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68화 (168/256)

제168화

세상 모든 일에 그렇듯 건우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또한 명(明)이 있으면 암(暗) 또한 있었다.

명이 수많은 학생의 열화와 같은 호응과 그에 대한 학부모들의 높은 만족도라면, 암(暗)은 갑자기 줄어든 학원생 숫자에 경영난에 부닥친 학원들이었다.

소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하던 작은 보습 학원은 그나마 타격이 적었지만, 대규모 학원생을 보유하고 있던 각 지역의 대형 학원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받은 꼴이 되었다.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가 무료로 전환된 지 한 달 만에 학원생 수는 기존의 1/3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그 하락 폭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 커져만 갔다.

경영난에 허덕이기 시작했고, 고작 몇 달 만에 심각한 파산 지경에 이른 학원도 있었다.

몇몇 학원의 원장들은 초이스 에듀에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했지만, 초이스 에듀나 건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자신들을 무시했다’, ‘젊은 놈이 싸가지가 없다’,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이기적인 놈이다’와 같은 말로 울분을 토하며,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그 말에 동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학원장들이 무료 실시간 강의 결정 철회를 요구했으나 그 역시도 거절당하자, 그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들의 결론은 하나. 집단행동이었다.

이미 파산 직전까지 몰린 학원 원장들은 원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시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크레이듀 대표실.

“정말 난감하군. 내가 정말 그동안 초이스 에듀와 최건우 대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 같군. 자네와 세계교육이 왜 그토록 고전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

“송구합니다.”

착잡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나성천 대표 앞에서 박유하 이사는 그저 ‘송구하다’는 말 한마디를 끝으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생각에 최 대표의 행동에 우연은 없어. 모두 계산된 행동들이야. 지난번 우리가 설마 했던 모든 행동도 돌이켜보면 전부 면밀한 계산 끝에 선택한 최고의 해결책들이었어. 한두 수 정도 앞서 내다보는 게 아니라 여덟아홉 수는 내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기가 차는군 그래.”

“하지만 대표님이라면 충분히 최건우 대표를 밀어낼 수 있을 겁니다.”

“아니야. 쉽지 않아. 이번 일로 여론이 너무나도 좋아졌어. 최건우 대표가 스스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아래로 끌어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지금 상황에서 어쭙잖게 최 대표를 비난했다가는 자칫 역풍 맞기 십상이지.”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기에는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로 인한 타격이 너무 큽니다. 다른 학원보다 상황이 낫다고 해도, 예전과 비교하면 학원생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프라인도 문제지만 온라인 시장이 더 큰 타격이었다. 이제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는 무조건 초이스 에듀만 찾는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게 있다면 초이스 에듀가 가르치지 않는 과목들이다. 제2외국어나 역사를 제외한 사회탐구 과목들 같은.

“얼마나 줄었지?”

“지금 이미 10%가량 줄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15%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원래 크레이듀의 강점이었던 외국어 수강생은 그리 줄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외국어 수강생도 줄긴 줄었어?”

“네. 제2외국어는 거의 그대로인데, 영어에서 수강생들이 조금 빠져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최건우 대표의 강의가 무료이고, 처음이다 보니 호기심에 그 수업을 들어보려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강의가 시원찮으면 다시 돌아오게 될 겁니다.”

“강의가 시원찮으면 다시 돌아온다? 허허.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개소리네.”

나성천 대표가 실소를 지었다.

“네?”

“이봐. 박 이사. 나는 박 이사 자네한테 입에 발린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야. 그게 지나치면 상대는 자네의 말을 가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거든. 솔직하게 물어보지. 자네가 생각할 때 최건우 대표의 강의가 시원찮을 가능성이 있나?”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식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왔던 박유하 이사에게 직설화법을 좋아하는 나성천 대표는 항상 상대하기 어려운 타입이었다. 예의상 한 말조차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물어보니 이렇게 매번 궁지에 몰린다.

“자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최건우가 하는 강의야. 그게 시원찮을 리가 없지. 그러니 앞으로 생각 좀 하고 말을 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 무능해 보여. 차라리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던가.”

“죄송합니다.”

“쯧쯧. 사람이 저렇게 소심해야 서야.”

박유하 이사가 죽을죄를 지은 사람인 양 고개를 숙이자 나성천 대표는 그 모습이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러면 그럴수록 박유하 이사의 고개는 더욱 바닥으로 내려갔다.

“저… 그런데 대표님. 문제는 수강생만 있는 게 아닙니다.”

“뭐야? 수강생 말고 또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

“아무래도 인기 강사들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수강생이 예전만 못하니 수입이 줄어들고, 인터넷 강의 또한 최건우 선생에 밀려 판매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 수입이라면 학원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고액과외를 하는 게 낫다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그 새끼들은 자존심도 없대? 1년이 지나기를 했어, 반년이 지나기를 했어. 고작 두어 달 수입이 줄었다고 애새끼처럼 징징거리기나 하고. 근성이 없는 놈들이네.”

“그게 처음에 크레이듀가 세계교육을 인수하면서 무리한 조건을 내걸며 스카우트 한 일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보장한 금액이 있는데, 최근 들어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이 각광받으면서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친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하여간 실력도 없는 새끼들이 요구사항은 많아요. 솔직한 이야기로 지들 실력이 좋았어 봐. 이런 상황이 오나. 자기들 실력이 없어서 학생들이 안 듣는 걸 왜 우리보고 뭐라고 하는지. 쯧. 양심도 없는 것들. 그런데 다른 학원들은 상황이 어떻데?”

