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78화 (78/256)

제78화

11월이 시작되었다. 2016년도 수능시험(2015년)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다.

2015년 11월 12일.

바로 그날이 대망의 수학능력시험일이다. 이제 대한민국 학원가의 모든 시선은 한강 에듀케이션과 건우에게 집중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수능특강반이 이번에는 어떤 적중률을 보일지, 그것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단순히 학원가뿐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의 이슈는 없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관심은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건우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기인의 한 사람이었다.

이슈에 목말라 있는 언론의 관심 또한 커졌다.

처음 병역문제가 불거졌을 때, 언론과 대중들은 건우에게 엄청난 비난을 쏟아부었다. 수능 족집게 실력 또한 신뢰성에 대한 문제로 도마 위에 올라서 난도질을 당했다.

하버드 학력 위조가 이슈가 되면서 대부분의 루머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수능 족집게 실력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실력인지 운인지. 50%라는 수능 적중률 계산법이 과장된 건지 아닌지.

건우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해서, 건우를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해서 2016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건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높은 수능 적중률이 운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운 또한 실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의 강의 실력은 이미 우리나라 최고라고 인정받는 상황이라서 굳이 수능 적중률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송국 사람들과 하버드에 직접 가서 확인했고, 졸업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까지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음모와 연관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오해를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의 근간이 되는 논리는 한 마디로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학원 강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학원가에서 인기몰이 하는 것도 이상하고, 6과목을 가르치는 것도 이상하며, 대박 적중률을 자랑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건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건우보다 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천재적인 사람도 많다며 설득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 않았다. 이미 틀렸다고 단정 짓고 귀를 막아버렸다.

자신이 경험한 아주 좁아빠진 인생사가 세상 전부인,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한 사실들은 절대 믿지 못하는 편협함의 극을 달하는 인물들이라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입견을 너무 당당하게 내세우며 건우의 실패를 간절하게 바랐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제 그들에게 건우의 수능 적중률 성공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수능 적중에 실패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고 세상의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만약 수능 적중에 성공하면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서운 음모가 숨어있는 거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건우가 외계인이다’라거나 ‘미래에서 시간여행으로 넘어왔다’라는 주장을 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주장을 개소리라고 무시했지만, 누군가(?)는 설마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

건우의 두 번째 3주 완성 수능 특강반은 10월 20일부터 개설되었다. 지난번처럼 ‘수능 적중률 50% 보장’과 같은 조금은 자극적인 광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광고가 필요 없을 만큼 지원자는 넘쳐났다.

한강 에듀케이션 7층에서 건우의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인원 300명, 별관에서 건우의 모니터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인원도 300명.

초이스 에듀의 분점에서 모니터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인원 또한 각 300명.

총 2,400명의 수강생을 모집하는 수능 특강반은 모집 전부터 엄청난 경쟁이 시작되었다.

선발 기준은 간단했다.

강의 참석 수업일 총합. 쉽게 말해,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 20일짜리 수업이라면 모두 출석해야 20점을 받는다. 결석하게 되면 해당일수만큼 무조건 감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서 과목당 7일 초과 결석 시 0점 처리.

간단하면서도 단호한 원칙은 얼마나 많은 과목을 신청했는지 만큼이나 얼마나 성실히 수업에 임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 정책 덕분에 다른 어떤 학원보다 높은 출석률을 자랑했고,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원칙이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기 어렵다.

건우가 세운 간단하면서도 단호한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말 아슬아슬하게 1~2점 차로 떨어진 사람들의 불만도 엄청났다.

한강 에듀케이션과 초이스 에듀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그런 불만들이 담긴 글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 정말 억울합니다. 겨우 5점 차로 떨어졌습니다. 최건우 선생님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 때 부모님이 말리셔서 며칠 쉬었는데 그게 이렇게 발목을 잡네요.

└ 뭐? 5점 차? 떨어질 만하네. 5점 차면 꼴찌나 마찬가지. 그냥 포기해. 그럼 마음이 편해진다.

└ 5점 차로 여기 명함을 내미는 거임? 즐하셈.

