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46화 (146/256)

제146화

“그래. 너도 보니까 알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찍혔어. 몸매 그대로 드러나는 원피스 입고 최건우 만나는 모습, 술에 취해서 업혀 나가는 모습, 최건우 차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다음날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 모습까지. 사람들이 그걸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아?”

“하지만 사장님, 저는 그날 건우랑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이년이 갑자기 순진한 척하네. 난 그날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어.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고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잖아. 사진을 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술을 먹고 토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믿어주지 않을까요? 친구니까요.”

어떻게 보면 별일이 아닐 수 있다. 서로에 호감을 느낀 젊은 남녀가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 것쯤은 요즘 세상에선 흔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에서 특히 여자 연예인에게 이런 식의 추문은 굉장히 치명적으로 작용하곤 한다.

최근에도 인기 고공행진을 하다가 남자 문제 때문에 갑자기 추락한 여자 연예인이 있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감수하겠지만 옐로우 레이디의 다른 멤버에게까지 피해가 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스칼라는 그제야 자신의 조심성 없는 행동이 후회가 되었다. 이런 인기는 처음이라 스스로 연예인이라는 자각이 부족했다.

“아주 지랄을 해요. ‘제가 술을 먹고 토해서 어쩔 수 없이 트레이닝복을 빌려 입고 나온 거예요.’ 그러면 기자들이 잘도 믿어 주겠다. 정신 차려 이것아. 기자들이 그렇게 착한 놈들이 아닌 거 너도 알잖아.”

“그럼 어떡하죠?”

“얼씨구. 좀 전까지 잘났다고 소리 지르던 년이 갑자기 왜 약한 모습이야. 네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뻣뻣하게 군 거 아니었어?”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혼자라면 제가 다 책임지면 되는데 애들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거.”

“그래서 어쩌라고?”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사장님이 해결해주세요. 아직 기사가 안 나갔으니까 막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기사 나가는 건 막기 어려워. 나도 아는 기자에게 겨우 소식만 전해 들었으니까. 까놓고 이야기해서 열애설이 나는 건 괜찮아. 인기야 좀 떨어지겠지만 열애설 하나로 여자 연예인을 매장시켜버리는 시대는 지났으니까. 문제는 네 복장이야.”

“제 복장이 왜요?”

“몰라서 물어? 그냥 평상복을 입고 나갔으면 좀 좋아. 너도 눈이 있으면 사진 속 원피스를 좀 봐. 나 잡아 잡숴 하는 복장이잖아. 네가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그것보다 더 문제는 최건우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사실이야.”

사진 속 원피스는 다시 봐도 야했다. 젖무덤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목이 깊이 파였고, 치마는 아슬아슬하게 속옷만 가릴 정도로 짧았다.

건우를 유혹해보려고 일부러 고른 거니 야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건우가 착한 이미지인 게 문제란 말씀이세요?”

“당연히 문제가 되지. 우리나라 사람 중 1/3은 최건우 시어머니 아니면 시누이를 자처할걸. 그 사람들은 너희 둘이 사귄다고 생각하지 않고 네가 착한 최건우를 꼬셨다고 생각할 거야. 누가 봐도 야한 옷을 입었으니까. 거기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셨으니 대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제가 유혹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그럼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병신같이 왜 그딴 옷은 입고 간 거야?”

“그건, 그러니까….”

“됐어. 속사정이 어떤지 난 관심 없어. 아까도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 생각이 중요하니까. 사진이 부려지는 순간 최건우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너만 몸을 함부로 굴리는 천박한 년이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너뿐만이 아니라 옐로우 레이디도 같은 급으로 매겨지겠지. 지금 인기는 한순간에 추락할 테고.”

스칼라는 옐로우 레이디의 맏언니이자 리더다.

연습생 신분으로 몇 년을 같이 고생했고 그 시절을 견디며 친언니 이상으로 세 명의 멤버들을 아꼈다.

위상백은 그걸 알고 스칼라가 가장 아파할 약점을 건드렸다.

“사장님. 죄송해요. 제가 어떻게 하면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안 만들 테니까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스칼라는 어쩔 수 없이 사정조가 되었다. 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힘들어. 나도 어려워.”

“사장님. 제발요.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기회를 주세요.”

“정말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할 수 있어?”

“네. 할 수 있어요. 뭐든지 다 할게요.”

위상백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스칼라도 자신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연예인을 꿈꾸면서부터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랐지만 만약 온다면 고민하지 않고 성공을 선택하리라 마음먹었었다. 사랑은 포기해야겠지만 지금은 동생들과 함께 성공하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위상백의 다음 말은 스칼라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어.”

“무슨 방법인데요.”

“네가 피해자가 되면 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피해자가 되라니요.”

“최건우를 나쁜 놈으로 만들고 네가 피해자인 척 행동하라고. 그럼 다 해결돼.”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요. 제가 건우를 어떻게 나쁜 놈으로 만들어요?”

“짜증 나게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술에 취했고 너도 모르는 사이에 최건우에게 당했다고 이야기하라고!”

“네에? 사장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안 되긴, 왜 말이 안 돼. 조금 전에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면서?”

“제가 모든 걸 책임질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지, 죄도 없는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화가 난 스칼라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너 때문에 다른 멤버들까지 망하게 두고 볼 거야?”

“그건 아니지만…. 다른 방법은 없어요?”

“미안하지만 없어.”

“사장님. 그것 말고는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다른 방법을 찾아주세요.”

“넌 조금 전에 나를 보며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했어. 그런데 이젠 그거 하나 빼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하네. 과연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걸까?”

