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59화 (59/256)

제59화

“상황은 어때요?”

“항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솔직히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편이에요.”

초이스 에듀 측에서는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분명히 밝혔다.

[최건우 선생님은 병역 비리와 절대 관련이 없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엉터리 내용을 사실인 양 발표한 언론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

최건우 선생님의 부모님은 작년에 있었던 XX동 사기사건의 범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셨다. 동생들은 모두 미성년자라서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사기사건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재산도 하나도 없어 거리로 내쫓길 위기였다.

그렇게 고생해서 들어간 하버드 의대도 동생들을 위해 포기했다. 학원 강사는 어떻게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라고, 대학을 휴학했더니 병무청에서 바로 영장을 보내왔다. 당시 무일푼이었던 최건우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군대 면제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발표했어도 비난하는 여론은 여전히 거셌다. 이유야 어쨌든 현재는 수십억 원의 재산이 있는 있으니 군대에 가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론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건우나 손다정도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관계를 밝힌 것은 그들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과 학부모 때문이었다.

최소한 건우가 병역 비리를 일으킨 파렴치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서 동요하는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의도였다.

다행히 그들의 의도는 어느 정도 먹히고 있었다. 동영상 강의나 참고서 이북 판매 상승 곡선이 완만하게 변했다. 아주 적은 숫자지만 학원을 그만두는 학생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그러나 판매 상승 곡선이 완만하게만 변했을 뿐 여전히 상승세였고, 학원을 빠져나가는 학생은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는 다른 수많은 학생 덕분에 금방 빈자리가 채워졌다.

사실 건우가 진짜 병역 비리를 저질렀다고 해도,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빠져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건우가 어떤 인간이든 그런 사실보다는 건우가 어떻게 나에게 도움이 될지 그게 더 중요해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타격이 없다니 다행이네요.”

“네. 그리고 아쉽지만, 여론이 안 좋아서 당분간 PPL은 그만두기로 했어요. 아무리 의리가 좋다고 해도 제작사에 더 이상의 부담을 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너무 유명해져서 곤란할 지경이었어요. 차라리 잘 됐어요.”

“그렇죠. 아마 인터넷 강의나 참고서 이북 판매량의 증가 속도는 확 줄어들 겁니다.”

“그것도 각오한 일이죠.”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각 분점 문제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어요. 원장님 모니터 강의는 이미 수강인원이 꽉 찼고, 다른 강사 선생님들의 수업도 70~90%가량 자리가 찼다고 합니다. 나중에 수능 특강반을 각 분점의 모니터 강의를 통해서도 개설하겠다는 작전이 주요한 것 같아요.”

초이스 에듀 분점에서 가장 많이 수업을 들은 학생에게 수능 특강반 우선권을 주는 전략은 여전히 필승카드였다.

“70~90%라. 그건 좀 아쉽네요. 흐름만 잘 탔으면 그곳도 100%를 달성할 수 있었을 텐데.”

“호호호. 이 정도만 해도 대박이에요. 우리나라 학원 중에 개설하고 있는 모든 강의가 100% 가득 차는 곳은 한강 에듀케이션을 제외하면 몇 없으니까요.”

“하긴. 그건 그렇죠. 그래도 여론을 진화할 방법은 빨리 찾아야겠어요. 동생들이 너무 힘들어해요.”

“아! 그 문제가 있군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많이 괴롭히나 봐요?”

“아무래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겠죠. 드라마에도 간접 출연하고, 화제의 인물에도 나왔으니 얼마나 자랑하고 다녔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병역비리니 어쩌니 하며 국민적인 나쁜 놈이 되어버렸으니, 아마 속으로 깨소금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꽤 있을 거예요. 내색은 안 해도 동생들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저도 마음이 영 불편해요.”

건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그의 동생들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어쨌든, 건우에게 동생들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손다정의 위로를 받은 이후 사회적 비난 따위는 이제 무섭지 않게 됐다.

돈은 이미 충분히 벌었다. 지금이라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 다시 들어가면 된다.

