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분명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데 무슨 일인지 건우의 자신감은 넘쳤다.
아무리 그래도 인터넷이나 TV홈쇼핑에서나 볼 수 있는 환불 보장까지 하는 건 손다정 눈엔 과해도 너무 과해 보였다. 그것도 2~3배가 아니라 무려 10배다.
물론 효과는 확실하다. 싼마이 같은 마케팅 기법이긴 해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한 고3 학생들이라면 혹하기 마련이다.
진심으로 믿든 혹시나 하는 마음이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등록하려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자칫 그런 학생들을 이용한 질 나쁜 상술로 보일 수 있다.
아이들이 나쁜 어른들의 상술에 놀아났다는 인식이 굳어지는 순간 건우는 물론이고 건우를 강단에 세운 한강 에듀케이션 또한 끝장이다.
욕을 먹지 않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호언장담한 대로 50%가 적중하면 된다. 하지만 그녀의 상식으로 50% 적중은 불가능한 일이다.
손다정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한 두통이 몰려오는지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건우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 여전히 해맑은 웃음 모드다. 정말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멍청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럼 걱정이 안 되나요? 3주 강의를 하면서 적중률 50% 장담? 어디 미래에서라도 오셨어요?”
손다정의 예리한 지적에 건우가 피식 웃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이다. 실제로 의심해서가 아니라 건우의 의도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냥 던져본 말에 불과했다.
사실 누가 봐도 손다정의 말이 맞다. 정말 50%가 적중되면 우리나라 온통 난리가 날 것이다.
문제를 유출한 것 말고는, 그런 적중률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건우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일반인보다 훨씬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그가 그런 상황을 예상 못 했을 리 없다.
50문제를 예측한다면, 5문제는 거의 유사하게, 5문제는 한 번 꼬아서, 5문제는 두 번 꼬아서 그리고 나머지 10문제는 일부만 유사하게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칠 예정이었다.
일부만 유사하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지구과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 모두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건우는 위치에너지만 다룬 문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일부지만, 어쨌든 가르친 부분이 나왔기 때문에 적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거의 유사하다는 것은 숫자만 다르지 푸는 방법은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한 번 꼰 문제가 10%나 적중하는 것도 대단한데, 거의 유사한 문제 또한 10%나 적중한다면?
이건 단순히 이슈가 되는 수준이 아니다. 일간지 제1 면에 실리고, 인터넷 검색어 최상위를 도배할만한 사건이다.
혹시 모를 의심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미래에서 회귀했니 어쩌니 하는 비과학적 의심이 아닌 수능 문제 유출을 의심하겠지만 금방 잠잠해진다.
건우를 조사해봐야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으니 체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들은 ‘역시 하버드대 의대를 다닌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의심을 거두고 말 것이다.
건우가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그런 성과를 거뒀다면 덮어놓고 의심부터 할지 모르지만, 천재로 분류되는 건우라면 의심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납득할 가능성이 높다.
“영 미덥지 못한가 보군요.”
“차라리 20~30%라면 믿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것도 물론 어렵긴 마찬가지만요. 하지만 50%는 너무 황당한 수치잖아요.”
“자신 있으니까요.”
“최건우 선생님.”
“네. 손 과장님.”
“자신감이 넘치시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수능 문제를 예측하는 건 자신감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왜 그렇게 서두르시는 거예요? 선생님 실력이면 늦어도 2~3년 안에 우리나라 최고가 될 수 있어요. 조급하지 않아도 돼요.”
손다정의 말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성공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손다정과 건우가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건우의 눈높이는 우리나라 최고의 강사에 있지 않다.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힘을 가지는 게 진짜 목표다.
그러려면 느긋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게 언제까지 들어맞을지는 알 수 없다.
건우가 성장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변수는 커지고 미래는 그만큼 바뀐다.
아이러니하게도 건우 때문에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
지난번 입영통지서 사건에서도 느꼈지만, 미래는 건우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의를 기울인다면 사소한 변화쯤은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수에 변수만 하나 더 더해진다고 해도 늘어나는 경우의 수는 수천수만 가지가 된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그런 불가능한 일에 골머리를 앓느니, 미래가 너무 많이 변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뽑아먹는 것이 낫다는 게 건우의 판단이다.
그러려면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엄청나게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압니다. 손 과장님은 이해되지 않으시겠죠. 그렇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자신 있다’는 말밖에 없습니다.”
“그럼 제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라도 보여주세요.”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 그건 절대 공개할 수 없는 저만의 노하우 같은 겁니다. 그걸 알려달라는 건 내 밑천을 전부 보여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얼토당토않은 말인데 손다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건우에게 믿음이 생겼다.
