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와와~ 예리니 방송에 와주셔서 고마운 거시에오!-12화 (12/100)

〈 12화 〉 하와와 12화

* * *

12.

에잇!

문을 힘껏 당겨서 닫으려는데… 갑자기 두 팔이 불쑥 들어와서 나를 깜짝 놀래켰다.

“아아앗!”

뒤로 주춤거리다가, 신문지를 밟고 그대로 미끄러졌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꼬리뼈가 너무 아팠다ㅜㅜ

“아야야….”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예린 씨?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제 양팔이 끊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하하하….”

음침하고 기분이 절로 나빠지는 목소리. 게다가 그의 웃음은 음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어디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갈 법한 까만 정장차림의 남자. 해킹을 잘한다는 스토커였다.

그는 쥐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내 앞에서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집에 들어온 이상, 내가 뭘 하든 자기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역시 예린 씨는 카메라보단 실물이 낫네요! 아무래도 카메라를 가성비 제품으로 쓰시는 거 같은데. 제가 좋은 카메라 하나 갖고 있거든요? 그걸로 예린 씨 실컷 찍어드릴게요.”

“…….”

“너무 차갑게 저를 바라보시는데, 그러면 제가 너무 서운합니다. 저는 이렇게 예린 씨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제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나요?”

“당신 마음 따위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제 집에서 당장 나가주세요….”

원래는 주변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구석에 자리 잡았던 공포심은, 풍선에 바람 넣듯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던 탓에… 소리를 크게 내지르질 못했다.

“하하… 섭섭합니다, 예린 씨.”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내 가슴이 있는 쪽으로 내밀자….

“그 손 치워요….”

상대의 손등을 툭 쳐내면서,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오늘부터 1일 아닙니까? 연인 사이끼리 스킨쉽은 기본 아니에요? 이거 너무한데요, 예린 씨?”

그가 점점 내게 다가오자, 나는 급히 일어서며 도망쳤고.

“도망갈 데가 어디있다고 그래요, 예린 씨?”

철컥.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난 다음에, 스토커는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나는 준비했던 그릇과 냄비며 각종 도구들을 던져댔다. (하지만 차마 칼을 던지지는 못했다.)

“크윽!”

그는 반응속도라든가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 모양인지, 그걸 대부분 피해내지 못했고.

“으윽!”

그 또한 신문지를 잘못 밟아, 바닥에 그대로 미끄러져 넘어졌다.

“으으으으….”

스토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말끔했던 까만 정장은 내가 만들었던 죽에 범벅되어, 끈적거리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곳곳에는 그릇의 파편들이 튀어 있었고, 그의 머리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흐흐흐… 뭐어… 좋습니다. 힘은 남아도니까, 아무래도 아이를 가지는 운동을 할 때에도 쉽게 지치진 않겠군요. 이거 너무 기대되는 걸요, 예린 씨?”

변태 새끼… 온통 그 생각뿐이야?

나는 곧바로 컴퓨터 앞으로 달려 나가, 카메라를 보며 소리쳤다.

“여러분! 제발 살려주세요! 누구라도 좋으니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 빨리요!”

언뜻 눈에 들어온 시청자 수는 20명 정도. 그마저도 채팅창은 다들 잠에 빠진 모양인지, 얼어붙어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허겁지겁 이불 위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스토커에게 머리채가 붙잡혔다!

“아야야야얏!”

그가 머리를 잡아당겨서 너무 아팠다. 마치 모근 채로 뿌리 뽑힐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프지 않으려면 그에게 몸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 전화하시려고요, 예린 씨? 설마 경찰서는 아니겠죠?”

그는 날 보고 웃는다고 입 꼬리를 올려보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심각하게 뒤틀린 미소였다.

스토커는 내 휴대폰을 뺏어서 바닥에 내려뒀다. 그 후엔 자신의 구둣발로 철저하게 그것을 짓밟았다.

“이런! 거는! 제가! 있는 한! 더 이상! 못 씁니다! 아시겠어요?!”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끊어 말하면서 구둣발로 밟아대는데… 저걸로 내 몸이 차이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만이 들면서 몸이 움찔움찔 거렸다.

“예린 씨, 왜 그렇게 얼어붙었어요? 제가 무서우신가요? 제가 싫으신가요?”

“에… 예?”

“내가 싫은 거냐고 묻잖아.”

흉악스런 두 손이 내 몸에 점점 가까워졌다.

“아, 안대에에에엣! 하지 마요!”

양팔과 양다리로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는 몇 번 벗겨본 솜씨가 아니었는지, 능숙하게 벗겨버렸다.

“크으으~ 몸매 좋네요, 예린 씨. 덕분에 제 거기가 팔딱팔딱 서는데요?”

