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Rrrr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에 태평하게 자고 있던 위상백이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여보세요.”
- 위 사장님. 저 안 기자입니다.
“어! 그래. 안 기자.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야?”
안 기자는 위상백에게 사진을 받아 건우와 스칼라 스캔들을 가장 먼저 터트린 사람이다.
- 꼭두새벽이라니요. 벌써 오후 2시입니다.
“아, 벌써?”
- 하하하. 어제 진하게 한잔하셨나 보네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시는 걸 보니. 혹시 다른 기자들한테 소스 던져주고 대접받으신 거 아닙니까?
“에헤이.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안 기자 아니면 그런 소스를 던져줄 사람이 없어.”
- 그럼 저한테라도 좋은 소스 하나 던져주시죠.
“좋은 소스? 이미 좋은 사진 몇 장 넘겨줬잖아.”
- 그걸로는 이미 충분히 재미를 봤어요. 약발이 끝나서 이제 곧 시들해질 텐데, 괜찮은 소스 없으십니까? 쓸만한 거 있으면 지난번 거기서 다시 한 번 뵙는 건 어떻습니까?
“지…지난번 거기?”
위상백은 며칠 전 안 기자에게 화끈하게 접대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아랫도리가 불끈해졌다.
꽤 찐했던 밤이었다. 기자에게 접대만 하다가 이렇게 접대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 네. 지난번 거기요. 이번에도 제가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나야 좋은데 마땅한 소스가 있어야지. 지난번 사진도 운이 좋아서 구한 거야.”
- 사진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일진이었다든가 성형 중독이 있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예전 남자친구 이야기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거면 되거든요. 스칼라를 연습생 시절부터 데리고 있었으니 걔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을 거잖아요.
“그럼, 당연하지 걔 부모보다 내가 걔에 대해 더 잘 알 걸. 그러고 보니 나 몰래 남자친구 사귀다가 엄청나게 혼나고 헤어진 적이 있네. 그리고 눈코 말고 성형은 안 했는데 대신 보톡스나 필러는 자주 맞았어.”
- 오! 그래요? 보톡스나 필러도 따지고 보면 성형 아닌가요?
“성형외과에 가서 했으니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
애매하긴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어차피 이젠 위상백 자신이 관리하는 연예인도 아닌데.
- 보톡스와 필러를 자주 했다. 그럼 성형 중독 맞네요, 뭐 혹시 다른 건 없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건 그 정도가 전분데. 그럼 오늘 그때 거기서 만나는 거야?”
- 아, 오늘은 좀 바빠서요.
“그럼 언제?”
- 위 사장님. 제가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이봐. 이봐, 안 기자! 안 기자. 이런, 끊었네. 거 참. 언제 볼지는 정확하게 알려주고 끊어야 할 거 아니야. 사람이 기본이 안 되어 있네.”
***
[스칼라. 고등학교 시절 일진 설.]
[당당하게 성형사실을 고백한 그녀. 알고 보니 성형중독?]
[스칼라 전 남친의 고백. 그녀는 예전에도 화끈하고 섹시했다.]
[핫바디 스칼라, 몸으로 최건우를 홀리다.]
[수능 100점 최건우, 여자 보는 눈은 0점.]
[최건우는 똑똑한 여자를 만나야 한다, 최건우 팬클럽 일부 팬들 아우성]
[최건우 팬클럽 닥건, 성명문 발표]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천 만 최건우 팬들이여, 최건우를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대한민국 건국 60년 부국강병의 기회를 이대로 놓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지여. 동지여.
스칼라에 관한 안 좋은 루머는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게 흘렀다.
스칼라를 지지하던 열혈 팬들은 그녀의 열애설에 실망하면서 더는 적극적으로 실드를 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건우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었다.
연예인도 아닌 그에게 팬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만, 실제로 연예인 부럽지 않은 대규모 팬클럽이 몇 개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 일부가 스칼라에 대한 비난 행위에 끼어들면서 여론은 예상보다 훨씬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얼마 전 잠적설과 함께 돌았던 루머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스칼라를 비난하는 악의적인 소문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심지어 원조교제설에 이어 임신설과 낙태설까지 ‘카더라’ 통신을 통해 퍼지면서, 찬란하게 빛나던 그녀의 인기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모든 일이 단 이틀 만에 일어났다. 노심초사 기회만 엿보고 있던 크레이듀와 박유하 이사의 개입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져만 갔다.
