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11화 (111/256)

제111화

“쓰러진 학생 이름이 양순희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대표님.”

건우의 질문에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왕종범 팀장이 대답했다.

“다친 곳은요?”

“계단에서 심하게 구른 것은 아닌 모양인지,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습니다. 무릎과 팔꿈치가 약간 까진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래도 모르니 검사비는 생각하지 말고, 정밀검사를 해보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쓰러진 거랍니까?”

“그게… 심하진 않지만, 영양실조 초기 증상이라고 합니다.”

“네? 영양실조요? 학원에 다닐 정도면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닐 테고. 혹시 무리한 다이어트라도 했답니까?”

“양순희 학생의 경우 학교를 마치고 5시부터 10시까지 총 5개의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쉬는 시간이 없어서 저녁을 먹지 못했다?

이건 그동안 한 번도 생각 못 했던 문제였다.

“그것참.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매점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 가서 간단한 요기라도 하면 되는데, 그냥 굶었답니까?”

“건물에 매점이 한 곳밖에 없고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이 너무 몰려서 군것질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강의실에서 매점을 왔다 가는 것도 시간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닌데 줄까지 서서 기다리려면 지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게 사실이면 우리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이 저녁을 거르고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대표님. 자세한 건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연속해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 대부분은 저녁을 건너뛰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군요. 한창 자랄 나이에 밥을 굶다니요.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왕 팀장님은 병원에 가있는 직원에게 연락해서 검사나 치료에 불편함이 없도록 돌보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손 팀장님 좀 들어오라고 해주시고요. 수고하셨어요.”

“알겠습니다. 변동사항이 있으면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왕 과장이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건우는 왼손으로는 턱을 괴고 오른손 검지로는 가볍게 책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다.

잠시 후 손 팀장이 들어와 건우의 상념을 깨웠다.

“대표님. 찾으셨다고요.”

“아! 손 팀장님 오셨어요. 여학생 한 명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죠?”

“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라고 하던데, 혹시 어디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쓰러진 이유가 좀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다른 것도 아니고 영양실조랍니다.”

“네? 영.양.실.조.요? 아니 요즘은 무상급식으로 굶는 아이들도 없을 텐데, 갑자기 영양실조라니요. 혹시 무리한 다이어트라도 했었데요?”

손다정의 추측도 건우와 다를 바 없었다.

“저도 그런 건가 생각했는데 아니랍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학원이 원인입니다.”

“네? 어떻게 영양실조가 우리 때문일 수 있죠?”

“손 팀장님도 생각해보세요. 학교 마치고 바로 학원에 도착하면 5시부터 수업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10시까지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많으니 편안하게 저녁 먹을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쉬는 시간이 있어봤자 천여 명의 학생이 이용할 수 있는 매점은 고작 하나. 대부분은 시간이 없어서 군것질도 못 합니다.”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학원을 만들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많은 고심을 했는데 이런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네요. 저도 그건 생각도 못 했네요.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매점이라도 더 만드시려고요?”

“아니요. 매점을 늘려봐야 군것질이잖아요. 한창 자랄 아이들인데 그런 걸로 배를 채우게 할 수는 없죠.”

“그러면요?”

“지금 B동에 들어와 있는 상가 중에 4층 상가들은 계약을 해지하고 내보냅시다.”

“네? 입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보내요? 그건 계약 위반이라서 곤란해요, 대표님.”

처음 건물을 지을 때,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B동의 1층부터 4층까지는 상가로 분양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상가를 오픈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계약을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자칫 큰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러니 다른 말 나오지 않게 충분히 보상을 해줘야겠죠. 위약금으로 각각 3억 원씩 지급하겠다고 하세요.”

“글쎄요. 지금 장사가 상당히 잘 된다고 들었는데 쉽게 나가려고 할까요?”

“그리고 별도로 입주하기 위해 들어간 총비용의 5배를 보상해준다고 하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 새로운 분점에 입주할 수 있는 우선권도 준다고 하세요.”

“그 정도 조건이면 설득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갑자기 상가는 왜 내보내시려고요?”

“학생들이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만들려고요.”

“식당이요? 밥장사라도 하시게요?”

