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병역문제, 정신과 상담 이력, 학력위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논란은, MBS의 특집방송과 유미의 인터뷰, 그리고 건우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소아암 환아 보호자들의 적극적인 집단행동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정말 많은 논란이 있었고, 별의별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다녔다.
입에 담기 힘든 험악한 이야기로 조롱하는 악플러들. 건우의 동생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 인터넷 키보드 워리어들.
미친 듯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그들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 사이 근로장학생 강경준과 건우 동생인 동우를 때린 문창국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한강 에듀케이션에 방문했다.
조내일보 박 사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사색이 된 얼굴로 강경준과 동우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한 표정에 울 듯 말 듯한 눈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통쾌함을 줬다.
그 일을 계기로 근로장학생들 사이에 건우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높아졌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우는 정우 수준의 ‘최건우 광신도’가 한꺼번에 등장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그도 건우가 자랑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참 다사다난했지만, 사건이 터지고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기간 동안 건우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했다. 정말 정신 차리기도 쉽지 않았던 두 달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사건이 생각 이상으로 좋게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이다. 화제의 인물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긴 했어도, 따지고 보면 시청률 5%밖에 되지 않는 시사프로그램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면서 두 달간 거의 매일 같이 언론에 오르내린 데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자, 웬만한 유명 연예인은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만큼 인기가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막말로 얼굴 훈훈해, 키 커, 돈 잘 벌어, 학력 빵빵해. 동생들에게는 자상한 형이자 오빠, 나이는 어려도 듬직한 가장이다.
거기다 힘든 사람들을 돕는 착한 심성(?)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해 보이니 인기가 폭발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남자 중에는 가끔 군대 문제로 비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국의 여성들은 달랐다.
어린 여학생은 국민 오빠, 나이 많은 누나들은 국민 동생, 40대 이상의 아줌마들에게는 국민 사윗감으로 불릴 정도로 건우는 엄청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건우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어딜 가나 시선을 받는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언제는 그렇게 죽일 듯이 달려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친한 척 다가오는 데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싫었다. 언제 또 돌변해 죽일 듯이 달려들지도 모르는 대중들의 이중적 모습에 유쾌함보다는 경계심이 먼저 들었다.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그에 대한 방송국의 러브콜은 정말 엄청났다. 광고 쪽에서도 상당히 많은 연락이 왔다.
예전처럼 학습지 관련 그런 광고뿐만 아니라 건강음료나 커피와 같이 강사 경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품에 대한 광고 제의도 있었다.
심지어 은밀한 제안을 하는 여자 연예인도 있을 정도였다.
서로 입을 맞춰 스캔들을 내달라. 돈을 달라면 돈을, 몸을 달라면 몸을 주겠다. 둘 다 달라고 해도 괜찮다.
이런 식으로 건우의 인지도를 이용하려는 무리들이었다.
이런 제안은 건우에게 가기도 전에 손다정이 모두 커트했다.
찰칵! 찰칵!
“네. 좋습니다. 이번엔 살짝 무게감 있게 정면을 바라보시고. 그렇죠. 그렇게. 최 선생님. 어색하게 웃지 마시고. 좀 더 다정하게요. 그리고 옐로우 레이디 멤버들과 좀 더 밀착하시고요. 그렇게 쭈뼛쭈뼛하시면 곤란해요.”
이곳은 강남에 있는 한 스튜디오.
건우가 인기 걸그룹 옐로우 레이디와 광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난생처음 찍어보는 광고 촬영에 어색한 미소만 짓기 바빴지만, 노련한 포토그래퍼 덕분에 포즈가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다.
“자자. 마지막 한 장. 그렇죠. 바로 그 표정. 최 선생님. 엉덩이 빼지 마시고요. 그렇죠. 좋습니다. 좋아요. 이번 컨셉은 여기서 끝. 지금부터 20분만 쉬고 컨셉을 바꿔서 찍도록 하겠습니다.”
건우는 마지막 한 장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가, 새 컨셉으로 찍는다는 말에 매우 낙담한 표정이었다.
촬영이 멈추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손다정이 시원한 음료를 들고 그에게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시원하게 음료라도 한 잔 드세요.”
“휴! 이거 정말 못 해먹겠네요. 차라리 몇 시간을 연속으로 강의하는 게 낫지. 원.”
“호호호. 어쩌겠어요. 도움을 받았으면 다시 도움을 주는 게 인지상정이죠.”
“그러니까 지금 이건 찍고 있잖아요. 물론 그분들에게 받은 도움이 효과가 너무 좋아서 돌아다니기도 불편한 지경이 되어버렸지만요.”
