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05화 (205/256)

제205화

“어서 오세요, 마동수 이사님. 바쁘신데 연락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 대표님이 불러주셨는데 당연히 한걸음에 달려와야죠. 제 옆에는 미래건설 백우찬 이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건우 대표님. 미래건설의 백우찬이라고 합니다.”

라이브 스트리밍 광고 건으로 미팅을 한 이후 건우와 마동수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다.

건우가 전통적 의미의 IQ 천재라면 마동수는 EQ의 천재다. 그야말로 꼼수의 달인. 누군가는 그냥 잔머리가 좋을 뿐이라고 비하할지 모르지만, 그 잔머리 하나로 동지그룹 최연소 이사가 되었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상대의 모습에 신선함을 느끼며 금방 친해졌다.

친해져도 말을 놓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마동수가 건우보다 15살이나 많지만 마동수는 언제나 존댓말을 고집했다. 건우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해도 한 회사를 책임지는 대표에게 일개 이사가 그럴 수 없다며 거절하면서 지금과 같은 사이가 됐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많은 건설회사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초이스 에듀 직원들에 압력을 넣자, 건우는 동지그룹 마동수 이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일을 가장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적격자가 마동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어서 오십시오. 마 이사님이 백 이사님 이야기를 종종 꺼내서 항상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저도 동수에게, 아니 마 이사에게 최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한번 뵙고 싶었는데 시기가 안 맞아서 다음으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타이밍에 만나면 대표님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아서요.”

백우찬은 그동안 계속 중국에 머물다가 얼마 전 한국에 들어왔다. 평소였다면 마동수와 함께 얼굴을 봤겠지만, 그 사이 교육 타운 이슈가 터지면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괜히 건우에게 부담을 줄까 봐 미래건설 직원들은 초이스 에듀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사소한 배려가 큰 기회가 되어 돌아왔다.

온갖 인맥을 동원해 압력을 넣던 다른 건설사와 달리 마동수라는 강력한 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미래건설을 건우가 굉장히 좋게 본 것이다.

“그래서 마 이사님을 통해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린 겁니다. 이런 쪽 일로는 백 이사님만 한 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백우찬이 중국에 있었던 이유는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지점 공사 때문이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세계 1위의 대형 할인 마트다. 그러나 단순히 한국의 대형 할인 마트처럼 네모반듯한 커다란 건물을 하나 짓고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볼펜부터 자동차까지, 가성비 좋은 제품부터 유명 명품 브랜드까지. 세계 1위라는 명성답게 그들이 취급하는 제품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리고 그런 제품을 모두 판매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대형 할인 마트 같은 건물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스케일이 다르다. 지점 하나하나가 마을 규모다. 그곳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수십 동 들어간다. 무작정 짓는 것도 아니고, 건물마다 컨셉이 있다. 그렇게 지어진 각 건물은 애초에 계획한 컨셉에 맞는 제품을 판매한다.

건우가 계획한 교육 타운만큼 거대한 규모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 지점을 하나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만 1조 원이 넘는다.

백우찬은 중국에 머물며 월드 베리어스 클럽 지점을 7곳이나 지었다. 처음에는 마동수의 도움을 받아 시공을 맡았는데, 나중에서는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서 먼저 제안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니 백우찬이야말로 여주 교육 타운 건설에 최적화된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미래 건설은 타운 전문 건설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 지점을 7곳이나 지으면서 쌓은 노하우가 엄청나거든요. 그러니 부담 가지지 마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우찬 형님에게 뭐든지 물어보시면 됩니다.”

“맞습니다. 건설 회사 관계자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마동수 이사의 아는 형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물어보십시오.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조언쯤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건우가 어떤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는 백우찬은 정말 사심이 없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교육 타운 공사를 맡지 않아도 미래 건설은 충분히 잘나가고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없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 지점 건설 이후 입소문이 나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

“무작정 교육 타운을 만들겠다고 선언은 했는데, 이게 무작정 선언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더군요. 저는 물론이고 우리 초이스 에듀 직원들 중에서도 건설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냥 입찰 방식으로 건설사만 결정하면 알아서 교육 타운이 지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웬만한 규모였다면 그것도 틀린 방법은 아닙니다. 그런데 교육 타운은 웬만한 규모가 아니니까요. 일단 20조 원이라고 발표는 했지만 아파트나 주택, 상가 등 주거 환경은 교육 타운 계획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것까지 포함하면 30조 원은 들어갈 겁니다.”

“저도 그걸 지적하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사실이었군요.”

소문이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전문가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얻지 못하고 너무 비밀스럽게 계획을 수립한 게 문제였다.

건우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만 천재적인 재능을 보일 뿐이다. 솔직히 건설 쪽 지식은 노가다판 인부보다도 못한 게 사실이었다.

“물론 돈은 큰 문제가 안 될 겁니다. 주거 환경이라는 건 어차피 지어서 분양하면 되니까요. 10조 원 정도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서로 앞다퉈서 빌려주려고 하겠죠. 어쨌거나 30조 원이나 들어가는 대규모 공사입니다. 정부가 하는 신도시 사업을 제외하고 일개 기업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설사들이 전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겁니다. 이 공사만 따내면 대대손손 편안해지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미래 건설은 그동안 관심을 보이지 않은 건가요?”

“아…. 그건… 솔직히 말씀드려 마 이사 얼굴에 먹칠하기 싫어서입니다.”

건우의 물음에 백우찬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건설사가 건설에 관심을 가지는 게 어때서요?”

“그냥 제가 마음에 찔려서요. 예전에 마 이사가 건물에서 떨어질 뻔한 적이 있는데 그걸 제가 구해줬습니다. 혹시 그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네. 생명의 은인이라고 그러셨습니다.”

