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76화 (76/106)

〈 76화 〉 즐거운 나의 집

* * *

“그래서 국내 상황은 좀 어때?”

“똑같지, 네가 사고 치는 바람에 항상 소란스러워.”

“아직도 그래? 조용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네가 미국 가서 한 짓을 생각 좀 해봐. 한두 건이어야 말이지.”

퉁명스럽게 말하는 분신.

내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고생 꽤 했나 보다.

“나 때문에 고생 꽤 했나 본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래서 뭐 하려고 왔어?”

“이 방에 들어온 이유가 뭐겠냐, 뻔하지.”

“아 그러세요, 난 좀 쉬러 간다.”

펑!

자리에서 진우 놈이 일어서자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분신들이 펑 하고 사라진다.

“확실하게 해명 좀 해 줘, 내가 방송할 때마다 물어보는 것도 지긋지긋하니깐 말이야.”

“오케이.”

진우 녀석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방송을 엘레나와 진우 놈에게 맡기고선 처음인가,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난 뒤 처음 앉아보는 방송용 의자.

항상 이곳에 앉아서 방송하고 떠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한동안 앉지 않았다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 어떻게 이목을 끌지 고민해본다.

“뭐가 재밌을까…”

제목을 짓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방송을 업으로 삼았을 땐 어떻게 했나 몰라.

“그냥 내 마음대로, 꼴리는 대로 지어서 힘들 수가 없었지 참.”

새삼스럽게 이런 고민을 하다니, 이런 건 내 방식이 아니다.

타닥 타닥.

키보드를 두드려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뭐 해?]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산뜻한 바람.

안 봐도 뻔하다, 바람의 정령 실프다.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왔어?”

[바람에게 갈 수 없는 곳은 없지]

“친구들은 어쩌고 혼자 왔대.”

[다른 애들은 모두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았단 말이야, 거기서 안 나와]

정령 입장에선 자연의 기운이 가득한 화과산이야 말로 낙원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까탈스러운 솜사탕이 만족할 만한 곳은 없었나 보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깐 얌전히 있어 줘.”

[네에]

실프는 그렇게 대답만 하고선 방안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다.

방송을 하는 동안 실프를 가만히 내버려 둬도 될지 모르겠네.

. . . . .

공항에서 손우진의 일행들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헛걸음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 돌아온 챔피언은 결국 공항에 등장하지 않은 채

출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장 구름을 타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는 과연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건가?

대체 미국행의 이유는 무엇이며 그의 정체성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의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증식하기 시작했다.

손우진은 외부에 어떠한 의견도 표하지 않고서 자신의 거처인 화과산으로 돌아간 상황.

모두가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알람이 잠을 깨고 울리기 시작했다.

­손우진 님이 생방송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알림을 보내온 손우진의 본래 계정.

이를 받은 사람들은 허겁지겁 그의 채널로 향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로 왁자지껄하다.

[일반][손우진 방송 켰드으ㅏㅏㅏㅏㅏ]

[작성자:손우진방송안키냐 ]

[이새끼 드디어 방송 켰다아아아아아

짭 아니고 찐이 방송 켰죠? ㅋㅋㅋㅋㅋ

손우진 뒤졌다 ㅋㅋㅋ 도배 계정 미리 준비해뒀다 ㅋㅋㅋㅋ

도배 존나 달려서 방송 최대한 오래 볼 예정 ㅋㅋㅋㅋ

방송 보러 감 ㅅㄱ]

[ㅇㅇ: 광신도 게이야...]

[히갤에몽: 드디어 돌아버린 거냐]

[초코찐빵: 몇 날 며칠을 꾸준글 쓰더니 성공했네 ㅊㅊ]

ㄴ[ㅇㅇ: ㄹㅇ 이 새끼 한 100일 넘게 이 지랄 했는데 이걸 성공하네 ㅋㅋㅋ]

ㄴ[초코찐빵: 그래서 이제 방송 켰으니 꾸준글 안 쓸 거지?]

