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영화 살수대첩의 흥행은 대단했다.
개봉 첫날 역대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 신기록(90만 명)을 시작으로 역대 초고의 평일 스코어 신기록(110만 명), 최단 100만 돌파 기록(1일), 최단 200만 돌파 신기록(2일), 최단 300만 돌파 기록(3일)을 수립하며 한국영화 흥행 역사를 모두 갈아치우는 중이었다.
종전에는 ‘명량’이 4일 만에 300만 명을 돌파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고, ‘설국열차’, ‘트랜스포머’, ‘은밀하게 위대하게’, ‘군도: 민란의 시대’가 ‘명량’보다 하루 늦은 5일 만에 300만 명을 돌파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무리 학생들의 겨울 방학과 맞물려 있다고 해도 평일 관객 100만 돌파는 정말 무시무시한 기록이었다.
이처럼 엄청난 흥행은 여러 가지 신드롬을 몰고 왔다.
첫 번째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을지문덕 장군에 대한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이었다.
우리나라의 3대 대첩하면 보통 한산도대첩(이순신), 귀주대첩(강감찬), 살수대첩(을지문덕)을 꼽는다.
귀주대첩은 아무리 거란 병사가 강병이었다고 해도 20만 명의 군사로 10만 명의 군사를 물리친 전투였으니 다른 두 전투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이렇게 세 시기를 대표하는 전투라서 3대 대첩으로 분류했을 뿐 진정한 의미의 3대 대첩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와 달리 살수대첩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훌륭한 전투였으며, 지상전으로만 국한한다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을지문덕 장군은 그동안 이순신 장군과 비교해 많이 저평가되고 있었다.
저평가되었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 이순신 장군에 비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大東四千載 第一大偉人 乙支文德(대동사천재 제일대위인 을지문덕) : 우리 4천 년 역사 최고의 영웅’이라는 말을 하며 그를 극찬했을 정도였다.
을지문덕 장군은 약 1,400여 년 전의 사람이다. 정확한 생몰년(태어난 해와 죽은 해)이나 집안을 알 수 없는 데다, 어떤 직함을 가졌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을지문덕 장군에 대한 업적을 연구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살았고 승리의 기록들이 사료로 남아있는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루어낸 성과에 비하면 초라한 관심을 받았던 을지문덕 장군이 영화 살수대첩을 통해 부활했고, 각종 서점에서는 그와 관련된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기념관 설립이 추진되고 을지문덕 장군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준비하는 방송사도 나타났다.
둘째는 영화 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 장군으로 분한 배우 송영준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동안 미남배우, CF스타라는 명성은 많았지만, 한 번도 연기파 배우로 불린 적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너무 잘난 얼굴 때문에, 오히려 연기력이 저평가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으로 완벽하게 을지문덕 장군을 표현하면서, 그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수대첩에 대한 짧고 임팩트 있는 강의를 한, 자칭(?) 한국사 전문가 윤은영에 대한 관심이었다.
자칭이라고 한 것은 누구도 윤은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치아 교정 전 얼굴과 교정 후 얼굴이 많이 달라졌고, 얼굴을 가리던 큼지막한 안경도 벗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면 건우와 손다정 그리고 그녀의 연인이자 초이스 에듀 국어강사인 승훈밖에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동영상에서는 한국사 전문가라고 했는데 그녀에 대해 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일각에서는 연예인 지망생의 독특한 자기 PR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누군지 시원하게 밝히면 사람들의 관심이 반짝했다가 사라졌을 텐데, 누구도 그녀의 정체를 시원하게 밝혀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윤은영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은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선배. 선배. 특종이에요. 특종.”
“뭐가?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전문 잡지사인 ‘열공’의 기자인 준수가 같은 잡지사 선배인 현철에게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그 왜 있잖아요. 살수대첩에 대한 강의 동영상의 주인공. 윤은영이라는 여자.”
“당연히 알지. 자칭 한국사 전문가라는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상한 여자잖아. 그 정도 미모면 알아보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게 너무 의심스러워. 그런데 그 여자가 왜?”
“그 여자가 우리 쪽에 연락을 해왔어요.”
“뭐? 그 여자가 직접?”
“그건 모르겠어요. 편집장님이 연락을 받으시고, 저랑 선배랑 같이 가서 인터뷰 따오라고 하던데요. 지금 당장요. 선배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한다면 저 혼자 다녀올 수도 있고요.”
준수가 장난스럽게 거들먹거렸다.
