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51화 (151/256)

제151화

늪 매니지먼트 인수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위상백은 자신의 통장에 든 50억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어떤 불평불만도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늪 매니지먼트는 완전히 건우의 소유가 되었다.

그렇지만 직접 경영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장만복 회장의 추천을 받아 연예계 사정에 바삭한 전문가를 사장 자리에 앉힌 다음 그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회사명 또한 ‘초이스’를 넣지 않고 ‘골드 스타’로 정해 건우의 연관성을 지웠다.

늪 매니지먼트에서 이름을 바꿔 새 출발을 하게 된 골드 스타의 리더 서호영 사장은 취임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옐로우 레이디 관련 루머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골드 스타 사장 서호영입니다. 그동안 우리 옐로우 레이디를 둘러싼 몇 가지 좋지 않은 루머들에 대해 많이 궁금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의 그런 궁금증을 해결해드리기 위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옐로우 레이디는 물론 새롭게 시작한 저희 골드 스타에 대해서도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마음껏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서호영 사장은 매니저로 처음 시작해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중견 기획사 이사 자리까지 올랐던 베테랑이었다.

일하던 기획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몇 달 전 야인이 되었지만 그 그의 경험이 어딜 가는 건 아니었다.

소속사 연예인들을 활용해 경제적 이익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부족한 편이만,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친화력 덕분에 나쁘지 않은 평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계산적이지 않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좋아하는 연예인들도 꽤 많았다.

경제적 수완이 부족한 건 건우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벌이가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늪 매니지먼트를 인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건우에게 보여준 스칼라와 옐로우 레이디의 의리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편안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게 이번 인수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호영 사장은 건우가 생각하는 골드 스타의 가장 이상적인 리더 상(像)에 가까웠다.

지금은 옐로우 레이디와 무명 연예인들뿐이지만 서호영 사장의 인맥으로 A급 이상의 연예인들도 다수 영입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연예 기획사의 힘은 소속 연예인의 명성에서 나오고 유명 연예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골드 스타의 힘은 막강해진다.

그리고 골드 스타의 힘이 막강해지면 옐로우 레이디가 활동하기도 더욱 편해진다.

새로운 유명 연예인의 영입 계획은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결정된 사항이었다.

서호영 사장의 장점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요즘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옐로우 레이디와 관련된 기자회견이다.

다른 사람이 사장이었다면 순서고 뭐고 서로 먼저 질문하려는 기자들로 시장통을 방불케 했겠지만, 서호영 사장과 친분이 있는 기자들 대부분은 차분히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려줬다.

그들이 상황을 그렇게 주도해준 덕분에 기자회견장은 꽤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옐로우 레이디 소식부터 묻고 싶지만, 그전에 골드 스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소리 소문도 없이 전격적으로 늪 매니지먼트를 인수하셨습니다. 여기 참석하신 대부분 기자들이 서 사장님 사정을 아는데, 솔직히 개털이지 않습니까?”

주원일보 기자의 말에 참석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많은 기자들이 서호영 사장과 친분이 있어서 분위기는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돈 버는 재주는 없고 가난한 무명 배우나 연습생들에게는 자꾸 뭐라도 퍼주려고 하다 보니 그의 주머니 사장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건 기자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하하하. 그건 또 어떻게 아시고. 사실 저 개털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돈이 있어서 늪 매니지먼트를 인수했느냐 그게 궁금하신 거죠?”

“바로 그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골드 스타를 논란 없이 잘 이끌어달라고 임명된 월급쟁이 사장입니다. 제가 돈 버는 재주는 없어도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지 않습니까? 그걸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인수자가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있습니까?”

“컨소시엄이 구성되어 인수했기 때문에 딱히 누구 한 명을 인수자라고 지목하긴 어렵습니다. 일단 이번 인수 컨소시엄에 가장 큰 투자자는 장만복 회장님이십니다.”

혹시 생길지 모를 논란에 대비해 건우 대신 장만복 회장을 전면에 나서기로 했다.

이건 건우를 아끼는 장만복 회장이 강력히 주장해서 결정된 일이었다.

“장만복 회장님이요? 그분 재력이라면 늪 매니지먼트쯤은 혼자서도 인수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요? 그런데도 컨소시엄을 구성했다는 건 앞으로 더 큰 투자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봐도 됩니까?”

“예리하신 지적이시네요. 맞습니다. 일명 ‘골드 컨소시엄’은 단순히 늪 매니지먼트를 인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을 주도하는 최고의 연예 기획사를 만들기 위해 구성되었습니다. 따라서 기획사 인수에 그치지 않고 A급 이상의 배우와 가수를 영입할 계획도 세워뒀습니다.”

파바박! 파박!

서호영 사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십 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A급 이상 연예인이라면 특급으로 분류되는 S급도 영입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장만복 회장님을 포함한 컨소시엄이기 때문에 자금력은 우리나라 여느 대형 기획사보다도 막강합니다.”

“돈이 없어서 연예인을 영입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뜻인가요?”

“만약 다른 연예인 영입에 실패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제가 부족해서일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었다. 성격이 급한 기자들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써서 신문사에 전송 중이었다.

내용은 비슷했지만 그들이 쓴 기사의 제목은 각양각색이었다.

[막강 자금력을 등에 업고 등장한 골드 스타]

[골드 스타, S급 이상 연예인 영입 자신]

[옐로우 레이디와 한솥밥을 먹게 될 배우는 누구?]

