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건우는 좀 더 단호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홍민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온 것은 맞지만, 이익을 내러 온 것이지 자선사업을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다.
“홍 사장님. 이미 우리 서로 솔직해지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홍 사장님이 코니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을지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코니 애플리케이션은 부도 직전입니다. 단순히 투자만 받는다고 지금 사태가 해결될 것 같습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와룡그룹에서 장난질을 쳐서….”
“망설이시는 것 같으니 여기서 더 솔직해지죠. 홍 사장님은 코니 애플리케이션이 부도 직전까지 간 이유가 오직 대기업의 횡포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가장 큰 원인은 홍 사장님에게 있습니다. 모르셨습니까?”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장 큰 원인은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라 홍 사장님 자신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이보세요. 지금 회사를 인수하러 온 게 아니라 시비 걸려고 오셨습니까?”
건우는 홍민수가 아직도 현실 파악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일부러 굉장히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로 그의 잘못을 지적했다.
홍민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좀 물어보겠습니다. 왜 투자금을 받기도 전에 연구개발에 필요한 대출부터 받으셨습니까?”
“그거야 일단 투자 약속을 받았으니 하루라도 빨리 연구를 완료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 문제가 되죠. 홍 사장님은 지금 회사의 사장님입니다. 그런데 사장의 마인드가 아니라 연구원의 마인드를 가지고 계십니다. 빚을 내서라도 연구부터 하자. 그 뒤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지금 결과를 보세요.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결과가 결국은 회사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 왔습니다.”
“그…그렇지만 그건….”
“그리고 다른 연구팀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둘 동안 뭐하셨습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와 음성인식에 대한 기술 개발로 바빴습니다. 아무리 제가 바빠서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해도, 어떻게 투자계약까지 맺은 회사의 직원을 빼갈 수 있습니까?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홍민수의 순진한 대답에 건우는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한심하다고 욕할 순 없었다. 예전의 건우도 홍민수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홍 사장님은 코니 애플리케이션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그건 왜? 음…. PC와 모바일 앱의 완벽한 연동과 안정성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홍 사장님은 그런 최고의 기술을 가진 직원들을 다독일 생각은 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셨죠. 그게 직원들을 섭섭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냥 엔지니어였다면 모를까, 한 회사의 사장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다른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만 신경을 썼으니 직원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상당했을 겁니다.”
“마치 직접보신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보지 않아도 뻔히 보입니다. 그동안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많이 봤습니다. 엔지니어로서는 뛰어나지만 경영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사장이 되어 저지르는 실수를요. 홍 사장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제가 뭘 믿고 코니 애플리케이션에 투자하겠습니까?”
경영의 ‘ㄱ’자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가 회사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강 에듀케이션도 경험도 없는 교사 출신의 원장이 학원 경영을 맡았던 것이 부실 운영의 큰 원인이었다.
그래서 건우는 처음부터 학원 경영은 손다정에게 맡겨두고, 회사 자산만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경영자로서 저는 믿을 수 없다? 아픈 평가지만 더는 할 말이 없게 만드시는군요.”
건우의 냉정한 분석에 홍민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제가 코니 애플리케이션을 인수하면 회사를 이분화할 겁니다. 경영 파트와 연구 파트로요.”
“경영과 연구로 파트를 나눈다고요?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쉽게 이야기하면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경영 파트의 역할입니다. 경영 파트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연구 파트 책임자는 홍 사장님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거절만 하지 않으신다면요.”
“제게 연구 파트를 맡기신다고요? 그럼 제가 계속 회사에 남아 있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회사를 넘기면 코니 애플리케이션에서 떠나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는 홍 사장님의 기술 개발 능력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쪽 분야에 대해 제가 아는 것도 없고요. 당연히 연구개발 문제에 깊게 간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연구팀의 독립성은 유지해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럼 저는 자유롭게 연구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골치 아픈 경영 뭐하러 직접 하려고 하십니까? 저도 우리 학원의 경영은 기획팀장에게 넘기고 강의만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의사 결정은 제가 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에게 맡겼더니 정말 몸과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정말이십니까? 최 대표님도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십니까?”
“네.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중요한 의사결정만 제가 합니다. 물론 홍 사장님은 저랑 약간 다릅니다. 회사 경영과 관련해서 조언은 주실 수 있지만 의사 결정은 하실 수 없습니다.”
“그건 당연하죠. 회사를 넘기면 더 이상은 사장이 아닌데.”
“대신 연구개발에만 전념하시는 거죠.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비용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넉넉하게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경영에 대한 고민 없이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말입니다.”
사실 코니 애플리케이션의 핵심은 홍민수다. 핵심 기술이니 어쩌니 하지만 그 대부분은 홍민수 사장의 작품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건우이기 때문에 이렇게 공을 들여 꼬시는(?) 중이다.
“학원 강사를 하셔서 그런가요? 말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하시네요.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사실 홍민수는 건우의 설득에 99%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골치 아픈 경영은 때려치우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인수가 아니라 투자를 바랐던 것도 경영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계속 연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홍민수는 고민을 그리 길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코니 애플리케이션을 넘기겠습니다. 어차피 빚밖에 남지 않은 회사입니다. 돈은 필요 없으니 우리 회사 어떻게든 살려만 주십시오. 저를 보고 남아 있는 직원들이 예전처럼 다시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무슨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살려 달라니요. 같이 살려야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부족하지 않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실제로 여길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은 제가 아니라 홍 사장님과 남은 직원들의 노력입니다. 열심히 연구만 해주십시오. 그럼 회사는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불철주야 노력해서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헉! 피를 토하고 뼈를 깎아요? 아뇨. 홍 사장님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애플리케이션 관련 산업은 사람이 곧 자산인 곳입니다. 건강부터 챙기셔야죠.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일도 그만두세요. 체력이 좋아야 연구 성과도 오르는 겁니다.”
