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99화 (199/256)

제199화

“최 대표님이 정치판에 뛰어들겠다는 뜻입니까? 음, 안 될 것도 없겠습니다. 최 대표님 정도면 정치를 하셔도 상당히 매력적일 테니까요.”

장문오 시장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진심이라기보다 떠보기에 가까운 말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정치는 하지 않을 겁니다. 존경받던 학자이자 경영자였던 분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절대 정치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만 대신 저와 마음이 맞을 것 같은 분을 밀어드릴 수는 있다는 뜻입니다.”

건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문오 시장의 목울대가 크게 꿈틀거렸다.

“하필이면 그 말을 제게 하는 이유는요?”

“왜일 것 같습니까?”

“솔직히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가 대표님 마음에 들었나 본데, 저는 별 볼 일 없는 무소속 시장일 뿐입니다.”

“별 볼 일 없다고 하시지만 여주 시민들로부터 80%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셨죠. 그것도 여당인 대한당과 제1야당인 민국당을 밀어내고요.”

지난 지방선거에서 장문오 시장은 8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여주시장에 당선되었다. 당시 지자체 단체장 중에서는 전국 최고의 득표율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장 시장을 선택한 건 아니다.

그는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독립 운동가 집안, 민주화 운동 경력, 민주사회 변호사 모임 경력만 해도 정치를 하기엔 차고 넘쳤다.

이전 정권에서 장관으로 임명돼 탁월한 행정능력을 인정받았고, 여주시장으로 있으며 행정능력뿐만 아니라 탁월한 리더십도 보여줬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거기에 건우의 지원이 뒷받침한다면 순식간에 차기 대권 후보로 오를 수 있다.

“그래 봐야 무소속 아닙니까? 무소속이 혼자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대표님에게 아무런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민국당으로 돌아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싫으시면 새로운 당을 만드셔도 됩니다.”

장문오 시장은 한때 여주를 지역구로 둔 민국당 소속의 국회의원이었다. 민국당으로 복당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러기도 싫고요. 그런 이야기라면 더는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교육 타운 건축허가는 해드릴 테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복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대한당에?”

“무슨 복수요?”

“류명훈 전 대통령님에 대한 복수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지만 대한당이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고인께서 견디기 힘든 모멸감을 드렸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지금까지와 다르게 장문오 시장의 목소리가 한껏 차가워졌다. 그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지만 그걸 모를 건우가 아니었다. 다분히 고의에 가까웠다.

“시장님은 류명훈 전 대통령님이 가장 믿었던 사람이자 둘도 없는 친구 아니셨습니까?”

“그래서 제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겁니까? 최 대표님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요? 정치가 장난처럼 보입니까? 사람들이 자꾸 최고라고 추켜세워 주니까 정치가 쉬워 보이십니까? 정치판은 그야말로 복마전입니다.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전투구의 현장이에요. 노회한 괴물들이 득실득실거리는 곳이죠. 그런데 복수라고요?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그렇게 단단하셨던 류명훈 대통령님도 결국은 견디지 못하신 곳입니다.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다행입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그건 시장님이 더 잘 아시지 않을까요? 필요한 걸 말씀해보시죠.”

건우의 자신감 있는 반문에 장 시장은 잠시 당황했다. 이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뭐든 도와줄 수 있다는 겁니까? 일단 돈은…, 대기업도 부럽지 않게 가지고 계실 것 같으니 문제가 없겠군요. 그럼 그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최 대표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어보십시오.”

“제가 있던 민국당은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반면 대한당은 부자감세처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만들었죠. 그리고 유권자의 50% 이상은 서민입니다. 서민의 기준에 따라서는 70~80%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상식적으로 친서민정책을 펼치는 민국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결과를 열어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상 안보와 외교도 서민경제만큼이나 중요하니까요.”

“교과서적인 답변이시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많이 성숙해져서 예전처럼 안보와 외교로 표를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다는 이유 하나로 대한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정보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보를 마음껏 쥐고 흔들며 조작할 수 있는 국정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이요?”

“류명훈 대통령님과 저는 굉장히 순진했습니다. 어떤 정부 조직이던 과거에 어떤 일을 했던, 인간적인 믿음을 주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우린 국정원을 믿었지만 국정원은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당의 정보기관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두 눈에 진득한 회한이 묻어났다.

“국가 조직이 아니라 사조직화 되었다는 뜻이군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선거 개입까지 하던 놈들입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부정선거를 한 게 아니라고 해도, 가짜 뉴스나 엉터리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것도 선거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런 정보기관이 버티고 있는 한 선거에 이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국내로만 국한했을 때, 국정원과 맞먹는 사설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요?”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습니까? S그룹 정도 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거긴 대한당을 돕지 우리를 도울 리 없습니다.”

“있습니다, 그런 곳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곧 국정원을 능가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조직이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건우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만큼 차지훈과 초이스 시큐리티를 믿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큰 도움이 됩니다만…, 혹시 똑같이 불법적인 일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요?”

“물론입니다. 똥 묻은 개와 몸싸움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래 봐야 이기든 지든 제 몸에도 똥이 묻지 않습니까? 제가 말한 조직은 국정원이 하는 불법적인 일을 찾아내서 신고하는 파수꾼 역할을 할 겁니다.”

