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마포 경찰서 XX지구대.
“내일 지원 나가야 하는 거 알지?”
“지원? 이번엔 어딘데?”
“아현동 XX번지. 학원인데, 이번에 새로 개원식을 한다더라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A경찰과 B경찰은 지구대 안에 설치된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학원 개원식을 하는데, 왜 우리가 지원까지 해줘야 해?”
“그 학원이 되게 유명한 학원이잖아. 초이스 에듀라고.”
“초이스 에듀? 아! 들어는 봤어. 그런데 거기가 그렇게 좋은 학원인가? 나는 학원하면 종X학원이나 대X학원밖에 떠오르지가 않아서.”
“종X? 대X? 이 친구 이거,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몰라서야. 시대가 바뀌었어, 이 사람아. 그 학원도 여전히 괜찮긴 하지만, 요즘은 기가 싱크빅, 초이스 에듀, 세계 교육 이런 학원들이 잘나간다고 하더라. 그 두 학원은 5위권도 간당간당할걸?”
“그래? 그렇게 유명한 학원 개원식이면 사람들도 많이 몰리나?”
“아무래도 그렇겠지? 축하 하객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엄청나게 많이 몰릴 거라고 하더라.”
“음. 그럼 내일은 수고비 좀 짭짤하게 받을 수 있으려나?”
“에이, 그런 소리 말어!”
A경찰 이야기에 B경찰이 깜짝 놀라 만류했다.
“왜? 너도 잘 받아와 놓고 갑자기 왜 그래? 큰돈 받자는 것도 아닌데, 뭐가 어때서?”
초이스 에듀의 개원식처럼 공공업무가 아닌 일에 경찰이 동원되는 경우, 밥값 정도의 수고비는 챙겨주는 게 관례였다.
A씨는 그걸 기대한 것이었는데, B씨가 만류하자 살짝 기분이 상했다. 큰 뇌물을 원한 것도 아닌데 B씨가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얼마 전에 돌아가신 조 선배 기억하지?”
“당연히 알지. 나랑 좀 친했잖아. 퇴근길에 취객들 싸움 말리다가 눈먼 칼에 맞아 돌아가셨잖아. 퇴근 후 일이라면서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애들도 아직 어린데. 어휴. 내가 그 이야기 듣고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알아? 그런데 수고비 이야기를 하다 말고 돌아가신 조 선배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
“최 대표가 조 선배 집을 도와주기로 했데.”
“뭐? 그게 정말이야?”
“응. 애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생활비며 학비까지 모두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단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도 박봉이라 도와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 들으니까 이제 마음의 짐을 좀 덜 수 있을 것 같다.”
A씨는 정말 큰 짐을 던 듯 홀가분해 보였다.
“그뿐인 줄 알아. 경찰 유가족 모임에 아이들 장학금으로 사용하라고 10억 원이나 기부했대.”
“뭐? 10억? 세상에!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일을 생각했을까?”
“그러니까 괜히 거기 가서 뭐 얻어먹을 게 없나 기웃거리지 말라고. 이젠 국민의 인기뿐만 아니라 존경까지 받게 될걸? 그런 사람, 아니지.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려도 예의는 지켜야지. 그런 분이 경찰에 실망하지 않도록 너도 조심하란 말이야.”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나도 사람 가려가며 그러잖아. 앞으로 거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열일 제쳐놓고 협조할 생각이니 너무 구박하지 말자.”
“그래. 그래야지. 나도 처음에 그 이야기 듣고 눈물이 왈칵 쏟을 뻔했다니까. 지금까지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은 봐도 우리 같은 경찰 가족들을 제대로 신경 써주는 사람은 거의 못 봤잖아. 어찌나 가슴이 따뜻해지는지. 더 대단한 건 일회성이 아니라 매년 10억 원 이상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단다. 난 이제부터 최건우 대표 존경하려고.”
