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73화 (73/256)

제73화

사무실에 돌아온 건우는 현재 자신에게는 예전, 그리고 지금 세계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보았던 신문기사를 떠올렸다.

- 2016년 5월 27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어느 신문기사.

[국무총리상까지 수상한 애플리케이션개발자의 죽음.]

22일 오후 15시 20분쯤 서울시 XX구 XX동 와룡그룹 본사 앞에서 40대 초반의 남자가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통에 가득 든 시너를 몸에 뿌리고 라이터를 켜자마자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활활 타올랐고, 그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경비원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불을 껐다고 한다.

긴급 후송되어 서울 한강 XX병원 화상 전문 병동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사고가 난 지 5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숨이 멎고 말았다. 그의 분신 사건은 다음날 방송과 신문에 단신으로 처리됐지만, 그 이면에는 대기업의 횡포에 좌절한 한 중소기업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그는 왜 분신이란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홍길동(41. 서울. 가명)

‘에어XX’이라는 게임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공전의 히트를 친 모바일 앱이었고, 홍 씨는 그 게임 덕분에 모바일 산업 부분에서 국무총리상까지 받았었다.

그렇게 잘나가던 애플리케이션 개발회사에 문제가 생긴 것은 게임이 아닌 교육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착수하면서부터였다.

홍 씨는 우리나라 교육 관련 스마트 시장의 규모는 이미 수조 원대에 이르렀지만, 아직 제대로 만들어진 앱과 디지털 콘텐츠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교육용 앱을 개발하면서 홍 씨가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총 다섯 가지였다. 첫째, 스마트하게 가벼운 앱이어야 한다. 둘째, 안정적인 동영상 강의 재생. 셋째. PC버전과 모바일 버전의 완벽한 연동. 넷째, 사람의 음성을 글로 완벽하게(95% 이상) 전환하는 기능. 다섯째, 대규모 실시간 인터넷 강의 서비스.

홍 씨는 자신이 생각했던 다섯 가지 중 네 가지 주안점만 완벽하게 개발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스마트 교육시장을 석권하는 일도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꿈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었다. 바로 홍 씨의 교육용 앱 개발에 관심을 가진 한 대기업이 투자를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행운인 줄 알았던 투자 제안이 알고 보니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는 대기업의 투자 약속만 믿고 음성인식 기능과 대규모 스트리밍 서비스 안정화 기능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전 재산을 털어 연구에 필요한 기기를 사고 새로운 인력을 보충했다.

회사의 통장 잔고는 점점 더 바닥이 나는데 투자를 약속했던 대기업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 기업에 찾아가 약속대로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기다리라는 대답뿐이었다.

애타는 기다림에 날아온 것은 투자금이 아니라 투자를 취소한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약속했던 기술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홍 씨는 그제야 대기업이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들은 언제 개발될지 미지수였던 새로운 교육용 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PC와 스마트폰에서 함께 연동되는 안정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가 운영했던 회사는 PC와 모바일 앱의 연동과 안정성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대기업이 욕심을 낸 건 바로 그 기술력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직원들도 전부 그쪽 관련 기술자들이었다.

지금까지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특허권이 있었으나 플랫폼을 교묘하게 수정해서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방법은 소송하는 것뿐이었는데, 소송할 비용조차 없으니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었다.

회사는 부도가 났고, 그는 완전히 알거지가 되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대기업에 대한 분노가 그를 분노케 했다.

결국, 홍 씨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기업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 나노선 미래일보 논설위원.]

그 사건을 계기로 특허 관련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야 하며, 미국처럼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잠깐이었다.

그 사건은 어느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고, 건우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징벌적 배상제도는 한국에서 시행되지 않았었다.

“그러고 보면 홍 모 씨라는 분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네.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죽어갔는데, 그분은 사회에 최소한의 경종은 울렸으니. 그래 봤자 억울했던 죽음은 그분이나 나나 비슷하긴 하지만.”

건우는 좀 더 기억을 더듬어봤다.

