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89화 (89/106)

〈 89화 〉 우리 소통해요

* * *

“옛날 보육원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요? 다들 그런 건 왜 궁금해한대요.”

“쓸데없는 거 물어보지 말라니까 그러네.”

소정이는 내 예상과는 달리 차분하게 방송을 진행해 나갔다.

나와 어린 시절을 같이 지낸 동생이다 보니 시청자들은 안소정 개인보다는 과거를 알고 있는 인물로서 이목을 끌게 되었다.

[데뷔 때부터 개썅마이웨이였는데 안 들어도 뻔하긴 해]

[시발 원숭이의 전설을 아시나요?]

[전설의 시발 원숭이]

[그게 벌써 10년 전이네]

[라떼는 말이야 더 매운맛 손우진을 공중파에서 봤다고]

[엊그제 같은데 왤케 왤케임]

[느슨해진 히어로계에 긴장감을 주는 신입의 최초 등장씬 ㅋㅋ]

“하하! 지금 사람들이 오빠 인터뷰 영상 얘기하는 거 맞지? 어렸을 때 교단 사람들하고 같이 보고 있었는데 얼마나 뻘쭘해졌는지 알고 있어?”

“아 진짜 그 얘긴 왜 또 끄집어내서…”

10년 전 스승님 밑에서 수련을 끝마치고 히어로로 데뷔하던 그 날.

젊은 혈기에 내가 좀 실수를 저지르긴 했는데 심심하면 입방아에 오르는 사건이다.

“대체 그때 왜 그런 거야?”

“그냥 다음 주제로 넘어가지?”

“여러분, 그 사건 속사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나요?”

[ㄴㄴ]

[한 번도 말해준 적 없음 ㅋㅋ]

[언급 밴입니다]

[동생 정도는 와야지 얘기할 수 있네]

[솔직히 무슨 생각으로 욕 갈겼는지 궁금하긴 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발 원숭이 사건]

“하아…”

아주 날 잡았네.

내 흑역사라 생각하는 사건이라 방송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일인데 소정이가 물꼬를 틀자마자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댄다.

“…그냥 띠꺼워서 그랬어요. 됐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본인 입으로 듣네 ㅋㅋㅋㅋㅋ]

[그럴 거 같긴 했어 ㅋㅋㅋㅋ]

[언제나 한결같은 새끼 ㅋㅋㅋ]

[영상 다 지워져서 ㅈㄴ 아쉬움 ㅋㅋㅋ]

[이 정도는 되어야지 분조장이지 ㅋㅋㅋ]

“자 솔직하게 말했고 다들 아셨을 거라 생각하니 이 시간 이후로 언급하지 마세요.”

“아하하! 오빠는 맨날 이런 식으로 방송했던 거야?”

“난 원래 가식 없이 해.”

“못 살아 정말.”

대중들에겐 시발 원숭이라 불리는 사건.

그건 내가 처음 히어로로 데뷔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스승님의 명성은 예전부터 굉장히 높아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처음 챔피언으로 선택받은 나의 존재는 큰 화제가 되었다.

손오공이라는 고위급 성좌가 여지까지 후계 육성을 하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통보해 왔으니 말이다.

문제는 옆 나라.

스승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던 옆 나라에선 한국인인 내가 선택을 받게 되자 아주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처음 성좌를 만났을 때라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스승님 밑에서 수행을 하러 바로 천계행에 올랐기 때문에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3년의 수련을 마치고 다시 지상에 내려온 그 날.

나 혼자 조용히 내려오나 싶었지만 우리 스승님은 대한민국 수도 한가운데 있는 산을

자기 멋대로 재개발에 들어가서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버렸다.

그렇게 탄생한 화과산 앞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나는 그날 히어로 신고식을 마쳤다.

고위급 성좌의 직계 제자 탄생.

얼마나 자극적이고 탐스러운 먹잇감인가?

3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다 온 것이냐, 히어로 활동은 바로 시작할 거냐, 성좌를 직접 만나본 소감을 얘기해 달라 등등.

뭐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때는 나름 인성에 때가 묻지 않은 10대 시절이었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답변했지만 거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건은 곧이어 발생했다.

‘당신의 스승이 우리 중화민국 출신인 것은 아느냐? 우리에게 기회를 뺏은 것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있는가?’

듣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던 옆 나라 기자의 질문.

그걸 듣고 나서 순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챔피언에게 허락된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능력을 알지 못하고 말이다.

‘예?’

‘성좌 쑨우쿵은 우리 중화…’

‘아니 씨발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떠들고 있어 짜증나게 진짜’

그 뒤론 난리가 났다.

언어의 재능을 부여받은 덕분에 내 투덜거림을 알아들은 기자는 난리를 피워대고 10대의 손우진은 더 약 올리는 데 혈안이 되었고 그걸 말리는 협회 사람들과 그 광경을 찍는 한국 기자들.

그것이 내 히어로 첫 데뷔 때 일이었다.

시발 원숭이 사건 회고 끝.

“내가 너 때문에… 아 창피해 진짜.”

“지금이라도 웃을 수 있으니깐 된 거지. 교단 어른들이 황급하게 채널을 돌리고 그랬는데 진짜 추억이다.”

“제발 그만하자…”

[사과 끝까지 안 한 게 레전드 ㅋㅋㅋ]

[ㅈ같이 말하는데 사과할 이유는 없지 ㅋㅋㅋ]

[할 말은 한다 손 카 콜 라]

[떡잎부터 남달랐다 이말이야]

[‘그 나라’ 눈치 안 보고 욕 갈겨버린 히어로 누구?]