휴학을 한 것이지 자퇴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서류만 내면 금방 복학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되면 평생 패배자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형이자 오빠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들 때문에 병역문제가 생겼다며 자책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다.

***

세계교육의 한 사무실.

“이사님. 생각보다 효과가 미미한 것 같습니다.”

“흠… 그래요?”

“여론은 여전히 최건우를 욕하고 있지만,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등에는 실질적인 타격이 없습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이미 예상한 일이니까”

“네?”

“사람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영악한데요.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최건우가 병역비리보다 더한 범죄를 저질러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겁니다. 그런데 최건우는 실제로 병역비리를 저지른 사실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론만 나빠질 뿐, 실질적인 타격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이죠.”

“그럼 결국, 작전은 이대로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까?”

“당연히 아니죠. 이것부터 받으세요.”

박유하 이사는 실망하는 정도식 실장에게 얇은 서류철 하나를 넘겼다.

“이게 뭡니까, 이사님?”

“최건우가 가끔씩 방문한다는 건물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워낙 은밀하게 입소문만으로 진행되는 곳이라 알아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재미있는 곳이더군요.”

“재미있는 곳이요?”

“네. 정신과 병원이었습니다. 세상에. 병역문제로 시끌벅적한 최건우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이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학부모들이 정식적으로 불안한 사람에게 학생을 맡기고 싶겠습니까?”

“아! 역시 이사님이십니다. 지금까지는 별걱정 없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던 부모들도 이번만큼은 모른척할 수 없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결국은 이카로스 꼴이 납니다. 너무 높이 나는 바람에 추락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 추락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방금 드린 서류는 그와 관련된 소식입니다. 정 실장이 잘 활용해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정말 이사님은 언제 봐도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빨리 이 문제부터 터트리고 오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

[하버드대 출신의 인기강사 알고 보니 정신 이상?]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이색 경력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인기 강사가 최근 병역문제로 물의를 일으키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만들고 있다. 수능 적중률 과대광고로 부당이익을 얻고 그렇게 번 돈이 수십억 원에 달하면서도 생계 곤란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것이 논란의 가장 큰 쟁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지인으로부터 놀라운 정보를 하나 제보받았다. 바로 머리에 이상이 있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그 내용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강사의 머리가 정상이 아니라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세상의 신문 DG일보 방이구 기자 : [email protected]]

인터넷에 찌라시 수준의 뜬금없는 기사가 하나 떴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만한 허접스러운 기사였지만, 그 파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천재들이 자주 겪는다는 정신 분열증, 혹시 최 모 씨도?]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 한 천재 수학자가 나온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지만, 결국 이겨낸다. 그러나 그건 이상적인 결과일 뿐이다. 사실 완전히 이겨낸 것도 아니다.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정신 분열증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의 경우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 때문에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천재의 추락, 정신 분열증 가능성 높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 모 강사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정신과 상담을 받아 왔다고…

[유명 학원 강사, 혹시 마약까지?]

……미국은 한국과 달리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나라이다. 정신 질환이 있었으면 쉽게 마약의 유혹에 빠졌을 수도…….

[생계 곤란 학원 강사, 미국에서는 마약파티]

……파티가 자주 열리는 미국. 파티장은 술뿐만 아니라 마약까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소가 될 때가 많다….

[최 모 씨. 마약 먹고 광란의 파티도?]

……만약 마약까지 흡입했다면, 그곳 현지 여성들과 어울려 난잡한 파티를 벌였을지도 모른…….

단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기사 한 줄이 나갔는데, 그 내용을 근거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쓰레기 같은 기사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사 내용은 점점 더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정신과 상담이 정신 분열증으로. 정신 분열증은 뜬금없이 마약으로 이어졌고, 마약은 다시 마약파티와 여성들과 어울린 난잡한 파티로 이어졌다.

‘대체 이딴 게 무슨 기사야’라고 생각하기 쉬운 내용들이었지만,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여론 몰이 하는 데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 때문인지 학원 수강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조금씩이지만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세계교육의 작전이 제대로 통한 셈이다.

