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69화 (69/256)

제69화

완벽하게 원래 일상으로 돌아온 건우는 홀로 북한산 산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수많은 고민으로 복잡해진 머릿속을 시원하게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며 한바탕 땀을 흘렸다. 산 정상에 올라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서울시를 내려다보니, 요 며칠 고심했던 문제들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건우는 그동안 회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이 신비한 경험을 신이 준 선물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절대 함부로 유용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 결심으로 그동안은 자신이 가진 지식 중 학원 강사로 살아갈 때 필요한 부분만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선물을 준 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면서.

솔직히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줄 알았다. 20여 년간의 수능 문제와 교육과정의 변화를 꿰뚫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정보였다.

건우의 개입으로 조금씩 미래가 바뀌겠지만, 기본적 틀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 정도 정보만 가지고 있어도 세상 사람들이 놀랄만한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을 겪으며 그가 가졌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그를 견제하려는 세력 또한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냥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대결한다면 그 누구도 두렵지 않지만, 역시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건우의 고민은 거기서 시작했다.

‘어차피 주어진 선물인데, 그걸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가 박탈당할까?’라는 것이 건우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뜻은 학원 강사로 살아갈 때 필요한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자신의 꿈은 뒤로 한 채 오직 학원과 집만 오가며 외골수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주식이나 환율 동향처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대부분은 학문 관련 정보였다.

그러나 그런 대박 정보가 없다고 해도, 머리 좋은 건우가 20여 년을 살아오면서 이리저리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만 해도 큰 힘이 된다. 건우는 그런 정보들을 활용해도 될지 말지에 대해 계속 고심했다.

스트리 교수와의 만남은 굉장히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은사의 안타까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예전 삶에서 얻은 지식을 풀어 놓은 건우. 사실 그 정보는 처음 마음먹었던 학원 강사로서 필요한 정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고작 생각을 전환할 수 있도록 작은 힌트만 줬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지식을 너무 함부로 내보낸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깨달았다.

‘20살로 돌아온 이후 얼마 있지 않아 일어난 비행기 사고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어. 283명이라는 사망 인원까지. 그런데 그 이후에 일어난 대형 사고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이건 말이 안 됐다. 아무리 학원 강사를 하느라 바빴다고 해도 인명 피해가 심한 대형 사고 정도는 기억해야 했다.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다. 객관적으로 굉장히 좋은 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든 걸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이건 분명 의도된 걸 거야.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지식만 활용하라는.’

사람을 운명을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억만이 지워졌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두 번째 삶이 정말 신이 준 선물이라면, 건우가 활용해도 괜찮은 기억만 남겨뒀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20년 동안 일어난 대형 인명 피해에 대해 이렇게까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본능처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어깨를 눌렀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는 고민하지 않고 아는 정보를 활용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건우는 이번 산행으로 계기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복잡한 고민들을 모두 정리해버렸다.

손다정이 가끔 충고하듯, 걱정 많은 40대가 아니라 열정 넘치는 20대로 살아봐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복잡했던 모든 생각이 정리되자 산에서 내려오는 걸음걸이도 가벼워졌다.

***

2015년 9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초이스 에듀의 직원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그래도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잘못했으면 취직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직장을 잃을 뻔한 위기를 극복한 것도 그렇고, 학원 사정이 날이 갈수록 좋아져 두둑하게 보너스를 받는 것도 직원들을 즐겁게 했다.

인터넷 강의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동영상은 150만 건, 참고서 이북은 30만 건이 팔렸었다. 2달여간의 누적 판매량이었다.

그리고 ‘학교 가기 싫어’라는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달은 한 달간 동영상과 이북이 각각 500만, 100만 건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 8월은 동영상만 무려 900만 건, 그리고 이북 350만 건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전체매출은 447억 원. 바나나 측이 떼어가는 수수료를 제외한 초이스 에듀의 온라인 매출은 약 284억 원이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장세였다. 누군가는 최건우라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표현했다.

거기다 6개의 초이스 에듀의 분점도 월평균 1,500여 명의 수강생에서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수강료는 대략 10만 원 내외다. 6개 분점의 총 매출은 약 12억 원.

