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그렇죠. 아직 최 선생님의 새로운 교습법에 대한 정보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죠.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사람들이 몰렸어요. 그렇다면 이젠 그 사람들을 최대한 낚을 수 있는 커다란 그물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괜찮은 방법이 있나 보네요. 자꾸 뜸을 들이시는 것을 보니.”
“사람들은 지금 선생님의 족집게 실력을 믿고 싶어 해요. 실력이든 운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수능 한 달 전에 운영할 최 선생님의 수능 특강반에만 관심이 있겠죠.”
건우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컨설턴트다운 예리한 지적이었다.
“그럼 지금 모인 사람들은 지금 당장 개설할 학원 강의에는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네. 그래서 강구한 방법이 특강반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을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겁니다.”
“자격이라… 어떤 방식으로요.”
“자격은 우리 한강 에듀케이션에서 6개월 이상 강의를 수강한 학생이 어떨까 싶어요. 최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의 수업도 포함해서요. 물론 거기에 따른 인센티브를 최 선생님에게 지급할 생각이에요.”
“너무 많이 몰리면 어떻게 되죠? 저는 어찌 됐든 300명까지만 받을 생각이거든요.”
“너무 많이 몰리면 가장 많은 기간을 수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발할 생각입니다.”
손다정은 말은 6개월이라고 했지만, 사실 전 기간 수업을 들은 학생만이 특강반을 들을 자격이 생길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 기간 수업을 들은 사람에게만 자격을 부여한다고 하면 반발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6개월로 줄여서 표현했을 뿐이다.
“결국, 전 기간 수업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 과목 수업을 듣는 학생들만이 가능하겠군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대신 여러 과목을 듣는 학생에게는 적절한 할인혜택을 줘서 가계의 부담을 줄일 생각입니다.”
건우 생각에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것에 통달할 순 없다.
그래서 인재가 필요한 것이고, 건우가 손다정을 탐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에 한 가지만 더 추가하죠.”
“어떤 건데요?”
“출석률 90% 미만은 특강반 들을 자격이 없는 걸로 합시다.”
“네? 그건 왜…?”
“그냥 특강반이 목적이라 수업도 듣지 않을 거면서 등록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야 저나 학원의 홍보를 위해 조건 없이 특강반을 운영했지만, 앞으로는 안 그럴 생각입니다. 성실하지 않은 학생이 요행수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출석률이 성실함의 척도가 될까요?”
“출석률로 모든 것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만,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으로 등록한 학원입니다. 최소한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 성의가 있다면 수업도 열심히 듣겠죠.”
“괜찮은 생각이네요. 정말 특강반만 듣기 위해 강의 등록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우리 학원 입장에서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학교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학생 관리는 해줘야 이미지가 좋아지니까요.”
이것 또한 건우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다. 완벽하게 구분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성실한 학생이 불이익을 받는 일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몇몇 자잘한 안건을 협의하고 학부모 설명회 날짜까지 정한 두 사람은, 그렇게 학원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논의를 마무리했다.
***
폭발적인 반응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의 문의.
궁금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한강 에듀케이션은 설명회를 개최해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을 훨씬 웃도는 관심 때문에 설명회 장소를 급하게 변경해야만 했다.
최대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로는 감당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안전에도 문제가 있고.
고민 끝에 근처에 있는 7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을 수소문해서 설명회를 열었다.
적지 않은 수용 인원에도 불구하고 700석은 순식간에 동났다.
그 바람에 참석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강력한 항의를 들어야 했지만, 안전을 이유로 더는 참석자를 늘리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한강 에듀케이션의 2015학년도 강의 계획 발표 및 설명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손다정 과장이라고 합니다. 우선 바쁘신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분이 우리 한강 에듀케이션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강의 설명회의 진행은 손다정이 맡았다.
냉정하게 따지면 그녀는 한강 에듀케이션의 직원이 아니라서 진행을 맡기가 애매했다.
그러나 사무실 직원 중에는 이런 큰 규모의 설명회를 진행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없었고, 건우가 주인공인 설명회에 다른 강사 선생님을 불러 들러리처럼 진행을 맡기기가 어려워 손다정이 이 일을 맡기로 했다.
