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하와와 42화
* * *
42.
“귀신이 아니라 신일세.”
녀석의 시원찮은 말에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그 대신에 질문을 꺼냈다.
“…믿기진 않지만 신이라 치고. 방금 건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뭘 말인가?”
어질러진 냉장고 주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네가 벌여논 흔적들이 이렇게 난잡한데다가 너도 눈앞에 보이는데, 저 경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단 말야?”
“그거야, 환각을 보여줬기 때문일세.”
“무슨 환각? 멀쩡한 것처럼 눈을 속였단 말야?”
“정확하군. 말한 대로일세. 보통 이런 환각은 잡귀들이 많이 사용하곤 한다네.”
“예를 들면?”
“멀쩡한 길목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낭떠러지라던가? 말끔한 집인 줄 알았는데, 뒤늦게 정신 차려 보니 낡고 허름한 폐가라든지.”
이 녀석의 말처럼, 귀신이 사람을 홀린다는 얘기를 어떤 TV프로그램에서 들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본 적이 없기도 하고, 지금까지 가위 눌려본 적도 없어서 귀신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귀신이 존재하긴 한다는 거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말이 안 되지, 당연히.”
“어째서?”
“내가 귀신을 못 봤으니까. 그리고 귀신이 있으면 나쁜 사람 정돈 잡아 가야 되는 거 아니냐?”
“자네는 기가 세서 볼 수가 없는 것뿐이네. 또한, 귀신들은 기가 약한 자들만 데려가지.
그런데 악인들은 보통 기가 센 자들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웬만한 잡귀들은 그들에게 맥을 못 춘다네.”
“흠… 기가 세야 오히려 귀신이 잘 보인다는 말이 있던데?”
“기가 세면 대부분 귀신을 볼 수는 없지만, 특수한 경우라면 가능하다네.”
“흐음….”
“귀신이 사람에게 볼일이 있을 때. 그리고 귀신과 사람의 기운이 서로 비등할 때 보게 된다네.”
“그래?”
그녀는 내 반응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왜, 지금까지의 얘기가 믿기지 않은 겐가?”
“그럼. 이런 황당한 말을 나보고 어떻게 믿으라고?”
“허면… 자네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음… 그건….”
“지금 이 모든 게 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진짜 자신은 그 날 마포대교 밑에 떨어지는 걸로 명이 다했을 터인데, 어째서 여기 있는지는 신기하지 않은 겐가?”
…내가 거기서 떨어진 걸 어떻게 아는 거지? 게다가 녀석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투로 말을 하고 있다.
정말 신이라도 되나?
“그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유는 간단하네. 내가 자네를 이렇게 만든 신이기 때문이지.”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렇다네.”
“왜지? 그냥 날 죽게 내버려둬도 좋았을 텐데. 난 좀 쉬고 싶어서 죽으려 했던 거거든.”
“별 이유는 없네. 단지 재미있을 거 같아서 벌인 짓이었으니까.”
“재미를 위해서 이렇게 했다고? 다른 이유도 없이?”
“그렇다네.”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냐?”
“제멋대로인 건 인정하네만, 내 입장을 부디 이해해주시게나.”
“무슨 입장?”
“이 자리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무슨 생각이 들 것 같나?”
“뭐, 설마 지루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 말대로일세.”
“…….”
이거 순 또라이 아니야?
“저기 신님?”
“음?”
“그렇게 지루하면 내가 신 노릇해줄게. 네가 나 대신에 방송하면서 살아봐. 그럼 지루하진 않을 거야.”
컴퓨터가 있는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송은 이미 그 몸으로 경험해본 적이 있다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 자네가 취하고 있는 몸은 내가 만든 그릇 중 하나라는 뜻일세.”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럼 내가 봤던 건, 이 녀석이 방송을 하는 모습이었단 건가?
“인터넷 방송 또한 재미는 있었지만, 흥미가 서서히 떨어져 가던 참이었네.
그런데 그 때에 자살하려는 자네를 발견하게 되었지.
그걸 보고 재밌는 발상이 떠올랐다네. 생을 다하지 않은 자네에게 특이한 벌칙을 내려주는 건 어떨까 하고 말일세.”
“그래서 나를 이 몸으로 살아가게 했단 말이지? 명을 아끼지 않고, 자살했다는 이유로?”
“그렇다네.”
이 녀석 말대로라면, 모든 게 대충은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그러기엔 이유가 부족한데? 지금 네가 있는 이 곳. 한국은 자살율이 높은 국가야.
이 말은 즉, 나 말고도 자살하는 사람은 많다는 거지.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나를 뽑았다고? 도대체 왜?”
