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84화 (84/106)

〈 84화 〉 레저렉션

* * *

“안소정씨, 아주 상전이 따로 없네요.”

휙!

지쳐 쓰러진 안소정을 손수 옮겨서 손님방 침대에 휙 던져놓는다.

털썩!

“아악! 아 좀…”

“데려다준 것만으로 감사해하지? 일단 푹 쉬고 다시 도전하고 싶을 때 찾아와.”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일 테지만 보기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씻고 자!”

“조금만 있다가…”

“이불 빨래는 자기가 하나, 어휴.”

쭉 뻗어서 잠에 취한 동생님을 내버려 두고선 방문을 닫고 나온다.

저래서 무슨 미끼가 되겠다는 건지.

정말로 내 몸에 손 하나 대지 못하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 실력도 없다면 위험성이 크게 올라가니 말이다.

그리고 교단이 악의 세력을 혐오하는 것처럼 놈들 또한 유일교를 극도로 혐오한다.

그런 혐오의 전쟁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이단 심문관이 넝쿨 째 굴러 들어온다면 놈들의 대접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안소정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나 말고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해.”

. . . . .

“너무 느려요. 언니의 문제점은 다음 동작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니, 사람이 어떻게 자기 행동을 의식 안 할 수가 있어!”

“저희는 일반인이 아니잖아요, 제가 시범을 보일 테니 잘 보세요.”

예은이가 전투 망치를 휘두르는 소정이의 모습을 보고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한다.

안소정을 위한 특별 초빙 강사로 하예은을 불러왔다.

둘이 전투방식도 비슷하기도 하고 같은 여자라 가르치는 데 부담도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예은이는 자신보다 어림에도 진지하게 가르침을 원하는 소정이의 모습을 보고서

호감을 느낀 것인지 기꺼이 수련을 도와준다고 하였다.

둘 사이에도 실력 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소정이가 답답함을 호소할 만도 하지.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모두 달성한 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챔피언을

단순히 이단 심문관인 소정이가 한 번에 따라잡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하다.

부웅!

예고도 없이 내 측면을 향해서 휘둘러지는 무지막지한 방망이.

뒤이어 매서운 파공음이 들려온다.

그 방망이의 주인인 하예은이 말도 없이 내게 휘두른 것이다.

허리를 굽혀서 방망이를 피하자마자 내 눈앞엔 이미 예은이가 발을 차올리고 있다.

공격을 피할 때마다 쉴 틈 없이 찾아드는 연계.

조금씩 회피를 억제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막아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퍼억!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니? 공격이 너무 매서운데 예은아.”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 올리브 나무 방망이를 결국엔 한 손으로 막아냈다.

이것도 내 몸에 손을 댄 것이긴 하니 하예은은 조건을 충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소정 언니한테 알려주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어쨌든 언니, 모든 공격에는 망설임이 있어선 안 돼요.”

“무투 히어로들은 괴물이야…”

우리가 맞춘 합을 보고서 질린 표정으로 나와 예은이를 바라보는 소정이.

“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 몸이라도 튼튼해야 벌어먹고 살지.”

“흠! 언니도 아저씨나 저처럼 몸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니깐 할 수 있을 거예요.”

“흐으응, 대체 어떻게 의식하지 않고 움직이라는 거야.”

“자 처음부터 천천히 배우면 돼요. 우선…”

예은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무투 히어로라면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는 잔재주다.

일명 무아지경.

우리의 신체 기관은 제각각이 경험한 정보를 뇌로 올려보내고

그러면 그 신호를 수신한 뇌는 정보를 종합한 후 상황에 맞게 다시 지시를 내린다.

가진 것은 좆도 없고 오직 몸뚱이 하나로 싸워야 했던 초대 무투 히어로들은

이 시간마저도 아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단 몇 초 차이로 목숨이 오고 가는 것이 크립티드와의 전투이기 때문에.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신체를 강제로 트랜스 상태에 빠뜨려 전투 말고는 어느 곳에도

신경 쓰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무아지경이다.

사용하는 순간 시전자는 오로지 모든 집중을 전투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지속될 경우 부작용이 막대하기에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히어로라면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단시간에 메인 시스템인 뇌의 저지 없이 육체는 고삐를 풀고 달리기 때문에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그 대가로 체력소모도 배로 늘어나게 된다.

단기간에 우위를 점할 순 있지만 뒤가 없는 기술.

빨리 강해져야 하는 안소정에게 어울리는 도핑 방법이다.

“후우…”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천천히 감정을 죽인 다음 마음속으로 고요함을 상상해 보세요.”

“하암.”

아이에게 걸음마를 알려주듯 친절하게 알려주는 예은이의 모습에 하품이 다 나온다.