지금 건우가 찍고 있는 광고는 소아암 어린이를 돕기 위한 공익광고였다. 건우가 먼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긴 했지만, 순수한 마음보다는 이미지 관리를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나타나 건우에게 엄청나게 큰 도움을 준 것이 소아암 환아의 부모들이었다.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 바쁘게 살 무렵, 한국소아암재단에서 공익광고에 한 번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광고 출연은 어떤 종류가 되었든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건우도 그들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러게요. 대표님이 이렇게 인기인이 되어 버릴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어요. 여론이 악화될 때만 해도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사람 일은 참 알 수가 없어요.”
“덕분에 요즘은 정말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 쓰인다고요.”
“네? 설마 대표님도 연예인병 걸리신 거예요? 그럼 실망입니다. 대표님이라면 그냥 무덤덤하게 그러려니 하고 지내실 줄 알았거든요.”
“이것도 연예인병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이 그래요?”
“대충 이런 겁니다. 일단 무단횡단도 눈치 보여서 못하겠어요. 왜, 학원 왼쪽 사거리와 한강 에듀케이션 사이의 도로가 매우 좁잖아요?”
“그렇죠.”
“거기 차도 많이 안 다녀서 무단횡단하고 그랬는데, 이젠 눈치가 보이네요. 지금은 그냥 시간이 몇 분이 지나도 파란불을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호호호. 그 정도야 연예인병이 아니라 귀여운 수준?”
손다정은 어이가 없어 웃었지만 건우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그것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면요?”
“원래 조만간 외제차 한 대를 사려고 했거든요.”
“어떤 차요?”
“굉장히 좋은 차는 아니고. 폭스바겐에서 나오는 크로스블루라는 차가 있어요.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해서 동생들과 야외 놀러 갈 때 쓰려고 했어요.”
“폭스바겐 크로스블루요? 그거 혹시 패밀리카 같은 자동차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리나라로 굳이 따지자면 카니발 같은?”
“맞아요. 그런 종류의 차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헐. 한 마디로 헐이네요.”
“아니 왜요?”
“나이를 좀 생각하세요. 나이를요.”
“제 나이가 어때서요?”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고요. 스포츠카 이런 거 타보고 싶지 않아요? 그게 아니면 젊고 힘 있게 SUV도 있잖아요. 근데 마흔 살 먹은 아저씨처럼 패밀리카가 뭐예요, 패밀리카가. 가끔 보면 정말 나이에 안 어울리게 고리타분해서 진짜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손다정은 그렇게 말하면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까지 찼다.
건우도 속으론 좀 뜨끔했다.
“하하하. 그…그런가요? 저도 당연히 스포츠카나 SUV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이젠 망했어요. 그런 자동차든 패밀리카든 이제 외제차는 타기 글렀죠.”
“아니 왜요?”
“제가 외제차를 몰아보세요. 21살밖에 안 먹은 놈이 벌써부터 외제차 몰고 다닌다고 뭐라 그러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겁니다. 돈맛을 알더니 겉멋만 들었다 어쩐다, 그런 소리도 하겠죠.”
“흠…. 그건 좀 연예인병 같네요. 외제차 탄다고 뭐라 그러든 말든 그냥 당당하게 타고 다니면 되지, 뭘 그렇게 눈치까지 봐요. 그냥 당당하게 살아요.”
“그건 손 팀장님이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래요. 정말 지금까지 들었던 욕만 해도 충분히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이상의 욕은 웬만하면 사양하고 싶어요.”
건우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인터넷에 올라오는 악플들 때문에 그러는 거였어요?”
“그럼 뭐 때문에 이러겠어요?”
“그럼 안 보면 되죠.”
“손 팀장님. 그게 정말 말이 쉽죠. 그런데 자꾸 보게 돼요. 관련 기사 보다 보면 댓글이 바로 보이는데, 어떻게 안 보겠어요? 그냥 저절로 눈이 가요. 모르는 사람들은 안 보면 그만인데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안 당해보면 몰라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자꾸 읽게 되는 게 댓글이니까요. 연예인들이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심정?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더라니까요.”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건우가 루머와 악성 댓글에 시달린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예전 삶에서는 더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지독했다.
병역, 정신과 상담, 학력위조 때문에 시달린 것을 모두 합쳐도 성폭행범으로 몰려 사회적으로 지탄받았던 과거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고독사했던 이유가 단지 가족들의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그에 대한 무수한 악성 댓글들.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며 의심의 눈초리로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악플러들이 더 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아무리 무죄 판결을 받았고 항상 떳떳하게 살았다고 설명을 해도 결국에는 비웃음만 샀을 뿐이었다. 그냥 남을 까고 싶은 사람은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남을 비난하게 된다.
