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105화 (105/106)

〈 105화 〉 되풀이

* * *

“아니 손 선생, 자세히 말해보십시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타겟이 자신에게로 넘어가자 화들짝 놀란 당 태종은 나를 보채기 시작하였다.

방금까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국책사업을 손 안 대고 코 풀 생각에 싱글벙글했던 그가

내 말 한마디에 낯짝의 안색이 변하다니, 완전히 신뢰하고 있구만.

“황상, 내가 여래에게 패배한 이후 그 빌어먹을 오행산에 깔린 기간이 얼마인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 갑자기 그건 또 왜 묻는 것인지…”

“자그마치 500년입니다. 500년이요. 덕분에 그 인고의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죠.”

“……”

“그놈에게 왜 패배한 것일까, 나에게 부족했던 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빠져나가 놈을 씹어먹을 수 있을까!”

스슥.

내 말투가 거칠어지고 몸에서 슬금슬금 요기가 흘러나오자 황제의 침상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마도 황제의 호위무사들일 것이다.

그만큼 나의 혼신의 연기가 잘 먹히고 있다는 증거겠지.

“그런데 말입니다 황상. 사부님을 뵙게 되고 나선 그런 번뇌는 아무런 의미가 없더군요.”

“…손 선생의 사부라니, 혹시 본인의 형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 맞습니다.”

“허어! 역시 현장이로다… 형제가 무슨 가르침을 일깨워 준 것인지 부디 내게도 알려주시오. 손 선생!”

가르침은 개뿔.

무슨 농간으로 내가 이 먼 과거까지 끌려와서 스승님 체험을 몸소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과거의 스승님 역시도 처음부터 삼장 법사님의 가르침에 감명받아 스스로 제자를 자처한 것은 아니라는 것.

나처럼 어떻게서든 오행산을 빠져나가려고 법사님의 비위를 맞췄을 것이 분명하다.

“왜 본인이 황상이 걱정된다고 했는가 하면, 황상은 나와 같이 덕이 아주아주 부족해서 그러지요.”

“덕, 덕 말이오?”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당 태종.

그럴 만도 하지.

왜냐하면 내가 얘기하고 있는 모든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아니! 아무리 손 선생의 말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해할 수가 없구려!”

“황상.”

“과인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은 그렇지만 태평성대를 이루어 내고 죽음에서 살아 돌아와 부처의 뜻과 행함을 실천하는 이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망발을 하는 것이오. 손 선생!”

격양된 어조로 따박따박 반박의 논조를 펼치는 황제.

그곳에는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숨기려 하는 인간 군상 하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빨리 반박해보시오!”

“황상.”

“흡!”

불길하게 빛나는 화안금정과 눈을 마주친 당 태종은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대의 손에 묻은 혈육의 피가 아직 채 마르지 않았는데 그리도 억울하신지요?”

“그것을 그대가 어찌…”

“이 붉은 눈을 얻게 된 이후로는 볼 것 못 볼 것이 죄다 비쳐서 말이오. 다시 한번 묻지요, 황상 그대는 자신의 덕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

황제가 이번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속으로는 이 건방진 원숭이 놈이 자신의 가장 큰 치부를 어찌 알고 있겠나 생각하겠지만 어쩌겠나.

속에 든 놈은 미래에서 온 손우진인데 말이지.

“황상, 이러다가 해 넘어가겠습니다.”

“충분치 못하오…”

“예? 잘 안 들리는데?”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였소! 이제 됐는가!”

“하하하! 좋습니다. 자기 객관화야말로 덕을 쌓아가는 첫걸음, 아주 잘하셨습니다.”

“끄응! 황제를 놀려 먹는 이는 세상에서 당신밖에 없을 거요 손 선생!”

“하늘의 상제 영감에게 이미 들어먹은 말이라 별 감흥은 없군요.”

“…할 말이 없구려.”

나는 황제의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황제는 이미 낚싯대에 걸려 육지로 끌어 올려진 파닥파닥 물고기 신세.

이제는 맛있게 조리할 차례만이 남았다.

“아무튼 이것은 이 손오공이 인간들의 황제를 위해 솔직담백하게 얘기하는 것이니 귀를 열고 차분하게 듣는 것이 좋을 거요.”

“들을 준비는 이미 마쳤소.”

“사실 경전을 구하러 가는 서천행은 황상에겐 그렇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뭣이?”

거 사람 참 성미가 불같아서 원.

이래서 차분하게 들으라고 한 것인데 한 소절만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그게 무슨 소린가! 반쪽짜리 설법만을 듣고 있는 본인의 백성들을 위해 형제를 시켜 경전을 구해오라 한 것인데 그것이 의미가 없다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이세민의 공덕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제발 본인에게 자세히 알려주시게 손 선생!”

“황상! 체통을 지키시지요! 아 진짜 이것 좀 놓으라니깐!”

털보 남정네가 자신의 다리에 매달리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특이 취향이 아니고서야 없을 것이다.

힘으로 털어내려고 해도 괜히 내 괴력에 귀한 몸 다칠까 억지로 밀어내고 있는 상황.

당 태종이 이리도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는 이미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공덕에 집착하는 것이다.

“먼저 말하게!”

“놓으면 말한다고!”

“자네 먼저!”

“황상 먼저!”

몇 차례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숨어 있던 황제의 호위무사들까지 튀어나와 우리 둘을 뜯어말린 뒤에야 소동은 끝이 났다.

