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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와~ 예리니 방송에 와주셔서 고마운 거시에오!-11화 (11/100)
  • 〈 11화 〉 하와와 11화

    * * *

    11.

    ㅎㅈㅅ : 방송에서 예린 씨 모습이 잘 안 보여서 안타깝네요. 얼굴 좀 비쳐주시죠?

    ㅎㅈㅅ : 전화 좀 받아주세요. 달콤한 목소리 좀 듣고 싶네요.

    ㅎㅈㅅ : 우리 오붓하게 대화나 좀 나눠 봐요. 미래 얘기도 좀 하면서. 예린 씨는 딸이 어때요, 아들이 어때요? 저는 딸이 좋은데.

    ㅎㅈㅅ : 차단하셔봤자, 또 다른 번호로 걸면 되요. 까톡 계정도 남아도니까 소용없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기운 빼지 마시고, 제 부탁 좀 들어주시죠?

    밤 11시.

    벽 한 쪽에 기대어,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면 저 카메라만 보면, 스토커가 저것마저도 해킹해서 날 뚫어져라 관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2시간 정도 이러다보면 제 풀에 지쳐서 나가떨어지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착이 심해져갔다. 내가 아무리 까톡 계정과 전화를 차단한다고 해도….

    ㅎㅈㅅ : 예린 씨, 혹시 제 거기 보고 싶으신가요?

    이렇게, 또 다른 까톡 계정을 가져와서 말을 걸고 있었다. 싸이코 새끼….

    게다가 통화를 쉴 틈 없이 걸어 대서, 처음에는 진동 처리를 했었다가… 이젠 그 진동마저 시끄럽다고 느껴져 무음처리 해버렸다.

    휴대폰을 끄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연지가 전화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꺼둘 수는 없었다.

    “배달이요!”

    현관문 너머로 익숙한 말투가 들려왔다. 이 곳은 밤 10시부터 사람들이 야식을 시키곤 했다.

    아까 1시간 전에는, 옆집에서 배달을 시킨 모양인지 쾅쾅 거리는 소리가 들렸었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스토커가 내가 있는 곳을 알아채고 문을 두들긴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옆집에서 시킨 배달이었고, 스토커가 문을 두드린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옆집 소리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정신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 2시.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컴퓨터 앞에 다가갔다. 카메라 앞에 모습을 비추면서, 시청자 수를 체크했다.

    어느 정도 줄어들었지만, 아직 80명 이상이 내 방송을 봐주고 있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스케치북에다 쓴 글을 카메라를 통해 보여줬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저도 방송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는 원치 않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말을 막 못하고 있고…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고… 여러분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재미없으실 텐데… 지금까지 계속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도 안 지켜주는데 우리가 지켜줘야지. 안그래?

    ­맞지맞지ㅋㅋㅋㅋ

    ­ㄹㅇ ㅋㅋ

    시청자들의 말씀에 감사했지만, 그들에게 이런 식으로 민폐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도 늦었는데, 피곤하시거나 내일 출근하시는 분은 어서 주무세요… 이건 결국 제 일이니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 지금까지라도 지켜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ㅜㅜ]

    ­안 피곤한데?

    ­나 내일 쉬는 날임ㅎ

    ­내일 연가 내면 됨 ㅅㄱ

    ­ㅁㅊ ㅋㅋㅋㅋ

    ­난 백수라서….

    ­편의점 야간알바라 ㄱㅊ

    [하와와… 다들 말씀은 감사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말아주셔요ㅜㅜ 저는 다시 숨으러 가볼게요….]

    ­ㅂ2

    ­스토커 때문에 긴장해서 잠은 제대로 안 오겠지만 졸리면 그냥 자. 우리가 대신 지켜보겠음

    ­ㅇㅈ 미녀는 꿀잠 자야 피부에 좋음 ㅎㅎ

    ­고건 맞지ㅋㅋ

    다시 한 쪽 벽에 다가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대었다.

    휴대폰을 집어 들어, 까톡 메시지를 살펴봤는데….

    내가 기대하던 연지의 메시지는 없었고, 그 대신 스토커의 메시지만 한 트럭이었다.

    “후우….”

    깔고 있던 또 다른 이불 위에, 휴대폰을 툭 던져놓고는 눈을 감았다가… 불안함에 눈을 뜨고는 현관을 살펴봤다.

    문은 다행히 멀쩡했지만, 이대로 안심하기엔 일렀다.

    나는 의자나 빈 책장 등의 가구를 이용해, 현관문 앞을 바리케이트처럼 막아놨다.

    아예 촘촘히 막지는 않았고, 문이 멀쩡한지는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막아뒀다.

    현관문을 다시 바라봤다.

