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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와~ 예리니 방송에 와주셔서 고마운 거시에오!-15화 (15/100)
  • 〈 15화 〉 하와와 15화

    * * *

    15.

    ……후우.

    숨을 고르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카메라 킬 준비는 되었고, 방송 세팅만 어느 정도 손 본 후에 라이브를 키기만 하면 되었다.

    결심을 다지며 카메라 앞에 앉았건만, 막상 방송을 키기는 두려웠다.

    진호 선배와 연지에겐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스토커에게 성추행 당한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었기에 두려웠다.

    가끔씩 밤마다, 그 자식이 날 강제로 범하려는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울면서 소리치다가 잠에서 깨곤 했는데, 그 때마다 식은땀이 파자마를 축축하게 적실 정도로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

    판결 선고와 함께 재판장에서 끌려 나가던 한준성. 그는 마지막에 ‘2심을 넣어보고, 그것도 안 되면 징역살이 후에 날 찾아오겠다.’고 악을 지르며 퇴장했었다.

    처음엔 콧방귀를 뀌면서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전자발찌를 낀 성범죄자들이 정해진 구역을 이탈하는 걸, 경찰들이 뒤늦게 발견할 정도면 가능성은 아예 없진 않을 거라고 봤다.

    이 가능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상상력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생각이란 건 이래서 무섭다. 그가 날 취하려던 것도 이 생각에서 비롯했을 거고, 내가 지금 불안에 떠는 것도 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방송을 키면, 또 다른 스토커가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며칠 동안 내게 맴돌던 의문.

    후우….

    다시 숨을 고르면서, 두 손으로 양쪽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리자!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게다가 미리 그런 걸 걱정해봤자, 부질없는 짓이야.

    오늘은 방송을 키겠다고 시청자들에게 약속한 날이잖아?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어기라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약속된 시간은 다가왔다.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방송을 시작했다.

    1로 표기된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나는 해봐야 수십 명이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 이상이 몰려왔다.

    별 기대는 안 했었다.

    사건도 사건대로 터지고, 방송한 기간도 다른 스트리머에 비해 월등히 뒤떨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날 보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보답해야 했다.

    최대한 밝게 웃어 보이며, 그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하와와~ 안녕하세여, 여러부우우운! 오늘 이렇게 제 방송에 찾아와주셔서 고마운 거시에오오오!”

    ­여기가 스토커 검거한 여신님 방송 맞음?ㅋㅋ

    ­ㅇㅇ 맞음

    ­오옷? 오늘은 캠 처음 켰을 때의 그 복장 아님?

    ­맞네ㅋㅋ

    오늘은 초심으로 돌아와서, 캠을 처음 켰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갖추고 앉아 있었다.

    높게 묶은 양 갈래 머리와 속이 비치는 하얀 시스루. 가슴골이 보이는 까만 탱크탑 브라. 어느 것 하나 그 때와 다르지 않았다.

    딱 하나.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연지가 직접 준비했었지만, 이젠 내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다 기억하고 앉았네ㅋㅋㅋ 대단하다 진짜!ㅋㅋ

    ­기억해야 진성 하와와 단이지ㅋㅋㅋ 안 그럼?ㅋㅋ

    ­ㄹㅇ ㅋㅋ

    시청자들이 이렇게 몰려든 배경에는, 그간 내가 방송은 못 켰어도 소통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서 시청자들과 가끔씩 대화를 주고받은 결과였다.

    소통도 없었다면, 지금쯤 끽해봐야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밖에 못 찍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통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팬심이 뜨거웠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시청자분들이 고마웠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이 복장으로 입어봤어요. 그간 방송을 못했어도 기다려준 시청자분들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나 할까… 물론 초심을 찾자는 의미도 있었구요.”

    ­크으… 초심 좋지

    ­하와와 몇 달 사이에 말하는 게 좀 성숙해진 거 같아서 적응이 안 됨ㅋㅋㅋ

    ­ㄹㅇ ㅋㅋ

    ­ㅇㅈ 전엔 애기 같았는데 많이 큰 느낌임ㅋㅋㅋ

    이렇게 말한다면야… 준비했던 걸 지금 써버릴 수밖에 없잖아….

    “뭉멍~?! 저어는 쥬인님의 기엽고 사랑스러운 애기 멍뭉이에요오오~ 뭉멍!”

    멍뭉이 자세를 취하면서 일부러 발음을 굴려 애교 톤을 내보자, 채팅창이 난리도 아니었다.

    ­눈나 나주거! 눈나 나주거! 눈나 나주거! 눈나 나주거! 눈나 나주거!

    ­하와와 급발진 무엇?ㅋㅋㅋㅋㅋ

    ­ㅈㄴ 커엽다 진짜… 하와와가 내 여동생이었음 좋았을 텐데….

    ­ㄹㅇ루ㅋㅋ

    ­엄마! 나 이 멍뭉이 사조! ㅎㅎ

    ­하와와~ 너무 귀여워서 클립으로 따두는 거시에오오!!!

    그들의 반응에 낯 뜨거워졌다.

    이건 후원할 때에 보여주려던 필살 기술이었는데….