└ ㅋㅋㅋ 자업자득이다. 그러게 왜 최건우 선생님을 안 믿었어? 믿음이 부족하니 수업 들을 자격이 없는 거야.

- 정말 억울합니다. 고작 20점 차로 떨어졌습니다. 항의해야 할까요?

└ 옜다. 관심. 그렇게 관심을 받고 싶었어? 네 앞날도 정말 걱정된다.

└ 20점이 차이 나면, 그전에 이미 학원에서 짤렸음. 허세를 부리려고 해도 앞뒤는 맞게 부려라.

- 2점 차로 떨어졌습니다.

- 1점 차로 떨어졌습니다.

- 여기 있는 게시물을 보고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래요. 1점 차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자그마치 2점 차 가지고 여기서 명함을 내밀다니요. 정말 한심합니다.

└ 그러는 넌 몇 점 차로 떨어졌는데, 한심하니 어쩌니 그러냐?

└ 휴······! 0.5점 차입니다. 예전에 지각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칼같이 지각 표시에 체크를 하더군요. 그때는 0.5점 정도쯤이야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는데 그게 저의 발목을 잡는군요.

└ 헐. 대박!!! 진짜 0.5점 차? 1~2점 차는 모르겠지만 0.5점 차이로 떨어졌으면 구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정말 억울하겠음. 너는 억울함 인정.

└ 저의 억울함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ㅋㅋㅋ 별것이 다 감사하다. 그래도 억울할 것 같긴 함. 가서 생떼라도 부려봐.

-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글 남깁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보며 배부르다고 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궁금해서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더군요. 저는 이번 최건우 선생님이 개설한 수능 특강반 별관 모니터 강의수업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던 럭키층(건우의 7층 수업을 그렇게 부름) 오프라인 수업은 아쉽게 떨어졌습니다.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수업을 개설했을 때부터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학원에 가서 6과목 수업을 들었습니다. 독감에 걸려도 배탈이 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했습니다. 태풍이 와도 학교가 쉬는 날도 학원을 빼먹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떨어졌을까요?

└ 당연히 떨어지실 만합니다. 저는 이번에 럭키층 오프라인 수업에 합격했습니다. 평일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6개 수업을 들은 것은 님이랑 같아요.

그런데 저는 주말에 개설되는 특별반 수업 4개도 같이 들었습니다. 총 10개 수업을 들었죠. 제 친구 중에는 수강 신청을 못 해서 7개만 들었는데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쨌든, 모니터 수업은 들을 수 있잖아요.

└ 그렇군요. 내용이 중복될 텐데, 주말 특별반 수업까지 듣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 아! ㅅㅂㅅㅂㅅㅂㅅㅂ. 정말 둘이서 잘난 척하는 거냐? 졸라 짱남!!!

└ 일주일에 학원 수업을 10개나? 그렇지만 부럽진 않다. 차라리 안 듣고 말지.

└ 부러우면서 안 부러운 척하기는. 난 솔직히 부럽다.

여기까진 약과였다. 솔직히 이런 식의 투정은 귀엽다고 할 수 있다.

‘여기 XXX구의원 사무실입니다. 이번에 의원님 아드님이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건우 선생이 개설한다는 특강반에서 수업을 듣게 하고 싶은데요. 네? 그동안 학원에서 수업을 들었냐고요? 물론 아니죠. 의원님 아드님이라고요. 집에서 쭉 과외를 받았습니다. 뭐라고요? 그럼 계속 과외를 받으라고요? 이 사람이 지금 XXX의원님이라니까. 당신 누구야? 거기 책임자 바꿔.’

‘저는 XXX국회의원 수석보좌관입니다. 이번에 의원님 큰 손자분이 고3입니다. 그래서 3주 완성 특강반에 들어가게 하고 싶은데 자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네? 안 된다고요? 허허. XXX의원님이라니까요. 국회의원이요. 국가와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시는 분인데 그 정도 편의도 못 봐준단 말입니까? 당신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학원 계속 운영하기 힘들 수도 있어.’

