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81화 (81/106)

〈 81화 〉 비밀

* * *

“운디네, 들려요?”

[네에 무슨 일이신가요? 어머!]

허공에서 푸른색 물의 정령이 파앗 하고 나타난다.

“다름이 아니라 제 꼴이 이런데 묻은 피 좀 닦아줄 수 있을까요?”

[놀래라, 우진 당신의 피는 아니죠?]

“조금 사고가 있었어요, 당연히 제 피는 아니고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깨끗하게 해 줄게요]

물의 정령 운디네가 기꺼이 내게 묻은 피를 닦아내 준다.

몸에 묻어 있는 찐득한 피는 물의 정령이 소환한 맑은 물방울에 빨려 들어간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있나.

암실에서 유재혁과의 재회는 묘한 찝찝함만 남아버렸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걸까?

꼬리가 밟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잔챙이 녀석까지 희생시켜버리다니.

악신의 사고회로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손우진 챔피언! 괜찮으십니까?”

커다란 폭발 소리와 감시 카메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암실의 교도관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예, 저는 괜찮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이번 면회가 놈의 뒷배에 있던 악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것 같네요. 유재혁은 꼬리 자르기를 당한 겁니다.”

“허어… 이거 참.”

“끔찍하군.”

잔혹한 현장을 보고선 혀를 내두르는 교도관들.

나야 워낙 튼튼하니 근접거리에서 생체 폭파 공격을 당했어도 기분만 찝찝해질 정도로 넘어갔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산산조각이 나서 파편들이나 찌꺼기는 청소가 필요할 겁니다.”

유재혁의 입을 틀어막은 것으로 이번 사건에 지옥 쪽 세력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암실에 더 볼 일은 없다.

“저는 다른 조사 건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예알겠습니다.”

암실에서 나오면서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저예요.”

­오냐. 뭐 좀 알아낸 건 있고?

“이번 사건은 지옥 쪽이 엮인 게 맞는 거 같아요.”

­확실한 거냐?

“예, 유재혁이 심문당하는 도중에 사망했어요. 놈이 모시고 있던 악신은 사탄밖에 없으니 그쪽에서 입막음한 거겠죠.”

­다친 데는 없고?

“그런 허접한 공격에 당하면 수련한 시간이 아깝죠.”

­하아… 그쪽은 한동안 얌전하더니 또 왜 지랄인지, 아무튼 수고 많았다.

“그럼 저는 한승원 씨를 만나러 가볼게요.”

­그래, 이상한 징후가 있으면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해도 괜찮으니 몸조심하거라.

“옙.”

자율 행동권을 줬다는 건 아저씨 스스로도 한승원 씨의 정체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다는 거겠지.

지금 한승원 씨는 과연 생전의 한승원 씨와 같은 인물일까.

지옥의 악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해서 고인을 되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봐야 답이 나올 것 같다.

“그나저나 집에 좀 들러야겠는데, 옷이 다 엉망이 됐네.”

유재혁의 폭발에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입고 있는 옷의 꼴이 말이 아니다.

뼈 파편 같은 것에 구멍이 숭숭 나버렸다.

이대로는 돌아치기도 뭐해서 구름을 불러 일단 화과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엔 금각과 은각이 머리에 정령들을 얹고선 티비를 보고 있다.

너희는 또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냐.

“얘들아, 나 왔어.”

“우진아 왔… 옷이 왜 그래?”

“구멍이 이곳저곳 슝슝 뚫렸네.”

아이들 눈에도 이상하긴 한가 보다.

“일하다가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옷 좀 갈아입으러 왔지.”

“무슨 일?”

“대체 어떻게 하면 구멍이 그렇게 났는데?”

“음… 불꽃놀이 구경.”

문제는 폭죽이 아니라 다른 것이 터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정령들이랑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응? 너무 귀엽잖아!”

“난 샐러맨더가 제일 좋아!”

[너희 자매한테 다시 말하겠는데 애완동물 취급은 하지 말랬지! 으악!]

“화내는 모습도 너무 귀여워!”

은각이 투덜거리는 불의 정령을 붙들고선 놓아주질 않는다.

태상노군 어르신의 보패, 화염의 파초선으로 샐러맨더보다 더 뜨거운 불도 다뤘던 아이라서

불의 정령을 아무렇지 않게 껴안아 버린다.

[이봐 인간! 제발 날 같이 데려가 줘!]

“불 피울 일이 있으면 부를게, 그럼 수고해.”

쌍둥이에게 붙들린 불의 정령에게 애도를 보낸다.

금각과 은각을 상대하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옷을 갈아입은 뒤에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지니고 있을 한승원 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직 블랙 요원 한승원 씨는 다시 돌아오고 나선 일선에서 물러난 뒤 비밀 감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에게도 설명했지만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태도였다고 하는데 과연 진심일까 연기일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내가 가는 것이다.