“야! 내가 언제? 그냥 이상한 여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할 수도 있다는 그런 말이었지.”
“네? 그건 대체 뭔 말이에요?”
“몰라. 그냥 대충 알아들어. 그런데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유명 언론사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우리랑 하겠다고 연락한 거지? 한국사 전문가라더니 진짜 학원 강사였던 거야?”
“저도 그럴 것 같긴 한데, 좀 이상하긴 해요. 그 정도 외모를 가지고 강사를 했으면 소문이 나도 벌써 났을 텐데. 어떻게 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요?”
“휴. 그거야 인터뷰해보면 알겠지. 얼른 출발하자. 그런데 인터뷰 장소가 어디야?”
두 사람은 서둘러 인터뷰 준비를 하고, 지하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눴다.
“초이스 에듀요.”
“뭐? 어디?”
“초.이.스. 에.듀. 라고요.”
“진짜? 진짜 우리가 아는 그 초이스 에듀?”
“네. 진짜 최건우 대표가 있는 그 초이스 에듀요.”
“우와! 이거 제대로 특종 냄새가 나는데?”
“초이스 에듀에서 인터뷰하는 게 그렇게 특종이에요?”
현철의 말에 준수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휴. 너 기자 맞아? 당연히 특종이고 말고. 생각을 해봐라. 왜 우리를 초이스 에듀로 오라고 했겠어? 윤은영이 초이스 에듀 소속의 강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어?”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쪽 소속이 아니면 약속 장소를 다른 곳으로 정했겠죠. 그런데요?”
“어휴. 넌 정말 멀었다. 내가 이런 설명까지 해줘야 한다니. 그동안 초이스 에듀의 약점이 뭐였어?”
“글쎄요. 최건우 대표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그렇지! 거기에 추가로 국어와 사탐 라인업이 약하다는 것도 약점이었지. 그런데 윤은영이라는 외모 되고 강의 실력도 상당한 강사가 ‘딱’하고 나타난 거야.”
“아! 그동안 약점으로 평가받았던 부분이 강점으로 바뀔 수도 있는 거군요. 그래도 아직 국어는 약하잖아요.”
현철의 말처럼 초이스 에듀의 가장 약점이 부족한 강사진이었다. 건우 혼자 6과목을 모두 가르친다고 해도 종합학원의 위상을 가지려면 다른 과목 강사진 수급이 시급했다.
“사탐에 그렇게 대박 강사를 영입한 것을 보면 국어도 이미 준비가 끝났을 것 같은데. 최건우 대표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거든. 국어 과목도 윤은영 그 여자 정도 수준이라면, 초이스 에듀는 오프라인에서도 최강자 자리에 오르게 될 거야.”
“선배님 말씀처럼 실력을 갖춘 새로운 라인업을 보강했다면, 다른 학원에게는 엄청나게 불행한 소식이겠군요.”
“불행하다 못해 지긋지긋하고 끔찍할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초이스 에듀에 도착했다. 현철과 준수는 기다리고 있던 직원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윤은영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드러나는 하얀색 실크로 원피스를 입은 모습은 마치 여신을 연상케 했고, 그 모습에 두 사람은 인터뷰 생각도 잠시 잊고 넋을 잃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흠흠.”
“아! 이런. 죄송합니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두 남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윤은영이 민망해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현철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별말씀을요.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많이 놀라셨죠.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언론에서 너무 집요하게 저를 찾아다녀서 움직이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당연하죠. 잘하셨습니다. 저희는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잡지사를 불러주셔서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평소 ‘열공’의 애독자였고, 저도 학원 강사이니 당연히 교육 관련 잡지사와 가장 먼저 인터뷰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아하. 역시 학원 강사셨군요. 그럼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소문은 전부 헛소리였던 모양입니다.”
“그럼요. 연예인 지망생이라니요. 저도 이제 30대 중반이에요. 연예인을 지망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쓸데없는 루머가 너무 많이 생겨서 한 번은 해명하는 게 좋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생각했다가 아니라 ‘그러시더라?’ 그럼 본인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조언을 해줬다는 이야기군요. 그럼 그분은 어떤 분인지…? 이런! 제가 너무 다짜고짜 인터뷰부터 시작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궁금증이 많다 보니 자꾸 서두르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솔직하게 답변할게요. 그러니 안심하고 질문해주세요.”
***
[<특종> 영화 살수대첩의 그녀, 아름다운 한국사 전문가가 드디어 베일을 벗다.]