그냥 변덕일 수도 있고 직감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건우가 아무 밑천도 없이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좋아요. 그럼 한 가지만 확인할게요. 최 선생님의 장담이 실패하면 최 선생님 혼자만 끝나는 게 아니에요. 한강 에듀케이션도 끝이에요. 그리고… 최 선생님 동생들도요.”
가족 이야기를 꺼낼 때 손다정은 잠시 망설였다.
이런 일에 건우의 가족까지 들먹이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 인생까지 걸린 마당이라 확실히 하고 싶었다.
“알고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믿으세요. 수능 시험이 끝나는 날, 학원가가 뒤집어질 겁니다. 그리고 그날은 한강 에듀케이션이 비상하는 날이기도 할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손다정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몇 날 며칠을 밤을 지새우며 보다 효율적인 마케팅 방안을 마련했다.
여러 가지 세부적인 방안이 추가되었지만, 살만 덧붙였을 뿐 건우가 말한 주된 뼈대는 바뀌지 않았다.
‘3주 공부 50% 적중 보장, 실패 시 1,000% 환불’
한국 학원가에서 영원한 미스터리이자 신화로 남은 이른바 ‘3-50-1000 공약’
건우의 공약은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이슈가 됐다. 예상했던 것처럼 애들 상대로 한 장삿속이라는 조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학생들은 엄청나게 몰렸다.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하버드 의대’ 출신이라는 광고에 ‘혹시나’로 마음이 기울었다.
정원이 차기까지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반나절 만에 마감됐다.
뒤늦게 등록하러 온 학생들은 학원 안으로 들어와 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받고 싶었지만, 건우가 선착순 200명만 받으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특강비도 무척 싸게 받았다.
건우는 손다정에게 이 특강은 홍보를 위한 수단이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진짜 돈은 수능시험이 끝나고 벌면 된다고 했다.
돈 벌 목적이 아니고 홍보가 목적인데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가 인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특강준비는 끝이 났고, 11월 13일 2015학년도 수능 시험이 약 4주 앞으로 다가온 10월 13일 월요일.
건우의 첫 행보를 알리는 특강 수업이 시작되었다.
“안녕, 여러분. 최건우라고 한다. 내가 했던 시범강의를 듣고 나에게 반해서 등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지역 케이블 방송이나 영화관을 통해 본 광고를 보고 혹해서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누군가는 내가 진짜 하버드 의대 휴학생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버드 의대 휴학생 맞다. 믿어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학력을 위조하겠나? 정 궁금하면, 학원 행정실로 가보도록. 내 학생증 사본과 하버드에서 보낸 재학증명서가 보관되어있으니 말이다.”
건우는 단정한 양복에 세련된 뿔테 안경을 끼고 나타났다.
지금 그의 나이가 겨우 스무 살이다. 그리고 그에게 강의를 듣는 사람은 19살이다. 재수생이나 그 이상의 학생이 있다면 건우와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
그런 걸 고려해 최대한 점잖고 연륜이 있어 보이는 옷차림을 선택했다.
존댓말은 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강사가 존댓말을 하는 건 신뢰감을 줄 수 있지만, 새파랗게 젊은 강사가 존댓말을 하면 오히려 만만하게 보곤 한다.
지난 삶에서 건우가 직접 겪은 경험이었고, 그래서 과감하고 단호하게 반말로 소개를 시작했다.
“솔직히 여기 이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 중에 공부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건우의 말이 끝나자 강의실이 순식간에 웅성거렸다.
“왜? 기분 나쁜가? 하지만 생각해봐라. 수능 시험이 4주 앞으로 다가왔다. 우등생들은 지금 이 시기에 새로운 것을 공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을 정리하며 복습한다. 밤새워 공부하지도 않는다. 10시 취침, 6시 기상. 수능 시험이 4주 앞인데 어떻게 10시에 자느냐고? 하지만 그게 맞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보다 수능 당일과 똑같은 생활패턴을 반복하면서 바이오리듬을 맞추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물론 우등생이라는 가정 하에.”
“이런 중요한 시기에 너희는 ‘3주 완성, 수능 적중률 50% 보장’ 이라는 왠지 사기꾼 냄새가 풀풀 나는 문구에 끌려 이곳에 왔다. 왜? 불안하니까. 왜?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니까. 지금도 불안하지? 하지만 내가 여기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너희는 지금 최고의 행운을 잡기 직전이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를 수능 대박의 길로 인도 할 것이니까, 의심하지 마라. 믿고 따라와라.”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건우의 모습을 보며 사이비교주를 떠올렸을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 강의실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믿음이 가는 외모 신뢰를 주는 목소리. 손다정이 높게 평가했던 겉모습이 빛을 발했다.