“아까 말했을 텐데. 재미를 위해서라고. 자네는 한 가지만 생각할 줄 아나 본데, 양자역학이라고 들어봤나?”
노가다하던 사람에게 너무 어려운 걸 물어보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는데.”
“좀 어려운 말인가? 그럼 평행우주나 시간 이동 같은 건 들어봤겠지?”
시간 여행을 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많이 보긴 했다.
“그런 건 알아.”
“그럼 자네에게 질문 하나 하겠네.”
“말해봐.”
“내가 자네에게만 이런 벌칙을 내려줬을 것 같나?”
“음….”
“자네는 내겐 그저, 120억 5479만 6479번째 유희에 지나지 않네.”
“그거… 그동안 봤던 사람 숫자야?”
“그렇다네. 여기서 또 하나 문제를 내겠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미래는 몇 개나 될까?”
“해봐야 2천 개는 되지 않을까?”
“수 천개에서 수 만개 사이라네.”
“그럼 그 미래를 전부 다 봤다는 뜻이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시간은 남아돌고, 할 건 없으니 그런 걸 보는 게지. 사람들이 인방을 통해 스트리머를 보는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을 관찰하는 걸세.”
내가 이렇게 된 배경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여기까지 들으니까 궁금한 게 생겼는데.”
“뭔가?”
“그렇게 잘나신 분께서 내 집에 찾아온 이유는 뭔데?”
“심심해서 찾아온 걸세. 왜. 불만 있는 겐가?”
“어. 불만 있어. 내 집에서 나가주면 안 될까?”
“왜 그렇게 쌀쌀맞게 구는 겐가?”
“일단은 신이라는 작자가, 내 집에 와서 음식이나 털어먹고 있고.”
“음.”
“게다가 날 이렇게 만든 게, 그저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였다고 한 녀석을 집 안에 들이고 싶진 않거든.”
“내 입으로 벌칙이라 말하기는 했네만, 그래도 새 삶을 살게 해줬는데… 날 이렇게 문전박대하다니 너무하구먼.”
그녀는 마치 버려진 강아지마냥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바라봐도 소용없으니까, 당장 나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나가기는 싫네만?”
“그럼 억지로라도 나가게 해줘야지.”
그녀의 몸을 붙잡아, 질질 끌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잡히지가 않네.”
“푸핫핫! 백날 손을 휘둘러봐야 난 잡히지 않는다네.”
이 현상도 환각의 일종인가?
“이건 환각이 아니라, 공간을 분리시켜놓은 걸세.”
“공간을 분리시켰다고요?”
“실제로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알고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있는 차원과 자네가 있는 차원은 서로 다르다네.”
“그건 애초에 말이 안 되지 않나? 내 눈에는 멀쩡하게 당신이 보이는데? 차원을 분리시킨 거라면, 안 보여야 정상 아닌가?”
“허허, 그럴 만한 방법이 있다네. 하지만 이건 아무리 쉽게 말해도 자네가 이해하지 못할 영역이라, 설명하기가 힘드니 이해해주시게.”
“…그래서, 안 나가고 이렇게 버티실 거에요?”
“그럴 거라네.”
“어째서?
“이제부터 함께 살면서, 자네를 지켜보면 왠지 심심하지는 않을 거 같아서라네.”
“…….”
이 녀석을 어떻게 내쫓아야 되지?
“그나저나, 아직도 배가 고픈데… 맛난 것 좀 시켜주지 않겠느냐?”
“…뭘 먹고 싶은데?”
“돈가스가 먹고 싶네만.”
“님 돈으로 사 드세요.”
“내겐 그럴 돈이 없다네.”
“왜지?”
“내가 그 몸으로 만든 통장이나 다른 것 대부분을 자네에게 넘겨줬기 때문이지. 게다가 난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지, 물건을 만들어내는 신이 아니라네. 그러니 돈 복사는 못 하는 걸세. 안 하는 게 아니라.”
“신은 만능인 줄 알았는데.”
“어차피 돈 복사는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네.”
“어떻게?”
“자네의 비트코인으로 돈 복사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난 미래를 알고 있으니 자네는 내 말만 따르면 돈 복사는 쉬울 걸세.”
“그럼 지금부터 하자. 돈 복사!”
“그 전에….”
꼬르륵.
“돈가스 좀 시켜주지 않겠느냐? 배고파 죽겠느니라.”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
“일단 네가 어지른 걸 치워주면 시켜줄게.”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녀석이 돈가스를 한참 먹을 때 실험 한 번 해봐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