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96화 (96/256)

제96화

[이젠 학원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계 전체를 뒤흔든 최건우 대표]

회색 돌이 10개 들어 있는 주머니에서 무작위로 공을 꺼내 들었다. 무슨 색일까. 상식적인 답은 '회색'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다른 대답을 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흰색일 수 있다.”

찰스 다윈은 1858년 영국 린니언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진화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변이’를 들었다. 형질이 동일한 개체 간에는 빈번한 선택이 벌어진다 해도 유의미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변이로 인한 변종의 출현 자체를 진화로 볼 수는 없다.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변이가 선택되고 그렇지 못한 변이는 도태되는 자연선택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검은 공이 흰색으로 바뀔지, 붉은색으로 변할지는 다분히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 세계에서도 진화의 룰은 바뀌지 않는다. 진화를 이끄는 것은 언제나 변종이다. 국내 사교육업계는 변종이 우글거리는 아마존 정글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입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 영어가 점점 더 강조되고 명문대보다 의대를 선호하는 등과 같은 다양한 변수들이 수많은 변종의 탄생을 부추긴다.

시가총액이 한때 2조 원에 달하는 교육 공룡 기가 싱크빅은 한 학원 강사의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창업주 용선재 대표는 2000년 인터넷의 출현으로 등장한 온라인 교육의 강점이 ‘무한복제’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기가 싱크빅을 만들었다.

오프라인 학원은 한 강의실 수용인원이 많아야 2,000명 수준이지만 온라인으로 이를 옮겨오면 10만 명에게 판매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 인터넷을 교육에 접목하려는 업체는 기가 싱크빅만이 아니었다. 배움닷컴, 참누리, J&J 등도 엇비슷한 사업 모델을 들고 나왔다.

기가 싱크빅은 서울 대치동의 강사들을 대거 영입해 '스타강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경쟁사를 따돌렸다. 스타강사에게 자신이 참여한 강의로 인한 매출의 30%를 주는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후발주자를 견제하는 진입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1위 업체에 가야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우수 강사들이 기가 싱크빅에만 몰리기 때문이다.

기가 싱크빅 이외의 메이저 교육업체들도 스스로 변종이 되는 결단을 통해 현재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학습지 업계 1위인 세계교육은 학생들이 교사를 찾아가야 하는 학원 사업의 불문율을 무너뜨리고 연간 3조 원 규모에 달하는 학습지 시장을 개척했다.

그런데 더욱 강력한 변종이 출현했다. 초이스 에듀 최건우 대표의 등장이었다.

최 대표는 기가 싱크빅과 세계교육의 장점을 접목시켰다.

온라인 + 찾아가는 서비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얼마 전 공개한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퓨처’다.

이제 학생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느냐? 아니면 집으로 가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주시는 간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라이브로 인터넷 강의를 듣느냐?

그냥 인터넷 강의가 아니다. 라이브 인터넷 강의다.

그냥 동영상 강의를 보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시범 방송 결과는 대성공이다.

시범 방송을 들은 학생들은 기존 동영상 강의와는 생동감 자체가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다시 보기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생방송을 놓치면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도 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학원에 가서 수업 듣기 VS 집에서 방송 듣기.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미래신문 강미래 기자.

***

건우가 발표한 신기술을 접목한 획기적인 수업플랫폼과 그걸 가능하게 만든 ‘퓨처’라는 애플리케이션은 학교와 학원을 중심으로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다.

대부분 사람은 구글 글라스와 모션 글러브를 이용한 수업플랫폼이 독창적이면서도 효율적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분분했다.

일단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에 사람들이 현혹되었을 뿐 결국은 기존의 인터넷 동영상 강의 서비스와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도 기술적으로 기존의 동영상 강의보다 진일보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했다.

아무리 실시간 강의라고 해도 결국 모니터, 태블릿, 스마트폰과 같은 영상매체를 통해 수업을 듣는 플랫폼이며, 그런 간접적 수업방식은 교사나 강사와 눈을 마주 보며 수업을 듣는 것을 능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부정적 입장의 논리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건우의 강의 실력이 다른 어떤 강사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우수한 능력의 강사가 1:1과외나 소수를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업을 듣는 학생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바로 피드백할 수 있다는 장점은 과외의 가장 큰 강점이며 실시간 인터넷 강의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우의 새로운 강의 플랫폼이 획기적이긴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그러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라이브라는 것에 의미를 뒀다.

