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98화 (198/256)

제198화

“서장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안 팀장 어서 와. 요즘 많이 바쁘지?”

마포소방서는 소방행정과, 재난관리과, 예방과, 현장대응단 등 4개의 부서가 있다. 그중 예방과는 예방팀, 검사지도팀, 위험물안전팀으로 나뉜다.

방금 서장실을 찾은 사람은 검사지도팀 팀장이다.

“바쁘긴 합니다만 매번 하는 일이라서 익숙해졌습니다.”

마포소방서 이 서장은 윗사람에게는 아부 잘하고 아랫사람은 무시하고 깔아뭉개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다정다감한 얼굴로 안 팀장을 맞았다. 무슨 이상한 시비를 걸어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까 걱정하며 서장실로 들어섰던 안 팀장은 지금 분위기가 굉장히 낯설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차라리 대놓고 뭐라고 하면 좋으련만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나오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안 팀장은 설마 이런 것도 노예근성이 아닌가 싶어 나직이 한숨이 나왔다.

“그게 한다고 익숙해지나? 내가 안 팀장 고생하는 거 누구보다 잘 알아. 이제 곧 겨울이 오는데 화재 예방 한다고 일일이 점검하며 돌아다니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소방·안전시설 검사 및 지도는 검사지도팀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겨울이 되면 화재사고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늦가을부터 검사지도팀은 바빠진다.

“목숨 걸고 화재 진압하는 현장팀도 있는데 이 정도 일로 힘들어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런가? 역시 안 팀장은 생각이 깊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서장쯤 되는 사람이 이렇게 칭찬을 해주면 고개를 숙이고 넙죽 받아주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안 팀장에겐 그런 융통성이 없었다.

이 서장은 부하 직원이 아무리 일을 잘해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보단 일은 어중간해도 살갑게 굴며 아부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니 안 팀장과 서장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안 팀장도 이제 슬슬 과장으로 진급해야지 않겠어?”

변함없이 뻣뻣한 안 팀장의 태도에 나직이 한숨을 내쉬려던 이 서장은, 얼굴에 금방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은근히 말을 했다.

“네? 갑자기 과장 진급이라니요.”

“그게 말이야. 일 하나만 해줬으면 하는데.”

“무슨 일을요? 설마 저보고 불법적인 일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에헤이. 이 사람이 정말. 내가 명색이 소방서 서장이야. 그런데 설마 불법적인 일을 시키겠어?”

예상했던 것처럼 반응이 좋지 않았다.

서장도 지금 이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안 팀장이 맡고 있는 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우리 관할 지역에 초이스 에듀라고 있지?”

“네. 애오개 쪽에 있는 학원 말씀하시는 거죠?”

그 유명한 학원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 바로 그 학원. 거기 점검 가서 영업정지 좀 때리고 와.”

“서장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무나도 황당한 지시에 안 팀장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초이스 에듀가 어떤 학원인지 모르지 않을 터. 대체 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초이스 에듀 같은 학원에 영업정지 처분을 했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내가 싫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는 건가?’

의도를 알 수 없는 서장의 지시에 안 팀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놀랐지? 그래, 놀랐을 거야. 그런데 뒷감당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곳에서 명령이 내려왔으니까.”

“대체 어디서 왔길래요?”

“그것까지 안 팀장이 알 건 없어. 그냥 굉장히 높은 곳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는 것만 알면 돼. 청장님보다 더 높은.”

“아무리 그래도 아무 죄도 없는 학원에 영업 정지를 먹일 수는 없습니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서요?”

“어허. 이 친구 진짜 앞뒤가 꽉 막혔네. 이봐, 안 팀장. 우리나라 건물 중에서 소방법을 100% 지킨 곳이 과연 있을까? 다들 돈 아낀다고 조금씩 어긴다고. 안 팀장도 심한 거 아니면 그냥 넘어가 주잖아.”

“네. 현실을 제대로 반영 못 한 소방법이 있기도 하고, 정말 사소한 것까지 잡으면 일이 너무 많아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처리 못 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타협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봐! 그러니 불법이 아니라는 거야. 초이스 에듀라고 해서 소방법을 전부 준수했을 거 같아? 분명히 허점이 있을 거라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라는 게 아니라 그런 걸 몇 개 찾아서 영업 정지를 때려버리라는 거야. 언론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돼. 그쪽에서 알아서 잘 막아준다고 했어. 다른 곳도 아니고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잖아. 특별히 안전에 신경 써야지. 안 그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면 그냥 시정 명령을 내리면 되는 건데….”

“어허. 이 친구 정말 답답하네. 이번 일만 잘하면 승진할 수 있다니까! 자네 동기들 대부분 과장으로 진급했고 빠른 애들은 몇 년 안에 서장으로 진급할 할 텐데 언제까지 팀장으로 머물러 있을 거야? 그러다 검사지도팀 애들 앞길까지 막는 수가 있어.”

진급 따위 상관없다고 하려던 안 팀장은 서장의 마지막 독설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야. 그냥 점검 가서 문제점만 찾아내면 돼. 그럼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아?”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자꾸 진급에서 누락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후배들에게까지 추월당할 땐 사표를 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도 많이 했다.

아무리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라도 안 팀장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다. 가족 때문에 참고 견뎠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이 서장의 제안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허허. 사람 참. 그래. 안 팀장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오래 못 줘. 빨리 결정해야 할 거야. 안 팀장 말고도 그 일 할 사람은 많으니까. 아까도 이야기했지? 청장님보다 더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이라고. 자네 정도는 얼마든지 날려버릴 수 있는 곳이니까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서장의 마지막 협박에 안 팀장은 잠시 멈칫했다가 조용히 서장실을 빠져나갔다.