“이익을 남길 생각은 없으니 장사는 아니죠. 학생들에게는 1~2,000원 정도의 밥값만 받고 부족한 돈은 제가 지원해서 뷔페형식의 식당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지원하시려고요?”

“음. 그건 알아봐야겠지만, 1인당 대략 5,000원 정도 지원할 생각입니다.”

“네? 5천 원이면 하루에 천 명만 밥을 먹는다고 해도 5백만 원이에요. 한 달이면 1억 5천만 원이고요.”

“그래서요? 그렇게 큰돈은 아니네요. 설마 제가 한 달에 1억 5천만 원을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건 아니죠. 감당하고도 남으시겠죠. 하지만 그것도 생각해보셔야 해요. 만약 하루에 5천 원을 지원한다고 가정해보세요. 여러 개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면 몰라도 한 과목만 듣는 학생이라면 완전히 손해에요. 주말 빼고 20일. 한 달에 10만 원을 학생에게 지원하는 셈인데, 그건 한 과목 학원비라고요.”

의도는 좋다. 그러나 손해를 감수하는 건 과하다는 게 손다정의 생각이었다.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학원에서 지원하는 형식이 아니라 순수하게 제가 지원하는 것으로 할 테니까요. 그럼 문제없죠?”

“너무 퍼준다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세요? 단순히 1억 5천만 원이 아니에요. 상가가 있었을 때의 기회비용도 생각하셔야죠. 그렇게 계산하면 최소 한 달에 5억 이상 적자를 보시는 겁니다.”

“우리 학원 매출이 500억 원을 넘었습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은 제 순수익입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데, 학생들이 우리 학원에 다니다가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쓰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돈은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있어요. 식당이 있고, 최고급 음식을 주면 뭐해요. 밥 먹을 시간이 없는데.”

“그것도 조정해야죠. 6시 수업을 듣는 학생은 7시 수업은 무조건 수강 금지. 물론 7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6시 수업은 못 듣겠죠. 그런 방식을 취한다고 해서 수강생이 부족해질 염려는 없잖아요.”

수강신청을 하고 싶어도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쉽게 할 수 없는 곳이 초이스 에듀다. 연속 강의 수강을 금지해도 수업 들을 학생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긴 하네요. 지금도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수강생은 많으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뭐가요?”

“대체 어디까지 가고 싶으신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학교도 아닌 학원이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에 가까운 저녁 식사를 지원한다? 지금도 추종자들이 엄청난데, 열혈 추종자들이 더욱 늘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정말 사이비 종교 하나 만드실 생각 없으세요? 혹시 정말 종교를 만드시면 저부터 가입할게요. 호호호.”

“하하하.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완전히 순수한 의도는 아닙니다. 성격상 관료들이나 정치가들과 야합을 하지는 못하겠고, 국민들 눈에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하는 행동이에요. 사심이 가득하죠.”

“사심이든 아니든 대단해 보여요.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그런데 저는 한동안 골치가 아파야겠네요. 그 일을 하려면 우선 상가 사장님들을 잘 설득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반발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손 팀장님이 잘 설득해서 일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가 손 팀장님을 가장 믿는 것 아시죠?”

“꼭 이럴 때만 그러시더라. 알았어요. 믿어보세요. 상가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니 어렵지 않게 설득할 수 있을 거예요.”

***

“대표님. 세계교육 박유하 이사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본점으로 복귀한 차지훈는 곧바로 건우를 찾아갔다.

“그래요? 무슨 일을 꾸미던가요?”

“초이스 에듀의 동영상 강의 판매량이 50%를 넘어섰지 않습니까? 그걸 독점 문제와 연계시킬 생각인 모양입니다. 대형마트가 골목 상가를 죽이듯, 대표님이 영세한 보습학원까지 죽이고 있다. 대충 그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시장 점유율 50% 규제안을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째 박유하 이사답지 않은 생각인데요.”

“그렇게 방심하실 사안은 아닙니다.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을 제외한 메이저 학원 대부분이 세계교육과 행동을 함께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 규모가 작은 학원들까지 힘을 합쳐 탄원서를 제출한다면, 박유하 이사의 꼼수가 들어 먹힐 수도 있습니다.”

“저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학원보다 동영상 강의를 싸게 공급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원이 사업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어떤 법도 어긴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관계 인사들은 멀쩡한 사람도 죄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방심하면 자칫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대표님.”