- 기자 : 영화 흥행과 맞물려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솔직히 어떤가?
- 윤은영 :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자다 깨보니 스타가 되어있더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 기자 : 항간에는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냐는 의혹부터 해서 다양한 루머가 돌고 있는데,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 윤은영 : 그건 말이 안 된다. 나는 한국사 전문가이며 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 기자 : 강사? 그런데 왜 윤은영 강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 정도 외모라면 학원가에서는 소문이 날 만큼 났을 것이다.
- 윤은영 : 그땐 지금처럼 예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 기자 : 지금처럼 예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 윤은영 : 치아교정을 하고 살을 뺐다. 그리고 큼지막한 뿔테 안경도 벗었다.
- 기자 : 외모에 꽤 큰 변화가 있었다는 소리로 들린다. 성형은 한 건 아닌가?
- 윤은영 : 아까 말한 게 전부다. 성형수술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형이라고 오해할 만큼 외모가 많이 바뀌었다. 이게 내 옛날 사진이다.
- 기자 : 아! 이 정도면 정말 성형 오해를 받을 정도의 변화다. 굳이 이런 사실을 밝히는 이유가 뭔가?
- 윤은영 : 나도 놀랄 만큼 많이 변했다. 내 옛날 모습은 사진처럼 정말 이상했다. 지금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지만, 이름이 알려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변화된 나를 보고 이상한 루머를 만들기 전에 미리 밝혀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기자 : 지금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외모 논란이 일어나면 지금의 인기가 떨어질 수도 있다. 두렵지 않은가?
- 윤은영 : 전혀 두렵지 않다. 제발 인기가 떨어졌으면 좋겠다.(웃음) 그리고 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강사다. 학원 강사는 외모가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출중한 외모가 잠깐의 관심은 끌게 할 수 있지만, 실력이 없으면 낙오되는 곳이 이쪽 세계다. 외모에 대한 논란을 이유로 아이들이 내 강의를 듣지 않는다면, 그건 내 얼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실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기자 :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인가?
- 윤은영 : 동영상을 보신 분들이 내 강의에 감동 받았다는 댓글을 많이 남겨 주셨다. 그걸 보면서 내 강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 기자 : 본인이 생각할 때 본인의 강의 능력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나?
- 윤은영 : 조언을 해주는 분이 내게 항상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최고라고 믿기로 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보다 확실히 실력이 낫다고 느낀 강사는 지금까지 딱 두 명이다.
- 기자 : 딱 두 명?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 두 명이 누군지 알 수 있나?
- 윤은영 : 최고는 당연히 최건우 대표님이다. 그분이 강의하는 걸 보면 같은 인간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모두 알고 있으니 더는 설명할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승훈 선생님이다.
- 기자 : 이승훈 선생님? 흔한 이름이다.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나?
- 윤은영 : 이번에 나와 함께 초이스 에듀로 직장을 옮긴 이승훈 선생님이다. 초이스 에듀의 국어 담당이다. 그의 강의는 노련하면서도 신선하다.
- 기자 : 노련하면서도 신선하다? 모순된 말 아닌가?
- 윤은영 : 맞다. 그런데 그런 모순된 말이 아니고는 그의 실력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 기자 : 앞으로 같은 학원에서 일하게 될 강사라서 광고도 할 겸 일부러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아닌가?
- 윤은영 : 절대 아니다. 그의 실력은 진짜다. 조만간 ‘퓨처’라는 교육용 앱을 통해 나와 이승훈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가 시작된다. 보고 판단해보길 바란다.
- 기자 : 그렇게 말하니 굉장히 기대된다. 그런데 최건우 대표나 이승훈 선생은 다른 과목이다. 그럼 역사에 있어서는 본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가?
- 윤은영 :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숨은 고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강사보다는 내가 낫다.
- 기자 : 대단한 자신감이다. 혹시 자만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 윤은영 : 전혀 그렇지 않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최건우 대표님이다. 그분은 없는 사실을 지어낼 분이 아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부족하다고 단호하게 지적하실 분이다. 그런 최건우 대표님이 나를 보며 내가 최고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생각이다.
- 기자 : 하지만 최건우 대표는 과목이 다르지 않나? 정확한 평가라고 자신하나?
- 윤은영 : 만약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사실이 아니면 사실로 만들면 된다. 자신 있다.
……후략……
- 교육은 미래다. 미래를 꿈꾸는 잡지사, 열공. 김현철 기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