***

“대표님. 마포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수능 점수가 발표가 있고 얼마 후 차지훈이 조용히 건우를 찾아왔다.

“소방관이요? 무슨 일로요?”

“마포 소방서 서장으로부터 우리 학원을 소방 점검해서 문제점을 찾아낸 뒤 영업정지를 먹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허!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저희도 지금 조사 중인데 사실로 보였습니다.”

“만약에 조사를 받는다면 우리 학원은 괜찮은 겁니까? 이런 일은 언제든 계속 일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대표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초이스 에듀 두 건물은 과할 정도로 최고의 소방 설비가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악의를 품고 고의적으로 불을 내도 차단할 수 있을 만큼요.”

학원을 지을 때 가장 신경 썼던 두 가지가 학생들의 편의성과 학생들의 안전이었다. 그래서 화재 대비뿐만 아니라 웬만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까지 되어 있다.

그래서 예전에 손다정이 건우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안전한 건물을 지으려고 그렇게 신경 쓰는 거냐며 물어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혹시나 해서요. 신경 쓴다고 했지만 억지로 꼬투리를 잡으려면 못 잡을 것도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시설관리팀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그 문제는 왕종범 과장에게 전적으로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왕종범 과장은 특별히 차지훈이 신경 써서 데려온 사람이다. 친분이 아니라 실력에 반해서 데려왔기 때문에 학원 시설 관리는 완전히 믿고 맡겨버리고 있다.

“네. 알겠습니다. 왕종범 과장님이라면 알아서 잘하시겠죠.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그런데 마포소방서 서장이 그런 일을 지시했을 리는 없고, 혹시 소방청장이 그런 명령을 내린 겁니까?”

건우는 금방 차분함을 되찾고 차분하게 물었다.

초이스 에듀에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린다? 그로 인해 몰아닥칠 후폭풍까지 생각하면 절대 서장급 정도의 사람이 꾸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방청장이 아니라 더 윗선인 것 같습니다.”

“정확히 누군지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고요?”

“언론까지 무마하겠다고 한 걸 보면 행안부 장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고, 그 이상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습니다.”

“교육부에 이어 행안부에까지 우리가 밉보인 겁니까? 교육부는 이해가 가는데 행안부는 왜 이러는 걸까요?”

경찰과 소방관은 행안부 소속이고 건우가 그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한때는 감사패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하듯 이렇게 생떼를 부리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행안부와 사이가 나빠질 일이 없었다.

“사실 정치인들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같은 편이 당했으니 복수하겠답시고 다른 놈이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정권이 특히 패거리 문화가 심하거든요.”

“패거리 문화라. 만약에 이번에 나온 놈까지 당하면… 설마 다음에 더 센 놈이 나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여당이 이런 문제에서는 정말 집요하게 구는 편이거든요. ‘약자가 기어오를 때 힘을 모아 확실하게 밟아주자. 그래서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살자.’ 이게 그놈들의 생각입니다.”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네요. 패거리 문화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혹시 이번 정권이 교피아하고도 연관되어 있습니까?”

“교피아는 굉장히 방대해서 하나의 특정세력하고만 연관되어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주축이 되는 세력을 찾으라면 이번 정권이 맞습니다.”

“역시나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번 정권과 잘 지내긴 그른 셈이네요.”

교피아와 깊이 연관된 곳이라면 건우가 먼저 사양하고 싶었다.

“그들과 잘 지내려면 대표님의 지금 목표를 포기하셔야 할 겁니다.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흠…. 그럼 이제 어쩌죠. 계속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고. 예전부터 준비해 오던 걸 이제 꺼낼 때가 된 건가요? 이런 일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는데.”

“시기만 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혹시 몰라 미리 준비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지훈의 조언에 건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동지그룹을 제외한 대기업하고는 계속 트러블만 생기고 여당은,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한 적조차 없는데, 건우에게 상당히 비우호적이었다.

재계의 위협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든든한 우산으로 막고 있다지만 정계의 압박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 덕분에 잘 버티고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건우와 차지훈은 정계에도 든든한 우산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만큼은 아니라도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필요했다.

“그렇죠? 그럼 어쩔 수 없이 해야겠군요. 그런데 소방관님은 왜 이런 소식을 알려주신 거랍니까? 위험부담이 클 텐데.”

“그동안 대표님이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에 힘을 써주셨기 때문이랍니다. 어렵게 사는 유가족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대표님 덕분에 소방관들 사기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는데 그 은혜를 저버리고 싶진 않았다고 했습니다.”

건우가 지금까지 군인, 경찰, 소방관 유가족을 도와준 금액만 해도 천억 원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 세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건우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이걸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고마운 일이긴 하네요. 차 팀장님, 이 사실을 알려주신 소방관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정도 위치에서 내려온 압력을 무시했다면 무사하기 힘들 텐데요.”

“행안부에서 꾸민 일이라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억지를 부려 징계를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건 마음이 안 좋네요. 변호사를 동원해서라도 징계는 받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주세요. 그리고 행여나 일을 그만두신다면 우리가 데려올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 이제 곧 대규모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소방 자문 위원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계는 이미 해뒀다. 교육 타운 관련 건축 허가가 나면 내년 봄부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자!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죠? 우리가 만약 정치에 관여한다면 첫 번째 타깃은 여주 시장이 되는 건가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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