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과거의 악연
* * *
툭 던진 돌멩이에 악마가 얻어걸렸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김승연이었던 놈.
놈의 신체는 분신에게 호되게 당했는지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성좌가 되고자 했던 성직자의 결말이 악신에게 영혼까지 팔아버린 성형수술이라니.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어 준 셈이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신성은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하지만
“커허억!!!”
“예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신성이 전부가 아니라니까.”
내게 접근해 뭘 하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이제는 김승연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놈의 복부에 박힌 내 주먹.
매섭게 달려왔던 놈의 자세가 급격하게 무너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처가 악화되었는지 입에서 피를 한 움큼을 토해낸다.
그거 한 대 맞았다고 저렇게 벌벌 떨어서야.
악마 체면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 체급이 중요한 건 나도 인정해. 그런데 지금 뭐 격투기 시합하냐? 생각하고 덤벼야지.”
“씨이발!!!”
후웅!
내 얼굴이 있던 자리를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지나가는 악마의 손아귀.
놈이 열받으라고 고개만 까딱 움직여 피해줬다.
빠악!
손을 함부로 놀린 대가로 악마 놈의 안면에 앞지르기를 먹여 주었다.
내 발과 인사를 마친 김승연이 저 멀리 나뒹굴었다.
나와 이 녀석의 역량 차이는 처음 만났을 당시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것 같다.
놈에게 여의를 사용하는 것은 사치로 느껴질 정도다.
내가 명계에도 다녀오고 심장도 한 번 터져보고 천계에 수련도 다녀오는 사이에
이놈은 대체 지옥에서 뭘 한 건가?
그렇게 성좌의 자리에 집착했었으면 적어도 악신이라도 되었어야지.
“형편없긴.”
“닥쳐!!! 닥쳐, 닥쳐 닥쳐라!!! 네가 뭘 안다고!!!”
발악하는 김승연.
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다.
죄 없는 교인들을 희생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지옥에 떨어져 인간성마저 벗어던진 놈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 과한 것일까.
“난 네놈을 뛰어넘기 위해서 인간마저 포기했는데!!! 왜!!! 이럴 수는 없어!”
“……”
말없이 놈의 발작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성질을 부리다가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아아, 그런 것인가. 크흐흐흐흐…”
“뭐가 웃긴 건데? 같이 좀 웃자.”
“크흐흐흐… 내게 아직도 남아 있던 게 분명해, 진작에 버렸어야 하는 그 나약함이 말이야.”
“드디어 맛이 갔군.”
“나의 주인이시여, 제게 남은 나약함을 마저 바칩니다. 그 대가로 제게 힘을 주소서.”
놈의 부름에 더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역하고 불쾌한 신성을 지닌 존재는 한 가지밖에 없다.
악신.
거래는 성사되었다.
지옥의 주인이 거래 성사를 알리자마자 김승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놈에게서 느껴지는 오염된 신성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의 외형 또한 인간 시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변해간다.
체급을 언급한 것이 살짝 걸렸는지 더 거대한 모습으로 자라나기 시작했고
박살 난 뿔은 더 크고 굵직하게 자라났으며 찢긴 악마의 날개와 꼬리는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모든 변신을 끝마친 건지 숙인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보는 악마.
“…마침내, 나는 내 나약함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 제법 볼만한 광경이었어.”
“모두 손우진 네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마.”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답례로 당장 지옥으로 꺼져줬으면 하는데.”
“답례는… 네놈의 죽음이다!”
그러고선 오염된 신성을 자신의 손에 끌어모아서 검은 광선을 내게 쏴 버린다.
“…미련한 놈.”
장단 맞춰주는 것도 이제 끝이다.
어디까지 추해지나 구경해 봤더니 결국엔 실같이 남아 있던 인간성까지 벗어 던지고
그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나는 팔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말하지 않아도 주인의 뜻을 알아챈 여의가 하늘에서 날아와 내 손안에 들어온다.
여의를 앞으로 겨누고 내게 쏘아지는 검은 광선을 보면서 단 한마디만을 읊조렸다.
“늘어나라.”
슈우욱!
수백 년간 요괴를 때려잡으면서 퇴마에는 이골이 난 성물이 사악한 기운을 가르고
힘차게 질주하기 시작했고 검은 광선을 지나서 악마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쿨럭!”
“영혼이 없는 존재에겐 돌아갈 저승도 없지.”
“이렇게까지 포기했는데 대체 왜…”
“작별이다.”
퍼석.
악마에게 꽂혀 있는 여의를 뽑아내자 서서히 몸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최후를 인정할 수 없는 녀석은 집착 어린 손을 뻗다가 그렇게 사라졌다.
악신에게 자신의 조그만 영혼 조각까지도 팔아버린 놈의 최후다.
그 영혼 조각이 남아 있었더라면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테지만
힘을 위해서 내팽개친 놈에게 안식처란 없다.