“신고를 해봐야 경찰과 검찰이 모른 척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장문오 시장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대중들에게 신고한다는 뜻입니다.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 언론을 통해서 알리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경찰과 검찰은 싫어도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야 문제가 없지만…. 정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설정보기관이 있다는 겁니까?”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건우는 의구심 가득한 눈을 하고 있는 장문오 시장에게 두꺼운 서류봉투를 건넸다. 아까 전해줬던 세부 계획서보다 두 배 이상 되는 두께였다.

“이게 뭡니까?”

“국정원에 필적하는 사설정보기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걸 보고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잠깐만요. 최 대표님.”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려는 건우를 장문오 시장이 불러 세웠다.

“네, 시장님.”

“제가 만약 최 대표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또한 운이 좋아서 정권을 바꾸게 된다면, 저는 최 대표님에게 어떤 걸 해드려야 합니까?”

“솔직히 바라는 거 없습니다. 지금 정부처럼 불이익만 안 주시면 됩니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혹시 여유가 되면 대기업이 우리 초이스 에듀에게 횡포를 부리는 걸 막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

“그게 전부입니까? 정말 어떤 불이익도 없이 공정한 대우만 받으면 된다는 겁니까?”

“네. 진짜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생각보다 되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시장님까지 찾아온 겁니다. 이제 다 물어보신 겁니까?”

“네? 아, 네.”

“그럼 연락기다리겠습니다.”

건우는 당황한 장문오 시장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시장실을 빠져나왔다.

***

“그 정보를 줘도 괜찮으십니까?”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차지훈이 건우에게 물었다.

“어떨 것 같습니까?”

“저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제가 본 정치인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족속이라서요. 정보 계통에서 일하면서 웃는 얼굴로 동료의 등에 칼을 찌르는 정치인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만약 장문오 시장이 그런 사람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초이스 시큐리티가 조사를 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정치인 명단에 들어 있는 분 아닙니까? 그럼 믿어야죠. 저도 믿는 걸 초이스 시큐리티 수장이 불안해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경험상 정치인들은 안 엮이는 게 상책이라서요.”

“저도 동감합니다만 지금 우리에게는 이게 최선이지 않습니까?”

지금 이 정권과는 관계개선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악연을 이어가며 계속 불이익을 받고 싶지도 않다.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권을 바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긴 한데 그런 자료까지 주지 않으셔도…. 만약 그것만 받고 입을 닦아버리면 정말 허무할 것 같습니다.”

건우가 건넨 서류철에는 그동안 초이스 시큐리티에서 조사한 대한민국 주요 정치인들의 약점이 담겨 있었다. 분명 약점이지만 함부로 사용하기 위험한 그런 자료들이다.

만약 그게 공개된다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고, 출처가 건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치적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이십 대 초반인 제가 첫인상만 보고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웃기지만, 오늘 만나본 장문오 시장은 굉장히 진실해 보였습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지만 마흔까지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 건우가 보기에 장문오 시장은 화려한 언변은 없어도 투박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제안을 덥석 물지 않고 고심을 하는 신중한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표님 사람 보는 눈은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껏 대표님이 뽑은 사람들은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제가 뽑은 사람이라…. 이를테면 손다정 팀장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하하하. 손 팀장은 대표님이 뽑은 사람 중에서도 최고죠.”

“이런. 차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괜히 인정하기 싫은데,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손 팀장님은 제가 햇병아리 시절부터 저와 함께 초이스 에듀를 키워온 분이니까요.”

“그러니 대표님 사람 보는 눈을 믿을 수밖에요.”

“그렇군요. 정말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면 장문오 시장님이 곧 좋은 소식을 전해주시겠죠?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봐야겠네요.”

***

Rrrr

서장실에서 인터넷으로 골프 영상을 찾아보고 있던 마포소방서 이 서장은 요란하게 번쩍이는 스마트폰의 액정을 시큰둥하게 쳐다봤다. 그러다 뒤늦게 뜬 발신자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네. 여, 여보세요.”

“날세.”

“아…안녕하십니까, 비서실장님.”

마포소방서 이 서장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장인호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걸 맡겼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더군.”

“아… 그게, 죄송합니다. 그 친구가 워낙 깐깐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그것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일을 꾸몄단 말이야?”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올 줄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뭐! 알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했다니,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알고 있었는데 왜 예상을 못 해? 알았으면 예상도 했어야지, 돌대가리가 아니라면! 한심한 놈 같으니. 까마득해도 고등학교 후배라고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일을 맡겼더니 그걸 엉망으로 망쳐놓고 그딴 말이 나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어 서장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대통령도 의지하고 따른다는 이번 정권의 막후 권력자 장인호 비서실장.

같은 고향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었다면 소방서 서장 따위(?)가 그와 이렇게 전화로 말을 섞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 그게. 아닙니다. 저…절대 그게 아닙니다. 제 말이 갑자기 헛나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서장으로부터 불합리한 지시를 받은 안 팀장은 지금 소방서 앞에서 일인 피켓 시위 중이다.

그렇지만 이 서장은 장인호 비서실장의 힘만 믿고 안 팀장의 행동에 코웃음만 치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 권력자가 뒤에 있다고 생각하자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런데 든든한 백인 줄 알았던 장인호 비서실장이 불같이 화를 내자 이 서장은 그제야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넙죽 엎드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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