 두 형을 제치고 동지그룹의 차기 총수로 확정됐다. 마동수는 그런 고현호 전무의 오른팔로 불리는 사람이다.

고대성 회장이 실무에서 뒤로 물러났고 사실상 고현호 전무가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 말은 곧 얼마 전 와룡그룹을 누르고 재계서열 2위로 올라선 동지그룹의 이인자가 바로 마동수 이사라는 뜻이기도 하다.

장난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동수의 말은 곧 동지그룹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동지그룹에서 우리 프로젝트에 조건 없는 기부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물론 조건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기부하는 돈으로 짓는 건물에 ‘동지’라는 이름만 넣어주시면 됩니다. 거창하게도 필요 없고 그냥 ‘동지관’, ‘동지빌딩’이 정도면 됩니다.”

마동수는 건우의 교육 타운 건설이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을 역사적 사건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예측이 아니라 확신에 가깝지만.

그런 엄청난 프로젝트에 ‘동지’라는 두 글자를 넣을 수 있다면? 그건 동지그룹의 미래에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게 분명 했다.

괜히 오버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에 광고를 넣으면서 동지그룹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는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것만 해도 투자한 돈의 수백 배 이상의 가치를 뽑아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엄청난 재미를 본 마동수로서는 건우가 새롭게 진행하는 교육 타운 프로젝트를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투자가 아니라 기부였다.

“건물을 지을 정도로 기부하신다고요? 대체 얼마를 생각하고 계신 건데요?”

“그건… 미리 죄송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금 굉장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중이라서 큰돈을 기부하긴 힘드네요. 만약 최 대표님이 받아주신다면 동지그룹 이름으로 딱 5,000억 원만 기부하겠습니다.”

“5,000억 원이요? 그게 적은 돈입니까?”

솔직히 1~200억 원 정도 규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정도 돈이면 적당한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고 했는데, 마동수의 제안은 건우의 예측을 훌쩍 넘어버렸다.

“에이, 10조 원 넘는 돈을 홀로 감당하시는 최 대표님과 비교하면 약소한 게 사실이잖습니까. 제가 고현호 전무님에게 적어도 1조 원 정도는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안 들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1시간 넘게 설득해서 5,000억 원으로 합의 봤습니다. 어떻습니까, 저 잘했죠? 하하하.”

너무나도 엄청난 이야기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별거 아닌 것처럼 해맑게 웃는 마동수의 모습에 건우와 백우찬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리액션은 비슷해도 속마음은 완전히 달랐다. 백우찬이 마동수의 여전한 꼼수에 감탄했다면 건우는 마동수의 대범함에 놀랐다.

5,000억 원이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 돈이 추가되면 무료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을 최소 천 명 이상 더 늘릴 수 있다.

건물 하나에 ‘동지’라는 이름만 넣어주면 저절로 5,000억 원이 생기는 건데 그 좋은 조건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5,000억 원도 절대 적은 돈이 아닌데요?”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제 돈도 아닌데요, 뭘.”

“네?”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제 제안에 부담가지지 마시라는 뜻에서 한.”

“부담이 없는 건 아닌데 정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네요.”

“그럼 받아주시는 겁니까?”

마동수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네, 5,000억 원을 거절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동지관은 반드시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 교육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건물에다가 짓도록 하겠습니다.”

“어디든 상관없긴 한데, 굳이 창의력과 연관된 건물인 이유가 있습니까?”

“창의력이 높은 학생들 대부분은 EQ가 높거든요.”

건우가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런… EQ요? 그러다가 나중에 그 건물이 동지관이 아니라 꼼수관으로 불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호, 꼼수관이요? 그것도 괜찮은 이름인데요?”

“뭐라고요? 하하하.”

***

[초이스 에듀와 동지그룹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기부문화 콜라보.]

초이스 에듀가 교육 타운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투자는 분명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조건 없는 기부는 예외였던 모양이다.

동지그룹이 초이스 에듀와의 공동 성명서를 통해 여주 교육 타운에 5,000억 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교육 타운에 세워질 건물 중 하나에 ‘동지’라는 이름을 넣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조건도 없는 그야말로 파격에 가까운 기부 결정이다.

동지그룹 마동수 이사는 이번 기부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앞으로 20년 뒤에 한국이 강대국 반열에 오른다면, 최건우 대표의 교육 타운 덕분일 것이다.

한국은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의 한계에 부딪히며 지금까지 계속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확실한 성장 원동력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후퇴할지도 모른다.