“우리 한강 에듀케이션에서 대해서 많이 설명을 해봐야 오늘 참석하신 학부모님들은 지겹기만 하겠죠? 우리 학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이것으로 마치고, 여러분들께서 가장 기다리셨던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3주 만에 대치동을 평정한 천재 강사, 학원가의 신흥강자, 남들은 불가능한 6과목 멀티 강사, 수능 시험 적중률 50%를 넘긴 대한민국 최고의 수능 예측 전문가. 최. 건. 우.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끄응. 손다정 과장님. 대체 저 모습이 뭐람. 멀티 강사? 수능 예측 전문가? 나 참. 여기가 무슨 권투 시합하는 링 위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다정은 간단한 한강 에듀케이션의 소개를 마친 후 무슨 권투 챔피언을 소개하는 양 화려한 미사여구로 건우를 소개했고, 강당 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건우는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소개에 당황해 혼자 중얼거리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설명회에 차질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투덜거리면서도 어기적어기적 강당을 향해 걸어나갔다.
와와와!!!!!!
건우가 강당 위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엄청난 함성이 강당을 뒤덮었다.
누가 보면 슈퍼스타라도 나타났다고 생각할 만큼 엄청난 반응이었다.
애타게 그를 기다리던 학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었다.
자기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식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 또한 부모의 마음이다.
자식의 시험이 가까워져 오면 각자 믿는 종교에 따라 절이나 교회 그리고 성당 등을 찾아가서 절실하게 기도한다. 제발 내 새끼 잘 되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를 한다고 해서 수능 점수 1점이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절실하게 최선을 다해 자식의 축복을 바라는 것이다.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함성을 들으며 강당의 오르던 건우는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부모님도 이곳에 온 부모님 못지않게 건우를 사랑하고 아끼셨다.
열정적인 참석자들의 모습에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아버지, 어머니. 이 새로운 삶은 어쩌면 두 분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도 몰라요. 후회 없이 잘 살게요. 위에서 지켜봐 주세요.’
건우는 오른손으로 잠시 자신의 심장을 비비며 속으로 조용히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조금은 들뜨고 부모님 생각에 울적했던 마음이 금세 고요한 바다처럼 잔잔해졌다.
“안녕하세요. 방금 소개받은 사람입니다. 최건우라고 합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서도 이렇게 저를 보겠다고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전 손다정 과장님이 저를 소개하면서 천재 강사, 신흥 강자, 수능 예측 전문가 등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셨는데요. 솔직히 너무너무 과분한 표현이십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제 고작 한 달 된 초보 강사일 뿐입니다.”
“학부모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곳에 어떤 기대를 하고 오셨습니까? 혹시 소문처럼 제가 족집게처럼 예상 문제를 콕콕 찍어주기를 원하셔서 이곳에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잘못 오셨습니다.”
웅성웅성웅성.
예상치도 못한 건우의 발언에 강당은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갑자기 최 선생 왜 저래?”
“글쎄요. 저도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그래도 기다려보죠. 최건우 선생님이 허튼짓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작부터 저런 발언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쯧쯧.”
한강 에듀케이션 원장은 건우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크게 당황했다.
그건 옆에 있던 손다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최근 건우의 모습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그를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건우는 사람들이 떠들든 말든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정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시장바닥을 연상케 하던 떠들썩함은 생각보다 빨리 진정이 되었다.
“학부모 여러분. 여러분은 자녀분들을 얼마만큼 믿고 계십니까? 지금처럼 용하다는 강사가 주최하는 설명회에 와서 이야기를 듣고 수강 신청을 합니다. 그리고 정말 소문처럼 족집게 능력을 발휘해서 자녀들의 수능 점수가 부쩍 오릅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예를 들어 볼까요? 자기 실력보다 수능 점수가 잘 나와서 좋은 대학을 갔습니다. 다른 동기들은 실력으로 들어와 대학생활도 어려움 없이 적응하는데, 여기 계신 학부모님의 자녀들은 강사가 잘 찍어준 덕분에 대학에 들어와 적응이 어렵습니다. 실력이 부족해서요.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또 수업 문제를 족집게처럼 찍어 줄 강사를 찾아 헤매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어렵게 어렵게 대학 졸업은 했습니다. 그럼 취직이 남았네요. 취직 시험도 실력인데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토익 시험 찍어주는 사람에게 수업 듣고, 입사시험 찍어주는 사람에게 수업 듣고. 평생 그렇게 찍어줄 사람이 필요하게 만드실 겁니까?”
