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04화 (104/256)

제104화

두두둥.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명문 공과대학!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그리고 그 곳에서도 가장 촉망받는 분야로 알려진 메커니컬 엔지니어링(Mechanical Engineering). 최고의 공과대학, 최고의 학과의 석사학위에 빛나는 천재 강사가 드디어 대치동에 나타났습니다.”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익숙한 베테랑 성우의 목소리가 영화관에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고등학교인 XX 과학고등학교 2년 만에 졸업.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컬롬비아대학교, 스탠퍼드대학교 그리고 칼텍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까지. 미국 유수의 대학에 동시 합격한 놀라운 이력의 소유자. MIT 기계공학 우등졸업, 우수논문으로 선정된 석사논문의 주인공. 하.도.훈. 선생님.

“뭐라고요? 미국 명문 H대학 출신의 강사는 학사 학위밖에 없다고요? 학사 출신의 강의는 가라!! 진짜가 나타났습니다. MIT 석사 출신의 강사가 여러분을 진정한 과학의 세계로 안내할 것입니다.”

지금 케이블 TV와 강남지역 영화관은 조금은 유치한 대사와 함께 번쩍번쩍 빛나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학원 광고를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현우야. 저게 MIT 맞지? 그런데 메커니컬 엔지니어링은 뭐지.”

“지금까지 뭘 봤냐? 철수 넌 귀가 안 들려? 뒤에 MIT 기계공학 졸업했다고 설명했잖아. 하여간 정신은 어디 두고 다니는지, 원.”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철수와 현우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방학기간이라 오랜만에 둘이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왔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광고 중 하나가 두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이제 곧 있으면 고3이 되는 예비 수험생이기도 하다. 당연히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많았고, 남들처럼 초이스 에듀에 등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초이스 에듀 아현동 본점은 거주지 문제 때문에 애초에 자격이 되지 않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초이스 에듀 한강이라도 등록하기 위해 밤잠도 설쳐가며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강신청 개시 1분 만에 모든 과목이 마감되었고, 두 사람은 헛물만 켰다.

오늘 이렇게 영화를 보러 온 것도 초이스 에듀 수강신청 실패 때문에 우울해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광고 때문에 마음이 더욱 싱숭생숭해졌다.

“그런데 진짜 MIT 석사 출신이 강사로 온 걸까?”

“그럼 진짜겠지. 다른 곳도 아니고 기가 싱크빅이라고. 최건우 선생님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예전보다 명성이 약해졌다고 해도, 기가 싱크빅이 학원 강사 이력을 가지고 장난칠 곳은 아니지.”

“그렇지? 그런데 MIT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야?”

“음. 글쎄.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지는 모르겠다만,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 중 하나인 건 확실하잖아. 우리 형이 미국에 있어서 아는데 과학기술 방면으로 최고로 꼽히는 대학은 총 네 곳이야.”

현우가 아는 척을 했다.

“그래? 어딘데?”

“일단 하버드대학교. 거긴 우리나라의 서울대라고 생각하면 쉬워. 그냥 모든 학과가 명문이야. 당연히 공대도 마찬가지겠지.”

“역시 하버드는 어디 안 끼는 곳이 없네.”

“그렇지. 하버드는 하버드야. 그리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일반적으로 MIT라고 알려진 곳이야. 이렇게 두 곳이 미국 동부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서부에는 스탠퍼드 대학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 있지.”

“스탠퍼드는 들어봤어.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가 스탠퍼드를 나왔다며. 그런데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은 처음 들어봐. 거기가 그렇게 유명해?”

“무식한 놈.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 바로 칼텍이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은 몰라도 칼텍을 아는 사람은 많다. 철수가 일부러 노린 거다.

예전에 철수도 자기 형한테 똑같이 당한 적이 있었다.

“아! 칼텍. 거긴 들어봤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 칼텍이구나. 나도 들어봤을 정도면 유명한 대학이겠지?”

“어휴. 이런 무지몽매한 놈. 지난 몇 년간 세계공과대학 순위에서 하버드대학교를 누르고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어마무시한 곳이 바로 칼텍이야.”

“우와. 그래? 칼텍이 대단한 곳이었구나.”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교나 예일 대학교도 대단한 곳이긴 해. 그래도 앞서 말한 네 곳의 대학과 비교하면 한 끗 정도의 차이는 있다는 게 중론이야. MIT를 비롯한 네 곳의 대학은, 굳이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위치야. 프린스턴이나 예일은 연세대나 고려대 공대라고 할 수 있지.”

“오. 그렇게 설명하니까 확실히 이해가 간다. 역시 현우 넌 똑똑한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MIT 석사 출신이라는 건 엄청난 실력자라는 뜻이겠네?”