“…으으.”

저질. 싸이코. 변태 새끼….

까만 정장 바지임에도, 겉부분에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녀석은 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디… 마저 까보자고요!”

놈의 한 손이 입고 있던 브래지어에 향하자, 나는 스토커의 팔을 잡아채서 손을 입 쪽으로 향하게 한 후에 그걸 힘껏 물어버렸다!

“흐으아아아아악!!!”

너무 세게 물었던 모양인지, 피가 흐를 정도였는데… 그가 팔을 마구 흔드는 통에, 물고 있던 그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그는 순간 휘청거렸고. 절호의 기회라 여긴 나는, 녀석의 그곳을 향해 힘껏 발길질을 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괴물과 흡사한 비명소리를 내는 스토커를 뒤로 한 채, 나는 현관문 앞으로 빠르면서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황급히 신발을 신고….

빨리… 빨리…!

문고리를 빼고 잠긴 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갔다.

“여, 여기 강간범이 있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오오!!”

소리를 계속 지르며, 계단이 있는 쪽으로 내달렸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나와서 이 상황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좋게 말할 때 오세요!!”

공포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면 그 순간에 멈칫할 것 같아, 뒤도 보지 않고 냅다 뛰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바아알!!”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까 신문지 밟고 미끄러졌던 것처럼 발을 헛디디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먼저 출발했으니, 녀석이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쾅!!

…설마 무식하게 계단을 한 번에 뛰어내린 건 아니겠지?

“좋은 말 할 때 오세요! 슬슬 인내심 바닥나고 있으니까!!”

“싫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대로는 녀석에게 따라 잡힌다…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가야 돼… 아앗?!

순간 몸이 한 쪽으로 기울었다. 아차! 발을 헛디뎠구나!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찧고 쓰러졌다….

…쾅쾅!

쾅쾅쾅!

“으응?”

깨어나 보니, 이불을 덮어 쓴 채로 잘 누워 있었다.

이불을 걷어치우고, 내 몸을 바라봤는데… 파자마 차림이었다.

“설마… 꿈인 건가?”

쾅쾅쾅!

“음식 배달이요!!”

현관문을 바라봤다. 문은 멀쩡했다. 이에 안심하고 소리를 자세히 들어봤다. 멀리서 들리는 걸로 봐서는, 두들기는 게 내 쪽 현관문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깐 쌀 배달이었는데, 이번엔 음식 배달인 걸 보고 깨달았다. 모든 게 꿈이었구나.

스토커가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악몽이라도 꾼 모양이었다.

“후우… 정말 다행이야….”

눈물이 흘러나와, 뺨을 타고 고스란히 파자마에 떨어졌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모르는 전화만 수 백 건이 찍혔고, 까톡은 900개가 넘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 중에는 연지에게서 온 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연지 : 전화 좀 받아라!!!

연지 : 이 기지배가 진짜! 전화를 왜 안 받는 거야?

연지 : 뭔 일 있어?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되는데에에에!!!

연지 : 아 짜증짜증! 이거 보면 꼭 좀 전화해라. 알았냐?

많이… 빡쳤겠지…?

전화를 걸어봤다. 수신음이 들리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어? 어??? 네가 죽고 싶구나, 이 가시나야? 어어어?!!!]

“하와와… 죄, 죄송해여, 연지 언니이잉….”

[풀 죽은 듯 애교 목소리 하면은, 내가 봐줄 것 같아? 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잘못해쏘요… 용서해주떼여… 연지 언니이이잉….”

[하… 그래, 뭐. 이 정도로 하고 내가 참아야지. 그래야 왜 전화를 안 받았는지 묻고 그럴 거 아냐? 도대체 무슨 심각한 일이 있었길래, 까톡도, 연락도 없었던 건데?]

“그게… 그러니까….”

연지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아니… 어떤 애새끼가 우리 애를 건드는 거지? 뭐? 스토킹?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그냥 콱!]

“연지 언니… 조심하세요… 걔 보통 애는 아니에요… 해커인데다가 몸이 삐쩍 말라서 그런지, 움직임이 꽤 날렵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직접 보기라도 한 거야?]

“그게… 직접은 아니고… 꿈에서….”

[꿈?]

“…으응. 꿈에서 그 놈에게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깨어났거든….”

[풉… 푸흐하하하하핫!!]

“왜, 왜 웃어… 난 심각한데….”

[아니… 그냥. 왠지 네가 허둥지둥 대다가 넘어지던 게 생각나서 말야. 푸흐흐흐흡….]

“…….”

웃지 말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말을 아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스토커로 황폐해진 내 마음이 어느 정도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