“그러다 찍어주는 사람이 엉터리면 또 어떡하시겠습니까?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부모님이 구해다 주는 족집게 선생의 찍기 실력만 믿고 있는 자녀인데, 족집게 선생이 엉터리면 시험을 완전히 망치게 되겠죠. 그럼 공부 안 한 자녀 잘못입니까? 아니면 족집게 선생을 잘못 구해다 준 부모님 잘못입니까?”
“당연히 공부 안 한 자기 잘못이죠. 그런데 자식은 부모를 원망합니다. 부모님이 찍기 선생을 잘못 구해줘서 시험을 망쳤다며, 내 인생은 부모님이 망친 거라며. 그렇게 원망만 하며 골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살겠죠. 부모님의 등골을 하나하나 빼먹으면서 말이죠.”
처음보다 더 과격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강당에 자리한 학부모들은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까와는 달리 오직 건우만을 바라보며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족집게 선생을 원하는 학부모님의 자식들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평생 자기 힘으로 뭔가를 이뤄보진 못했고, 항상 부모님께 의존하며 살았기 때문이죠. 자녀분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학부모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곳에 왜 오셨습니까? 여전히 제가 문제를 콕콕 찍어주길 바라고 이곳에 앉아 계십니까?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어떤 도움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학원은 돈만 주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집으로 돌아가세요. 강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심도 없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건우가 일어나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누구도 일어서서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와! 그런 분이 한 분도 안 계시네요. 모두 훌륭하신 부모님들이군요. 그럼 제가 여러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바로 자녀분들의 실력입니다. 고기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고기를 잡을 기술을 가르치겠습니다. 수능 문제를 예상하는 게 아니라 어떤 수능 문제가 나와도 어려움 없이 풀 수 있는 실력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 아이라면, 더 이상 족집게 선생이 필요하지 않겠죠? 대학도 혼자 힘으로, 대학 시험도 혼자 힘으로, 취직도 혼자 힘으로. 똑똑하고 의젓한 아이가 되어, 학부모님들의 자랑스러운 자녀로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학원은 바로 그런 주체적인 학생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제가 소문처럼 말도 안 되는 수능 적중률을 보였느냐고요? 그게 중요합니까? 제겐 그런 적중률보다 더 대단한 교습법이 있습니다. 안 믿기신다고요? 그럼 그 말도 안 되는 적중률은 믿을 수 있었습니까?”
“그걸 믿고 이곳에 오신 것 아닙니까? 그럼 믿으세요. 제가 아이들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방법이 있다고 이곳에서 확언했습니다. 그럼 믿고 여러분의 아이들을 우리 학원에 등록하세요. 예상문제를 알려줘도 응용할 능력이 없어 못 푸는 바보가 아니라, 어떤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자녀를 원하신다면 당장 한강 에듀케이션에 등록하세요.”
건우는 자신의 카리스마에 눌려 숨죽이고 학부모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한강 에듀케이션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우는 커다란 강당에 엄청나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고 퇴장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연설이었다.
그러나 강당은 사람들의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찼다. 조용했지만 열기 하나만큼 인기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만큼 뜨거웠다.
건우가 계단을 완전히 내려가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앉아있던 학부모들은 그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학부모뿐만이 아니었다. 사고를 치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김상문 원장도, 한강 에듀케이션의 다른 강사들도 입을 꾹 다물었다.
건우의 등이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건우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허허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녀석이구먼. 말 몇 마디로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어.”
장만복 회장이었다.
조사하면 할수록 건우가 마음에 들었다. 단 둘이 대면하는 것보다 이런 자리에서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시간을 내 설명회에 참석했다.
“마음에 드셨어요, 회장님?”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손다정이 물었다.
“마음에 드는구먼. 상당히.”
“그럼 오늘 만나보시겠어요?”
“아니. 직접 만나는 건 뒤로 미루고 싶어졌어. 원래는 직접 도와줘 볼 생각이었는데, 아직은 그대로 둬도 될 것 같구먼. 혼자 힘으로 얼마나 클지 궁금하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