***
서울의 폭력조직 불곰파의 사무실.
Rrrr
쪽수로 밀어붙인다면 모를까 1:1로 붙으면 이길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30대의 젊은 보스 박무웅이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무웅을 아는 누군가가 이 모습을 봤다면 자기 눈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싸움꾼으로 유명한 박무웅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겁에 질려 보였다.
- 여보세요.
“혀, 형님. 저 박무웅입니다.”
- 미친 새끼. 뭐가 어째? 형님? 누가 네 형님이야. 난 너 같은 깡패 새끼를 동생으로 둘 생각이 없어. 그냥 과장님이라고 불러.
“죄, 죄송합니다. 과장님.”
박무웅을 이토록 겁에 질리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초이스 에듀 정보팀의 고자성 과장이었다. 생긴 건 그냥 평범한 아저씨 같아 보이지만 차지훈은 그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드나들 수 있는 잠입·잠행의 천재라고 평가했다.
고자성 과장은 그런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매일 밤 박무웅의 침실에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에 취한 그를 깨워 팔다리를 묶은 채로 다짜고짜 때리기를 3차례, 머리카락만 자르고 사라진 게 3차례, 목이 잘린 쥐의 사체를 머리맡에 두고 흔들어 잠을 깨운 게 벌써 2차례였다.
밑에 애들을 문 앞에 세워놓거나 몰래 호텔 같은 곳으로 숙소를 바꿔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날은 다른 날보다 훨씬 심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직원들을 세워둔 날은 손톱이 뽑혔고 호텔로 몰래 숙소를 옮긴 날은 망치에 찍혀 양쪽 새끼손가락이 모두 부러졌다.
다음에는 발가락, 그다음에는 무릎이 망가질 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에 도망 다니는 건 포기했다.
그래도 끝까지 자존심을 지켜보려고 했지만 고자성 과장과 같이 다니던 키 큰 남자에게 1:1로 덤볐다가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은 이후 모든 걸 내려놓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하루하루가 고문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매일 같이 밤손님이 찾아와 괴롭힘을 당하자 천하의 박무웅도 견디기 힘들었다. 잠을 자는 게 두려워 눈물이 날 지경이 됐다.
9일째 밤이 되고 고자성 과장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자, 제발 살려달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드리겠다며 울고불고 매달리고 말았다. 자존심보다 목숨이 중요했다.
그때부터 박무웅은 고양이 앞에 쥐 신세처럼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했다.
- 그래, 그래. 과장님. 얼마나 듣기 좋아. 난 너희처럼 양아치가 아니라서 주제에도 안 맞는 사장이나 이사 이런 말이 정말 싫어. 사람 때리고, 불쌍한 여자들 등쳐먹으며 사는 새끼들이 사장입네 거만 떠는 걸 보면 눈알을 파버리고 싶어지더라고.
“용서해주십시오. 과장님. 앞으로 절대 사람들 때리고 그러지 않겠습니다.”
- 됐고. 내가 뭐라고 널 용서하고 말고 하겠냐. 네가 어떻게 살던지 난 관심 없어. 위상백이랑 엮이지 않았으면 우리가 이렇게 만날 일도 없었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당연합니다. 과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위상백 그 X새끼를 돈 한 푼 없는 거지로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고통받게 된 이유가 위상백 때문이라는 생각에 박무웅은 이를 갈았다. 한때는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 그에겐 그딴 기억은 중요하지 않았다.
위상백을 조지고 하루빨리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박무웅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래도 오늘 작업 들어가려고 전화 드린 겁니다. 혹시 원하시면 다시는 다른 생각하지 못하도록 병신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 이 새끼가 또 오버하네. 꼴값 떨지 마. 너처럼 비전문가가 뭘 어떻게 괴롭히겠다고? 사람 때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등신 새끼들이잖아. 나는 웬만하면 사람 안 때려. 때리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방법을 많이 알고 있거든. 궁금하면 한 번 당해볼래?