“하하하. 녀석도 참. 아무튼, 그때부터 은혜를 갚겠다고 동지그룹에서 진행하는 공사란 공사는 전부 저에게 몰아줬습니다. 그 덕분에 당시 과장이던 저는 순식간에 이사로 승진했습니다. 제가 구해준 건 사실이지만 이미 과할 정도로 넘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한 겁니다. 괜히 관심을 가졌다가는 동수 저 녀석이 또 저를 돕겠다고 나설 것 같았거든요.”

“에이, 형님도 참. 설마 제가 아무리 낯짝이 두꺼워도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동지 그룹이라면 모를까, 교육 타운은 최 대표님이 결정할 일인데 못 그러죠.”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기만 하던 마동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 인마, 제 작년 일을 벌써 까먹었어? 그때 용강그룹을 반 협박해서 우리 회사에 일을 맡기도록 한 게 너거든!”

“그건 용강그룹이 먼저 약속을 어겨서 홧김에 그런 거잖아요. 그거랑 교육 타운이랑 비교하면 안 되죠. 최 대표님이 제 협박에 넘어갈 분도 아니고.”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 이사님 부탁이라면 최우선적으로 고려했을 겁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부러웠던 건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어? 정말입니까? 형님, 방금 최 대표님 말씀하시는 거 들었죠?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어때요? 이제 관심이 생겨요? 형님이 원하면 지금이라도 최 대표님에게 부탁드려보겠습니다.”

“너 자꾸 이럴래? 최 대표님도 있는 자리에서 사람 민망하게.”

“그래서 부탁해요, 말아요? 자그마치 30조 원 공사거든요. 이 공사만 따내면 형님은 곧바로 차기 미래 건설 사장에 내정되는 겁니다. 마구마구 땡기지 않으세요?”

“됐거든. 어차피 시간도 없어.”

“왜요? 30조 원을 마다하고 어딜 가시게요?”

“중국에 가야지. 월드 베리어스 클럽에서 8번째 지점도 나보고 맡아 달래.”

“헐. 거기도 참 어지간하네. 이제 형님은 총괄로 물러나고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언제까지 형님이 현장을 책임집니까?”

“그래서 고민 중이야. 이걸 계속 내가 해야 할지, 아니면 밑에 사람에게 넘길지. 그런데 내가 아직 사십 대 초반이다. 벌써 현장에서 물러나면 무슨 재미로 사냐?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난 책상보다 노가다판이 체질이야.”

백우찬이 올해로 마흔둘, 마동수가 서른일곱이다. 백우찬도 마흔이 되기 전에 이사 직함을 달았다. 마동수와 비교해서 느려 보일 뿐 백우찬의 승진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중국으로 가시게요? 그냥 저랑 한국에서 티격태격하며 노시지.”

“됐어. 한국은 아파트밖에 안 짓잖아. 맨날 똑같은 닭장을 짓느니 중국에 가는 게 나아.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같은 중국이라도 지점이 있는 도시마다 컨셉이 달라서 재미있거든.”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지점을 지을 때 해당 도시의 특색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베이징이라면 자금성, 서안은 병마용 갱. 이런 요소를 고려해 건물을 지어, 쇼핑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함께 제공한다.

“어허. 진짜 중국에 가실 건가 보네. 언제 들어가시는 건데요?”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백우찬이 곧 중국으로 갈 것 같은 분위기를 보이자 건우가 재빨리 나섰다.

“네? 아, 죄송합니다. 최 대표님을 두고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나눴네요. 그런데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게….”

“말 그대로입니다. 한국에서도 아파트 말고 다른 걸 지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말고 다른 걸 지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교육 타운이 있지 않습니까?”

“네에에에? 교…육 타운이요?”

이럴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마동수는 실실 웃었지만, 백우찬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네. 두 분의 만담 같은 대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건설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니 더 신중하게 잘 알아보고 결정하셔야죠.”

“이제 와서 건설에 대해서 알아가기엔 제가 너무 바쁩니다. 학원 강의뿐만 아니라 교육 타운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하드웨어는 믿을만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 20조 원이 들어가는 만큼 정보팀에 지시해 백우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수년간 월드 베리어스 클럽 지점 공사를 책임지면서 쌓은 노하우, 조 단위의 공사를 하면서도 깨끗했던 금전 관계. 이 두 가지만 봐도 백우찬은 교육 타운 건설을 책임질 적임자였다.

“그게 저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지점 건설에 있어서 굉장히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세계 유수의 건설 회사들도 연속해서 공사를 맡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백 이사님에게만 벌써 8번째로 일을 맡겼습니다. 그만큼 능력 있고 믿을 만하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하셔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없으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 지점을 10개 정도 짓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건우의 직설적인 질문에만큼은 자신감을 보였다. 삶은 겸손해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은 남달랐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십시오. 교육 타운 건설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그걸로 미래건설 혼자 독식해도 됩니다.”

“그러려면 해외시장에 진출한 인력까지 모두 동원해야 하는데, 그건 어렵습니다.”

“물론 다른 건설사와 협력을 해도 됩니다. 제가 원하는 모습의 교육 타운만 지어준다면 나머지 결정은 백 이사님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저를 그렇게 믿으십니까?”

“날림 공사를 하실 건 아니잖습니까?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육 타운입니다. 엉터리로 지었다가 나중에 탄로 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요?”

“하하하. 이거 엄청나게 무서운 감독관을 둔 셈이군요.”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이걸 거절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쩌면 한국 역사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는 곳을 제 손으로 지을 기회를요. 감사합니다. 믿음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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