무신병자라고 불렸던 선배 히어로들의 기술을 유일교의 이단 심문관이 배우는 꼴이란.

세상이 말세다, 말세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소정이가 저 멀찍이 있는 내게 와서 자신만만한 얼굴을 들이민다.

“도전할게.”

“자신은 있고?”

“완벽하게 배워 왔거든, 빨리 일어나.”

“오오, 꿈이 야무지구나 소정아. 무아지경 하나를 배웠다고 내기에서 이겨 먹으려고 하다니.”

“챔피언님, 쫄?”

“쫄은 무슨! 따라와.”

넌 남자에게 가장 언급해서는 안 될 말을 입에 담았어.

그 도발을 듣고 응하지 않는 자는 남자가 아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대련장에 올라갔다.

“후우…”

내 앞에서 무아지경을 준비하는 안소정.

“야, 적들이 그 꼴을 보고 잘도 기다려주겠다, 지금이 수련이니깐 봐주는 거야.”

“아 좀! 나도 알고 있거든? 오늘 처음 배운 거니깐 이번엔 넘어가 줘.”

“실례지만 되게 뻔뻔하시네요. 알았어.”

“후우…”

마이룰을 시전하고선 다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 안소정.

어렸을 때부터 오빠를 이겨 먹는 데 도가 텄다.

소정이가 눈을 떴을 땐 느껴지는 기세가 달라져 있다.

부웅­

“어이쿠.”

어제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망치의 속도.

동생의 머릿속엔 오로지 나를 때리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뇌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신체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마구 달린다.

스피드는 일단 합격.

휘두르는 전투 망치의 위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바닥을 내려찍도록 유도해본다.

콰아앙!!!

“호오.”

단단한 대련장 바닥에 금이 간 것을 보니 동생이 얼마나 노력 중인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봐줄 생각은 전혀 없다.

“동생아, 무아지경은 만능이 아니란다.”

안소정은 무아지경을 사용한 이상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무아지경을 뒷받침해줄 정신과 체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점을 파고들기로 한다.

“아직도 느려터졌잖아. 소정아 정말로 이게 최선이야?”

트랜스 상태에 빠졌다고 해도 귀는 열려있을 터.

“어느 세월에 한 방 먹이려고 그래. 그 자식들 벌써 다 도망쳤겠다.”

나는 계속해서 동생의 속을 박박 긁어댈 만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까 수련하던 모습이 더 재밌을 지경이야. 하아암, 이거 봐. 하품이 다 나오네.”

“오빠!!!”

계속되는 도발에 평정심이 흔들려 소정이의 무아지경이 풀린다.

“이게 무슨…”

“큭큭. 말했잖아, 무적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지속 시간이 끝나자마자 풀썩 주저앉는 안소정.

무아지경 상태에 들어섰다고 해서 감정 또한 소거되는 것은 아니다.

평정심이 무너지는 순간 집중이 깨져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흑…”

“몸이 막 쑤시고 그렇지? 아무런 생각 없이 움직일 땐 좋았겠지.”

“정말 지독하시네요. 소정이 언니가 불쌍해요.”

“예은아, 원래 동생들은 강하게 커야 하는 법이야.”

예은이에겐 따로 당부를 해서 무아지경의 부작용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부탁해 두었기에

소정이는 지금 저기서 몸소 부작용을 겪는 중이다.

충분히 시간이 흐르고 부작용이 끝나갈 때쯤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천도복숭아 한 조각을 기진맥진한 소정이에게 먹여준다.

“괜찮냐?”

“이 미친 오빠 새끼 같으니! 죽어!”

“지금 때리는 건 인정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야!!!”

기운을 차리자마자 달려드는 소정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때려보겠어.

관대한 나는 동생의 투정을 아낌없이 받아준다.

복숭아를 먹고 회복한 소정이는 조금 더 수련하고 온다기에 예은이와 수렴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빠.”

“허, 하예은 씨는 철저하게 둘이 있을 때만 호칭이 달라지시네요. 하나만 해도 돼.”

“제 마음이거든요! 아무튼,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아저씨도 소정 언니랑 같은 보육원을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왜 사제의 길이 아니라 히어로를 선택하신 거예요?”

“하하, 안소정이 그 짧은 시간에 술술 털어놓았나 보네.”

“혹시 불편하시다던가…”

“아냐, 불편할 게 뭐 있어. 왜 히어로가 됐냐라… 난 사실 크립티드만큼이나 성좌들도 싫었어.”

“네?”

나를 거둬준 것은 교단 사람들과 신부님들이었지만 모순적이게도 난 교단의 성좌들을 죽도록 싫어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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