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전면 무료화는 또다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학원 운영자와 강사들은 건우의 결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는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워낙 전격적으로 발표를 했기 때문에 크레이듀 측에서는 이번 발표에 대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고, 여론의 흐름은 완전히 초이스 에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전격 무료화 선언]
[최소 수조 원의 이익을 포기한 최건우 대표의 결단]
[정부도 실패한 사교육비 절감에 앞장서는 초이스 에듀]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무료 정책과 가계 부담 해소의 상관관계]
XX 경제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무료 선언 덕분에 사교육비 가계 부담이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 달 대략 2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예측했으며 이는 그토록 사교육비를 줄이려고 노력했던 정부의 노력을 훨씬 뛰어넘는 효과로 …후략….
[중학생 학부모와 학원가의 반발 그 이유는?]
이번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무료화 선언에 대해 학원가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한 학원 관계자는 초이스 에듀의 발표에 대해 ‘상도의를 무시하는 최고의 갑질’이라고 표현했으며, 다른 관계자는 ‘자신만 살겠다는 후안무치한 꼼수’라며 강력하게 성토했다.
그러나 학원가의 이런 반응과 달리 중학생 학부모들은 이번 무료 서비스 대상에 중학생이 빠진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까워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는 ‘최건우 대표가 바쁜 것은 알지만, 중학생도 무료 서비스 대상에 포함되길 바란다. 바쁘다면 반드시 최건우 대표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MIT출신의 하도훈 선생님이나 국사의 윤은영, 국어의 이승훈 선생님도 충분히 자격이 넘친다고 생각한다’라며 초이스 에듀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했다. …후략….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서비스가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던 사람들도 친절한 설명이 담긴 기사를 보며 건우가 얼마나 어려운 결단을 내렸는지 알게 되었다.
사실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건우가 최소 수조 원대의 거액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식했다.
이는 발표 전부터 준비해온 마케팅팀과 정보팀의 물밑작업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덕분이었다.
***
초이스 에듀 대표실.
“반응이 어떻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성공입니다. 대표님에 대해 미심쩍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도 완전히 호의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영입한 빅데이터 전문가인 배선규 팀장의 분석에 의하면 7:3으로까지 떨어졌던 선플과 악플의 비율이, 이번 무료 서비스 발표 이후 9.5:0.5까지 상승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대표님의 어떤 선행 기사에도 이 정도의 선플이 달린 적은 없습니다. 효과는 확실하네요. 수조 원을 포기한 건데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지만요.”
손다정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될 만큼 효과는 명백했다.
“정부 반응은 어때요?”
“무료 서비스 선언에 당황했는지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까지 계속되었던 정부의 압박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대표님에 대한 부정적 기사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있고요.”
“부정적 기사야 당연히 나오기 힘들겠죠. 그동안은 마치 제가 가계 사교육비 부담 증대의 원흉인 것처럼 공세를 퍼부었는데, 이번 발표로 그런 주장들은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지 않습니까? 새로운 꼬투리를 만들지 않는 이상 부정적 기사를 올리는 건 어렵겠죠.”
“그런데 대표님. 학원가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 대책은 있으세요? 차지훈 팀장님 말씀으로는 학원가 분위기가 굉장히 험악하게 변했다고 해요. 성격 급한 사람들은 초이스 에듀 본점에 달려가 당장에라도 점거 농성을 할 기세라고 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어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네? 하지만 대표님. 그러면 대표님이 너무 위험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정보팀과 이번에 새로 출범한 초이스 시큐리티 직원들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학원 관계자들이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해주면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죠.”
“그렇다면 결국 학원가와는 완전히 등을 질 생각이신가요?”
사교육의 대표적 주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건우는 공교육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제가 대통령도 아니고 어떻게 그들 모두를 책임지겠습니까? 우리나라 사교육은 이미 너무 비상식적으로 비대해져 있습니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선에서 그쳐야 하는데, 지금의 사교육은 공교육을 정상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공교육이 사교육 눈치를 본다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그건 좀 심각한 문제죠.”
“안타깝지만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화한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사교육이 위축될 수는 있어도 심각한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닐 겁니다. 전체적인 파이는 줄어들겠지만, 옥석 가리기를 통해 정말 실력 있는 강사들은 충분히 살아남게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정보팀이 경찰과 협조해서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무료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 접속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겁니다.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실 생각이시죠? 안 팀장 말처럼 광고를 넣으실 건가요?”
“저 혼자만의 학원이 아니니 수익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안 팀장의 지적처럼 교재 판매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고, 아무래도 광고가 있어야겠습니다. 현행법상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 광고를 삽입하는 건 불법이 아니더군요. 물론 광고는 선별해서 내보낼 생각입니다. 김 팀장과 안 팀장에게 맡겨보려고요.”
손다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난 또 대표님이 혼자 그 돈을 감당한다고 하실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참! 그리고 중학생을 대상으로도 무료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달라는 요구가 봇물이 터지듯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 기사는 봤습니다. 저는 도저히 시간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도훈이 형이나 이승훈, 윤은영 선생님 의견이 중요한데, 물어보셨습니까?”
“네. 대표님이 괜찮다고 한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좋은 일이니 동참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그래요? 그럼 그분들 강의실도 곧바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시청각 시설을 갖춰야겠군요. 그건 손 팀장님이 알아서 잘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설왕설래하고 있는 학원가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난리가 나겠군요.”
