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군사 강국이다. 단지 주변국들이 전부 강대국이라서 약해 보일 뿐, 분단국가의 특수성 때문에라도 군사력이 약한 건 절대 아니다.
다른 국가들도 그렇듯 대한민국에도 여러 개의 특수부대가 존재한다.
특전사, 해병수색대, UDT, CCT, SSU, 경찰특공대 868부대 등. 맡은 임무에 따라 저마다 특색이 있는 부대이기 때문에 함부로 우위를 말하긴 어렵다.
그중 특전사는 육군이 운용하는 특수부대다. 그 안에 여러 개의 예하 대대가 존재하는데 707 특수임무대대(줄여서 707특임대)는 대한민국 특수부대 중에서도 전설로 통하는 부대다.
창설된 계기는 12·12사태 이후 3공수여단장이 호위의 목적으로 창설했으나 국정이 안정화되면서 평소에는 대테러진압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최고의 특수 부대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707 특임대대원들은 전역 후에도 인기가 많다.
대통령 경호실이나 경찰 특공대, 대기업, 사설 경호업체 등 그들을 원하는 곳은 많다.
대통령 경호실이나 경찰이 안정적인 공무원이라는 자리로, 대기업이나 사설 경호업체는 높은 보수로 유능한 대원들을 유혹한다.
김덕규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특전사에 지원한 이후 7년여간 707특임대에서 복무한 장교다.
지금은 대테러 교관이며 과거 해외파병 시 요인경호와 고공침투 책임자로 활약했다.
그야말로 리더십과 실력을 겸비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 장교다. 전 세계 특수부대들이 참여하는 AASAM 대회에서 김덕규가 이끄는 707특임대가 우승하면서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만약 1년 전 작전 투입 도중 소속대원이었던 부사관이 사망하는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테지만, 불행했던 그 사건 이후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역 신청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작전 중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였을 뿐이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합동 작전을 하던 미군 측의 실수였다. 하지만 특전사는 그 문제로 미군에 어떤 항의도 하지 않았다.
죽은 대원은 10년 넘게 나라에 봉사한 충성스러운 대한민국 특전사 군인이었다. 그리고 김덕규가 가장 아끼고 의지했던 선배 군인이자 부하 대원이었다.
나라에 대한 봉사의 대가가 철저한 외면이라는 사실에 실망한 김덕규는 군인이라는 직업에 커다란 회의를 느꼈다. 모두가 만류하던 전역 신청서를 제출한 이유이기도 했다.
군인으로서 특수부대 전사로서 사는 생활은 끝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실력이 어딜 가는 건 아니었다.
미국의 유명 특수부대원들마저 감탄하게 만들었던 실력을 탐내는 곳은 많았다.
김덕규를 데려오기 위해 대통령 경호실과 S그룹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대통령 경호실이 약속한 명예도, S그룹이 약속한 부(富)도 김덕규의 마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김 대위님. 정말 대통령 경호실이랑 S그룹 제안을 거절하셨습니까?”
전역신고를 마친 김덕규가 독신자 숙소를 나서려는데 최 상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찾아왔다.
그는 작전 중 죽은 이 상사의 절친이기도 하다.
“네. 저를 높게 평가해준 건 고마운데 별로 내키지 않더군요.”
“대통령 경호실이야 빌어먹을 명예밖에 안 준다고 하지만 S그룹은 다르지 않습니까? 억대 연봉에 팀장 자리까지 제안했다면서요?”
10년 넘게 생사고락을 같이 한 친구가 죽은 이후 최 상사도 김덕규 이상으로 정부에 안 좋은 감정이 많이 쌓였다.
단지 김덕규와 다르게 처자식이 딸려 어쩔 수 없이 군 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꼭 가고 싶은 곳이 생겨서요.”
“대체 거기가 어딥니까? 대통령 경호실이랑 S그룹을 내팽개칠 만큼 좋은 곳입니까?”
“글쎄요.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대체 어딘데 안 알려주시는 겁니까?”
“하하하. 천천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최 상사가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 신생업체인 만큼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서였다.
괜히 의리를 지킨답시고 김덕규를 따라왔다가 만약 회사가 망한다면?
그건 처자식까지 있는 최 상사에게는 못할 짓이었다.