“황상.”

“……”

“이세민 씨.”

“……”

“남자가 그렇게 속이 좁게 행동하면 덕을 쌓을 수 없다니깐 그러네!”

“거기서 덕 얘기는 또 왜 나오는 거요! 민감한 일이라고 했지 않소!”

“그래서 이 손 선생이 해결책을 들고 이곳까지 직접 찾아온 거 아니오?”

“하아…얼른 그 해결책이나 말해주게.”

나와 더 논쟁을 벌였다간 자기만 손해란 것을 깨닫게 된 당 태종은 체념한 듯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이란 마음 안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는 것이 공이요, 덕이란 그 안의 공을 밖으로 끄집어내 행함을 함이 덕이지.”

“그 말은 즉…”

“이해하신 거요?”

“자네가 덕이 없다고 한 것이 그런 뜻이었군. 짐은 그저 형제에게 덕을 부탁한 것이니 말이지.”

“총명하시군. 황상 말씀대로요. 실제로 황상께선 살아가면서 덕을 쌓을 기회조차 없었을 거요.”

“하지만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짐이 머리에 쓴 관을 내던지고 함께 서역행에 올라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머리를 잃은 몸은 금방 죽는 법.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오.”

끄응!

쉽게 해결책을 내어주지 않는 내 태도에 당 태종은 근심 섞인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덕을 쌓고 싶습니까?”

“그렇소.”

“쉽게 덕을 쌓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오!”

“그런 당신을 위해 손 선생이 준비한 바로 이 특급 도술! 바로 인방??이올시다!”

“...인방?”

나의 입에선 아무말 대잔치가 한참 성행 중이에요.

이 정도 개소리를 맹신하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입을 털어댔던 것이다.

“뜻을 풀어 설명하자면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신묘한 방이 어찌 존재한단 말이오, 손 선생?”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만의 도술이라고. 지금부터 황상의 거처를 인방으로 만들고자 하는데 동의하십니까?”

“해롭거나 그런 것은…”

“어허! 속고만 사셨나. 정 원하는 빛이 아닌데 뭐 간절하지 않다면야 그냥.”

“아니오! 아니오! 어서 이 방을 인방으로 만들어 주시오!”

“허허. 황상의 간절함, 잘 보았습니다. 그럼.”

나는 도술을 외운 뒤 황제의 커다란 거처 벽 한군데를 채울 수 있는 거대한 거울 하나를 소환하였다.

“오오오! 손 선생! 이게 대체! 이 맑고 커다란 상은 대체 어디서 난 것이오?”

“푸흐흐.”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최대한 슬픈 생각을 떠올려서 표정을 유지해야 했다.

갑자기 신문물을 본 이세계인처럼 행동하는 황제 때문에 웃음보가 터졌지만 급하게 표정을 지우고 우리 고객님께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것이 인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경??이라고 합니다.”

“인경이라… 이렇게 귀해 보이는 거울을 내게 그냥 주는 것이오?”

“거울로서의 기능은 부가적인 것이고 본래는 이렇게 쓰는 것이지요.”

거울에 손가락을 대 신성을 불어넣자 상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화면이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짐의 형제 삼장법사가 아닌가!”

“어떻습니까? 황상께서 관을 벗어던지지 않아도 인방 안에서라면 저 먼 길 떠나있는 형제와 함께하는 이 기분!”

“호오!”

그렇게 공들인 것은 별로 없다.

그저 법사님의 곁을 지키는 분신 놈의 시야를 거울에 공유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궁극의 목표를 위해서 준비한 것일 뿐 정말로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인방의 한계에는 끝이 없다! 서역행을 떠난 형제를 도와 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마저 제공되는 기능! 황상께서 한번 이용해 보시겠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손 선생! 어떻게 하면 되는지 빨리 알려주게나!”

당 태종 이세민, 늦은 나이에 인방에 입문하다.

. . . . .

“손 군. 이쯤에서 쉬어가는 것이 어떻겠나?”

“예. 그러시지요.”

본체를 대신해서 삼장법사의 호위를 맡은 분신은 손우진이 돌아올 기미가 없자 마지못해 그를 대신하여 삼장법사를 모시고 길을 떠났다.

이놈의 고승은 무슨 몸에 향기로운 향수를 뿌린 것인지 꿀을 처바른 것인지

가는 길 족족 별 잡스러운 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하였고 그럴 때마다 분신의 일은 최대한 살생을 피하면서 놈들을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흐음…”

“왜 그러십니까?”

“이번 식사를 하게 되면 식량이 모두 떨어지게 된다네.”

“제 몫은 제하셔도 괜찮습니다. 먹을 필요가 없으니 말이죠.”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함께 고생하는 것은 똑같을 터인데 그럴 순 없지!”

“하아…”

겁쟁이인 주제에 이상한 곳에서 고집이 강하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마음씨 착한 승려에게 뭐라고 할 순 없기에 분신은 대신 본체 놈을 속으로 잘근잘근 씹었다.

그 순간 분신은 눈가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을 알아챘다.

본체 놈의 짓이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본 분신은 그것을 낚아챘다.

“참 나… 이거 완전 미친놈일세.”

하늘에서 떨어진 보따리.

그 속을 들여다본 분신은 기가 찬 어조로 누군가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왜 그런가, 손 군?”

“법사님의 수제자 놈이 탁발을 해 온 것 같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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