[황 우 진]

[사실 자기가 싫은 놈들 차별하지 않고 다 까는 것 같기도]

[어허]

­속마음 님이 10,000원 후원!

[지금 생각하시면 어떠신가요? 아직도 변함없으신가요?]

“지금 시청자분이 후원하신 거야?”

“응. 가끔 자기 생각을 나한테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돈을 써서라도 저렇게 물어보긴 해.”

­팩트 님이 1,000원 후원!

[정보 팩트다]

“저거 봐.”

“그래 보이네요.”

“뭐… 그때는 제가 수련을 마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어렸을 때라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아.”

­속마음 님이 100,000원 후원!

[랄랄하지 마시구요 그런 가식적인 대답을 원한 게 아닙니다]

단가를 한층 더 올린 후원.

저건 내 속마음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자극적인 대답을 원하는 거다.

“여러분, 제가 아무리 막돼먹은 인간이라도 저도 이젠 성숙한 어른이에요. 여러분이 원하시는 그런 대답은…”

­진짜 속마음 님이 1,000,000원 후원!

[정말요?]

“제 생각은 그때랑 변함없습니다. 수련 끝마치고 왔는데 내 면상 앞에서 그런 개소리를 떠들면 제가 빡이 돌까, 안 돌까?”

“이 세속에 찌든 오빠를 용서하소서…”

방송을 키고 나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안정된 뒤

지금이야말로 소정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선 운을 띄워보리고 했다.

“요즘 왜 이렇게 빌런 검거 활동을 많이 하냐고? 아니 뭐 히어로가 그럴 수도 있지.”

“뭘 했는데 그래?”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물어보는 안소정.

저 아이는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연기를 했으면 어떨까 싶다.

동생을 처음 본 사람이 누가 유일교의 이단 심문관이라고 생각할까?

소위 교단에서 말하는 징벌에 임할 때 숭배자 녀석들의 골을 가차 없이 깨부수는 것이 교단의 이단 심문관들인데 말이다.

“아아. 요즘 악마 숭배자 놈들이 워낙 설쳐대서 대대적으로 조지는 중이야.”

“악마 숭배자?”

못 들을 거를 들었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안소정.

순간 이단 심문관 안소정의 인상이 동생의 얼굴에 떠오른다.

­들키기 싫으면 표정 관리해, 너 지금 인상 장난 아니야.

흠칫.

내가 속으로 보낸 전음에 놀란 소정이가 표정을 고치고 적당히 인상을 조절한다.

[와 손우진 동생도 나름 인상파인데...?]

[정말로 성직자 맞음?]

[와 왤케 살벌함 ㄷㄷ]

[옛날에 나 괴롭히던 이소희 생각났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고붕아...]

[특정 애들에게 PTSD ON 됐나 본데]

“죄송해요, 제가 아무래도 유일교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감정이 격해졌나 봐요. 그리고 저 정말로 성직자 맞거든요!”

품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그것을 꺼내 무언가를 화면에 비춘다.

그건 유일교 교단 재직 증명 카드.

공식적으로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이단 심문관답게 그 카드엔 신분이 위조되어 있다.

“여러분이 그 버러지 같은 놈들에 대해서 잘 모르셔서 그러나 본데…”

“저기 안소정 씨?”

“응? 왜 그래?”

“그래도 성직자인데 말할 때 쓰는 단어 선정을 조금만 약하게 하면…”

“아니! 내가 왜 그 쓰레기들을 배려해서 그래야 하는데!”

지금 이거 연기하고 있는 건가?

동생이 연기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배역에 삼켜져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방장 표정 ㅋㅋㅋㅋㅋ]

[손가놈 적수는 따로 있었네 ㅋㅋㅋ]

[쓰레기를 쓰레기라 부르는데 무슨 문제라도?]

[와 근데 일반인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말해도 되나?]

[ㄹㅇ 타겟 될까 봐 걱정되는데]

[어떤 병신이 손우진 동생을 건드려 ㅋㅋㅋ]

[그건 맞지 ㅋㅋㅋ]

“저는 유일교 신도로서 소신 발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놈들은 이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류에게 도움 하나 되지 않는 폐기물이에요!”

“그래, 너 마음대로 해라…”

“그 변절자 쓰레기들이 해 온 비열한 짓거리를 나열하자면 하루도 부족합니다!”

난 모르겠다.

소정이의 열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

.

.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될 때 방송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하고 이제 다 나가세요.”

종료하자마자 화면에는 현재 방송 중이 아닙니다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쉽다, 더 욕할 수 있는데.”

“야. 그 정도면 이미 일반인 수준을 넘어섰거든? 아무리 성직자라도 누가 그렇게 대놓고 욕을 하겠냐?”

“요즘 교인들은 너무 소심해서 문제야!”

“안소정 씨의 사상을 보니 유일교의 이단 심문관 미래가 정말로 밝네요.”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입질이 올까?”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듯 방송에서 온갖 욕은 다 해놓고서 이제 와서 걱정하는 꼴은 또 뭐냐.

평소 행실로 봐선 연기와 진심이 섞인 메소드 연기가 분명하다.

“뭐 미친놈들 중에서 특출나게 미친놈이 나오길 빌어야지.”

“화끈하게 지르긴 했는데 그래도 저번처럼 분신털 숨겨줄 꺼지?”

“시원하게 질러놓고 이제 걱정이 들어?”

“헤헤…”

놈들의 본거지에 잡혀가기 전까진 무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걱정이 들긴 하나 보다.

다 큰 동생들 뒷바라지에 내 허리가 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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