***
차지선은 예비 고3인 학생이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대학 진학은커녕,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그런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던 꿈 많은 10대 소녀였다.
그런 차지선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몇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였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었다. 엄마는 군인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면서 지선과 어린 동생까지 내버려두고 집을 나갔다.
그래도 아버지가 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서 행복했다.
그런데 해군이었던 아버지가 중국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중국 선원이 휘두르는 칼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는 칼을 대신 맞은 것이라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처음 아버지의 순직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충격에 빠져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동생이 있었고,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다.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쉬쉬했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언론의 보도도 없이 쓸쓸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래도 슬퍼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런 분답게 마지막까지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셨으니 행복하시리라 믿었다. 하늘에 계시지만 스스로 자랑스러우시리라.
국가 유공자가 되어 보상금과 연금도 나온다고 하니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불행은 역시 혼자 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순직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차지선의 엄마가 문제였다.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는 이런저런 핑계로 이혼 수속을 밟지 않고 있었다.
군인의 아내로서 그동안 많은 희생을 했다며,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게 아버지의 믿음이었다.
결론적으로 차지선 아버지의 그런 선택은 집안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다.
같이 살진 않아도 법적으로는 부인. 정부가 주는 보상의 제1 수혜자가 바로 그녀였다.
차지선의 엄마라는 여자는 그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미 남자가 생겨 자신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그녀. 보상금을 받고 연금 수령 통장도 자신의 명의로 바꾼 후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차지선은 망연자실해졌다.
상처받고 하루 종일 울기만 하는 동생, 아들의 죽음에 이어 며느리의 비인륜적 행동에 충격을 받은 조부모님은 의욕을 잃고 앓아누우셨다.
이제 좀 있으면 아버지와 함께 살던 관사도 비워줘야 했다.
당장 살길이 막막해진 그녀. 살 곳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막막한 처지에 학교는 그저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러다 정말 몸이라도 팔아야 하나, 아니면 다 같이 죽어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세상은 차지선 가족에게 차갑기만 했다.
엄마라는 여자가 원망스러웠고, 그녀의 뱃속에서 나온 자신이 저주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띵동!
학교도 가지 않고 방안에서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는데, 한동안 울리지 않던 벨소리가 들렸다.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누굴까? 혹시 보상금만 챙겨 도망간 엄마가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아왔을까 싶어 현관으로 나가봤다.
그럴 리가 없지만 0.01%의 확률이라도 기적이라는 걸 믿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차지선 학생 맞죠?”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문부터 열었다.
역시나 엄마가 아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화사하고 예쁜 여자였다. 엄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
“네. 제가 차지선 맞는데요. 누구세요.”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하더니 얼굴이 많이 상했네요. 저는 초이스 에듀의 손다정 팀장이라고 해요. 혹시 초이스 에듀라고 들어봤어요?”
“초이스 에듀요? 그렇긴 한데. 초이스 에듀에서 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지선 학생을 우리 학원 근로 장학생으로 뽑기 위해서요.”
“근로 장학생이요? 그건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가는 곳 아닌가요? 전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닌데요. 게다가 지금껏 그림만 그려서 지금 당장 공부를 한다고 해도 크게 성적이 오를 것 같지도 않고요.”
차지선은 손다정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도 고등학생이다. 초이스 에듀에 대해서는 남들이 아는 만큼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근로 장학생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유례없이 어려웠던 수능 시험에서 만점을 기록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경준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정신없던 그녀의 귀에까지 소식이 들릴 정도로 유명했었다.
그래서 더욱 의문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더군다나 그림이 특기인 그녀를 왜 초이스 에듀에서 돕는단 말인가?
순간 사기꾼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지만 뜯어갈 게 없다. 남은 건 자신의 몸뚱어리밖에 없다.
설마 포주?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됐다.
“사기꾼 아니니 그렇게 노려볼 필요 없어요.”
“네?”