“혹시라도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고 차 팀장님에게 잘 말씀드리고요.”
“어머 그걸 왜 제가…?”
“요즘 차 팀장님을 보면 저보다 손 팀장님 말씀이 더 먹히더라고요. 하하하.”
***
“안녕하세요. 초이스 에듀 김완태 마케팅팀장입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KGT 남한성 부장입니다.”
건우가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무료를 선언하고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이 KGT다.
KGT는 Korea Global Telecom의 약자이며, 한국 이동통신업체 중 3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명색은 3위인데 1, 2위 업체에 한참이나 밀려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경영진들은 지금의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바로 위 두 업체의 방어막은 너무나도 견고했다.
지금은 그저 두 업체의 독점을 막는 게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성장 원동력 없이 실의에 빠진 KGT가 최후의 보루처럼 정성 들여 영입한 사람이 현 마케팅 책임자 남한성 부장이었다.
초이스 에듀가 라이브 스트리밍을 무료로 서비스하겠다는 기사를 처음 확인한 남한성 부장은, 기업 시스템상 초이스 에듀도 광고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걸 빠르게 캐치했다.
본능적으로 KGT에 기회가 왔음을 느끼고 곧바로 초이스 에듀에 연락을 해 미팅을 잡았다.
“내부적으로만 광고의 필요성을 인정했을 뿐 아직 세부적인 사항도 정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연락을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조금 빨랐을 뿐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도 눈치챘을 겁니다.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감당하는 건 초이스 에듀에 큰 부담이 될 테니까요.”
“직관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네요. 솔직히 그래서 은근히 기대를 하고 나왔습니다. 남 부장님처럼 유능하신 분이라면 과연 어떤 제안을 가지고 오셨을까 하고요.”
“이런. 그저 남들보다 조금 눈치가 빠를 뿐, 제가 가지고 온 제안서는 평범합니다.”
“그냥 평범한 제안이면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대상이라 아무 광고나 받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김완태 팀장이 악동처럼 씩 웃었다. 약 팔지 말고 얼른 본론을 꺼내 놓으라는 압박이었다.
남한성 부장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갑은 김완태 팀장이었다.
“하하하. 엄살을 좀 부리려고 했는데 밑천까지 꺼내놓아야겠군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솔직히 제안은 평범합니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면요.”
“그 한 가지가 뭐죠?”
“우리 제안을 받아주시면 전국 고등학교에 무료 와이파이 존을 설치하겠습니다. 만약 중학교까지 무료 강의를 확대한다면 중학교에도 무료 와이파이 존을 설치하겠습니다.”
“무료 와이파이 존을요? 허!”
어떤 제안이 들어와도 놀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김완태 팀장의 입이 벌어져 닫힐 줄을 몰랐다.
“네. 사실 무료로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한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학생들은 데이터 걱정을 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아, 무료 와이파이 존이라니…. 그건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학교에서는 특히 굉장히 유용하겠군요.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과연 무료 와이파이 존 설치를 찬성할까요?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듣지 않고, 노는 데 와이파이가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어렵지 않습니다. 제한을 걸어 초이스 에듀 홈페이지와 퓨처 앱에서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면 됩니다.”
남한성 부장은 이미 그런 문제까지 고려해서 제안서를 만들었다. 역시 KGT 수뇌부가 공을 들여 남한성 부장을 스카우트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도 당연히 찬성입니다. 하지만 전국 중·고등학교를 전부 커버하려면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갈 텐데요.”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초이스 에듀와 제휴해 독점적으로 요금제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어떤 요금제를요?”
“대략 한 달에 1만 5천 원 정도 금액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KGT 데이터 프리 요금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KGT 독점이면 다른 통신사는 절대 허용하면 안 되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래야 저희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럼 혹시 KGT와 다른 통신사를 사용하는 학생들 사이에 와이파이 속도 차이도 생기는 건가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당연합니다. 다른 통신사를 이용하는 학생들도 동영상 강의는 충분히 볼 수 있겠지만, KGT를 이용한다면 초고속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죠.”
1만 5천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무제한으로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 절대 비싸다고 할 수 없다.
남한성 부장이 노리는 것은 요금제를 통한 이득이 아니다. 학생들이 다른 통신사에서 KGT로 옮기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초이스 에듀와 제휴에 성공한다면 최소 10만 명 이상은 KGT로 통신사를 옮길 게 확실했다. 거기에 가족이 한 명 추가되면 5천 원 할인 정책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무료 와이파이 존 지원으로 한 번에 수십만 명 이상의 신규고객 유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남한성 부장은 초조함을 숨기고 김완태 팀장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하. 광고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니라 무료 와이파이 존을 미끼로 고객을 유치하려는 의도군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광고비는 A급 TV 광고 수준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인터넷 방송이 아무리 유명해 봐야 시청자 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TV 광고 수준으로 광고비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김완태 팀장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은 광고 제안을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만들어 오신 광고에 문제가 있다면 계약은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자극적이지 않고 건전한 광고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눈치가 빠르시다더니 추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하군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공익 광고 느낌의 따뜻한 기업 이미지 광고를 만들어 오시면 제안서를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하신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멋진 광고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