ㄴ[손우진방송안키냐: 응 오늘 이후로 또 안 키면 다시 쓸거야 ㅅㄱ]

ㄴ[초코찐빵: 텐련이 방송 보러 갔다면서]

[깐프단교주: 아 이 새끼 갑자기 왜 오는 건데;;]

ㄴ[ㅇㅇ: 변절자 쉑 ㅋㅋㅋㅋㅋㅋ]

ㄴ[깐프단교주: 버림 당해서 개종한 건데?]

ㄴ[ㅇㅇ: 호감고닉 전 고아단교주님 반가워요]

[히포: 그래서 왜 방송 켰는지 아는 사람?]

ㄴ[재미나이: 아직 시작도 안 했음 그냥 방송만 틀어두고 어디 갔나 본데]

ㄴ[히포: 오랜만에 와도 한결같은 새끼... 안 그리웠습니다]

. . . . .

[언제 시작하냐고 한 번 물어봤다 언제 시작하냐고 두 번 물어봤다 언제]

[히갤에서 왔습니다 히갤에서 왔습니다 히갤에서 …]

[채팅창 혼자 쓰냐 시발놈들아]

[손우진 챔피언 데일리 히어로의 장진우 기자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하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

[글로리 뉴스의 이지영 기자입니다. 단독 인터뷰 가능하신지 의사를 여쭤보기…]

[역대급으로 지랄 났네]

[어우 시발 채팅 속도 봐 슬로우라도 걸어!!!]

[우진진님 한판해요 우진진님 한판해요 우진진님 한판해요 …]

[화면 저만 안나오나요? 화면 저만 안나오나요? 화면 저만 안나오나요?]

[이 새끼 분명 채팅 보면서 혼자 즐기고 있음]

.

.

.

맞다.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찾아온 수많은 인파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채팅방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다.

송출용 캠도 꺼두었기에 검은 화면만이 떠 있는 상황.

우아한 클래식 음악만이 이 혼란 속에서 어울리지 않게 흘러나오는 중이다.

이렇게 개판이 났던 적이 얼마 만이더라…

마지막 방송에서 은퇴 선언을 했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시청자 수는 삼십만 명을 훌쩍 넘은 상황에서 평화로운 채팅방을 바라는 것도 웃기긴 하다.

“채팅 하나하나 읽고 있어요, 매너 채팅들 하세요.”

[말했다!]

[믿고 있었다고! 손우진!]

[손우진 챔피언 데일리 히어로의 장진우 기자입니다 … ­>매니저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읽음?]

[도배하던 새끼들 갑자기 왜 멈춤 ㅋㅋㅋ]

[지랄하네 이 속도로 읽긴 뭘 읽어 시발롬아 ­> 매니저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동체시력으로 보이나 본데]

[방송 원투데이 보나 ㅋㅋㅋ]

시청자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이제 좀 조절할 필요가 있겠지.

원할한 방송을 위해서 내 채널을 팔로우 한지 2년이 넘어가는 이들만 채팅을 칠 수 있게 방 설정을 변경하기로 한다.

제약을 걸자마자 급속하게 느려지는 채팅.

[유입 쉑기들 컷]

[ㅋㅋㅋㅋ 팔챗은 못 참지]

[다 아는 닉네임들이구만]

[으딜 유입 쉑기들이 채팅을 치려고]

[지독하네 2년 이상인 놈들도 뭐 이리 많아]

[개국공신이다 이 말이야]

“얼추 온 것 같으니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반갑습니다. 손우진입니다.”

꺼 두었던 캠을 켜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물론 의자에 뒤로 기댄 모습 그대로 말이다.