“물론 방심할 생각은 없습니다. 초이스 에듀의 시장점유율을 50%로 묶으려면 여론이 힘을 실어 줘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탄원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여론몰이를 하는데 대략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차지훈의 다급한 보고에도 건우는 여유가 넘쳤다.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꽤 서두르고 있는 눈치입니다. 그러니 늦어도 한 달 안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더 잘 되었네요. 며칠 전에 제게도 좋은 카드가 하나 생겼거든요. 혹시라도 제가 독점을 해서 아이들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악덕 학원 운영자라는 여론몰이가 시작된다고 해도, 충분히 무마할 수 있는 그런 카드라고 생각해요.”

“네? 그게 무슨 카드입니까?”

“자세한 건 손 팀장님에게 가서 직접 들으세요.”

“아니… 그냥 말씀해주시지 않고요.”

“매일 말로만 손 팀장님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놓고, 정작 말도 제대로 못 거는 차 팀장님이 답답해 보여서 그럽니다. 가서 제가 그랬다면서 우리가 무슨 좋은 카드를 가졌는지 설명도 듣고, 서로 친해질 기회도 만들고 그러세요.”

“그…그래도 대표님.”

“명령입니다.”

“끄응. 알겠습니다. 명령이라니 따라야죠.”

건우의 장난스러운 이야기에 지훈의 얼굴은 붉게 변했다. 그러나 그의 명령이 싫지는 않았는지 부끄러워하는 와중에도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최건우 대표.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올해 초 성형 고백 이후 논란이 된 허위사실을 유포한 악플러와 언론사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피의자들은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몰랐다며,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선처를 호소했으나 초이스 에듀는 단호한 태도로 합의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재판 결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OO월 XX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X0X호에서 진행된 형사 9단독 성XX 부장판사는 윤은영의 합성 사진을 올리고 퍼트린 누리꾼 김 모 씨 등 7명에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가장 죄질이 나쁜 두 명에게는 징역 1년을, 나머지 5명에게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활동 80시간을 명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합성사진의 주인공이 윤 씨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게시글을 본 대중들에겐 합성사진의 내용이 윤 씨라는 점이 암시됐다. 이미지가 중요한 학원 강사인 윤 씨에게 치명적 이미지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할 수 있어 죄질이 매우 중하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허위사실을 지속적으로 인터넷 공간에 유포해 온 13명의 누리꾼에 대해서도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원래 윤락녀였는데, 거기서 번 돈으로 얼굴을 고친 다음 학원강사가 되었다’, ‘최건우 대표에게 몸을 팔고 수술을 받았다’, ‘이전 학원에서 어린 학생들과 성관계를 나눠 쫓겨 난 이력이 있다’는 등 허위 사실을 2015년 12월부터 반복적으로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들의 윤은영 씨에 대한 비방 행위가 건전한 비판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 왔고, 이 모 씨를 비롯한 13명의 누리꾼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범행동기가 불순하고 방법이 천박했다. 피해자 측 엄벌 의사가 여전하다’며 ‘허위 사실 유포가 엄존하는 현실 속에서 비슷한 범죄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최건우 대표는 ‘인터넷 범죄는 사는 게 힘들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와 달라서 선처는 고려하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가해자를 선처를 호소하면 용서를 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 같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재판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한 걸음 빨리 뉴스를 전하는 빠른 뉴스 최연선 기자 Fast News

[윤은영, 허위사실 유포. 해당 언론사 기사 삭제 및 벌금]

지난 X일 서울고법 민사 13부(민XX 부장판사)는 ‘최건우의 성적 노리개다’, ‘잘나가는 퇴폐업소 종업원이었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초이스 에듀가 5개의 인터넷 언론사 발행인과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결정을 내렸다.

이날 법원은 해당 언론사에 앞서 보도됐던 윤은영 관련 기사를 모두 삭제하고 향후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가 게재될 경우 회당 2,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더불어 초상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인터넷 언론사 발행인과 해당 기자가 모두 1,5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한편 초이스 에듀는 인터넷 언론사가 지난 2015년 12월부터 학원 소속 강사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로 인해 학원과 강사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시켰다며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확 달라진 신속 정확한 뉴스. 이우현 기자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