“지금 그 눈빛. 이 여자가 왜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지? 대체 내게 뭘 뜯어먹으려고 이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하는 거냐고 하는 듯한 그 눈빛이요. 지금 지선 학생이 저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호호호.”
“아…아니. 그게….”
“괜찮아요. 이해해요. 게다가 지선 학생은 서울이 아닌 인천에 살고 있으니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겠죠.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아버지 덕분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훌륭하신 분이잖아요. 존경받아 마땅한 분. 대표님도 지선 학생 아버님의 죽음에 매우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러다 우연히 지선 학생 가족에게 생긴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돕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하지만 저는 미술전공인데.”
차지선은 아직도 뭔가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계속 불행의 연속이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괜찮아요. 오히려 잘된 일이에요. 어차피 우리는 공부뿐만 아니라 예체능에 재능 있는 학생들도 도울 계획이에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예술에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꽃피워야지 않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응? 왜요? 아! 조만간 관사도 비워줘야 한다고 했죠. 염려 말아요. 그렇지 않아도 대표님이 이번에 학원 근처에 있는 작은 빌라 두동을 사들이셨거든요. 거기로 이사 가면 된답니다. 전학 수속은 우리에게 전부 맡기세요.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염려하지 마세요. 치료비도 전부 우리가 지원해드릴 테니까.”
“저…저기 정말 그래도 되는 거예요?”
믿기지 않지만 믿고 싶었다. 이게 꿈이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제발, 제발 꿈이 아니길….
이게 꿈이면 정말 세상을 저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에요.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다 보면 알겠지만, 이래 봬도 제가 초이스 에듀의 이인자거든요. 그런데도 제가 지선 학생을 직접 만나러 직접 왔어요. 그만큼 우리 학원이 이번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에요. 저는 당연히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선 학생은 영웅의 딸이잖아요.”
‘영웅의 딸이잖아요.’
손다정의 그 한마디에 차지선의 눈에서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와르르 흘러내렸다.
그동안 많이 서러웠는데 그 따뜻한 말 하나로 그동안 받았던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손다정의 말이 맞았다. 아빠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영웅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누가 뭐래도 영웅의 딸이었다.
그런데 삶이 버겁다고 몸을 팔 생각을 하고 죽음을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할 뻔했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그녀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런 차지선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손다정은 울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안아주었다.
***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최건우 대표]
자본주의 사회. 능력만큼 돈을 번다고 하지만, 부자들이 번 돈은 과연 오롯이 자신의 능력 때문일까?
이 문제는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었다.
그를 받쳐주는 사회가 없었다면,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부를 축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처럼 선진국에서는 기부문화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준다는 의미로 기부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기부문화가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인데, 내가 왜 기부를 해야 하지?’라는 부정적 인식이 너무 강하다.
그런데 최건우 대표는 그런 기존의 한국 부자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선행을 보여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이 번 돈의 30%는 무조건 기부하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는 최 대표.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무려 100억 원이 넘는다.
겨우 1년도 안 된 짧은 기간 동안 최 대표가 내놓은 기부한 금액이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이번에 또다시 수십억 원의 기부를 했다.
그런데 이번 기부는 조금 특이하다. 그냥 단순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군인, 경찰, 소방관과 그들 유가족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군인, 경찰, 소방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박봉에 목숨까지 걸면서 일하지만, ‘내가 주는 세금으로 일하는 데. 고마운 줄이나 알아’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다른 선진국처럼 존경까지는 몰라도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 급성장과 짧은 민주주의 역사로 인한 시민의식의 미성숙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최 대표의 이번 기부는 그래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중략……
이에 초이스 에듀 한 관계자는 군인, 경찰, 소방관의 자녀들에게 할인혜택을 주는 것까지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종의 재능기부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재능기부를 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모두 이겨내고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최건우 대표. 이제 그는 단순히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존경받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 품격 있는 대한민국 만들기 OSIF 배대웅 기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