그걸 몰랐던 건우는, 악플러들의 댓글에 계속 상처받고 스트레스 받으며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었다.
그랬던 건우였기 때문에 이번 사태로 인해 겪었던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하기도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혼자였고 지금은 가족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
조유미와의 정신과 상담이나 동생들의 위로를 받지 않았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이러다 우리 대표님 정말 연예인병 걸리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네요.”
이런 건우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손다정은 여전히 건우를 놀리기에 바빴다.
“그래요. 마음껏 놀려요. 그런데 손 팀장님이 대체 왜 여기 계신 거예요?”
“네? 제가 왜요?”
“아니, 이제부터 절 보좌할 사람은 손 팀장님이 아니라 내 비서인 장미화 씨 아닙니까? 그런데 장미화 씨는 어디 가고 손 팀장님이 이렇게 저를 따라왔느냐는 말이죠.”
“아니 그…그게.”
“제가 알기로 장미화 씨는 옐로우 레이디 만난다고 얼마나 큰 기대를 했었는데.”
“호호호. 그래서 제가 온 거죠. 여긴 놀러 오는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곳이잖아요. 연예인에 대한 신경은 끄고 열심히 일에 집중해야죠.”
“하여간 말은. 손 팀장님도 연예인 구경에 정신없었으면서 뭘요.”
“어머. 전 그런 적 없어요. 그건 그렇고 스칼라 걔, 대표님에게 너무 들이대던걸요?”
스칼라는 옐로우 레이디의 리더이다.
옐로우 레이디에서 유일하게 성인인 그녀는, 그래서 그런지 다른 멤버와는 달리 건우에게 굉장히 노골적으로 달라붙었다.
손다정뿐만 아니라 촬영장 사람들이라면 모두 느껴질 정도로 매우 적극적이었다.
포토그래퍼가 사진촬영을 잠깐 중단한 이유 중 하나도 스칼라의 대담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녀의 대담한 행동은, 이대로 계속 촬영했다가는 과장을 좀 보태서, 언제 건우를 덮쳐도 덮칠 것 같은 그런 느낌까지 들게 했다.
“아! 이름이 스칼라였어요? 어휴. 말도 마세요, 정말. 아주 곤란해서 죽을 뻔했다니까요.”
“왜 곤란해요? 한 번 잘해보시죠. 얼마나 인기 있는 걸그룹인데요?”
“잘해보긴 뭘 잘 해봐요. 저는 노골적인 여자 싫어해요.”
“어때요? 젊은 나인데. 제가 말했죠? 대표님은 좀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젊은이답게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보세요. 양다리만 안 걸치면 되지. 연애는 좀 자유롭게 해봐요. 스칼라라는 저 여자 아이도 대표님에게 정말 관심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두 눈 꼭 감고 한 번 저질러 보세요. 젊고. 솔직하고. 예쁘지 않아요?”
“예쁘긴 예쁘죠. 솔직한 것도 사실이고.”
잘 나가는 걸그룹 리더.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매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매력적인 여자임은 분명하다.
“왜 자꾸 부추기시는 거죠? 이상하네.”
“누나 같은 심정으로 응원해주고 싶어요.”
“누나요?”
“그럼요. 제가 나이가 열세 살이나 많은데, 당연히 누나 아닌가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앞으로 누나라고 부를까요?”
“에이! 그건 사양할게요. 아무튼, 전 정말 대표님이 걱정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고지식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인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더 심하게 변할까 봐요. 스물한 살부터 벌써 그렇게 청교도처럼 살 필요는 없거든요. 조금만 나이에 어울리게, 그렇게 살아보세요. 책임감이 강한 것도 정도껏이에요. 네?”
이번 사건 이후 건우의 행동이 너무 경직된 건 사실이다. 정말 쓸데없는 것까지 꼬투리가 잡히지 않기 위해 신경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지경이다.
지금 건우 또래들은 대학 다니느라, 연애하느라 정신없을 시기다.
그렇게까지 살라는 건 아니지만,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을 조금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하하. 노력은 해볼게요.”
“어머. 벌써 시간이 20분 지났나 보네요. 어서 가서 촬영하세요. 이번에는 아까처럼 당황하지 말고 남자답게 행동해보세요.”
“남자답게요?”
“허리 부근을 슬쩍 터치한다든지 귓속말을 한다든지 아무튼 좀 능글맞게 행동하세요. 자꾸 대표님이 당황하니까 재미를 붙여서 더 심하게 그러잖아요. 호호호.”
“어휴. 끝까지 장난은. 성희롱으로 몰릴까 봐 전 못하겠습니다. 손 팀장님도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고 연예인 구경 잘하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