    ­하와와 볼 빨개짐ㅋㅋㅋㅋ

    ­자기도 부끄러운가봐 ㅋㅋㅋㅋㅋ

    ­볼 빨개진 하와와 귀여워~

    ­하와와 얼굴 핥고 싶다… 핥아서 저 열 좀 식혀주고 싶어 ㅎㅎ

    ­난 다른 곳도 핥고 싶은데 ㅎㅎ

    “하와와~ 쎅드립은 거기까지인 거시에오오~! 더 이상 하시면 안 되는 거시에오오!”

    ­이 눈치도 없는 놈들아! 저번 사건 때문에 우리 여신님 심기 예민하시다. 건들지 마라!

    ­유입이라 몰랐음 ㅈㅅ

    ­처음 왔으면 모를 수도 있지ㅋㅋ

    ­링크 줄 테니까 그 사건 영상 다시 보고 오셈 [링크]

    ­ㅇㅋ

    내가 예민하게 굴었나? 괜히 시청자에게 미안해졌다.

    “하와와… 제가 민감하게 반응했나요? 그렇다면 재성한 거시에오오… 너무 선 넘지만 않으면 쎅드립 치셔도 되는 거시에오오….”

    ­ㄹㅇ?

    “네에, 그 대신 나중에 우유튜브 편집자도 구해서 그 쪽으로도 나갈 거니까 노딱 걸리지 않는 선에서 부탁 드리게씁니당, 여러분….”

    ­ㅇㅋ

    ­그럼 하와와 찹쌀떡 두 덩이 핥고 싶다고 말해도 됨?

    바로 훅 들어오는 시청자의 질문. 대충 짐작 가는 부위였지만, 일단 모른 척하고 물어봤다.

    “그, 그게 어디 부위인가여?”

    ­ㄱㅅ

    ­슴가

    “하와와… 그 정도 은어적 표현은 허락해드리게씁니당….”

    ­그럼 맘마통은?

    ­야벅지는?

    ­겨드랑이 핥고 싶다도 가능?

    ­꽃잎은?

    왠지 방송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그들의 채팅에 나는 뜨거워진 얼굴을 식힐 틈이 없었다.

    “저어… 꽃잎은 선 좀 넘으신 거 같구… 맘마통도 좀 그렇고… 야벅지랑 겨드랑이는 가능해요오오오….”

    수위가 점점 오르는 걸 보면, 이대론 안 되겠다. 채팅의 주제를 바꾸려고 롤을 켰다.

    “하와와… 오늘은 간만에 롤을 해보는 거시에오오오!”

    ­저번의 주식겜은 안함?

    아무래도 소통 게시판의 공지를 못 읽은 시청자가 있던 모양이다.

    “하와왓? 질려서 당분간은 겜을 골고루 할 거시에오… 그래서 주식겜 당분간 쉰다고 공지 올려논 거시에오오오….”

    ­그럼 미션은 어캐 됐음?

    “공지에 포기라고 적어놓은 거시에오오….”

    미션 건 당사자들이 댓글로 자신들은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나중에라도 미션 성공해서 받아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냥 포기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포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주식 게임이 개인적으로 재미없고 질려서다.

    솔랭을 선택하고, 큐를 돌렸다.

    오늘 내가 하려는 캐릭터는 독침을 쏘는 너구리 정찰병이다.

    이 녀석으로 난 서폿을 가서 즐겜을 할 거다. 독 지뢰로 밭을 일구어, 바텀을 지배하리라….

    콧노래를 부르며, 게임이 잡히길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따라 게임이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브론즈라서 큐가 안 잡히나?ㅋㅋ

    ­역시 심해는 달라ㅋㅋㅋㅋㅋㅋ

    ­하.브.딱!ㅋㅋㅋ

    …정말로 티어가 브론즈라서 매칭이 안 잡히나?

    계속 기다려도 게임이 잘 안 잡혀서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김댕댕 님, 별풍 500개 후원 감사합니다!] ­하와와님 혹시 저랑 합방하실 생각 있으세요?

    뜻밖의 후원 알림이 고막을 울려댔다.

    ­와… 방송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합방?ㅋㅋㅋ

    ­ㅋㅋ 하와와 클라스ㅋㅋㅋㅋ

    ­이거 이러다가 하와와 대기업 각 아니냐?ㅋㅋㅋㅋㅋ

    “하와와~ 김댕댕님~ 별풍 500개 후원 캄사합니당… 하, 합방요?”

    당황했다.

    하꼬인 내게 합방 제의라니… 도대체 누굴까?

    찾아보니, 이제 약 900명 팔로우 된 나에 비해서 그는 약 5천 가까이 팔로우가 된 중견 급 스트리머였다.

    하꼬인 나랑 합방하면, 오히려 이 사람이 손해일 텐데…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뭘까….

    [김댕댕 님, 별풍 500개 후원 감사합니다!]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오늘 불가능하시면 나중에 가능하신 날짜를 말씀해주시면 되니까요.

    “아… 김댕댕님~ 별풍 500개 후원 감사한 거시에오오! 대기업 분께서 이렇게 후원을 해주시니, 하꼬인 저로서는 감사해서 거절하기가 힘들어요… 오늘 하시죠, 합방!”

    나로서는 이 합방 제의가 개꿀인 상황이다.

    내가 잘만 한다면 그의 시청자들을 어느 정도 내게 끌어올 수도 있었으니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의 의도가 궁금하기도 했으니, 일단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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