현실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참을성 없이 난리법석을 떠는 강사들이 한심했다.

사실 과외 시장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과외를 그만두고 초이스 에듀 라이브 강의로 돌아서는 추세다.

물론 딴짓을 하지 못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는 1:1 과외의 장점이 분명하지만, 예전과 달리 시장 규모가 축소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기가 싱크빅이나 그밖에 상위 10위 안에 드는 대형 학원들도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크레이듀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강점이 있어 그나마 선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다 할 강점이라고 내세울 게 없는 학원들은 타격이 꽤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대형학원은 그럭저럭 적자는 보지 않고 있지만, 중형학원들은 그 피해가 심각합니다. 파산 직전에 이른 학원도 있습니다.”

“젠장! 대한민국 모든 학원이 난리네. 초이스 에듀는 상황이 어때? 라이브 스트리밍 전면 무료 서비스라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했으니 그래도 타격은 좀 있겠지. 제 살을 깎아 먹어봐야 ‘아차.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라고 후회하지.”

지금 믿을 건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초이스 에듀가 무료 서비스 정책을 포기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오히려 수강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수강생만 늘어난 게 아니라 인터넷 강의 조회 수도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뭐? 아니. 왜? 스마트 기기로 보면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학원에 등록해. 초이스 에듀에 등록한다고 최건우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강의실은 수용에 한계가 있으니 말이야.”

“예전부터 본 강의와 모니터 강의 이렇게 두 가지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본 강의를 하고 그 강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며 강의를 듣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초이스 에듀의 시청각 시설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스마트기기로 보는 것보다 모니터 강의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났습니다.”

“똑같이 화면으로 강의를 보고 듣는 건데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학생들은 분명 다르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통해 다른 강사, 예를 들자면 하도훈 선생, 이승훈 선생, 윤은영 선생 같은 이들의 실력도 굉장하다는 사실이 눈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니 학부모나 학생들은 초이스 에듀의 강사라면 무조건 실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 심리가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 솔직히 최건우 대표의 강의 실력은 내가 봐도 대단했어. 학교 공부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나도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더군. 그리고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데도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말이야.”

“솔직히 실력을 부정하긴 힘듭니다.”

“인정해. 우리나라에서 강의 실력으로는 최고야. 아니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지. 영어판 강의도 그렇게 잘 나간다며? 들리는 말로는 우리나라에서 버는 돈보다 해외에서 버는 돈이 더 많다고 하더군. 그럼 강의 실력으로는 세계 최고가 되는 건가?”

적대적인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건우의 강의 실력이다.

“세계 최고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누구는 세계에서 놀고 있는데, 우리는 한국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세계교육을 인수한 이후 오히려 수익이 줄어들고 있으니 대체 본사에다가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예전에 하던 유료 진학상담,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까?”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워낙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고, 지금 초이스 에듀에서 무료로 해주는 진학상담에 대한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라….”

“미친 새끼. 최건우 그 자식은 돈 욕심도 없데? 뭐만 하면 무료야. 이것도 무료, 저것도 무료. 온통 무료야. 젠장. 다른 건 없어? 방문학습 사업은 영 가망성이 없어?”

“네. 기가 싱크빅과 초이스 에듀가 힘을 합쳐서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알려져서 그쪽 점유율만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온통 최건우 손바닥이구만. 초이스 에듀가 안 끼는 사업이 대체 뭐야? 아! 맞다. ‘크리에이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교육부하고는 이미 말을 맞춰놨는데 왜 아직 개발이 완료됐다는 이야기가 안 들리는 거야. 그게 출시되고 정부 공식 앱으로 인정받아야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은데.”

크리에이터는 크레이듀가 초이스 에듀의 퓨처 앱에 대항해 만들고 있는 교육 전문 앱이다.

“곧 개발이 완료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열흘만 더 주시면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공식 교육 앱으로 인가해주기로 결정이 났는데 정작 앱 개발이 늦어져 정식 발표를 늦추고 있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솔직히 장사할 땐 정부를 상대로 하는 게 최고야. 돈을 안 깎고 부르는 대로 다 지급하거든. 군대도 봐. 1억 원짜리 부품을 10억 원 넘는 돈을 주고 사잖아. 그러니 프로그램만 제대로 만들어. 그럼 전국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국·공립학교들은 모두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을 테니까.”

개발 완료도 안 된 앱을 공식 앱으로 만든 게 나성천 대표다. 그걸 전국 국·공립학교에 뿌리는 건 그에게 일도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왜? 또 무슨 문제가 있어?”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별로 실효성이 없을 수는 있지만, 중형학원 원장들을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중형학원 원장?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뭐하려고?”

“지금 그 사람들, 특히 파산 직전에 몰린 원장들은 최건우에 대한 원망이 대단합니다.”

“그렇기야 하겠지. 최건우라면 우리도 이렇게 이를 가는데, 파산 직전에 몰린 그들이야 오죽하겠어?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이용하려고?”

“그들을 제대로 부채질해보려고 합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자?”

“네. 최건우에 대한 원망이 깊으니 부채질만 잘하면 집단행동으로 나서지 않겠습니까? 과격하게 변할 수도 있고요.”

“시위 같은 걸 생각하는 건가?”

“시위도 그냥 시위 말고 과격시위를 하도록 유도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시위 말고도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습니다. 분노가 폭발 직전이니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정확하게 예상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혹시 압니까? 완전히 돌아버려 습격이라도 할지.”

“습격? 어허. 이 친구 위험한 친구네. 우리에게 올 피해는 없고?”

나성천 대표는 위험한 생각이라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드러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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