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하와와 87화
* * *
87.
영진TV (23) :
[할 말이라니…?]
은여우 (18) :
[아까부터 계속 생각해봤는데, 스키장 같은 정기모임은 못 갈 거 같아요.]
영진TV :
[엥? 왜?]
누누 (21) :
[갑자기? 이걸?]
같이 얘기했던 사람 중에서, 목소리가 중성 느낌 나는 사람이 찬물을 끼얹었다.
은여우 :
[제가 사실 공황장애랑 광장 공포증 같은 게 있어서, 직접 만나면 말 한 마디도 못 하겠거든요….]
“…….”
지금 같이 음성 채팅을 나누는 사람은 기껏해야 다섯 명.
공황장애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광장 공포증이 이런 적은 숫자로도 생길 수가 있나?
흠….
사람 많은 스키장이면, 그런 증상이 유발될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누누 :
[그, 그래…?]
★보라★ (20) :
[저러언….]
영진TV :
[흐으음….]
아까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아쉬운 눈치였기에, 한 가지 의견을 꺼내봤다.
“그럼 사람이 많지 않은 스키장을 골라서 가보는 건 어때요? 날 잡아서 가면 어떻게 가능할 거 같기도 한데. 아니면 굳이 스키장일 필요 없이, 노래방 같은 곳을 가도 되잖아요?”
누누 :
[오오오….]
한 명의 감탄사를 시작으로.
영진TV :
[굳 잡!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하와와님!]
★보라★ :
[괜찮은 생각이네요, 언니!]
누누 :
[스키장은 다른 곳을 고르더라도 힘들 거 같고, 노래방은 괜찮겠네요.]
대화는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은여우 :
[어… 저기….]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영진TV :
[노래방은 괜찮을 거 아니야? 그치, 여우야?]
은여우 :
[저기… 그게….]
영진TV :
[왜, 이것도 안 돼? 고작 다섯 명이서 모이는 건데도?]
★보라★ :
[저 오빠 말이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돼. 그런데 우린 네가 궁금하기도 하고, 앞으로 자주 합방할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건데, 직접 만나서 친해지면 좋을 거 같아서.]
은여우 :
[어… 으….]
아무래도 거절은 하고 싶은데, 흐름 상 그러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은여우 :
[아, 알겠어요. 그러면 참여는 하겠지만, 대신에 저는 직접 만날 때는 말을 잘 못하니까 이해 좀 해주세요.]
영진TV :
[…왜 그러는데?]
은여우 :
[제가… 왕따 당한 경험도 많고, 남들이랑 평소에… 대화한 적이 거의 없어서 그래요.]
왕따 얘기가 나오자, 밝은 분위기가 또 다시 어두워졌다. 이 정도면 저 ‘은여우’란 사람은 어두운 쪽으로 분위기 만드는 데에 재능이 있다고 해야 될지….
왕따 같은 건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이걸 이렇게 쉽게 말하는 게 대단할 정도다.
아니면 이런 어려운 얘기를 급하게 할 정도로, 그만큼 정기모임에 나가기는 싫어한다는 거일 수도 있겠지.
누누 :
[으음….]
이번엔 쉽사리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질 못했다.
난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이번엔 가만히 있었다.
체감 상 30초는 침묵에 빠져 있었다. 이후에 침묵을 깬 건, 신입 멤버를 구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영진TV’였다.
영진TV :
[흐음… 그러면 노래방 갔을 때도 그냥 가만히 있겠네?]
은여우 :
[네….]
영진TV :
[그러면 우리한테 있어서도 재미가 없겠지만, 너한테 있어서도 재미가 없을 텐데. 괜찮겠어?]
은여우 :
[괜찮아요….]
개인 사정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무척이나 피곤한 법이지만, 그럼에도 궁금했다.
도대체. 왜?
은여우는 직접 만났을 때는 말을 못하겠다는 건지를 말이다.
애초에 그럴 거면 지금 대화 중인 음성 채팅에서도 말을 잘 못 하는 게 정상이지 않을까 싶었다.
희한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같이 게임도 하고 합방도 할 사이면, 이해해주는 게 맞는 거겠지?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과 비슷한 거 같고, 영진TV는 그냥 여자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은여우를 붙잡으려는 거겠지.
영진TV :
[자~ 이제 여우도 괜찮다고 했으니! 어떻게 모여서 뭐하고 놀지 계획을 정해볼까?]
★보라★ :
[어째… 오빠, 너무 신난 거 같은데요?]
영진TV :
[당연하지! 내가 여자들이랑 연이 없으니까 현실에서 대화를 많이 못 나눴는데, 이 분들하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자니, 얼마나 즐겁겠어? 안 그래?]
★보라★ :
[어휴, 정말… 못 말린다니까? 그럴 거면 며칠 휴방하고, 여친이나 만들러 가지, 뭐하러 방송을 계속 붙들고 있으실까?]
영진TV :
[에이, 그래도 여자보단 방송이 우선이지. 어차피 만나서 며칠 사귀었다 헤어질 거, 그 시간도 방송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겠어?]
누누 :
[크흠. 그나저나, 어떻게 계획을 짤 건지나 얘기해보죠.]
영진TV :
[그러지 뭐.]