[골드 스타의 등장으로 긴장하는 연예계]

“서호영 사장님의 친화력은 연예계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연예인들은 만약 서호영 사장님이 기획사를 차리면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그 정도면 이미 영입에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요? 개털인 제가 기획사를 차릴 일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서호영 사장의 어이없는 엄살에 웃음을 짓는 기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엄살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없었다.

무명시절 어미 새 마냥 서호영 사장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성공한 톱스타만 다섯 명이다.

그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서호영 사장을 떠났지만 돈을 벌만큼 번 지금은 포근했던 예전 어미 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중에 2명만 영입할 수 있어도 골드 스타는 단숨에 일류 기획사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게 톱스타의 힘이고, 서호영 사장이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일이 되었다.

“너무 그런 이상한 엄살은 부리지 마시고요. 이미 계약한 연예인이 있는 건 아닙니까?”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만, 아직 영입이 확정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기습적으로 영입 발표를 하시려고요?”“하하하. 절대 아닙니다. 만약 영입이 확정되면 여기 계신 기자분들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그러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이제 옐로우 레이디로 넘어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회사의 미래 비전은 원래 거창한 법이다. 당장 영입에 성공한 연예인들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 기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옐로우 레이디였다.

“이제 막 정상에 올랐던 옐로우 레이디가 일주일 넘게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답변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잠적이라고 하는데 절대 잠적이 아닙니다. 늪 매니지먼트 인수 협상 과정에서 정산 문제로 이견이 발생했습니다. 그 사정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옐로우 레이디가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견이지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연예계 관행상 현금 박치기는 거의 없습니다. 음원 판매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음원이 하나 팔렸다고 해서 그 돈이 곧바로 가수에게 지급되는 건 아닙니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음원이 판매된 시점에서 최소 2~3달 정도 지나야 판매 대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학 축제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지만 대부분의 무대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른 정산은 꿈도 못 꾸고 심한 경우 1년이 지나서 돈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활동을 중단했다는 겁니까? 그건 좀 설득력이 부족한데요.”

늪 매니지먼트 인수 때와 다르게 질문들이 굉장히 날카로웠다.

서호영 사장에게 호의적이라고 해도 기자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진 않았다.

“정산 때문에 골치를 앓을 바에는 활동을 잠시 멈추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원래는 하루 이틀 정도 쉬게 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협상이 길어지면서 일주일이 넘어버렸습니다. 많은 팬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무수한 논란에도 그동안은 왜 노코멘트로 일관한 겁니까? 사실이 아니라고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사실이 아니면 사실이 아닌 이유를 대야 하는데 그럴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골드 컨소시엄이 늪 매니지먼트를 인수한다는 소식을 비밀로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다른 업체 귀에 들어가 괜한 가격 경쟁을 유도당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때문에 손해를 본 옐로우 레이디에게는 매우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서호영 사장의 말처럼 인수 과정 중에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협상이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충분히 그럴듯한 이야기라서 기자들도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간 임신, 사고, 마약 같은 잡다한 설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전부 헛소리라는데 제 전 재산을…. 아! 제가 개털이라서 전 재산을 걸어서 소용이 없겠군요. 하하하.”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게 의문이 듭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요?”

“에이, 이 기자님 왜 이러십니까? 요즘은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날 때도 많지 않습니까.”

“그래도 뭔가 확실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상당수 루머가 범죄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경찰로부터 무슨 이야기라도 나왔을 텐데 아무런 말도 없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루머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활동을 하면서 차근차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에 무슨 해명이 필요하겠느냐마는 굳이 날카롭게 대응해 기자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다시 활동을 재개하는 겁니까? 활동만 재개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논란 중 절반은 사라질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컨소시엄의 실수였던 만큼 최선을 다해 옐로우 레이디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 첫 번째 무대가 내일 시작됩니다. 저녁 일곱 시 뮤직 탱크 라이브 무대에서 우리 어여쁜 네 명의 요정들이 건재하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지켜봐주십시오.”

***

50억 원 대박에 희희낙락하던 위상백이 가장 처음 들른 곳은 일명 텐프로로 불리는 고급 룸살롱이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듯 텐프로 에이스로 불리는 아가씨 두 명을 옆에 끼고 흥청망청 놀기 시작했다.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홀로 양주를 두 병이나 비우고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예전의 그 복면 사나이가 다시 나타났다.

아가씨들이 잠시 자리를 비워 룸에는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늪 매니지먼트를 넘기면서 꽤 큰돈을 만졌나 봐?”

이 말을 듣는 순간 뒤늦게 아차 싶었다. 거액에 혹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위상백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크, 큰돈이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동안 옐로우 레이디를 키우느라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수고료 조금 받은 게 전부입니다. 사실 돈으로 따지면 본전이나 다름없습니다.”

“본전? 50억이나 받았는데 본전이라고?”

“네? 아…아니, 그걸 어떻게? 분명히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쯧쯧쯧. 바보인 건지, 바보인 척하는 건지.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잖아. 와룡그룹에서 나왔다고. 우리 와룡그룹이 그 정도 정보도 알아내지 못할 것 같아? 내가 완전히 병신으로 보였나 보군.”

복면 사내의 스산한 말에 뱀 앞에 개구리 마냥 온몸이 굳었다.

처음 협박받았을 기억이 생각나면서 자연스럽게 교도소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50억이라는 거액이 생겼는데 그걸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경찰에 잡혀가는 건 너무 억울했다.

위상백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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