이들은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중 하나는 음악공연을 할 때 왜 립싱크보다 라이브에 호의적이며 콘서트에 열광하는가?

다른 하나는 왜 스포츠 중계를 볼 때 재방송이 아니라 생방송을 보려고 하는 걸까?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라이브’다.

실시간 강의는, 일시정지를 눌러놓고 딴짓하다 계속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인터넷 동영상 강의와 다르다.

지금 보는 수업을 놓치면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똑같이 영상매체를 통해 수업을 듣는 방식이라고 해도 보는 사람의 집중력은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 긍정적인 이들의 논리였다.

물론 이들도 건우가 공개한 수업방식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은 인정했다.

실시간 화상 과외는 이미 7~8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실시간 강의는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지금 공개한 방식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몄고, 그보다는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야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교육이나 IT전문가들은 그런 소모적 논쟁보다는, ‘퓨처’라는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처럼, ‘미래’에 주목을 했다.

건우가 개원식에서 밝혔듯이 지금 당장은 몰라도, 미래에는 그의 플랫폼이 대중적인 학습방법으로 장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20여 년 후의 미래를 살다 온 건우가 현대 기술에 맞게 수정 및 재구성한 방식이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2015년을 사는 전문가들에게 건우의 아이디어는 너무나도 독창적이었다.

사실 건우가 발표한 학습 플랫폼을 완벽히 독창적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공상과학소설 작가의 책이나 SF영화에서 많이 봤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이라는 것은 미래 기술이 아니라 지금의 기술로 미래 모습을 창조해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건우의 학습 플랫폼을 굳이 다수를 대상으로 할 필요는 없으며, 소수나 1:1 방식으로도 충분히 활용 가능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게 된다면 화상 과외나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홈스쿨링(재택교육)의 문제점을 보강할 수 있는 좋은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선진국의 경우 홈스쿨링을 하나의 대체학습으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을 살펴보면, 미 전역에서 150만 명 이상의 학생이 재택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몇 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1993년 부모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모든 교육과정을 집에서 가르치는 것이 합법화됐다.

미국의 모든 주는 1년에 2, 3차례 정도 교육 관계자가 해당 가정을 방문, 교육 실태를 확인하는 조건으로 부모의 재택교육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홈스쿨링을 실시하는 가정이 있지만, 2012년 현행법상 의무교육으로 지정된 초등 과정을 무시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어 있는 등 제도적 규제가 있다.

아직은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그런데도 홈스쿨링이 늘어나는 이유는 한국의 교육 방식이 너무나도 경쟁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건우가 새롭게 개발한 학습 플랫폼을 발표한 이후 그 활용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간다는 것은 초이스 에듀와 앱을 개발한 초이스 애플리케이션 입장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

“이보세요. 김.철.수 차장님.”

“네. 대표님.”

“이번 일은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따위로 일할 겁니까?”

“면목없습니다. 대표님. 제가 마지막으로 알아봤을 때는 코니 애플리케이션은 완전히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너무 방심했나 봅니다.”

크레이듀의 대표이사 사무실. 나성천 대표는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의 전신인 코니 애플리케이션을 담당했던 김철수 차장을 불러 호통을 쳤다.

바로 며칠 전 건우가 발표한 ‘퓨처’라는 앱을 개발한 사람이 과거 코니 애플리케이션의 사장이었던 홍민수 사장이라는 보고를 들어서였다.

“방심이요? 지금 방심이라고 했습니까? ‘방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고개 숙이면 끝입니까?”

“입이 열 개라도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요? 우리가 입은 손해가 얼만데 그렇게 쉽게 용서해달라는 말이 나옵니까? 우리가 개발한 앱은 이제 구석기시대 유물이 되어버렸다고요. 그걸로 끝입니까? 장차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미래의 청사진은 어떻고요. 음성 인식기술 개발은 오래 걸릴 거라면서요. 그냥 핵심 기술만 빼내면 된다면서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말입니다.”

“모두 저의 실책입니다. 무슨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점점 거칠어지는 나성천 대표의 목소리에 위기감을 느낀 김 차장은 카펫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나 대표가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소문은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이럴 땐 무조건 납작 엎드려야 한다고 누군가 조언을 해줬다.

