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78화 (78/106)

〈 78화 〉 즐거운 나의 집

* * *

부재중 전화 15건.

모두 우리 회장님이나 아저씨의 비서실장 한지수에게서 걸려온 것이다.

우리 회장님이 뭐가 급하신 건지 전화를 그리도 걸으셨을까.

방송 중에는 연락을 잘 확인하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전화가 울려도 받지 않았는데

통화가 되지 않자 같이 지내는 예은이에게 부탁한 모양이다.

몇 번의 신호음과 함께 전화를 받으시는 아저씨.

“전화하셨어요?”

­우진이 너! 내가 몇 번을 연락했는데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협회장 아재와의 대화는 잔잔한 톤으로 시작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초장부터 버럭 소리를 지르시는 아저씨.

“방송 중이니까요, 알고 전화하신 거 아니었어요?”

­그걸 아는 놈이 약을 올려!

“큭큭 죄송해요. 그래서 무슨 일이신데요?”

­안 그래도 그놈의 방송 때문에 전화했다. 생방송에서 실수한 건 없지?

“걱정하지 마세요. 자세한 속사정이나 민감한 사항들은 입 밖으로 안 꺼냈어요.”

뭐 미국 입장에선 헛짓거리를 하다가 내게 빚이 생긴 것이지만

그 헛짓거리 한 것을 내가 밝히지 않아 준 것이 어디인가.

그 정도는 자신들이 감수하고 가야지.

­그건 그렇고 정말로 공개할 셈이냐? 그… 성좌에 대한 정보 말이다

“프흐흐흐! 우리 아저씨가 이렇게 순진하시네.”

­야!

“물론 예상하신 대로 공개할 거지만요.”

­손우진 임마! 안 그래도 정부에서 공문이 왔는데 다 같이 협의한 후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끊을게요. 쉬고 내일쯤에 방문할 테니 그때 봬요.”

­우진아! 손우진!

띠링!

아저씨같은 높으신 분들은 이런 사소한 것도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 뻔해서 멋대로 끊어버렸다.

꺼두었던 캠과 마이크의 음소거를 푼 뒤 방송을 재개한다.

“저 왔습니다.”

[누구랑 그렇게 오래 얘기하냐]

[언년이야?]

[뭐 하다가 이제 온 건데]

[노크한 사람 누군지 순순히 불어라]

[애태우는 데엔 장인급 실력]

[또 6분짜리 광고 안 틀고 간 게 어디냐?]

“억측들 하지 마시고, 협회랑 통화하느라 좀 늦었어. 윗선에선 성좌와 관련된 정보를 푸는 것을 반대하시는 모양인데 어떻게 할까?”

[아 지랄노]

[협회도 감 존나 없네]

[락]

[나]

[너무한 거 아니냐고 C8]

[손우진은 그런 ㅆ게이가 아닌데]

“어휴, 여기서 안 하겠다고 하면 살인 나겠네. 알았어 그만해.”

우리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밝힐 수밖에 없다.

이건 불가항력 사항이니 회장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미국에 다녀오면서 좋았던 점이 뭐냐면 오랜만에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던 점이야.”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참 오랜만이었다.

스승님 밑에서 수련하던 시절 이후로 처음이니 말이다.

히어로 활동 시절엔 쉴 틈도 없이 크립티드를 때려잡느라 그럴 시간도 생각도 없었고

일선에서 물러나 방송을 할 땐 안락한 삶에 빠져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대자연 속에서 생각을 좀 해봤거든, 과연 현대 인류는 고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야.”

거룩하고 성스러운 태초 시대의 신들.

신들의 시대가 막이 내리고 인간의 시대를 개척한 영웅들.

그리고 다시 한 번 개벽이 됨과 동시에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 인류.

각 세대별로 모두 출발점이 다르다.

셋 모두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 세대를 바라보면서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할게, 난 가능하다고 생각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채팅창이 우수수 올라가기 시작한다.

대강 몇 개의 채팅을 읽어보니 자신들이 성좌의 위치에 올라선 것도 아닌데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조금 있으면 이런 분위기에 초 치는 발언을 해야 하는데 이를 어쩐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한 단계 진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의견들 없습니까?”

[신성 같은 걸 끼얹나?]

[성좌처럼 신도부터 모아보자]

[신도라면 이미 킹고아들이 있는데?]

[어떤 신도 새끼들이 즈그 신을 까냐고 ㅋㅋㅋ]

[내가 방장이었으면 성좌 되자마자 이 방 새끼들 대가리부터 깼다]

[압도적인 무력!]

[그걸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고 ㅋㅋㅋ]

“너희한테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린 아무 잘못 없어~]

[ㄹㅇ 물어본 니 잘못이야]

[너무 자조적으로 말하는 거 아니냐 ㅋㅋ]

[방금 좀 찐텐 나왔는데?ㅋㅋㅋ]

“다들 셧더퍽업하고, 어쨌든 간에 인간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시청각 자료를 가져와야겠다.

그림판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화면에 띄운다.

“우리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피와 뼈, 무수한 살덩이와 장기들.”

육체를 뜻하는 정?.

“그 그릇에 자리 잡아야 할 순수한 영혼.”

영혼을 뜻하는 신?.

“마지막으로 신성.”

고귀한 기운인 신성을 뜻하는 기?.

그림판에 그려놓은 원 모양 도형에 차례대로 정, 신, 기를 적어 넣는다.

