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하지만 그건 크레이듀 측의 네거티브 전략 때문에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안 좋은 이야기를 계속 접하다 보면 사람들은 그걸 사실이라고 믿게 됩니다. 게다가 조사에 의하면 부정적 댓글에 공감하는 비율이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명 ‘댓글 알바’의 힘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아요. 이유야 어찌 되었던 상대측의 네거티브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표님의 꾸준한 기부활동과 지적이면서도 건강한 이미지는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잠깐 흔들린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사고 없이 그냥 지금처럼 묵묵하게 기부활동을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우현은 초이스 에듀 안에서도 대표적인 건우 빠돌이(?)로 알려져 있다.
“안 팀장님. 그렇게 안타깝게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상대가 가만두질 않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대표님과 스칼라 양의 열애설이 좋은 예입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젊은 남녀니 연애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 죄도 없는 스칼라 양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인신공격으로 열애설 자체를 지저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요즘 들어 대표님의 기부활동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그걸 느꼈습니다. 얼마 전 대표님이 농어촌 지역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짓기 위해 10억 원을 기부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정말 가관이더군요. ‘뭐냐. 돈도 많이 벌면서 고작 10억을 기부해?’, ‘누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누구는 한 번에 10억씩이나 기부하네. 더러운 세상.’, ‘나는 솔직히 저 돈이 정말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는지 궁금해.’, ‘내가 진짜 불우이웃이다.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나 좀 도와라.’ 이런 식의 댓글이 꽤 공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 기사 봤습니다. 그 댓글들 보고 어찌나 열불이 터지던지. 하나를 주면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 더 달라고 한다더니, 정말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는 것 같습니다.”
안우현뿐만 아니라 초이스 에듀 직원들도 건우를 매우 좋아한다.
대기업보다 좋은 근무 환경, 두둑한 보너스도 건우를 좋아하는 이유지만, 함께 일하면서 인간적으로 반한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이런 논란이 누구보다 강력한 지원군이 건우의 되어주고 있다.
“자자. 여러분 진정하세요.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알았습니다. 방금 이야기하셨던 그런 모습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대표님도 위기감을 느끼신 겁니다. 사실 얼마 전에는 정부의 모 인사로부터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네? 정부에서 왜요?`”
“간단하게 말씀드려 적당히 하라는 겁니다. 공교육이 흔들리고 있는 게 전부 우리 초이스 에듀 탓이랍니다.”
“말도 안 됩니다. 자기들 무능한 것을 왜 우리보고 탓합니까? 작년에는 말도 안 될 만큼 어렵게 수능시험 문제를 내더니 이번 모의고사는 또 너무 쉽게 출제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완전히 제 무덤 제가 파고 있으면서 왜 우리를 걸고넘어지는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수능시험 문제를 너무 어렵게 낸 것도 모의고사를 쉽게 출제한 것도 전부 우리 초이스 에듀를 신경 쓰다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EBS시청률이나 EBS교재 매출이 급격히 하락한 것도 전부 우리 탓이라면서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분명 억지이긴 한데 정부가 한 말이기 때문에 덮어놓고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한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려면 지금처럼 정부와 대립구도로 가서는 안 된다.
“예전이라면 찍소리도 못했을 텐데 대표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느끼자 귀신같이 압박을 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급하게 이 자리에 모신 겁니다.”
그동안 묵묵하게 사람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건우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럼 어느 정도 대책 마련은 하셨다는 이야기겠군요. 대체 뭡니까?”
“지금 시행하고 있는 유료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면 무료화 할 생각입니다.”
“아니 대표님!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건우의 폭탄과도 같은 선언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심지어 현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손다정이나 차지훈조차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전면 무료는 예상하지 못한 듯 동그랗게 변한 눈으로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내린 결론입니다.”
“대표님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지금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수익이 얼마로 늘어날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최소 수천억 원입니다. 그걸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자 손다정이 나서서 설득을 시도했다.
손다정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과목당 라이브 스트리밍 시청권을 월 5만 원, 시청자 수를 평균 1만 명으로 가정해도 매출이 5억 원이다.
수학,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영어. 총 6과목이니 30억 원.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수업까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한다면 한 달 매출만 무려 90억 원이다. 1년이면 매출이 1,000억 원을 넘는다.
어디까지나 시청자가 평균 1만 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나온 수치이다.
학년당 전국 학생 수는 최소 50만 명이 넘고, 그중 10%만 건우의 강의를 듣는다고 해도 5만 명이다. 그렇게만 가정해도 연 매출은 5,000억 원이 된다. 거기에 교재까지 포함하면 매출은 더욱 늘어난다.
이것도 굉장히 방어적으로 잡은 수치다.
따로 시간을 내서 강의할 필요도 없다. 강의실에서 강의하면 그 모습을 그대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시청각 시설도 이미 완벽하게 갖춰놨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강의실에서 강의만 하면 1년에 5,000억 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 엄청난 수익을 포기하겠다고 하니 손다정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한 모든 직원이 두 손 두 발 들고 반대를 하는 건 당연했다.