“됐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더 이상 왈가왈부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 코니 애플리케이션에서 스카우트해온 개발자들은 뭐라고 합니까?”

“다들 놀라는 반응들입니다. 자기들 없이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쯧쯧. 생각보다 쓸모없는 사람들을 모았나 보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요. 여기서 그냥 포기하려고요?”

“아…아닙니다. 몇 가지 골치 아픈 부분이 있지만, 플랫폼 대부분은 그리 어려운 기술이 들어간 게 아니랍니다. 시간만 있으면 지금 당장도 구현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음성을 텍스트로 전환하는 기술이라고….”

“됐습니다. 굳이 음성을 텍스트로 전환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시나리오를 짜서 적절한 시간에 음성 인식을 한 것처럼 메모를 미리 만들어 발송하면 그만 아닙니까?”

“아! 그렇군요.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그것만 해결되면 당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단지 이미 특허출원이 완료된 상황이라 저작권 시비가 붙을 수도 있습니다.”

“후후후. 우리가 언제부터 그딴 저작권 따위를 신경 썼다고 그러십니까? 좀 유명해졌다고 해도, 우리 대 와룡그룹에 비하면 구멍가게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그냥 찍어 누르면 그만이죠.”

“그래도 워낙 인지도가 높아서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어허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서야. 누가 똑같이 만들라고 했습니까? 비슷하게 만드세요. 비슷하게. 그렇게 해서 우회적으로 특허를 받으면 그만입니다. 그다음 정부에 압력을 넣어서 우리 방식을 국공립학교에서 채택하게 만들면 되는 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플랫폼만 남지 않겠습니까?”

표절이나 뇌물 따위는 나성천 대표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대단하십니다, 대표님! 조금 기술력이 떨어져도 정부의 공식 인정을 받게 되면 우리가 훨씬 유리하겠군요.”

“그래요. 와룡그룹이 뒤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그건 바보나 마찬가지죠. 원래 계획이라면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만든 다음 보급하려고 했는데, 계획을 조금 앞당긴 것뿐입니다. 프로그램의 기술력 차이가 뭐가 문제입니까? 뒷돈 좋아하는 공무원들에게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돈만 쥐여주면 발바닥도 핥을 사람 많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퓨처와 비슷한 앱을 개발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최대한 빨리 개발하도록 독촉하겠습니다.”

***

플로리다 마이애미. 미국의 버거퀸 본사.

브래드 체이스는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점인 버거퀸의 사장이다. 버거퀸은 맥도널드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체이스 사장에겐 독특한 취미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순수 과학 분야 관련 공부를 한다. 논문을 읽을 때도 있고, 강의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한다.

대학 2년간 물리를 공부하다가 경영으로 전공을 바꾸었기 때문에 순수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은 탄탄한 편이다.

처음에는 물리만 파다가 요즘은 화학이나 생물 쪽으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유튜브를 뒤지던 체이스 사장은 얼마 전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세계적인 생물학 권위자 하버드대 스트리 교수와 앨런 쇼어 초이의 대담이라는 영상이었다.

체이스 사장은 그 영상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순수 과학에 대한 두 사람의 방대한 지식도 놀랐고, 어린 학생(처음엔 건우를 학생이라고 생각함)의 의견을 세계적인 권위자가 사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놀라웠다.

앨런 쇼어 초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그와 관련된 일종의 다큐멘터리도 구해서 볼 정도가 됐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누가 봐도 천재인 앨런 쇼어 초이를 한국인들이 왜 의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체이스 사장을 진짜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하버드에 있는 바틀리 버거라는 햄버거 가게였다. 그중에서도 고추장 불고기 패티로 만들었다는 ASC 버거에 제대로 꽂혔다. 거대 햄버거 회사 사장다웠다.

‘고추장이라는 게 소고기의 비릿한 잡내를 완전히 잡아주면서 풍미를 더욱 쫀득하게 만들어준다 이거지?’

미국에는 체인점이 아니면서 유명한 수제 햄버거 가게가 많다. 그렇지만 그런 햄버거들은 노벨상까지 받은 세계적인 석학에게 조언하는 천재가 만든 작품이 아니다.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앨런 쇼어 초이에게 제대로 꽂힌 체이스 사장은 ASC 버거가 굉장히 특별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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