“그럼 일해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꼭 알려주십시오. 저도 따라가게요. 이 상사 그렇게 되고 여기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습니다.”
“알겠습니다. 확실해지면 연락드릴게요.”
김덕규는 최 상사를 보내고 자신의 차에 올랐다. 조수석 시트에는 조금 전 보다만 A4 크기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종이에는 큰 폰트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초이스 시큐리티 직원 모집]
김덕규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국가도 외면한 이 상사의 가족을 건우가 나서서 도와줬기 때문이다.
***
초이스 시큐리티는 차지훈 정보팀장이 건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설립한, 정보수집 및 보안(온라인, 오프라인 포함)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실질적으로는 차지훈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나, 앞으로도 직책은 계속 팀장으로 남겠다며 대표직을 고사하는 바람에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였다.
업무의 특성상 오픈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회계 등 투명하게 운영해야 할 부분만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정보수집 및 보안 업무는 차치훈이 담당해 초이스 에듀 정보팀 일과 병행하기로 했다.
“개인정보보호가 이 시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지금, 인터넷과 전자상거래, 전자정부 등 세상을 편하게 하고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안이 필요하다. 단순히 온라인 보안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보안까지 연동하게 함으로써 고객이라면 누구나 안심할 수 있는 완벽한 보안 솔루션을 제시한다. 흠. 내용이 너무 식상해. 넌 머리라는 게 없는 놈이야?”
고자성 과장이 내민 서류철을 읽어내려가던 차지훈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휴, 참. 그것 보세요. 제가 못한다고 했잖아요.”
“뭐라고? 그럼 언제까지 현장만 다닐 건데? 너도 나이를 생각해야하지 않아?”
서른일곱 살 먹은 정보팀 고자성 과장의 주특기는 잠입이다. 2미터가 넘는 담벼락을 넘는 일은 예사고, 야밤에 고층빌딩을 타는 일도 밥 먹듯이 한다.
그야말로 목숨이 걸린 위험천만한 주특기.
슬슬 현장에서 은퇴하게 하고 행정업무를 맡기고 싶은데, 이것저것 시켜봐도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는 게 차지훈의 머릿속을 아프게 만들었다.
“팀장님도. 저 아직 팔팔하거든요. 앞으로 10년 이상은 거뜬하니까 자꾸 이런 골치 아픈 일 좀 시키지 마세요. 원래 송충이는 뽕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라니까요. 어라. 뭔가 이상하네. 뽕잎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낯설지?”
“이런 무식한 놈. 대체 송충이가 뜬금없이 왜 뽕잎을 먹어.”
“네? 뽕잎 아니에요?”
“이 화상아. 솔잎이야. 솔잎.”
“아하. 맞다. 솔잎. 우와. 역시 팀장님은 똑똑하십니다.”
“내가 똑똑한 게 아니라 네가 멍청한 거지.”
“그러니까 멍청한 저는 그냥 현장에서 살다 현장에서 죽을 거라니까요. 똑똑한 팀장님이나 어서 은퇴해서 먹물 냄새나 맡으며 사세요.”
무식하다고 아무리 놀려도 고자성 과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쭈. 이제 머리 좀 컸다고 반항이야?”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팀장님. 급히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사선을 넘나들며 피붙이보다 더 끈끈해진 두 사람이 아웅다웅할 때, 정보팀의 컴퓨터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를 담당하고 있는 윤종수가 들어와 새로운 뉴스가 들어왔음을 알렸다.
“무슨 일인데?”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이후 피해를 보고 있는 학원 원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뭔 일을 내도 낼 것 같다는 게 현장 요원의 분석입니다.”
과거의 정보팀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으나, 초이스 시큐리티를 설립해 새로운 직원들을 모집하면서 그런 문제는 많이 해소되었다.
완전히 체계를 갖추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최우선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인원이 생겼다는 것은 초이스 에듀에도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유능한 군인과 경찰까지 지원해주면서 초이스 시큐리티의 미래는 분명 밝았다.
“쯧. 가만 보면 정말 이상한 인간들 많단 말이야. 지들이 실력이 없어서 장사가 안 되는 걸 왜 우리 대표님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안 그래?”