“저 또한 손다정 팀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얼마 전 우리 마케팅팀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발생할 매출을 계산해본 적이 있습니다. 대표님. 최소 5,000억 원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팀 앨버트로스의 분석으로는 학년 당 10만 명씩 연 매출 1조 원도 어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흠. 큰돈이군요.”
김완태 팀장이 거품을 물고 설명을 했지만, 건우의 대답은 태연했다.
“대표님. 그렇게 건성으로 대답할 일이 아닙니다. 매출이라고 하니 와 닿지 않는 모양인데, 비용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00억 원을 넘지 않습니다. 순수익이 8,000억 원 이상이라는 건데, 그 돈을 대표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도 단일 계열사 순수익이 8,000억 원을 넘는 곳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걸 포기하시겠다고요?”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킬 능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표님 말씀처럼 외부의 압력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고 해도 돈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순수익 8,000억 원 중에 1,000억 원만 풀어도 지금 초이스 에듀를 둘러싸고 있는 골치 아픈 잡음들은 말끔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그런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1,000억 원이면 정치권이나 언론도 쉽게 구워삶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그들과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쁜 놈을 이기기 위해 제가 나쁜 놈이 되면, 나쁜 놈을 이겨봤자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결국 제가 그놈들보다 더 나쁜 놈이 될 텐데요. 그런 방식은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저는 돌아가더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그들을 이겨내고 싶습니다.”
건우에게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 권력자들과 타협하는 걸 거부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전생에서 겪었던 아픔이 더 큰 영향을 줬다.
공무원들에게 휘둘리고 언론에 난도질당하면서 피폐해졌던 예전 삶에 대한 기억이 그들과의 타협을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오기일 수도 있지만, 타협하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그들을 이겨내고 싶었다.
“대표님.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이나 곧은 나무는 바람에 부러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혼자만 깨끗해 봐야 오히려 따돌림당하기 십상입니다. 다시 한….”
“김 팀장님.”
김완태 팀장이 계속 반대를 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법무팀의 송미주 팀장이 나섰다.
“네?”
“김 팀장님의 고충 충분히 이해합니다. 더군다나 홍보팀 업무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언론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잘 압니다. 하지만 이미 대표님의 마음은 확고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대표님을 흔들기보다, 대표님의 뜻을 쉽게 펼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나쁜 짓을 하자고 작당 모의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정말 존경할만한 결심입니다. 누적금액으로 보면 앞으로 수십조 원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거야 그렇죠.”
“솔직히 저라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엄청난 금액을 포기하고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무료로 열어준다고 하십니다. 이것보다 더 대단한 결단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앞으로 대표님이 무슨 일을 하시든 최선을 다해, 열과 성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수천억 원을 포기한다고 하시니 제가 너무 흥분한 같습니다. 우리 회사 돈이라기에 너무 흥분했군요. 하하하. 저 또한 당연히 대표님이 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조금 고생스러우면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껏 해온 일 중 가장 보람된 업무가 분명할 텐데요. 존경합니다. 대표님.”
김완태 팀장이 손을 비비며 건우를 바라봤다. 건우는 창피한지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그의 장난스러운 행동 덕분에 회의실 내부는 금방 충격에서 벗어났다.
“존경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싫어하지만 말아 주세요. 회의하자고 해놓고 일방적으로 통보만 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좋게 봐주시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집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도 돈 좋아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수천억 원을 포기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지금 당장은 큰돈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여도 훗날 그 돈이 몇 배는 늘어나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 수고스러우시더라도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대표님.”
“네. 말씀하세요. 안 팀장님.”
“무료로 푸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무료로 풀게 되면 비용이 증대한다는 걸 생각해보셨습니까?”
“무슨 뜻이죠?”
“현재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청하는 학생들 숫자가 학년별로 5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청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저희 팀이 분석해본 결과 앞으로 10만 명까지는 무난하게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무료로 풀면 어떻게 될까요?”
“시청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겠군요.”
“그렇습니다. 무료가 되는 순간 시청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은 대표님 강의를 보게 되지 않을까요? 넉넉하게 잡고 최대 30만 명까지 동시 시청한다고 했을 때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냥 단순히 무료로 나눠주는 것과 적자를 보면서 무료로 나눠주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적자도 그냥 적자가 아니다. 수십만 명이 한번에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방송을 들으려면 서버부터 완전히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거기에 추가로 서버 유지비용과 인건비도 꾸준히 나간다.
이런 것만 고려해도 1년에 추가로 천억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한다.
수천억 원의 이득을 포기한 대가로 수천억 원의 적자가 생긴다? 기회비용까지 따지면 최소 1조 원이 넘는 돈을 포기하는 셈이다.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물론 지금 건우의 수익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반드시 적자를 없애야 한다.
초이스 에듀는 건우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아니다. 회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할 수 없다.
정확한 회계처리는 반드시 필요하고 건우가 계속해서 적자를 메꾼다고 해도 초이스 에듀의 재무 건전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