철수의 칭찬에 현우는 신이 나서 묻지도 않았던 부분까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럼. 미국의 대학 제도를 보면 학사는 그냥 교양 수준에 가까워. 하지만 석사는 달라. 진짜 실력이 있어야 석사 학위를 딸 수 있는 곳이 미국이거든. 우리나라처럼 2년 기간 채웠다고 실력도 안 되는데 수료시켜주고 그런 곳이 아니야.”

“그런데 말이야.”

“왜 자꾸 ‘그런데 말이야’라는 말만 반복하고 그래. 그래서 또 뭐가 궁금한데?”

“최건우 선생님은 하버드대학교 학사 출신이잖아. 그럼 MIT 석사가 더 좋은 거야?”

“그런 단순 비교는 어려워. 게다가 최건우 선생님은 그만두긴 해도 의대에 합격했잖아. 그러니 누가 낫다고 함부로 말하긴 힘들지.”

“우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야?”

“야야! 그렇게 확대해석하면 곤란해. 아는 건 많겠지만, 사람 가르치는 건 다르지. 서울대 출신이라고 모두 잘 가르치는 건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그래도 기본적으로 실력은 갖추고 있겠지? 최건우 선생님도 그렇게 잘 가르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잖아.”

“그건 나도 동감이다. 기가 싱크빅이니까 믿음이 가긴 해. 외국에서 멀쩡히 대학 잘 다니는 사람을 강사로 스카우트할 정도면 어느 정도 검증과정은 거치지 않았겠어?”

건우가 워낙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보니 유학파라면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 생겼다.

“그런데 말이야.”

“아! 진짜. 왜 또 자꾸 ‘그런데 말이야’야! 그러지 말고 그냥 직설적으로 물어. 듣는 사람은 답답해서 짜증 나.”

“흐흐흐. 내 버릇인데 어쩌겠어?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실력이 대단한 강사라면 학생들이 몰리겠지? 아까 보니까 이미 모집을 시작한 것 같던데.”

“그렇겠지. 최건우 선생님만큼은 아니라도 사람들이 분명 몰리긴 할 거야. MIT가 보통 대학은 아니잖아.”

“그렇지? 나도 그래. MIT 출신인데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어? 솔직히 최건우 선생님 반만 따라가도 엄청난 거라고.”

“반이 뭐야. 반의반만 따라가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을걸? 어라. 잠깐만. 설마… 우리가 영화를 보는 사이에 수업이 마감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초이스 에듀 수강 신청이 1분 만에 마감될 거라고 생각했었어? 나가자. 영화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보는 걸로 하자. 찝찝해서 영화가 눈에 안 들어올 것 같아.”

철수와 현우는 영화 상영 직전 극장을 빠져나와 기가 싱크빅이 있는 대치동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뭐라고요? 미국 명문 H대학 출신의 강사는 학사 학위밖에 없다고요? 학사 출신의 강의는 가라!! MIT 석사 출신의 강사가 여러분을 진정한 과학의 세계로 안내할 것입니다. 크크크. 아이고 배야. 형. 광고가 너무 유치찬란하지 않아?”

“끄응. 그만 좀 웃어라. 나도 저런 식으로 광고가 나갈 줄은 정말 몰랐다.”

건우가 하도훈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최근 들어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오늘은 미국 대학 때 분위기를 내고 싶다며 허름한 호프집으로 약속장소를 정했다.

그런데 하필 호프집 구석에 자리 잡은 TV에서 하도훈에 대한 광고가 나왔다.

건우는 그 광고 내용에 빵 터져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도훈은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특히 H대학 출신 강사는 학사 학위밖에 없다며 은근슬쩍 건우를 디스하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에 더더욱 미안했다.

“하하하. 형은 안 웃겨? 케이블 TV 지역방송 광고는 이렇게 하는구나. 유치한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

하도훈 앞에서는 건우도 장난꾸러기처럼 변했다. 대학 시절 절친했던 사이였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광고 내용이 좀 그렇다. 나도 너를 디스하는 내용이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에이.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사실 맞잖아. 난 학사. 형은 석사.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그렇긴 하지만.”

“그런데 오늘 만나자고 한 걸 보니 용선재 대표님하고 이야기는 잘 되었나 보지?”

“응. 네가 이야기해준 그대로 설득을 했더니 금방 관심을 가지던데?”

방문학습지를 온라인 방식으로 바꿔보자는 내용은, 사실 건우가 하도훈에게 제안한 내용이었다.

‘조사해보니 방문학습지 시장이 굉장히 크다고 들었다. 우리가 그 시장에 진출할 생각도, 여력도 없지만 우리가 개발한 퓨처를 이용하면 방문학습지의 최대 단점인 비효율성을 보완할 수 있다. 형이 용선재 대표님에게 은근슬쩍 이야기를 해주는 게 어떠냐’며 부추겼다.