화안금정 앞에서는 어떤 거짓말도 위장술도 통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승원 씨가 거주 중인 아파트에 도착했다.

내가 알기로는 이곳 단지 모두가 협회의 소유로 알고 있는데…

공동 현관문에서 그의 집 동호수를 누른 뒤 기다리자 잠시 후 응답이 들려온다.

­누구십니까?

“히어로 손우진입니다, 협회 조사 건으로 방문했습니다.”

­앗, 손우진 챔피언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위이잉.

스르륵 열리는 자동 현관문.

스물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이런 좋은 집을 혼자 힘으로 산 것 같지는 않고 협회에서

복지 차원으로 제공한 건가.

그렇지만 집안에는 감시 카메라를 덕지덕지 숨겨놓았겠지.

전직 블랙 요원이었으니 한승원 씨도 자신의 처지는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도착한 그의 집 앞.

띵­동!

초인종을 누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린다.

“안녕하십니까! 손우진 챔피언!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생긴 것처럼 열혈 청년이구만.

블랙 요원들은 재미없는 스타일이 많은데 이건 또 나름대로 신선하다.

건장한 체격의 한승원이 악수를 먼저 건네온다.

그와 악수를 하면서 슬며시 그에 대해서 빠르게 파악한다.

생기있는 눈동자에 손에는 온기가 느껴지고 사기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겉으로만 봐서는 절대로 망자로 보이진 않는데 말이지.

“아 참,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들어오시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한승원의 안내에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제 원래 집이 아니라서 죄송하게도 딱히 대접해 드릴 것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대접 받으려고 온 것도 아닌데요 뭘.”

역시 협회에서 제공한 집이었나.

나는 한승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하였다.

전직 블랙 요원을 두고서 빙빙 돌려봤자 시간 낭비일 거 같아서 직선으로 돌격해 보기로 한다.

“블랙 요원이기도 하셨으니 제가 온 이유는 어렴풋이 눈치채셨죠?”

“아… 예. 아무래도 제 신상에 대해 조사하러 오신 것이겠죠.”

덤덤하게 대답하는 한승원.

요원치곤 젊은 축에 속하지만 그래도 블랙 요원은 블랙 요원이라는 건가.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어떻게 눈치채셨는지 대답해 줄 수 있나요.”

“예. 물론입니다. 기억은 없지만 제가 정신을 차리고 협회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이 저를 보고선 주춤거리는 것을 보고 느꼈어요, 제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말이죠.”

“현장에서 돌아온 블랙 요원에 대한 경외심이나 거부감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혐오나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그런 식의 감정을 느꼈거든요.”

혼란스러운 순간에 그 부분을 정확히 캐치했군.

아무래도 자신들이 한승원의 시신까지 수습하고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장례와 화장까지 치뤘는데 그 당사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당황할 만도 하지.

아마도 그리스도의 12제자와 같은 심정들이 아니었을까.

협회의 사람들이 아무리 프로들이라고 그래도 이런 기상천외한 사건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협회에선 한승원 씨 본인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따로 고지를 하던가요?”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저도 심상치 않은 일이란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서 상호 동의하에 휴직을 결정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몇 가지 질문을 건넬 테니 신중하게 대답해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습니까?”

“예, 문제없습니다.”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당신은 협회의 블랙 요원으로 활동했던 한승원이 맞습니까?”

“예. 저는 한승원 본인이 맞습니다.”

진실.

“한승원 씨.”

“예?”

“당신은 지난 현장 임무, 악마 숭배자들의 뒤를 밟는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에 실종되었습니다.”

“…”

“제 눈을 보고 대답해주세요. 본인은 이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진실.

화안금정을 발동하고서 들은 그의 대답은 계속해서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함께 임무를 수행 중이던 요원들이 당신을 찾아다녔지만 수색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고…”

“후우… 후우…”

그의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거세진다.

쏟아지는 잔인한 진실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은 버거울 것이다.

“당신은 한 달 뒤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예…?”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승원의 시신이 발견된 것도 사실이고 지금 그 당사자가 그에 대한 진실을 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깐.

“협회는 한승원 씨의 시신을 수습하고 절차대로 블랙 요원의 장례를 진행, 당신의 유골은 희생한 요원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건…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저는! 저는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합니다!”

“한승원 씨.”

“아니야… 요원 적합성 시험을 진행 중일 수도 있잖아, 진정해야 해…”

“한승원.”

신성을 끌어올려 안력에 최대한 힘을 집중시킨다.

혹시나 놓칠 수 있는 진실을 잡아채기 위해서.

혼란에 빠져있다 그에 위화감을 느낀 한승원이 그제야 이쪽을 바라본다.

“다시 한번 묻겠다. 당신은 협회의 블랙 요원으로 활동했던 한승원이 맞는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