교육 타운은 이런 답답한 교착 상황을 타파하고 한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교육 타운에서 배운 창의력 넘치는 새로운 유형의 인재들이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런 소중한 인재들에게 「동지」라는 이름 두 글자를 각인시킬 수 있다면 5,000억 원 정도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

굉장히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교육 타운의 실효성에 대한 의견은 굉장히 분분했다.

말도 안 된다, 한계가 있다, 최건우라도 우리나라 교육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학생들을 볼모로 함부로 교육 실험을 하면 안 된다, 등등.

그런데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가장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동지그룹이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육 타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특히나 마동수 이사는 동지그룹의 첨병으로 재계서열 5위였던 그룹을 2위까지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며,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패도 없는 완벽한 일처리로 명성을 날렸다. 이에 재계에서는 그를 두고 ‘미다스의 손’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데 이번 기부도 마동수 이사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동지그룹을 따라 기부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줄을 잇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처음엔 다른 기업의 기부 의사에 초이스 에듀는 난색을 표했지만, 동지그룹만 받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강력한 주장에 한 걸음 물러나 1,000억 이상의 기부금에 대해서만 기부 창구를 열기로 결정했다.

기부 받는 사람은 괜찮다는데 기부자들이 우겨서 기부하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일명 ‘마동수 효과’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까지 초이스 에듀가 기부받은 돈만 동지그룹의 5,000억 원을 포함 총 1조 6,000억 원에 이른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기부액이 모인 건 반만년 역사이래 최초의 일이다.

더욱 놀라운 건 기부행렬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체 얼마까지 모일지 아무도 모른다.

최건우 대표와 마동수 이사가 손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두 사람은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젊은 기업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건우 대표를 기업가로 볼 수 있느냐는 약간의 논란이 있지만, 그건 학원 운영을 비하하는 일부 시선일 뿐이다. 1년 매출 1조 원이 넘는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을 기업가라고 부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기업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쨌든 두 사람의 만남이 무서울 정도로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순히 기부액만 많은 게 아니라 기부 문화까지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다.

마동수 이사는 교육 타운이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이 될 거라고 했지만, 이미 젊고 건강한 두 기업가가 제대로 된 발판을 만들고 있다.

이게 바로 마동수 + 최건우 콜라보 진정한 효과가 아닐까?

10년 후 교육 타운이 배출하는 학생들은 두 사람이 만든 발판을 밟고 세계로 훨훨 뛰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바른 신문 김대문 기자

***

“아, 마동수 이사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회의 시작 30분 전, 초이스 에듀 마케팅팀의 팀장 김완태가 차지훈에게 하소연을 했다.

“왜?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어?”

그런데 차지훈의 반응이 이상하다. 또 안 좋은 일? 그렇다면 마동수 이사가 그전에도 문제를 일으켰다는 뜻일까?

“아니요. 계속 같은 문제죠. 기부 요청이 갈수록 미친 듯이 몰려들어서, 다른 업무를 못할 지경이에요. 대체 기부 문제를 왜 마케팅팀 맡아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나도 그게 궁금해. 마케팅이랑 기부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쵸? 차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럼!”

차지훈의 왼쪽 입술이 살짝 실룩거렸지만 김완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교육 타운 관련 기부 문제는 손다정이 담당하고 있는 기획조정실에서 맡을 예정이었다. 정식은 아니고 교육 타운만 전문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생길 때까지 임시로 몇 달간만.

그런데 그걸 반대한 사람이 차지훈이다. 지금 기획조정실이 기부 문제까지 맡으면 손다정이 너무나도 힘들어진다는 게 이유였는데, 김완태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대로는 절대 안 됩니다. 전화 상담이라도 전문적으로 받아주는 직원들을 따로 뽑아야 마케팅팀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어요. 정말 희한한 경험입니다. 소액 기부는 정중히 거절한다고 했더니 자기 돈 무시하느냐고 화를 내는데, 어휴.”

전화 상담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완태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원래 회의 시간이 다 되어서야 회의실에 오는 스타일인데 이렇게 미리 온 것도 전화 상담이 무서워 도망친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교육 타운 일은 전부 미래건설 백우찬 이사가 담당하기로 했잖아. 그럼 기부 문제도 그쪽에서 담당해야 하는 것 아니야?”

“에이. 그럴 수야 있나요? 돈이 걸린 일인데. 조금만 더 지나면 기부액만 2조 원을 돌파해요. 그걸 누굴 맡겨요? 우리가 전부 관리해야지.”

“그런 거야?”

차지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척 두 눈을 끔벅거렸다. 김완태는 신이 나서 기부에 관해 잔뜩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옆에서 황당한 웃음을 짓고 있는 손다정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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