따라서 초이스 에듀의 한 달 총매출은 약 296억(284+12)에 이른다.

한 달 매출만 300억이 눈앞이다. 아직 본점은 개원도 안 했는데 이 정도다.

우리나라 넘버원 사설 학원인 기가 싱크빅의 월매출 700억 원에 비한다면 이제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의 매출이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학원이다. 게다가 본점은 아직 개원하지도 않았고, 분점만 운영 중인 상태에서도 이 정도 매출을 기록했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다.

특히 기가 싱크빅의 경우 재수학원, 편입학원, 전문대학원 및 약대 입시교육 학원 등 수많은 형태의 분점 매출까지 포함됐다는 걸 생각하면, 초이스 에듀의 급성장은 한 마디로 ‘기적’에 가까웠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깔끔한 슈트를 입고 등장하던 평소와 달리 등산복을 입고 등장한 건우의 모습에 직원들이 허둥지둥 인사를 했다.

혹시라도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그의 표정부터 살폈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밝은 얼굴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시길래 등산복을 입고 출근하셨지?”

“그러게요. 평소와 다르게 등산복을 입고 오셔서, 혹시라도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깜놀했다니까요.”

“나도. 나도. 어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스캔들 때문에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아직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닌 모양이야.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안심하세요. 평소보다 표정은 더 좋으신 것 같으니까.”

“그렇지? 진짜 다행이다. 그나저나 우리 대표님은 등산복을 입어도 저렇게 멋있으시냐? 그동안은 슈트 빨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 젊어서 그런가, 아저씨들이 등산복을 입었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 다르잖아. 색다른데 멋있어.”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우리는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초이스 에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는 효주와 미화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건우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생각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일단 내가 가장 먼저 롤모델로 삼아야 할 사람은 역시 기가 싱크빅의 용선재 대표야. 지금이야 정부의 사설 학원 규제 정책 때문에 매출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한때는 시가총액이 2조 원이 넘었던 어마어마한 학원이었으니까.”

학원 강사들에겐 신화 같은 존재. 기가 싱크빅의 용선재 대표.

현역시절에는 ‘과탐의 신, 용과탐’이라고 불릴 만큼 대단했던 인물이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니던 도중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다. 과외업계의 관행을 깨고 혼자서 고3 전 과목을 가르쳤는데, 그런 방식이 의외로 통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그렇게 2년간 번 돈이 2억 원. 당시 대기업 신입사원의 월급이 50만 원가량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때 2억 원의 가치는 지금의 10억 원 이상이었다.

용선재 대표는 그 2억 원을 투자해 학원을 차렸다.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싼 수강료를 받는 학원이었고, 월 5천~6천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학원을 운영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전 과목을 가르쳤고, 그러면서 주변의 유명 강사를 하나둘 스카우트했다. 그게 지금의 기가 싱크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기가 싱크빅은 2007년 시가총액 1조 원을 돌파했고, 이듬해에는 시가총액 2조 원을 넘으며 코스닥 시가총액 3위에 올랐다. 1천억 규모로 코스닥에 상장한 지 고작 4년 만에 이뤄낸 기적이었다.

당시 1위가 바나나의 BNN, 2위는 LG텔레콤이었다. 5위가 아시아나 항공이었는데, 그 덕분에 사교육 학원이 항공회사를 눌렀다며 큰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물론 기가 싱크빅의 엄청난 시가총액은 당시 코스닥에 낀 거품 탓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거품이라고 폄하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대입 수험생 가운데 기가 싱크빅 동영상 강의를 듣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용선재 강사의 과학탐구 강의를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말이 있었다. 용선재 강의를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다.

그만큼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용선재라는 본명보다 ‘용과탐’으로 통했다.

그런 놀라운 성과 때문에 영국의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한 면을 통째로 헐어 용선재 대표의 기사를 실었다.

'교육열과 인터넷 열기를 한꺼번에 잡은 한국의 믿기 힘든 스타'라는 평가였다. 그리고 몇 달 뒤 CNN방송도 용 대표의 성공사례를 보도했다.

모든 학원 강사의 꿈 용선재. 이제는 ‘용과탐’이 아니라 용선재 ‘회장’으로 불리지만, 그가 사교육 시장에 남겼던 발자취는 실로 대단했다.