“어이쿠! 아…아닙니다. 과장님. 절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웬만하면 사람 안 때린다는 말에 ‘그럼 나는 사람도 아니냐’며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어지는 고자성 과장의 말에 겁을 먹고 바짝 고개를 숙였다.
- 그래? 난 또 나랑 한동안 안 만나서, 간이 배 밖으로 나와 기어오르려는 줄 알았지 뭐야. 원래 깡패 새끼들은 이틀에 한 번은 푸닥거리를 해줘야 말을 들어 먹는 법이거든.
“과장님. 절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과장님에게 기어오르겠습니까?”
- 그러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잘해.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만약 내가 다시 너를 방문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땐 네 거시기를 잘라서 머리맡에 두고 갈 거야. 기대해도 좋아.
“헉. 과장님! 정말, 정말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충심을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화들짝 놀란 박무웅이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 새끼. 꼴에 남자라고 거시기 소중한 건 아네. 농담이야 인마. 내가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남자 새끼 시꺼먼 물건을 직접 자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안심해.
“감사합니다.”
- 감사할 건 없어. 내가 아니라 개새끼한테 물어뜯으라고 시키면 되니까.
“컥!”
- 그리고 위상백한테 돈을 받아내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과장님 돈인데 당연히 드려야죠. 추적 안 되는 빳빳한 현금으로 준비하겠습니다.”
- 됐어. 아까도 말했잖아. 난 양아치가 아니라고. 그따위 50억 받을 생각 전혀 없으니까 현금으로 준비하니 어쩌니 그딴 시답잖은 소리는 치워.
“그럼 어떻게 할까요?”
혹시 50억을 다 먹으라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악마가 같은 인간이 그런 결정을 내릴 리가 없다.
- 너희도 작업 들어가느라 힘들었을 테니, 수고비로 10억 먹고 나머지는 아무 데나 기부해. 요즘 초이스 장학회가 믿을만하다는 이야기는 들리긴 해. 뭐, 그렇다고 꼭 거기에다 기부하라는 소리는 아니야.
“네. 과장님. 반드시 초이스 장학회에 40억 원을 기부하겠습니다.”
- 굳이 거기 아니라도 괜찮다고 해도 그러네. 아무튼, 알았어. 그리고 오늘 작업 끝내면 다시 보고하도록 해. 한 번 더 경고하지만 괜한 욕심은 안 부리는 게 좋아. 나도 내가 키우는 우리 강아지한테 남자 거시기를 먹이고 싶진 않거든.
“케켁! 그…그럼요. 무, 물론입니다. 절대, 절대로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따 저녁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
스칼라에 대한 대중들의 광기로 인해 건우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부터 여자친구(사실 여자친구가 아니지만)가 당하고 있는데 비겁하게 침묵만 지키고 있다며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그녀를 임신시킨 사람이 건우이며, 스칼라는 원하지 않았지만, 강제로 낙태하도록 강요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까지 돌았다.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고 악의적인 소문은 스칼라뿐만 아니라 옐로우 레이디 그룹 전체에도 타격을 줬다.
하루에도 몇 군데씩 출연요청이 들어오며 서로 모셔가려고 안달이었던 귀한 몸이었는데, 고작 이틀 만에 아무도 찾지 않는 비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전락해버렸다.
잠적설로 인한 온갖 루머들을 극복하고 이제 겨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하나 싶었는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악재가 또다시 그녀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청수라는 톱스타를 영입하면서 골드 스타의 네임벨류를 단숨에 올려놓고, 그걸 미끼로 각종 예능에 옐로우 레이디를 출연시키면서 인지도를 쌓아가는 중이었는데 스캔들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어그러지게 생겼다.
“결국 위상백 그 인간이 이번 스캔들을 터트린 장본인이 확실하다 이 말씀이신 거죠?”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위상백 그놈을 좀 더 밀착 마크해야 했었는데.”
차지훈의 사과에 건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50억을 손에 쥐여주면 당분간 잠잠할 거라고 생각한 제가 멍청했습니다. 그렇게 대담한 성격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지금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