“맞습니다. 우리나라가 북한도 아니고 사업 잘되는 것도 남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하나? 대표님이 범법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를 원망하는 건지 정말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거야 원. 닭대가리들도 아니고. 그동안 악플러들에게 강력하게 대처하는 등 강한 이미지를 여러 번 보여줬는데도 겁대가리도 없이 왜 그러는 걸까?”
“한 번 박힌 이미지를 지우는 게 원래 어렵잖아요. 그동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천사 같은 이미지가 강해 대표님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다혈질인 고자성 과장은 건우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흥분하며 말을 받았다.
“고 과장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사실 지금 대표님을 성토하기 위해 모인 원장들의 학원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다 보니 대표님이 아니라 깡패 두목이라도 눈에 안 들어올 상황입니다. 나름 생계가 걸린 일이니까요.”
“그래. 대충 상황은 들어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다시 유료로 전환할 수도 없잖아. 특히 집안 형편이 어렵던 학생들이 정말 좋아한다면서. 그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유료는 안 돼. 그런데 분위기가 많이 심각해?”
“보고에 따르면 폭발 직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확히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부러 선동하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빌어먹을. 보나마나 또 크레이듀가 개입을 했겠네. 학원 원장들이 못 살겠다 지랄들을 하니 옳다구나 싶었겠지. 우리나라 두 번째 대기업이라면서 하는 짓은 삼류 양아치랑 다를 바 없다니까. 대범하지 못하고 쪼잔하고.”
차지훈도 크레이듀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선동하는 새끼가 누구래? 내가 당장 납치해서 요절을 내버릴게.”
“아서라. 자성아. 그러다 큰일 난다. 학원 원장이 조폭들인 줄 알아? 그러다 잘못되면 수습 불가능이다.”
“팀장님. 장사 하루 이틀 하세요. 안 들키게 ‘잘’ 하면 되는 거죠.”
“어휴. 이 꼴통 새끼. 와룡그룹이 껴 있는데 잘도 안 들키겠다. 설사 안 들키게 납치를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들통 나게 되어 있어. 세계교육이 왜 망했어? 세계교육뿐만 아니라 모기업인 세계그룹까지 흔들렸던 게 기자 납치 고문 사건이었잖아. 그걸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놈 머릿속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납치야? 자성아, 자성아.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고 과장님. 와룡그룹도 우리가 정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눈치챘을 겁니다. 그런데도 은밀하게 운영해야 할 선동세력이 이렇게 이른 시점에 드러났다는 건, 함정을 파놓고 우리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뭐야, 그런 거였어?”
윤종수까지 동의하자 고자성 과장은 그제야 꼬리를 내렸다.
“얼씨구. 네가 생각했던 일인데, 저놈들이라고 생각 못 할까? 십중팔구는 우리가 선동 세력에게 위해를 가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지.”
“아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그 봐요. 역시 전 행정 쪽 체질이 아니라 현장 쪽 체질이라니까요. 시키는 일은 잘하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제게 이상한 것 좀 시키지 마세요.”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다. 앞으로 다시는 너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마.”
고자성 과장의 농담 같은 진담에 차지훈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팀장님. 그럼 학원 원장들 모임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처럼 계속 지켜보게만 할까요?”
“이번 일을 어쩐다. 뻔히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는 걸 아는데 멍청하게 뛰어들어갈 수는 없고. 종수야.”
“네. 팀장님.”
“지금 우리 대표님 욕하는 인간들 개인정보는 조사해뒀어?”
“그럼요. 궁금한 내용이라도 있으세요?”
“우선은 사는 집, 재산, 몰고 다니는 자동차, 1년 동안 해외여행 나간 횟수. 이 정도?”
“잠시만요.”
차지훈의 이야기에 윤종수는 재빨리 태블릿을 열어 초이스 에듀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서버에 연결했다.
그리고 검색 필터에 몇 가지 단어를 입력하자 필요한 자료들이 순식간에 화면을 통해 나타났다.
윤종수가 그동안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바로 관계자들에 대한 관련 정보 수집이었다.
여기서 관계자란 학원 원장,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회의원, 교육부 산하 공무원, 유명 강사, 수능시험 출제 위원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교수나 교사 등 초이스 에듀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굉장히 방대한 자료였지만, 초이스 시큐리티가 출범하면서 인력 보강이 되자 정보수집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