“할 수 있어요.”

“그럼 두 눈 꼭 감고 최건우를 천하에 몹쓸 놈으로 만들어. 그럼 돼. 그리고 몇 달 피해자처럼 굴다가 다시 복귀하면 돼.”

“그럼 건우는요?”

“그놈은 이미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 쓸 돈을 벌었어. 무슨 걱정이야. 초범인 데다가 네가 합의를 해주면 처벌 없이 넘어갈 거야. 학원 강사는 못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번 돈으로 먹고살면 되잖아. 금실아.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우리부터 살자. 응?”

위상백의 애절한 설득에 잠시 흔들렸다.

‘아니야 그럴 수 없었다. 성공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내 마음에 생체기를 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성공하고 싶진 않아. 그 사람이 건우라면 더더욱.’

동생들에게는 미안했다. 동생들이라면 자신의 이런 선택을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설사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그걸로 인기가 떨어진다고 해도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다. 묵묵히 열심히 하면 언젠간 대중들이 다시 인정해주는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사장님.”

“그래. 금실아.”

“죄송하지만 그건 못할 것 같아요.”

“뭐라고? 이런 X발. 은혜도 모르는 X년. 다시 한 번 말해봐? 뭐가 어떻다고?”

“그렇게는 못한다고요.”

“다른 애들은 생각해봤어? 너 때문에 지금까지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될 다른 애들 생각은 해봤냐고?”

“그 아이들이라면 절 이해해줄 거예요.”

“지랄한다. 아주 제대로 지랄을 해요. 친동생 이상으로 아낀다더니 전부 거짓말이었어. 가증스러운 년.”

“그렇게 욕을 해서 분이 풀린다면 계속 하셔도 괜찮아요.”

결심이 섰고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후회하지 말고 다시 생각해 봐.”

“아니에요. 다시 생각한다고 지금 결심이 달라지진 않아요. 사장님 죄송해요. 애들한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이런 썅! 야! 복금실. 어디가. 당장 거기 안 서! 저…저.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젠 어쩌지? 저걸 설득해야 하는데. 이럼 나만 좆 되는 거잖아. X발. 아 몰라! 이판사판이다.”

***

숙소로 돌아간 스칼라는 동생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차분히 설명하고 용서를 빌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멤버들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세 사람 중 누구도 스칼라를 원망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썅. 스칼라 어디 있어. 당장 이년 나오라고 해!”

“꺄악. 사장님 진정하세요. 지금 언니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칼라는 예상 밖으로 단호했다.

위상백은 궁지에 몰렸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힘들어? 그년이 지금 힘들다고 그래?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년이 누군데 힘들다고 징징거려? 그리고 너희는 억울하지도 않아?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어? 그동안 고생한 걸 이제야 겨우 보상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스칼라 저년이 다 망쳤다고. 완전히 싹!”

“그만하세요. 사장님. 사장님도 스칼라 언니가 피해자라는 사실 알잖아요. 그런 사진을 몰래 찍은 기자를 욕해야지 왜 언니한테 화를 내고 그래요. 만약 이번 일이 기사로 나가서 언니가 욕을 먹으면 우리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가만히 안 있으면? 너희가 무슨 힘이 있어서? 돈이 있기를 해, 인기가 있기를 해? 기사가 나가는 순간 너희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야. 알아?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바로 저 멍청한 년 때문이라고. 이런 중요한 시기에 남자에 환장해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거잖아. 너희들 다 비켜. 내가 오늘 저년을 때려죽여버리고 말 테니까.”

“못 비켜요. 죽이긴 누굴 죽여요. 사장님이 뭐 이래요. 힘들 때 다독여줄 생각은 못 할망정 이게 정말 뭐하는 짓이에요. 언니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요.”

둘째인 제니퍼가 지지 않고 소리쳤다. 소린과 은아도 자리를 지키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이구. 어이구, 이 미X것들. 너희는 정말 억울하지도 않아? 저년 때문에 그동안의 고생이 전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죠. 여기서 언니 도움 안 받아본 사람이 누가 있다고요. 그리고 언니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믿어요. 그때 가서 재기하면 된다고요.”

“순진한 년들. 그래 어디 마음껏 꿈을 꿔봐라. 재기할 수 있을지. 절대 못 해. 내가 이 바닥에서 지낸 지 수십 년이야.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스타도 이미지 관리 실패해서 한 방에 훅 가버리는 세상이야. 그런데 이제 고작 1집밖에 안 낸 쌩초짜 여성그룹을 누가 써줄 것 같아? 굳이 너희 아니라도 예쁘고 날씬한 애들이 쌔고 쌨어. 아무도 옐로우 레이디를 기억 안 해줄걸?”

“그…그렇지만.”

“그렇지만은 무슨 그렇지만.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비켜. 내가 그동안 너희에게 투자한 돈이 얼마인지 알아? 그 돈을 고스란히 손해 볼 것 같아? 절대 못 하지. 누드 화보 팔고, 에로 영화 찍고, 그래도 부족하면 섬에라도 팔아서 저년 때문에 손해 본 돈 다 만회할 거야. 그래도 몸매 하나는 끝내주잖아. 몸이라도 판다고 하면 변태 늙은이들이 군침깨나 흘릴걸?”

“사장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미쳤어요?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지금 난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와. 비켜. 안 비켜? 그럼 너희가 대신 몸이라도 팔래? 스칼라만큼 몸매가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리니까 더 비싼 값을 받을 수도 있겠지.”

위상백의 눈알이 희번덕하게 돌아갔다. 이젠 그도 이판사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