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우리 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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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달그락.
모두 함께 식사를 끝마치고 소정이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진다.
원래대로라면 나, 예은이, 유정이, 쌍둥이 순으로 도맡아서 했지만
동생 좋은 게 무엇인가?
다 큰 동생이 오빠 집에 와서 먹여줘 재워줘 가르쳐줬으면 이거라도 해야지.
나는 식탁에 앉아 안소정의 관리 감독을 하는 중이다.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 깨끗하게 해.”
“손님한테 설거지시키는 게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전혀. 장성한 동생은 손님이 아니지.”
“내가 오빠하고 말을 말아야지…”
잠시 투정해봤지만 내겐 통하지 않는다.
다시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소정이.
“무아지경을 길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잘.”
“장난치지 말고.”
“정성을 다해서.”
“아 진짜!”
“아니, 나름대로 사실을 말했는데 왜 화를 내세요? 혹시 배우기 싫으신가요 안소정 씨?”
“…조금만 더 상세하게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챔피으언?”
소정이가 이를 아주 악물고 공손하게 질문한다.
저러다 그릇 하나 해 먹겠네.
더 놀렸다간 동생의 손이 올라갈 것 같기에 그만 장난쳐야겠다.
톡톡.
나는 검지로 내 머리를 두들기면서 소정이에게 무아지경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내 생각엔 신체 능력은 충분해 보이거든, 근데 아직 평정심을 유지할만한 멘탈이 부족해.”
“역시 그런가…”
“이태까지 너는 이단 심문관으로서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지? 무아지경을 습득하기 위해선 그걸 개선해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내가 볼 땐 오빠도 멘탈 쪽이 많이 성숙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러니깐 나는 스승님 밑에서 맞아가면서 배운 건지 뭐. 원래 몸이 나쁜 애들이 머리가 고생하는 법이야.”
“…반대 아니야?”
“몰라. 그냥 대충 알아들어.”
소정이 수준에서는 무아지경만 습득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까처럼 내 싸구려 도발에 평정심이 흔들려서는 안 될 일이다.
소정이가 상대해야 할 놈들은 입담도 구릴 것이 분명하기에.
그것에 하나하나 반응해주면 정신과 육체와의 조화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신을 수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 폭포수 밑에서 물이라도 맞아 보던가.”
“그 수련법 효과는 있는 거야?”
“그건 나도 안 해봐서 모르겠네.”
“뭐야 그게! 흐응… 아무튼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지?”
얘기하는 사이에 소정이가 설거지를 끝마쳤다.
“우선 내일까지는 방에서 안 나올 거니깐 그렇게 알고 있어.”
“오호, 그렇게 여유 부리셔도 되는 거야?”
“어차피 무아지경을 습득하지 못하면 내기에서 이기질 못하니 의미가 없잖아. 오빠도 그걸 알고서 가르쳐준 걸 테고.”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악마 숭배자 놈들과 싸울 때도 오함마 대신 이런 냉철한 사고가 먼저였으면 좋겠건만.
지옥이나 악마와 관련된 것들이라면 안소정은 눈이 돌아가서 탈이다.
“아 맞다. 너 그런데 시험에 통과한다 해도 놈들 이목은 어떻게 끌려고 그래?”
“오빠가 잘하는 거 있잖아, 나도 그걸 좀 이용해보려고.”
“인방? 야 방송이 그렇게 쉬운 줄 아냐? 어느 한가한 이교도 새끼가 네 방송을 찾아보겠어.”
“걱정하지 마, 오빠 생각보다 놈들은 더 또라이니까. 그때 가서 살짝 도와주기만 하면 돼.”
자신만만한 태도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는 안소정.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시험에서 통과한다 쳐도 놈들의 이목을 끌어야 미끼가 되냐 마냐를 얘기할 수 있는데
방송으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 . . . .
자신이 말한 대로 소정이는 다음 날이 되어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길래 걱정이 돼서 찾아가 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 안에선 소정이의 목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자기 나름대로 수련을 하는 거겠지.
오늘은 내기 대련도 하지 않을 거 같아서 중간 보고를 위해서 협회를 방문하였다.
“그래서 생환자는 한승원 요원 말고도 한두 건이 아니다?”
“네. 이미 교단에선 레저렉션이라 명칭 짓고선 조사 중이었어요. 죽은 자들을 통해 지옥의 성좌를 위한 그릇을 만들려고 하는 소행으로 추측하고 있고요.”
“여전히 미친 새끼들이군.”
“항상 그런 놈들이었는데요 뭐.”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이단 심문관인 네 동생을 정말 그곳에 보낼 수 있겠어?”
“보내줘야지 어쩌겠어요. 안 보내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차라리 제가 통제하는 것이 훨씬 안전할 겁니다.”
“유일교 보육원 출신들은 어찌 사고뭉치들밖에 없으니 원…”
괜히 억지로 말렸다가 반발심이 생겨서 혼자 이교도 본거지에 쳐들어가서 인질이 되는 건 사양이다.
골이 아프신지 협회장님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신다.
그러다 내 쪽을 가리키는 아저씨.
“그건 그렇고 이 친구들은 왜 데리고 왔어?”
“아저씨한테 부탁이 있다네요.”
“나한테?”
“있잖아, 효천견 좀 불러주면 안 돼?”
“부탁해!”
집에서 정령들이나 조몰락거리고 있는 금각 은각이 안돼 보여서 협회에 데리고 왔더니
이 모양이다.
이번 대상은 아저씨의 수호 영물 효천견을 타겟으로 정한 모양.
아저씨의 담당 성좌가 이랑진군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리 계획하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효천견을 바둑이 취급하고 있어!”