***

“그것참. 너무 황당하니 화가 나지도 않네요. 대체 이게 무슨. 어떻게 이런 기사까지 나올 수 있는지, 정말 어이가 없는 나라네요.”

“저도 정말 황당해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의적인 기사를 낼 수 있죠? 법이 무섭지도 않나?”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생각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잘못 생각하다니요.”

“이건 단순히 문창국 그 개자식의 부모가 저지른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소한 보복으로 하기엔 과해도 너무 과했다.

“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너무 조직적이에요. 그리고 너무 지저분해요. 그 인간들은 태생이 스스로를 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너저분하게 놀지는 않아요. 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너저분하게는 놀아도 마지막 선은 지킨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더럽게 굴진 않죠. 차라리 권력을 가지고 무식하게 억누르려고 하지, 이런 식의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 말고 원장님을 해코지하려고 하는 다른 조직이 있다는 말인가요?”

건우도 이제야 아차 싶었다. 흘러가는 방식이 과거의 그가 당했던 방식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그런데 그때는 문창국 집안과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어떤 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어쩌면 예전 건우를 나락으로 빠트렸던 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당장 누군지 알아내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차분한 눈동자를 자신을 바라보는 손다정을 보면서 끓어오르던 화를 억누를 수 있었다. 그녀에게 뺨을 한 대 맞은 게 어쩌면 특효약이었는지도.

그때처럼 또다시 자기감정을 컨트롤 못하는 멍청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런 상황은 도저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금 인터넷상에서 이상한 기사를 올리고 있는 신문사들은 아마 전부 페이퍼컴퍼니 같은 유령 회사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사람의 진료 기록 같은 것들은 메이저 신문사에서 함부로 다루기 어려우니까요.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신문기사도 더욱 거침이 없는 걸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문제 아닌가요? 어쩌면 라이벌인 다른 학원이 벌인 짓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겨우 학원 경쟁으로 이런 무서운 일을 벌인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요.”

“글쎄요. 지금 사교육 시장은 스마트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전자, 통신 사업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죠. 누군가가 그 시장을 선점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저라는 존재가 상당히 눈에 거슬렸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원 경쟁에서 이기려고 상대방 의료기록까지 빼내는 건 도저히….”

손다정은 도무지 지금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았다. 학원 산업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스파이들이 정보를 빼앗기 위해 첩보활동을 벌이는 그런 최첨단 기술이 판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식의 조직적인 적대행위가 일어난다고 하니 지금까지 컨설턴트로 일했던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손 팀장님.”

“네. 대표님.”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항상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허무하게 당했지만,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되면 안 되겠죠.”

“그렇긴 하죠. 그럼 첩보기관처럼 스파이라도 고용해야 하나요? 호호호.”

그녀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 일만 무사히 넘긴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네? 스…스파이를요? 진심이세요?”

“우린 지금 우리를 적대시하는 세력의 존재 여부조차 이제 겨우 눈치챘습니다. 그런데 지금껏 학원 일이나 하던 우리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적대 세력이 있는 걸 알면서도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정말 스파이를 고용하거나 정보조직을 만들겠다고요?”

“못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일단 지금 위기부터 어떻게든 헤쳐나가 보자고요.”

지난번보다 더 큰 위기가 닥쳤는데, 왠지 기운이 났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실마리는 잡혔다. 과거의 자신은 전혀 몰랐던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확실히 그때의 언론은 마치 건우를 죽이려고 작정한 것처럼 집요하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확실히 지금 방식과 닮아있었다.

만약 그들이라면 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 정체 모를 세력은 과연 단순히 건우의 곤란한 상황을 보고 갑자기 끼어든 것인지, 아니면 성폭행범이라고 누명을 씌운 것부터 관여했는지 여부다.

어느 것이라도 철천지원수 같은 존재들이지만, 그래도 제발 누명까지 씌운 존재는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은 너무 허무해진다. 복수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죽어갔는데, 그게 만약 처음부터 누군가의 장난질에 놀아난 것이라면 그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건우는 더 이상 분노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심장과 머리 모두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리고 정말 그들의 짓이라면, 앞으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그들과 싸우리라 다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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