건우는 강사들의 추앙을 받던 그를 자신의 최종 목표가 아닌 우선 목표로 삼았다.

용선재가 아무리 대단한 존재였다고 해도 지금 현재 기가 싱크빅의 시가총액은 최고 전성기였던 2조 원에 절반도 되지 않는 8,500억 원 규모다.

연 매출은 약 8,000억 원. 당기 순이익은 약 1,500억 원이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금액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절대적인 강자의 모습은 보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부의 사교육 규제 정책도 하락세의 원인이지만, 후발주자들의 선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기가 싱크빅의 유명 강사들은 용 대표 밑에서 안주하기보다 제2의 용선재를 꿈꾸며 하나둘 독립을 하고 있고, 학습지 및 홈스쿨 사업은 박유하 이사의 세계교육에 추월당했다.

여전히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과거의 절대적인 모습이 아닌 이상, 건우에게는 어차피 거처야 할 관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건우는 심호흡을 한 번 하며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20여 년간 있었던 굵직한 사건 중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머리 좋은 건우였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건우는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확연히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들어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청사진을 노트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은우에게 건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누구보다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오빠였다.

은우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여덟 살이다. 건우가 미국에서 4년여 기간 동안 머물렀으니, 3살 이후로는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은우는 동우나 정우보다 건우가 좋았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어린 아기였을 때조차 건우가 안아주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여서 어른들도 정말 그런 그녀를 신기해했었다.

건우가 미국에 있을 때도 인터넷을 통해 2~3일에 한 번은 화상통화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편지를 썼다.

은우가 그렇게 살갑게 구니 건우 또한 그녀가 애틋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은우가 없었다면, 건우는 어쩌면 그냥 미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몰랐다. 동우와 정우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 동생은 이미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은우가 건우가 가장 힘들어하던 시기에 크고 작은 몇 건의 사고를 일으켰다.

그 일로 학교에 몇 번 불려가야 했지만, 사정을 알게 된 건우는 동생을 차마 나무라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어 보니 건우도 참 답답했다.

학교 친구 몇 명이 은우에게 너희 오빠 ‘정신병자라며?’라든지 아니면 ‘사기꾼이라며?’라는 식으로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은우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건우는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 그런 식으로 동생을 놀렸다는 게 놀라웠다.

야비한 행동이 분명하지만 알고 한 짓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아 제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잠깐 힘들어했지만, 사실 은우는 굉장한 말괄량이였다.

아이들의 놀림이 심해지자 처음엔 억지로 참던 은우도 점점 과격해졌다. 건우를 욕하던 친구의 얼굴을 그대로 할퀴어 버리는 일은 아주 작은 소동에 지나지 않았다.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남자아이에게 바득바득 달려들어 팔을 물어 뜯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정신병자라고 놀렸던 아이에게는, 수업 도중 갑자기 가위를 들고 벌떡 일어나서, 뒷머리를 싹둑 잘랐고 사기꾼이라고 놀렸던 아이의 옷은 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얼굴을 할퀸 일은 놀린 아이가 먼저 잘못했다는 판단에 학교에서도 조용히 넘어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격해지는 은우의 행동에 건우가 학교까지 불려가게 되었다.

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누가 봐도 은우의 행동이 심했기 때문에 건우는 피해 학생의 부모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해야 했다. 가위질이나 칼질은 정말 너무했다.

어떤 학부모는 부모 없는 고아라 배운 게 없어서 그렇다는 악담까지 퍼부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속에서 열불도 났지만, 거기서 화를 내면 똑같은 인간이 되는 것 같아 더욱 정중히 사과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은우가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해도 입을 꾹 다물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혼내기도 쉽지 않았다. 오빠 욕하는 걸 듣고 참을 수 없었다고 울먹이는 그녀를 무슨 말로 혼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20년의 세월도 건우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대로 뒀다가는 겨우 안정을 되찾은 은우의 마음에 또다시 생채기가 생길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결국, 건우는 집안 사정을 이유로 아예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다행히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아서 출석문제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처음 시작되는 날이었다.

한편으론 은우가 계속 사고를 칠지 안 칠지 알 수 있는 운명의 날이기도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