“그…그런가요?”
모든 걸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는데 그러지 말란다.
홍민수는 살짝 민망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건우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회사를 거저먹을 수는 없지요. 부채가 많고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코니 애플리케이션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은 진짜입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사업하는 입장이라서 무조건 퍼드리고 그러지는 못합니다만. 부채까지 포함해서 회사를 완전히 인수하는 조건으로 새로 시작할 회사 지분 5%와 현금 5억 원을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네? 혀…현금 5억 원이요?”
잘나갈 때도 현금 5억 원은 꽤 큰돈이었다. 그런데 수중에 돈 몇만 원이 없어서 전기요금이나 인터넷 요금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5억이라니.
홍민수는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네. 5억은 순수하게 홍 사장님의 몫으로 드리는 돈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코니 애플리케이션의 기술력은 그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업을 하다 보니 합리적인 적정가격을 찾았습니다. 서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요즘 건우가 사람을 설득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냉철한 평가로 채찍질을 한 다음, 적절한 당근을 제시해 상대를 정신 차릴 수 없게 만든다.
굉장히 뻔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그건 하늘로 솟은 홍민수의 광대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닙니다. 서운하다니요. 절대 아니에요. 충분합니다. 죽어버릴까 생각마저 했었는데, 회사 지분에 거액의 현금까지 챙겨주신다고 하니 더 바랄 바가 없습니다.”
현금에 지분까지 포함하면 굉장히 큰 금액이지만 그 돈으로 홍민수와 다른 팀원들의 미래를 살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분명했다.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인 회사를 인수할 때는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당사자를 서운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대접을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일이 틀어질 수도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업체나 학원이나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예전 삶에서 20여 년간 학원 강사를 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은 건우가 그런 사실을 간과할 리가 없었다.
정말 사소한 이유로 인기 강사와 학원 운영자의 사이가 틀어지고 서로 결별하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다.
인적 자원이 중요한 곳에서 사람을 잃으면 끝이다. 건우는 절대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1년 넘게 고생하시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받은 분도 많을 겁니다.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하시고, 깔끔하고 쾌적한 전셋집이라도 구하는 데 쓰십시오. 회사 직원들의 월급이나 여러 가지 비용들은 계약 즉시 제가 해결해드릴 테니 그 부분도 염려하지 마시고요.”
“아!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더니 제게 그런 행운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 대표님.”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홍 사장님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냥 부담가지지 말고 편안하게 생각하십시오.”
“하하하.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표님.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에게 바라는 게 무엇입니까?”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홍민수는 그제야 건우가 왜 갑자기 코니 애플리케이션을 인수하려는지 궁금해졌다.
“홍 사장님이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에 개발에 관심을 가진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미래의 교육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이 대세가 될 것이다?”
“네. 홍 사장님께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기술과 음성 인식 기술 개발에 나선 것도 온라인 교육시장의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지요. 제가 봤을 때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인터넷에서 실시간 강의를 하고, 아이들은 스마트기기로 그 수업을 생생하게 수강하는 겁니다. 당연히 안정적인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음성 인식 기술이 개발된다면 아이들은 더 이상 힘들게 손으로 노트필기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네? 노트필기요?”
건우는 여기서 뭔가 핀트가 어긋나는 걸 느꼈다.
“혹시 거기까지는 생각 못 하셨습니까? 제가 음성 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손이 아니라 입으로 필기가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생각을 못 한 것이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서입니다.”
“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미래의 온라인 교육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음성 인식 기술의 활용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달랐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홍 사장님이 교육 현장에 계시지 않아서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입을 통해 필기한다? 이게 생각처럼 쉽지도 능률적이지도 않습니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필기하려고 말하는 순간 강사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귀를 열어두고 손으로 필기하는 것보다 훨씬 비효율적입니다.”
“아…! 최 대표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그 부분을 간과했군요. 그럼 음성 인식 기술은 왜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학생이 아니라 강사의 말을 인식하기 위해서죠.”
“강사요?”
“그렇습니다. 강사가 강의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음성을 통해 텍스트 형식의 메모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강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메모장을 학생들에게 전송하고, 학생들은 이북에 별첨으로 추가하는 겁니다. 저나 홍 사장님이나 학생들의 필기를 줄여주겠다는 의도는 같지만, 주체는 서로 다릅니다.”
“그렇지만 최 대표님 방식이 확실히 더 효율적이긴 하겠군요.”
“잠깐, 이걸 좀 보시겠습니까?”
건우는 자신이 가지고 온 태블릿에서 링크해둔 기사 하나를 열어 홍민수에게 건넸다.
“구글 글라스용 생방송 앱 런칭. 외설물, 사생활 침해 논란은? 제목은 좀 이상하네요. 이걸 보라는 게 맞나요?”
“하하하. 일단 내용부터 읽어보시고 이야기 나누시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