‘지금쯤이면 와룡그룹에서 계약 해지 통보를 했을 시기려나? 그러고 보니 크레이듀가 와룡그룹 거잖아. 그럼 내게 해코지를 한 곳이 와룡그룹이라는 건가? 아니야, 아니지.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자.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지. 불행하게 살았던 홍 모 씨. 이번에는 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봅시다.’

***

건우가 홍 모 씨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2013년에 엄청난 히트를 했던 ‘에어XX’이 ‘에어통통’이라는 게임을 뜻한다는 것은 유치원생들도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다.

게임은 몰라도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가 뭔지는 대부분 알고 있었다. ‘에어통통’은 그만큼 인기 있는 게임이었다.

[홍 모 씨에 대한 간단한 조사.]

to : 최건우

from : 차지훈

이름 : 홍민수.

나이 : 마흔 살. 미혼.

회사명 : 코니 애플리케이션.

회사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XX빌딩 9층 902호.

전화번호 : 02-798-XXXX

010-XXX-YYYY

집 주소 : 그냥 사무실에 먹고 잠.

재정상태 : 쓸 만한 자산들은 모두 담보로 잡혀있고, 부채는 총 5억 원.

추신 : 이런 건 그냥 인터넷에만 검색해봐도 대부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국제적으로 놀던 제가 이런 보도 듣도 못한 사람의 간단한 신상명세까지 조사해야 한다니요!! 느낌표 두 개입니다.

귀찮으시면 그냥 비서를 시키세요. 대표님 비서인 장미화 씨, 일 잘하게 똘똘하게 생겼더군요. 이번 일로 제가 받은 정신적 충격이 매우 큽니다.

손다정 팀장과 소개팅을 주선해주시던가 아니면 우리 집으로 뻥튀기 10봉지 보내주십시오.

“하하하. 차 팀장님도 참 캐릭터가 재미있는 분이네. 하긴 내가 너무 어이없는 조사를 시키긴 했어. 이건 나보고 유치원생 과외를 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잖아. 그런데 차 팀장님이 손 팀장에게 관심이 있었어? 차 팀장님 나이가 서른여덟 살이니 두 사람 나이 차이가 네 살이네. 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 그래도 소개팅은 그렇잖아. 그냥 뻥튀기나 보내줘야겠다.”

건우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컴퓨터를 열고 엑셀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지금까지 누적된 총 매출이 약 400억 원. 그걸 초이스 에듀와 7:3으로 나누기로 했으니 내 몫은 약 280억 원. 거기서 다시 30%는 기부했으니 남는 돈은 대략 190억 원. 이야. 짧은 기간에 많이 벌긴 했네. 총알은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홍민수 씨 만나러 코니 애플리케이션으로 출발해볼까.”

***

한때는 누구 부럽지 않게 잘나갔던 회사였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에어통통’은 그 유명세에 비해 큰 수익을 창출하지는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문제는 수익 모델 창출의 실패였다.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큰 이익을 얻지 못했을 뿐이지, 회사의 명성이 높아지고 독자적 기술력 축적을 이루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뛰어든 것도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와룡그룹이 끼어들면서 장밋빛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나고 이제는 파산 직전에 몰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지경이 되었다.

대부분 직원은 와룡그룹에 포섭되거나, 그런 제안은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살길을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직원은 고작 다섯 명. 그중 두 명은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과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홍민수가 직접 스카우트해왔던 사람들이었다.

어렵게 데려왔는데 갈 곳 없는 처지로 만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대출금 독촉전화였고,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며칠 전에는 전기를 끊겠다는 안내장까지 날아왔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나고 싶었지만, 도저히 헤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계십니까?”

사무실 입구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나 마나 빚 독촉을 위해 찾아왔을 게 분명했다.

홍민수는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지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야 좋은 말이 오갈 것 같지 않았다.

끼익.

“여기가 코니 애플리케이션 맞습니까? 전 홍민수 사장님을 좀 뵈려고 왔습니다. 혹시 자리에 계십니까?”

문이 열리고 제법 큰 키에 날렵한 체구의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문을 잠궈 놓은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빌었지만, 이미 한 번 외면했던 신이 그의 사소한 소망 따위를 들어줄 리가 없었다.