    온갖 안 좋은 상상이 펼쳐지면서, 조마조마했고,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영화 처럼, 인터넷에서 트랩 설치하는 걸 검색해서 여러 함정들을 만들어둘까도 생각을 했다.

    스토커에게 오는 까톡을 무시하면서 휴대폰으로 검색해봤지만, 의외로 함정 설치법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 거의 없었다.

    자료가 딱 하나 있기는 했으나, 그건 내가 지금 써먹기엔 별로 좋지 못한 내용이었고, 함정 설치에 필요한 재료 또한 부족했다.

    게다가 함정을 설치했다고 쳐도, 연지 같이 친구라던가 혹은 날 보려고 오는 손님이 생길 경우엔, 그 함정을 해체하는 그 자체로도 일이라서 결국 포기했다.

    주변을 자꾸 경계하는, 긴장한 미어캣처럼. 나는 이불 속에서 고개만 내밀어, 자꾸 현관문을 바라봤다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 짓거리의 빈도수는 점점 늘어났고, 결국 나는 해가 중천에 떠서 방 안을 밝힐 때까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연지는 까톡도, 문자도, 전화도 없을 정도로 바쁜 것 같았고.

    스토커는 잠이 없는지, 지치지 않고 전화와 까톡을 해댔다.

    퀭한 눈으로 휴대폰을 계속 바라보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자면 안 되는데… 자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뇌 속에서는 수도 없이 이런 말들을 되뇌지만, 육체적으로는 이미 한계였던 모양이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쾅쾅!

    쾅쾅쾅!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조건반사적으로 문 쪽을 바라봤는데, 다행히 현관문은 멀쩡했다.

    쾅!쾅!쾅!

    상대가 문을 한 번 두드릴 때마다, 내 몸은 소리에 반응해 자꾸 움찔거렸다.

    “저기요오오오!!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쌀 배달 왔습니다!!”

    “쌀이요…?”

    “네, 쌀 배달이요!”

    잠깐만… 내가 쌀을 시켰던가?

    쌀이 여분이 있는지, 일단 확인해봤다. 대충 이틀 정도면 금방 바닥날 정도였다.

    그렇다면 내가 쌀 배달을 시키긴 했다는 소린데….

    휴대폰을 바라봤다. 웬일인지 휴대폰은 조용했고, 까톡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을 열어, 최근 기록을 살펴봤다.

    쌀 배달… 쌀 배달… 음… 아… 찾았다! 이틀 전에 전화해서 주문했었구나!

    아무래도 스토커에게 시달리느라, 최근에 있었던 일도 잊어버릴 정도로 긴장했나보다.

    그런데… 우선은 바리케이트를 허물고, 문을 열어야 했기에, 문 너머에 있을 배달원에게 말을 꺼냈다.

    “저, 저기여!”

    “네?”

    “제가 잠시 문 앞에 있는 것들을 좀 치워야 되서…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저도 여러 군데 배달이 밀려있기는 한데… 그냥 문 앞에 두고 가면 안 될까요?”

    좋은 생각이네.

    내가 왜 이걸 미처 생각지도 못했을까?

    배달원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좋아요. 그냥 앞에다 두세요.”

    “많이 무거우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어떻게든 제가 알아서 해볼게여.”

    “알겠습니다. 그럼 가볼게요.”

    배달원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가는 사이, 나는 바리케이트를 해체해나갔다.

    “하아… 하아… 이렇게 힘들었나….”

    얼마동안 낑낑거린 건지 모르겠다. 겨우 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걸어놨던 문고리를 원상태로 되돌리고, 잠갔던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벽에 뉘어있는 쌀 포대가 눈에 띄었다.

    문 고정 장치로, 닫히지 않게 고정해뒀다. 그 다음엔 앉은 자세를 취하면서 쌀 포대를 붙잡았다. 이어서 들어 올리려고 힘껏 힘을 줬는데….

    “흐으으으으읏!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20kg 쌀 포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다시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들기가 힘들었다.

    내가 남자였던 때는, 이런 건 그냥 번쩍! 하고 들어 올렸는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여자의 몸. 그것도 내가 아는 여캠의 몸으로 되어 버렸으니, 아무래도 전처럼 이런 쌀 포대도 가볍게 들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바닥에 질질 끌면서, 집 안에 들이기로 결정. 신문지들을 바닥에 깔아, 그 위에 쌀 포대를 올려서 질질 끌고 들어오기로 했다.

    신문지는 바닥에 다 깔았고, 이제 질질 끌 일만 남았는데…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이내, 문을 열어놓고 있는 내 쪽으로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신경이 쓰인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를 확인해봤는데….

    씨익.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설마…!

    으아아아아앗…!

    나는 쌀이고 뭐고 황급히, 문을 닫으려 했지만… 당황했던 나머지 고정 장치를 했다는 걸 까맣게 잊고는 허둥대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남자는 무서울 정도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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