나는 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을 존재에게 말을 건넸다.
“예나 지금이나 장사 수완이 뛰어나시군.”
칭찬으로 받아들이마. 원숭이의 제자야.
보란 듯이 대답하는 지옥의 악신.
그에게 아쉬울 것이란 없어 보인다.
성직자의 타락한 영혼을 모두 털어먹은 데다 이곳까지 나를 유인한 목적도 달성했을 테니깐.
“그쪽하곤 나름 깔끔하게 끝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이번엔 무슨 일로 지랄이시지?”
흐흐, 그 오만함은 여전하구나. 인간 놈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래, 계약이라 할 수 있겠지.
“계약?”
네놈을 위한 계약은 이미 끝이 났으니 안으로 들어오도록…
“이봐!”
지옥의 악신은 기운을 감추고 스르륵 사라졌다.
그가 했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당연히 악신과 계약을 맺은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그는 다른 존재와 나와 관련된 계약을 맺었다는 건데 이번 일에 누가 개입한 건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직접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근두운.”
소정이가 타고 있는 구름을 부르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구름이 쫄래쫄래 다가왔다.
그 난리 통에도 소정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애한테 대체 뭘 먹인 거야.”
분신의 기억을 토대로 볼 때 이미 물고기 밥이 되었을 놈들이라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소정이의 상체를 일으킨 뒤에 등 뒤에 손을 대 신성을 불어넣었다.
오행을 기반으로 하는 내 신성이 몸속 안의 약물의 효능을 모조리 태울 것이다.
어느 정도 신성을 불어 넣으니 동생의 눈꺼풀이 드문드문 떠지는 것이 보인다.
“소정아, 정신 차려. 괜찮아?”
“…오빠.”
두통이 있는 건지 인상을 찌푸리고 머리를 부여잡는 소정이.
“여긴 또 어디야?”
“이북.”
“응?”
“예전 북한 지역이라고.”
“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소정이.
그럴 만도 한 것이 놈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곳에 거점을 자리 잡을 줄은 예상 못 했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국토를 좀먹는 크립티드의 지역 확장을 막아내는데 바쁜 한국이 이미 오래전에 쫄딱
망해버린 땅에 눈을 돌리기엔 아직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소정이가 의식을 잃었던 동안 벌어진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분신 놈의 희생과 악마가 된 김승연과의 재회.
그리고 찾아낸 악신의 성역까지.
“어떡해! 분신 오빠는 괜찮은 거야?”
“걔야 뭐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라서 피곤하다고 쉬러 갔지.”
“그 자식 지난번에 안 죽었던 거야?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원래 그런 놈들 명줄이 질기잖아. 난 너무 뻔해서 감흥도 없더라.”
“하아… 주여…”
자신의 성좌를 찾는 안소정.
그러다 급히 고개를 돌려 악신의 성역을 바라본다.
“그러면 저기 더러운 기운을 풍기는 건물이…”
“응. 저곳이 놈들의 본거지인가 봐.”
“어서 가자.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아니.”
나는 근두운에서 내리려는 소정이의 어깨를 눌러서 다시 강제로 앉혔다.
“오빠!”
“안소정. 우리가 약속한 내용이 뭐였지?”
“그거야 내가 미끼가 되어서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낸다고…”
“그리고 이미 잘 찾아냈네? 소정아, 여기서부턴 나 혼자 들어가도 돼.”
“하지만!”
“악신이 관련된 일이야.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해서 널 지키면서 싸울 순 없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안소정의 입이 댓 발 나와 있다.
만약이라는 변수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괜히 소정이를 데리고 들어갔다가 잘못되면 교단의 신부님들이나 저쪽 성좌를 뵐 수 있겠나.
이것이 옳은 판단이다.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나 혼자서 충분하다.
“오리 되겠어, 입 좀 집어넣으시죠 동생님?”
“아 하지 마!”
몇 번의 장난 후 소정이의 기분도 그럭저럭 풀린 모양이다.
“…괜히 강해졌다고 무식하게 싸우지 말고.”
“내가 넌 줄 아냐?”
“사람이 걱정해 주고 있는데! 몰라!”
동생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는 근두운에게 안전 귀가를 맡겼다.
주인의 뜻을 알아들은 구름이 붕붕 소리를 내며 출발할 준비를 마친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올게.”
“조심해야 해.”
공중으로 떠오르는 구름.
나는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하늘에서 계속 나를 바라보는 동생이 안심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소정이를 태운 근두운이 빠른 속도로 다시 한국 방향으로 날아갔다.
“자 그럼, 첫집들이 선물은 뭐가 좋으려나."
손수 자신의 성역에 들어오라고 초대해 주었으니 대접 좀 받으러 가자.
나는 제천대성의 제자를 증명하는 갑옷과 자금관을 갖춰 입고 여의를 챙겨 들어서
드레스 코드를 맞춘 뒤 악신의 성역에 첫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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