‘어떡하지. 그냥 책상 밑으로 숨을까?’

이런 고민을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다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동안 하도 빚 독촉에 시달리다 보니,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홍민수의 몸은 본능적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마치 뱀과 마주친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혹시 홍민수 사장님 되십니까?”

끄덕끄덕.

혀가 굳어버렸는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다행히 자리에 계셨군요. 저는 최건우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최건우 씨. 그…그런데 무…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남자는 빚을 받으러 온 사람답지 않게 고급 정장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공손한 데다가 환한 미소까지 지어주니 굳었던 몸이 풀렸다.

긴장이 풀리자 더듬더듬 이지만 말을 할 수 있었다.

“여기 회사를 인수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뭐…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여기 코니 애플리케이션을 인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요?”

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대답에 홍민수는 전혀 엉뚱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네? ‘왜요’라니요? 혹시 회사를 인수하면 큰일이라도 납니까?”

“나죠. 큰일 납니다. 보아하니 상당히 젊어 보이시네요. 혹시 장난이라도 치자는 겁니까?”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장난이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럼 장난이 아니란 말인가요? 상태가 아주 엉망이라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를 왜 갑자기 인수하겠다는 겁니까? 상황을 알고 인수한다고 해도 장난 같고, 상황을 몰랐다면 더더욱 장난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역시 제가 너무 젊어 보여서 그런 건가요? 회사 인수 문제니까 송미주 변호사님이라도 대동하고 올 걸 그랬나 보네요.”

“어! 나 저 사람 아는데.”

그때 책상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던 직원 한 명이 남자의 얼굴을 보더니 아는 척을 했다.

“박현주 씨. 저 남자분 아는 사람입니까?”

“아! 그러니까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건 아니고요. 굉장히 유명한 분이세요. 요 몇 달간 엄청나게 이슈가 되었던 분이거든요. 그렇죠? 최건우 대표님?”

“네. 제가 최건우 맞습니다. 좋지 않은 일로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이렇게 알아봐 주시니 민망하네요.”

“어머! 좋지 않은 일이라니요. 그거야 기자들이 확인도 하지 않고 함부로 기사화해서 그런 거죠. 방송보고 정말 감동 받았어요. 그때부터 최 대표님 팬이 되었다니까요. 호호호.”

“현주 씨. 저분이 그렇게 유명하신 분이었습니까?”

“아차. 사장님은 경황이 없으셔서 TV나 신문도 못 보셨죠? 그게요. 말로 설명하기는 애매하고. 음…. 인터넷에 ‘최건우’라는 이름만 검색해봐도 관련 기사들이 주르륵 뜰 걸요.”

박현주가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홍민수는 눈만 껌벅거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왜 그러세요. 검색 안 해보세요?”

“그…그게. 인터넷이 끊겼지 뭡니까. 하하하.”

“맞다. 내 정신 좀 봐. 그럼 스마트폰으로라도….”

“전화도 끊겼습니다.”

“죄송해요, 사장님. 며칠 전에 말씀하셨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그럼 제 스마트폰으로라도 검색해보세요.”

박현주가 스마트폰을 건네자 홍민수는 그제야 남자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잠깐의 검색만으로도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홍민수는 어쩌면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거 죄송합니다. 아까 현주 씨 말처럼 요 몇 달간 제가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을 몰라보다니, 정말 면목 없습니다.”

건우가 누군지 확인한 홍민수는 우선 사장실로 자리를 옮기고 자신이 범했던 실수에 대해 사과를 했다.

“어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못 알아보면 어떻습니까. 그것보단 그동안 어려운 일을 겪으셨다니 얼마나 심려가 크십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최건우 대표님과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제가 지금 좀 마음이 급합니다. 우리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읍시다. 우리 회사를 인수하길 원하신다고요? 진심이신 거죠?”

“네, 그렇습니다. 저도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미 코니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조사는 모두 마쳤습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투자가 인수인 건지….”

건우의 방문으로 살아날 구멍이 보이자 갑자기 욕심이라도 났을까? 홍민수의 어투가 조금 애매했다.

기사에서 다들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 욕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동아줄을 잡았다고 생각할지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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