“아아아아앙! 인간 제발! 천계에선 이랑진군 님 앞이라 제대로 만져보지 못했단 말이야!”
“불러줄 때까지 안 놓아 줄 거야.”
“아가씨들, 이것 좀 놓으라니까! 손우진! 빨리 와서 어떻게 좀 해 봐!”
이 쌍둥이에게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나.
그리스 출신 천 개의 머리를 지닌 용도.
올림포스 최고 주신의 독수리 전령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신령이라 불렸던 정령들도.
이 막무가내 자매 앞에선 그런 것은 하나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냥 시원하게 멍멍이 한번 불러주시고 끝내시는 게 어때요.”
“이 자식이 너도 바둑이 취급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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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
제법 큰 협회장실의 절반이나 채운 흰색 털뭉치가 기분이 좋은 건지 혀를 길게 내밀고 있다.
소원을 성취한 금각과 은각은 거대한 멍멍이에게 파묻혀 행복을 즐기는 중이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엔 승리한 것은 금각은각 자매.
한 회장님은 아이들의 집요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이랑진군의 충실한 번견은 지상에 와서 천계 출신 쌍둥이에게 이쁨을 받고 있다.
저것도 쌍둥이의 급이 되니 군말 없이 손길을 받는 것이지 평범한 인간이 그랬다면 짤 없었을 거다.
“후우… 이랑진군 님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에이, 성좌가 되어서 이런 일로 쪼잔하게 굴까요?”
“시끄러워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졸지에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되었지만 뭐 어때.
담당 성좌에게 혼나는 것은 아저씨인데.
“그래서 일은 어떻게 해결하시게요? 교단에 정식으로 협조 문서 보내실 거예요?”
“확실하게 말해. 우진이 너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 없어?”
“저는 당연히 조용하게 해결하고 싶죠. 괜히 교단 끼고 그러면 맘대로 날뛰지도 못해요.”
“도움은 필요 없고?”
“제가 도움이 필요하게 됐을 땐 인류 멸망 직전일 테니 괜찮아요.”
“자식이 겸손은 어따 팔아먹은 건지, 알았다.”
아저씨는 준비해두었던 서류를 책상 속 서랍에 다시 구겨 넣으신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봤을 땐 어떠냐?”
“놈들이 악신을 위한 육신을 이미 만들어두었고 손우진이 제 발로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타개책은.”
“악신이고 나발이고 8톤 철봉 앞에서는 대가리가 남아나지 않겠죠.”
악독한 지옥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서 3가지 방법 정도는 준비하고 있다.
때리고 부수고 와장창.
“세상 무식한 놈이 상대하기 가장 무서운 놈이라곤 하지만 이건 뭐…”
“저도 나름 두뇌파입니다만?”
“가장 무투의 표본다운 놈이 두뇌파를 자처하다니 하하! 지나가던 개도 웃겠군.”
웡!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이밍 참 요상하게 효천견이 짖는다.
“저거 지금 비웃은 거 맞죠?”
“이제는 하다못해 개한테까지 트집이냐?”
“아니 언제는 바둑이 취급하지 말라면서요!”
“자자, 볼일 다 봤으면 얼른 집에 가서 준비나 해. 천계 아가씨들은 안갑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아직이야.”
하얀 털뭉치에 파묻혀 있는 금각과 은각이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이에 체념한 아저씨는 담배 한 대를 피기 위해서 옥상으로 나를 끌고 왔다.
“후우…”
받은 스트레스를 한 모금에 담아 하늘로 훌훌 날려 보내신다.
“오랜만에 지상에 부르신 거 같은데 아저씨는 안 만져봐도 돼요?”
“내가 얼라도 아니고 무슨, 흐흐.”
“털이 엄청 부드럽긴 하던데.”
“넌 또 언제 만져봤어?”
“나오기 전에요. 드디어 만져봤어요.”
“……”
“또 왜요? 그거 만졌다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
“우진이 네가 많이 자라긴 한 모양이구나. 효천견은 자기 몸을 아무나 만지지 못하게 하는 거 기억하지?”
“어렸을 때 그렇게 부탁을 해도 못 만지게 하긴 했죠.”
견원지간이라는 말이 사실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저씨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자주 지상에 불려온 효천견은 내가 만지려고 해도
털끝 하나 못 만지게 했다.
그렇게 도도한 놈이 조금 으르렁거리는 것으로 넘어가 줬으니 말 다 했지.
녀석도 현재 내 수준을 어느 정도 눈치챘나 보다.
“맞아, 어제 예은이랑 얘기하다가 옛날 얘기가 좀 나왔는데.”
“뭐라고 했든?”
“그냥 밀레니엄 쇼크 때 얘기요. 소정이도 찾아오고 그러니깐 애가 좀 궁금했나 봐요.”
“되풀이되면 안 되는 과거지.”
“그러려고 노력 중이죠.”
“그걸 아는 놈이 이제야 복귀를 해서 고생을 해?”
“에베베베.”
아저씨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귀를 닫고 못들은 척 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힐끗 쳐다보자 한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끝났냐?”
“흐흐, 뭘 또 그렇게까지…”
“아무튼, 이번 일은 조심해서 진행하도록 하거라. 그 더러운 새끼들이 공을 들인 만큼 철저히 대비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알겠어요. 아 그리고.”
“또 뭐?”
“그때는 제가 죄송했어요.”
“그때? 그게 뭔 소리… 아아.”
너무도 늦은 사과에 아저씨는 씨익 웃으면서 내 등을 힘껏 내리친다.
파앙!
“이제야 철 좀 든거냐?”
“아오 좀! 아저씨 손은 지금도 아프다니까요!”
“손우진이! 엄살 피우지 말고 얼른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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