각 원에서 뻗어 나온 화살표가 가르치는 곳에는 삐죽삐죽 그린 태양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도 모자랄 것 없이 모두 극한의 상태까지 끌어 올려야 여러분은 성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고요가 찾아온 채팅방.

곧이어 수많은 갈고리가 달린 질문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게 다임?]

[너무어려운데]

[방금 손우진이 말한 거 이해한 사람?]

[이 방에서 아무도 이해 못 했을 듯 ㅋㅋ]

[너무 난해하고 추상적인데 자세한 설명좀 해줘요]

[‘해줘’]

[선생님 눈높이 교육이 필요합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네]

이런 반응을 예상은 했지만 보통 사람인 시청자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혹여나 내 방송을 보고 있을 히어로 중에서도 이해한 녀석은 얼마 없을 것이다.

아직 말하진 않았지만 이건 무투파인 내가 나름대로 정립한 이론인 만큼

애초에 강림쪽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들 뭐 성좌 자격증 시험 준비하세요? 왜 그렇게들 자세하게 알려고 해.”

[ㅖ]

[궁금해서요]

[요즘 세상에 성좌 1급 정도는 갖고 있어야지]

[몰랐음? 요즘 유행임 ㅋㅋ]

[오늘부터 준비 좀 하려고요]

­user123 님이 500 후원!

[Champion SON, J'ai une question. Pourquoi ces trois facteurs doivent­ils être mis dans des conditions extrêmes?]

“챔피언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세 가지 요소 모두 극한의 상태까지 끌어 올려야 합니까?”

그때 들어온 한 후원.

500유로를 후원한 것과 말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프랑스인이 내 방송을 보고 있었나 보다.

이게 뭐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보고 있는 걸까?

하긴 몇 십만 명의 시청자 중에 외국인이 없을 수가 있나.

협회장 아저씨가 걱정하던 이유를 알겠다.

혹여나 다른 나라의 히어로들이 내 방송을 보고선 힘의 균형이 뒤죽박죽 변하는 것을 염려하셨나 보다.

하지만 그럴 일은 맹세코 없을 것이다.

성좌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난 히어로는 때려치고 승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겠지.

“유저123, 후원 고맙고 다음부터는 간단히 번역기라도 돌려라. 나는 알아듣는데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 듣잖아.”

[본인이 번역해줘도 되는 걸 우리 핑계로 떠넘기죠?]

[귀찮은 건 못 참지]

[으딜 바게트쉑기가 날로 처먹으려고]

[팔이 바게트 ㅋㅋㅋ]

[ㄴㅈ]

“왜 세 가지 요소 모두 극한까지 완성해야 하냐면, 애초에 성좌라는 양반들은 완전무결한 존재니까 그렇지.”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채 영원을 사는 존재들, 그게 바로 성좌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늙어가고 나약해지는 인간들과 달리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

언제나 최상의 상태의 육체를 지니고 있기에 정신 또한 오염되지 않는다.

“뭐 신선이나 미스터 붓다처럼 초인적인 정신력만으로 성좌에 올라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그분들이라고 쉬웠겠냐.”

그래서 인간이 그들을 모방하기 위해선 육체와 기운을 갈고 닦아서 초월적인 정신, 클리어 마인드 또는 명경지수의 경지까지 도달해야 한다.

“건강한 육체에 맑은 정신, 그리고 올바른 기운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새로운 성좌가 탄생하겠지.”

­user123 님이 500 후원!

[답변 고맙다. 손 챔피언. 나는 한 가지 더 질문 있다, 그렇다면 어드벤트 영웅은 어떻게 신성한 기운을 해야 하는가?]

내 답변에 만족했는지 프랑스인 유저123이 또 다시 후원을 했다.

아까 전 피드백을 반영한 건지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번역기 말투로 말이다.

“강림 쪽, 그러니깐 어드벤트 히어로에 대해서 물어본 거지?”

사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건 신성을 내려주는 성좌가 고민해야 할 일이지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니라서 말이다.

“그거는 뭐… 그쪽이알아서 해야지 흐흐. 그러게 애초에 무투파로 시작했으면 좋잖아.”

[원숭이 쉑 책임감 ㅆㅅㅌㅊ]

[남일]

[으딜 강림 쉑들 날로 처먹으려고 ㅋㅋㅋ]

[무투라고 해도 날로 못 처먹는데? 업적작 난이도 수준 봐라]

[요약하자면 인간의 태생을 극복하라는 소리잖아 ㅋㅋㅋ]

[난이도 좆망겜이네 ㅋㅋ]

[성좌들 모두 고인물이었던 거임~]

­ badassman556 님이 3000$ 후원!

[나도 질문 하나 있다. 챔피언 당신의 경지는 어디에 도착했는가?]

“좀 다른 나라 애들한테 본 좀 받아라. 얘들은 동방예의지국에 살지도 않는데 이렇게 예의를 잘 알잖냐.”

[ㅎㅎ;;ㅈㅅ..ㅋㅋ!!]

[후원하는 놈들 암튼 다른 나라 쁘락치라고 ㅋㅋ]

[유입 새끼들 건방지게 오자마자 후원을 해?]

[ㄹㅇㅋㅋ]

저놈은 다른 나라 히어로 관계자가 분명하다.

왜냐하면 내 방송에서 저렇게 거금을 툭 건넬 시청자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거든.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이 답변 하나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할 수도 있다.

“나는 말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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