건우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의구심으로 가득 차 흔들리던 아이들의 눈동자는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봤다.
지난 시범강의에서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 이후 생긴 좌중 압도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들의 집중력은 더욱 높아졌다.
그의 입 모양과 그의 손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져라 정면을 주시하며 귀를 활짝 열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에서 마치겠다. 오늘 나눠준 유인물은 너희가 낸 학원비에 포함된 소중한 자료다. 광고에서 봤지? 50% 적중을 장담한다고. 그러니 정말 콩팥이라도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집에서 혼자 보며 공부해라. 안타깝게도 지금은 모두 경쟁자다.”
“물론 마음이 너무 천사 같아서, 아는 친구에게 모두 나눠주고 싶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단지 저작권 등록은 되어 있으니, 복사해서 유료로 팔 생각은 하지 말도록. 그랬다간 대학 식당 밥이 아니라 콩밥을 먹을 수도 있다. 이상.”
“으아… 뭐지? 그냥 딴짓은 생각도 못 하게 만들어. 진짜 저 쌤 카리스마 하나는 대박.”
건우가 할 말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가자 한 학생이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소감을 말했다.
모두가 그 말에 동감하는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엄청난 몰입도의 강의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아이들은 착실히 3주간 수업을 함께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우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만 갔다.
그리고 대망의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 당일이 밝았다.
***
한강 에듀케이션 사무실에 손다정 과장과 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이게 뭐하는 짓이지.”
“아이고. 그러게요.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지.”
구석에 있던 강사 한 명이 푸념하자 그 옆에 있던 강사가 한숨을 쉬며 동조했다.
“단체로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정말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거야?”
“그렇긴 한데… 솔직히 혼자 6과목을 가르치는 건 가능한 일인가요?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니까 이번에도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다들 혹시나 싶어 시험지 도착을 기다리는 거고?”
“그렇죠. 까놓고 이야기해서 50%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비슷한 문제가 20~30%만 나와도 대박 아닙니까? 고작 3주 수업했는데.”
“그건 그렇지. 그렇게 되면 대박도 그냥 대박이 아니라 초왕울트라 대박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우리 학원 명성도 완전히 꼭대기로 치솟지 않겠습니까? 그때부터 적자 안녕. 흑자 시작일 테니까요.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대화를 나누던 강사 한 명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몸을 부르르 떨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냥 치솟는 게 아니지. 하버드 의대 휴학생. 학원가에 들어오자마자 수능 적중. 거기에 새 학기 시작되면서 새로운 교습법까지 등장해봐. 그러게만 되면 대치동에 있는 학생들을 싹 끌어모을 수도 있어.”
“그런데 정작 최건우 선생은 이 중요한 시기에 왜 안 보여요? 혹시 혼자 방에 들어가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건 아니죠? 나 같으면 조마조마해서 아무 것도 못할 것 같거든요.”
“그 참. 그 양반도 대단한 게, 그동안 수능 특강반 강의하면서 동생들한테 신경 많이 못 썼다고 집에 일찍 들어갔어. 애들 먹이려고 특식을 준비한다나?”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해요. 겨우 20살에 자기 꿈 포기하고 동생들 키우겠다고 한국에 남은 것 보면.”
“대단하지. 우리가 20살이었을 때 뭐했는지 기억이라도 나?”
“뭐하긴요? 천날만날 술 마시고 놀러 다녔죠. 흐흐흐.”
두 사람이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문 쪽으로 향했다.
“왔습니다.”
남자 한 명이 손에 USB 메모리를 들고 들어오자, 다정이 재빨리 받아서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파일을 확인한 후 이메일을 열어 학원 강사 전원에게 외장메모리에 담긴 수능 문제를 전송했다.
“방금 메일로 보냈습니다. 제가 부탁한 것처럼 최건우 선생님이 만든 임시 교재 안의 문제는 이미 숙지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메일 확인하셔서 최대 어느 정도까지 적중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분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처음 창업했을 때의 기대와는 달리 망해가는 학원이었고, 건우의 이번 수능 특강은 폐업 직전의 분위기를 뒤바꿀 비장의 카드다.
그들 입장에서는 가진 자존심보다는 생존이 우선이었다.
사무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강사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 앉아 수능 문제를 확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