안 그래도 내가 말할까 했는데, ‘누누’라는 사람이 대신 말해줘서, 어떻게든 끝이 났다.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박 2일로 정하고. 첫 날은 만나서.
1. 점심
2. 보드게임 카페
3. 저녁
4. 노래방
5. 모텔에서 숙박
이 순서로 움직이기로 했다.
둘째 날은 딱히 스케줄을 정하지는 않았는데, 즉흥적으로 움직이기 위함이었다. 아침 먹고 파하던지, 아니면 점심 이후까지 같이 놀던지 하는 걸로 해서.
영진TV :
[자, 그럼. 계획도 파했겠다. 여기서 회의는 시마이 치죠.]
누누 :
[이거 회의였나요?]
영진TV :
[하하… 회의 겸 면접이었죠.]
★보라★ :
[끝났다고 했으니까, 저는 먼저 나가볼게요. 바로 방송 켜야 되서.]
영진TV :
[나도 가야 되서 끝내자고 한 거야.]
누누 :
[난 쉬러가야겠다.]
은여우 :
[저도 쉬러갈게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저도 가볼게요.”
영진TV, 누누, ★보라★ :
[고생하셨어요, 하와와님!]
회의 겸 면접이라 불렸던 음성 채팅은 끝났고, 영진TV는 합방 전용 디코 채널로 초대를 해줬다.
[초대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어디 보자.
보라의 방송 닉네임이….
[보라보라물보라★]
으음… 이거구나. 나랑 똑같은 파프리카tv네?
━━━━━━━━━━━━━━━
Live!
<신입 멤버="" 구한="" 후기!=""/>
보라보라물보라★
시청자 712명
━━━━━━━━━━━━━━━
팔로우 3천에 실시간 700명 이상이면, 괜찮은데?
얘는 어떻게 방송하는지, 궁금해서 방송에 진입하여 팔로우를 누르려는데, 타이밍이 묘했다.
[여러분, 오늘 신입 분 중에 대~박! 인 분을 뵈었어요!]
???
보라님이 대박! 이라고 할 정도면 대머리인 분이라도 본 거임?
? 머기업이라도 본 건가? ㅋㅋ
[어?! 어떻게 알았지?]
뭘 어떻게 알아?
누가 맞췄나 본데? ㅋㅋ 대머리?
머기업 스트리머 얘기로 대박이라 한 거 아님?
[네, 맞아요! 저희보다 대기업인 분이 신입 멤버로 들어오셨거든요.]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연치곤 좀 ㅋㅋㅋㅋㅋ
삼류 드라마 찍음? 그게 우연으로 가능한 일임? ㅋㅋㅋ ㅋㅋ 그럴 수도 있지 않냐?
정말 대박이긴 하네 ㅋ
그래서 그 스트리머가 누구임?
이 시점에서 그녀의 실시간 시청자 수는 점점 늘어나서 900명 대를 찍었다. 게다가 내 얘기를 하고 있어 팔로우를 하기가 조심스러웠지만, 이러다가 팔로우 안 하고 잊어먹는 것보단 나았기에, 눈을 감고 팔로우를 꾹 눌렀다.
[하와와쨩 님! 팔로우 감사합니다!]
[앗?! 저 분이에요, 저 분! 방금 팔로우하신 분이 신입 멤버로 들어오신 분이에요!]
?????
하와와?
눈나가 왜 여기서 나와?
뭐야? 누구임?
진짜임? 가짜 아니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걸 염려해서 조심스러웠던 건데….
하와와님! 방송 안 키고 여기서 뭐하세요?
아 ㅋㅋ 하와와님도 방송인이자 한 명의 시청자라고! ㅋㅋㅋ
저거 사칭 아님?
[제가 봤는데, 사칭 아니에요! 정말 하와와님이에요!]
그녀는 곧바로 내게 매니저 권한까지 달아줬다.
[자, 하와와 언니! 제 시청자에게 인사 좀 해주세요!]
닉네임이 독특하네 ㅋㅋㅋ
왜 하와와임?
“하와와~” 라고 하는 게 컨셉이라 그럼.
하와와 눈나! 왜 방송 안 켜요!
진짜 찐이네 ㅋㅋ
ㅋㅋㅋ 차라리 다른 여캠들과 비슷한 닉네임을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이 사람 우유튜브도 하나 보네.
[하와와… 안녕하세요, 여러분… 하와와에요….]
지금 이 느낌은, 음….
동물원을 딱 한 번 가봤는데.
동물들마다 날 쳐다보는 느낌이, “뭘 봐?” 또는 “왜 그렇게 날 신기하게 보고 있지, 닝겐?”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내가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 같은 느낌이다. 그것도 천연기념물 같은 그런 동물 말이다.
하와와! 왜 방송 안 해! 왜 방송 안 해! 왜 방송 안 해! 왜 방송 안 해! 왜 방송 안 하는데!
우유튜브 구독했어요, 눈나!
어떻게 이런 거물이 신입 멤버로 된 거임? ㅋㅋㅋ
[그러니까요! 저도 그게 신기했어요!]
방송의 주인장인, 보라는 방송 채팅창을 규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 또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규제했으면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후회를 했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다행은 다행인데, 왠지 모르게 이 자리가 찝찝했다.
또한, 이대로는 그녀의 방송 자체가 방해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귓말로 마음을 전달하고, 곧바로 퇴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