완벽한 대체는 어렵겠지만, 온라인 방식은 가격이 큰 장점이다.

한쪽은 자신의 직장, 한쪽은 자신이 아끼는 후배가 운영하는 학원.

그러나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은 라이벌인 학원이다.

어쩌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사이일 수도 있지만, 하도훈은 이번 제휴를 통해 두 학원의 관계가 개선되길 바랐다.

건우의 제안을 받아들여 용선재 대표를 설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렇지? 역시 용선재 대표님이라면 관심을 보일지 알고 있었어. 형에게 미리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방문학습지 온라인 사업에 직접 뛰어들 생각이 없어.”

뛰어들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사실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도 기가 싱크빅과 제휴를 추진한 것은 하도훈을 미끼로 이용한다는 죄책감에 대한 보상 심리와 함께 방문학습지 부문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교육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함께 숨어 있었다.

“그냥 퓨처를 공급하고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대가만 받겠다 이거지?”

“그래. 어차피 호주와의 계약 문제로 퓨처를 수정하고 있거든. 그런데 그걸 호주에만 공급하기는 아깝잖아. 형도 사용해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유용한 프로그램이야.”

“그래. 그냥 보기만 했는데도 좋아 보이더라. 잘 사용하면 정말 유용할 것 같아. 분명히 기가 싱크빅에도 도움이 될 거야. 고마워. 덕분에 대표님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거든.”

“우리도 이익이 되는 일인데 고마울 건 없지. 그리고 기가 싱크빅을 통해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퓨처를 공급하려는 의도도 있어. 누가 누구를 돕는 게 아니라 서로 윈윈하는 거야.”

모두와 적이 될 필요는 없다.

세계교육과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고, 와룡그룹의 행태를 봤을 때 크레이듀도 잠재적인 적으로 분류해야 한다.

남은 건 기가 싱크빅밖에 없다. 건우는 기가 싱크빅을 2위 자리에 굳건하게 만들어 세계교육과 크레이듀의 공세를 1차적으로 막아낼 생각이었다.

“네 말처럼 잘 됐으면 좋겠다. 라이벌이라고 굳이 서로 물고 뜯으며 살 필요는 없잖아.”

“형이 있는 학원이라면 나도 잘 지내고 싶어. 그리고 이건 말하기 좀 민망한데 말이야.”

“뭔데 그래?”

“온라인으로 가정 학습할 때 아이들 부모님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들을 수는 없을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렇겠지. 급한 전화가 올 수도 있으니까, 그걸 학습용으로 사용하긴 어려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그게 왜?”

“보급용 단말기는 우리 초이스 라벨이 붙은 단말기를 이용하면 어떨까 싶어서. 기가 싱크빅과 스마트 방문학습 6개월 계약하면 50% 할인, 1년 계약하면 무료. 이런 식으로 이벤트도 할 수 있어.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일명 장기 계약 고객 한정 이벤트다. 비용은 초이스 에듀와 기가 싱크빅이 반반씩 내는 방식.

“그거 괜찮겠네. 너 안 보는 사이에 사업가 다 되었다. 그런 마케팅 부분까지 신경 쓰고. 역시 대표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에이. 우리 직원들이 만든 걸로 아는 척하는 건데 뭐. 학원 운영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난 애들 가르치는 것만 열심히 하고 있어.”

“겸손하기까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회사 대표 같다. 아! 맞다. 물어볼 게 있는데. 퓨처 그거 사용하기는 편해? 처음 보는 사람도 그때 네가 시연한 것처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

“그건 조금 힘들어. 그때는 구글 글라스와 모션 글러브도 함께 사용했잖아. 그런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긴 한데, 다양한 효과를 주고 싶으면 연습이 필요해. 이게 4D 기능을 갖춘 일종의 입체 파워포인트라고 할 수 있거든.”

“입체 파워포인트? 그렇게 설명하니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파워포인트 기능에 다양한 특수 효과를 추가했다는 말이지?”

“그래 맞아. 음성 인식이나 특수 효과 같은 게 많이 추가되었지만, 크게 보면 좀 더 발전된 형태의 프레젠테이션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야.”

“그럼 파워포인트를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듯이, 제대로 사용하려면 공부는 해야겠구나.”

“그래서 시범적으로 퓨처 무료강좌를 개설할 계획이야. 효과가 좋으면 MOS 자격증과 같은 인증 시험도 만들어보려고.”

MOS는 Microsoft Office Speciallist의 약자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사용자 전문가 자격증이며, MS 오피스 프로그램의 활용능력을 평가하는 세계적 표준 자격증이기도 하다.

MOS 자격증과 같은 인증 시험을 만들겠다는 것은 퓨처를 교육계의 MS 오피스와 같은 존재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가 숨어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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