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외전 별들의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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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의회에 참석해 이 자리를 함께 빛내주어 고맙소. 이번 의회의 장, 올림포스의 수장인 이 몸 제우스가 이번 별들의 의회 개회를 선포하겠소!”
쩌렁쩌렁한 올림포스 최고 주신의 목소리가 의회장 안에 울려 퍼진다.
의회장 내엔 각 세력을 막론하고 쟁쟁한 성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의회와 가장 관계가 깊은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성좌 손오공은
감흥 없는 얼굴로 턱을 괴고선 의회장인 제우스와 다른 성좌들을 바라볼 뿐이다.
‘할 일들도 없군.’
어차피 자신의 제자 우진이 놈과 지옥의 세력이 한판 붙게 될 상황에서 의회를 소집한 것이야 뻔한 일.
성좌라는 놈들이 하계의 일에 일일이 놀라서야 되겠는가.
녀석이 악신과 직접 맞붙는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본인의 선택일 뿐.
자신의 제자는 지금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질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손오공은 속으로 그런 대범한 생각을 이어나간다.
“이번 별들의 의회가 열리게 된 것은… 저쪽에 앉아 있는 성좌 제천대성의 챔피언과 관련된 일이라오.”
털보 자식, 쓸데없이 과한 친절로 내가 앉은 위치까지 언급하다니.
손오공은 여전히 턱을 괴고선 자신을 쳐다보는 성좌들과 힐끗힐끗 눈을 마주치다가 제법 사나운 눈매와 마주친다.
손오공은 자신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남성 성좌와 눈을 마주친다.
호오!
심심하던 찰나에 제법 재밌어 보이는 장난감을 찾아내었다.
어미에게 물려받은 붉은 머릿결과 곱상한 외모, 그리고 아비와 흡사한 다부진 체격과 그 외모 속에 숨겨진 사나운 야성.
손오공은 그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 아이를 우리와 같은 별들로 인정하기엔 이견이 많이 갈리기에 이번 안건에선 다루지 않겠소. 다만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서 지옥의 악신 놈과 대적하는 건 다른 일이오.”
제우스가 내놓은 안건은 역시나 최근 지상에서 벌어진 손우진과 지옥의 세력 대립에 대한 이야기.
“지옥의 악신 놈 또한 이번엔 정도를 지나쳤소. 생과 사를 관장하는 성좌들께서 강한 항의를 보내오는 중인데 이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 별들은 자유롭게 발언해주시길 바라오.”
“그 인간 놈은 주제를 모르고 건방지게 구는 중입니다! 아버지!”
손오공을 사납게 쳐다보던 성좌는 의회장인 제우스가 발언을 끝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든다.
그에게 아버지라 불린 제우스는 제법 한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성좌 아레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본인은 자네의 아비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의회장으로서 기립하고 있소만, 호칭에 주의해 주시오.”
“크흠! 죄송합니다, 제우스 의회장…”
흐흐흐! 털보 녀석, 자기 자식에게도 가차 없는 아버지이군 그래.
손오공은 의회장에서 벌어진 모자란 아들과 엄한 아버지의 웃지 못할 촌극에 실실 웃어 버렸다.
안 그래도 그를 아니꼽게 보고 있던 성좌 아레스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선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한다.
“거기! 성좌 제천대성! 뭐가 그리도 웃기지?”
아레스의 지적을 받은 손오공이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픽 하고 웃어 보인다.
“뭐가 웃기냐고? 크흐흐흐! 이거 웃긴 꼬라지를 보고도 웃을 수 없는 세상이 왔나 보군. 미안하지만 내 웃음을 통제하려 들지 말거라, 어린 투신아.”
“이 원숭이가 지금 뭐가 어째!!!”
서로의 붉은 눈이 맞부딪힌다.
이글거리는 불꽃과도 같은 전쟁의 신의 눈과 찐득거리는 혈액을 담고 있는 듯한 손오공의 화안금정이.
“성좌 아레스, 다시 말하지만 호칭에 주의하게. 그리고 본인이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 합당한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는데 계속해서 발언할 것인가? 성좌 제천대성 그대도 조롱은 잠시 멈추게나. 의회장의 권한으로 말하겠네.”
두 투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을 중재하는 제우스.
하늘과도 같은 아버지의 언급에 전쟁의 신 아레스는 일단 한발 물러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만한 표정으로 얼굴에 웃음꽃을 지우지 않는 손오공.
‘손오공, 그를 자극하지 마세요!’
그때 손오공의 옆에서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속삭여온다.
이 여자는 대체 언제 옆자리로 온 것이지…?
손오공이 어린 투신과 잠시 투닥거리는 사이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어느새 본인의 옆자리에 자리해 있다.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기 싫은 손오공은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미의 여신에게 의문을 보낸다.
‘뭐야 당신, 여긴 대체 언제 온 건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 다혈질과 싸워서 어쩌려고 그래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나저나 너희 둘 정인?人 사이가 아니었나?’
픽!
손오공의 손등을 세게 꼬집어 버리는 미의 여신.
그 매운 손길에 놀란 원숭이가 잽싸게 자신의 손을 뺀다.
쓰으읍!!!
대놓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신음을 속으로 삼키는 손오공.
투신도 아닌 성좌면서 여인의 손이 뭐 이리 매운 것인가!
‘대체 언제 적 일을 들먹이는 거예요, 당신!’
“씨이! 여편네가 진짜… 그리고 당신 태도 때문에 이미 늦은 거 같거든?”
손오공이 아프로디테와 속삭이는 것을 멈추고 앞을 바라본다.
자신의 발언을 진작에 마친 것인지 전쟁의 신은 이미 손오공이 미의 여신과 속삭이고 있던 것을 모두 보고 있던 상황.
손오공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상황이 우습기 짝이 없다.