‘여기 YY그룹 비서실입니다. 최건우 선생님 계십니까? 아! 수업 중이시라고요. 그럼 메모 좀 남길 수 있을까요? YY그룹에서 연락이 왔다고요. 네? 무슨 용무냐고요? 회장님 셋째 아드님이 수능을 칩니다. 뭐라고요? 특강반에 들어오고 싶어서 연락을 했느냐고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리 도련님이 사람들이 그렇게 바글바글 거리는 좁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게 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최건우 선생님이 직접 와서 강의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죠. 과외라기보다는 그냥 일종의 개인교습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성적만 확실하게 올려준다면 돈은 달라는 대로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AAA장관님 비서입니다. 네? 우리도 수능 특강반에 들어오고 싶어서 전화했느냐고요? 하하하.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나 봅니다? 그만큼 최건우 선생님 실력이 대단하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아시겠지만 저희 장관님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 권력의 핵심에 위치하고 계신 분으로서… 네? 안 된다고요? 험험험. 우리 장관님이 누군지 몰라서 하는 소리 같은데 일단 책임자 바꾸세요. 뭐라고요? 최건우 선생님이시라고요? 지금 통화내용은 녹음되고 있고, 여차하면 이 내용을 언론에 뿌리겠다고요? 하하하. 농담도 잘 하십…. 농담이 아니라고요? 아니요. 최건우 선생님 말고 제 말이 농담이었다고요. 물론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차라리 이렇게 권력이나 돈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는 사람은 다루기 쉬웠다. 언론에 알리겠다는 협박만 해도 충분히 이야기가 통했다.

게다가 이제 건우는 수많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압력을 직접 행사하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의 할아버지가 와도 건우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건우에게도 거절하기 난감한 일은 있었다.

‘최 선생님. 내 아는 사람에게서 워낙 간곡한 부탁이 들어와서야 말입니다. 어떻게 딱 한 자리만 마련해줄 수 없습니까?’

‘건우야. 그동안 잘 지냈니? 예전에 몇 번 얼굴 본 적 있지. 나 OOO이야 너희 아버지 친구. 장례식에서 만났지? 그래그래. 다름이 아니라 네가 개설한다는 수능 특강반 때문에 말이야. 내가 널 잘 안다고 자랑했더니, 아는 형님이 자기 자식 특강반에 넣게 해달라고 통 사정을 했거든.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편의 좀 봐주면 안 될까?’

이런 식으로 친분을 이용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가끔은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난감한 상황이 와도 건우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원칙은 무조건 지켜야 했다.

“대표님. 정말 압박이 너무 심하게 들어오는 곳이 몇몇 군데 있어요. 학원 인허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무작정 거절하기 어려워요.”

급기야 건우 이상으로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손다정마저 굳건했던 결심이 흔들렸는지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만큼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손 팀장님 마음은 알겠지만, 학원이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수능 특강반은 어떤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번 예외를 인정하면 그다음은 더 쉽습니다.”

“소문나지 않게 비밀리에 하면 되지 않을까요?”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런 걸 모를까요? 금방 소문나기 마련입니다. 예외를 인정했다는 소문이 알려지면, 그에 대한 후폭풍이 더 무서울 겁니다. 견디기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텨봅시다. 누구 하나 예외를 인정하는 것보다 아무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반발을 줄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학원 강사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원칙을 어기는 선생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손 팀장님이 고생 좀 해주세요.”

“대표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압박이 워낙 심하다 보니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지켜야 할 원칙은 지켜야겠죠. 직원들에게도 흔들리지 않도록 확실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온갖 협박이 넘쳐났지만 건우는 원칙을 고수한 채 흔들리지 않았다. 놀라우리만치 굳건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원칙을 깰 생각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예외 없이 원칙을 지킨 덕분인지, 가끔 불만이 터져 나오긴 했어도 협박이 현실로 이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특강반 수업도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대망의 2016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아침이 밝았다.

유달리 꽃샘추위가 심했지만, 그 어느 때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그 중심에는 역시 건우가 있었다.

대부분의 취재 기자들은 과연 건우가 이번에도 수능 적중률 대박을 칠 수 있을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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