아프로디테의 언급으로 볼 땐 이 미의 여신은 저 무식하고 혈기 넘치는 놈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 같은데 저쪽은 아직 아닌가 보다.
질투심에 미친 전쟁의 신의 두 눈은 이전보다 더 불타는 것 같다.
“성좌 아레스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할 것이 있는가? 성좌 제천대성?”
손오공은 본인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지만 의회장인 제우스가 반박 의견을 물어본다.
여기서 잠자코 있으면 투신 딱지는 떼야지.
손오공은 호기롭게 대답한다.
“그야 물론이죠 의회장님. 저도 할 말은 차고 넘칩니다.”
투전승불이 되고 난 이후에도 주색?色이야 버리지 못했지만 자신이 여색?色에
빠진 적이 있었던가?
화과산 돌덩이에서 태어난 이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못된 짓도 해 본 놈이 잘한다고 했는데 손오공은 그런 잡생각과 함께 어색한 몸짓으로 옆에 있던 미의 여신을 품으로 끌어당긴다.
“어머!”
“크으윽!!!”
“올림포스 전쟁의 신 의견엔 반박할 것이 없소. 왜냐, 애초에 듣고 있질 않았으니깐!”
전쟁의 신 아레스 표정이 구겨진다.
본인의 옛 연인이 개소리를 하는 건방진 원숭이 놈의 품 안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그의 품 안에 있는 아프로디테의 표정도 짜게 식는다.
자세히 보니 손오공은 처음 품으로 끌어당길 때 말고는 지금 손을 공중에 띄워 놓고 있다.
그리고 의도가 불순해.
마치 자신을 저 무식한 아레스를 도발하기 위해 이용하는 꼴이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손오공은 회의장에 폭탄을 떨어뜨릴 준비를 마쳤다.
“성좌 손오공!”
“내 친우 제우스여, 날 말리지 마. 나는 말이야 할 말은 해야겠어! 당신들 대체 뭐가 두려운 것이지? 내 제자가 인간 태생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올라오는 것이 두렵나? 하하하!”
그리도 우스운 일이 없어.
그거 참 우스운 일이야.
별이라는 이름도 아까운 치들이.
저 전쟁의 신을 포함해서, 다른 성좌 놈들은 두려운 것이다.
신들의 세상에 인간들이 발을 들이밀게 될 그 예정된 시간이 말이다.
손오공이 주위의 성좌들을 쏘아보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하! 인간 하나로 성좌 놈들이 불편해하는 꼴이란, 내 제자 놈이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댁들의 심기를 건들였나 보오! 그거 참 미안하게 됐수다!”
“하아…”
곧이어 의회장엔 고성이 오고 가기 시작한다.
다수를 상대로도 자신의 기고만장함을 굽히지 않는 손오공.
파국이 벌어진 의회장을 바라보면서 관세음보살이 자신의 이마를 짚는다.
저 아이를 믿은 것이 잘못이지…
신주를 냅다 들이부어서 취기에 그러는 것도 아닐 터, 손오공은 술에 취하지도 않는 몸.
관세음보살은 이번 건에 대해서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본인이 저지른 일,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
“그만!!!”
콰앙!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가 의회봉을 강하게 내리쳐 소란을 잠재우려는 차에
전쟁의 신 아레스가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면서 손오공을 향해 검을 빼든다.
“결투를 신청합니다! 의회장님! 같은 성좌라 하여도 별들의 의회와 다른 별들을 욕보인 행위는 절대 참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크흠!
흠흠!
험!
그제야 점잔을 챙긴 다른 성좌들 몇몇이 역시 무언으로 동의를 표한다.
“성좌 제천대성,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지 않겠소?”
“어린 투신 놈아, 내 경고는 단 한 번뿐이야.”
으르릉.
제천대성의 투기가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고위급 투신의 그 사나운 투기는 의회장의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든다.
“후우… 두 성좌의 결투를 허락하겠소. 모든 이들은 이 결투의 입회인이 될 것을 명하는 바이오. 둘의 결투로 인해 의회는 잠시 중단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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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쩌려고 그런 겁니까! 손오공!”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제천대성 손오공의 결투가 시작되기 전.
잠깐의 소등 상황에서 관세음보살이 손오공을 나무란다.
“가끔은 말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땐 그냥 단순한 힘의 논리를 따르는 게 더 잘 풀릴 때도 있어요.”
손오공은 귓등으로도 듣는 척을 하지 않는다.
“오공 당신은 그 자리에 올라서도 쌈박질을 하려는 겁니까?”
“예. 제가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떻게 합니까? 죽지도 못해 윤회 또한 허락되지 않는 몸인데 그만 포기하십쇼.”
“그대는 정말…”
관세음보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 아이는 역시나 싸움의 부처라 불릴 만큼 호전성을 교정할 수 없나 보다.
수만 명의 중생을 구하는 것이 이보다 어렵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넌 아까부터 왜 심술이 난 얼굴이야? 그거 조금 도움 좀 받은 걸로 그러네.”
“당신은 내 프라이드를 짓밟은 거라고!”
“그래서 그 대가로 저 건방진 놈의 얼굴을 묵사발 내 줄 테니깐 입 좀 집어넣지 그래?”
“하!”
본의 아니게 아레스를 도발하는 데 이용당한 아프로디테 또한 손오공에게 항의하는 중이지만 미의 여신이 부리는 투정은 손오공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두 여신이 그러거나 말거나.
손오공은 다가올 전투에 고양감이 끓어올랐다.
남자답지 못한 놈이 제자를 들먹여 이 몸을 엿 먹이려 해?
철부지 신의 투정은 한 번 봐준 것으로 족하다.
제천대성의 붉은 눈이 먹잇감을 바라보며 불길하게 빛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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