[세상 편하다 진짜]

[우리 방장님도 한결같으시네요]

[몇십만 명이 보든 말든 꾸준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왜 창피는 우리 몫이냐]

[누워서 방송 안 하는 게 어디야]

[여전하다 진짜]

“출장 끝나고 귀국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지랄들인데 내가 안 피곤하겠냐? 그냥 닥치고 봐.”

[이 매운맛 그리웠다!!!]

[몇 명이 보든 할 말은 한다 ㅋㅋ]

[시작부터 빠꾸없이 박아버리죠?ㅋㅋㅋ]

[방송 보러 온 외국 놈들 화들짝 ㅋㅋㅋㅋ]

“아무튼, 다들 알다시피 요즘 들어 저에 대한 소문들이 무성해서 이렇게 해명하고자 왔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보여주기로 한다.

1. 미국행에 오른 이유

2. 무슨 일을 하고 온 것인가?

3. 현재 도달한 경지에 대해서

“세 가지로 추려봤는데 어때요? 이 정도면 만족들 합니까?”

[ㅇㅈ]

[진짜 궁금한 것만 추려왔네]

[얼른 시작합시다]

[자 드가자~]

[이걸 알려주네 ㅋㅋㅋ]

[웬일로 알려주냐 걍 무시해도 그러려니 했을 텐데]

“먼저 미국을 다녀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화기가 울리는 것을 보아하니 협회나 미국 측에서 연락이 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기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미국이 저한테 빚을 진 게 좀 있어요, 그걸 덜어주기 위해서 미국의 초대로 동생들과 휴가 겸 출장을 다녀온 것뿐입니다.”

커다란 빚을 지긴 했지.

감히 내 앞에서 친구들의 안위를 들먹였으니 말이다.

참고 넘어간 준 것만 해도 많이 인내한 것이다.

[그 빚이라는 게 뭔데요]

[얼마나 큰 빚이면 그레이트 원을 해체하고 오냐고 ㅋㅋㅋ]

[역시 이쪽이 갑의 위치였구만]

[양키쉑들 무슨 자신감으로 빚지고서 서부 좀 해결해달라고 한 거냐?ㅋㅋ]

[그레이트 원도 관련된 일임?]

[공항에서 깽판친 건 빚이랑 관련된 거?]

“빚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사정상 말해 줄 수 없고. 그래, JFK 공항에서 벌인 일에 대해서 말할게.”

내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 시청자들.

“맞아, 솔직히 말하면 꼴 받아서 그랬어.”

[무친 놈 ㅋㅋㅋㅋㅋㅋ]

[존나 당당하네 ㅋㅋㅋㅋㅋ]

[주우모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이 국풍당당 K­히어로다]

[속마음 OPEN ㅋㅋㅋㅋ]

[가식 없는 이 당당함 ㅋㅋㅋ]

“내가 출발 전에도 분명히 언급 했거든? 미국 내 사건에는 개입할 생각이 없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것들이 공항에 도착하니 은근슬쩍 서부의 상황을 언급하네?”

우우웅­

전화기가 계속해서 울리지만 무시한다.

“기자 새끼들은 인권을 들먹이지, 미국의 높으신 양반들은 아무 말 없이 뒷짐 지고 서 있지. 내가 꼴이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팩트) 손우진 성격에 많이 참은 거다]

[이건 못 참지~ ㅋㅋ]

[자기 무덤 알아서들 팠네 ㅋㅋㅋ]

[언제 적 강대국식 깡패짓이냐고 ㅋㅋㅋ]

[그래서 인터뷰에서도 그냥 들이받은 거였네]

[그 뒤로는 우리가 알던 그대로?]

“민간인들이라서 직접 손은 못 대고 신성으로 화난 티를 푹푹 내고 있는데 그레이트 원이 오대?”

그때 잭 에반스의 한심한 표정이 기폭제가 되긴 했다.

그레이트 원이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난 그들의 목줄을 합법적으로 풀어준 것뿐이다.

“그 머저리들이 나한테 와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정말로 혼자 힘으로 서부의 일을 해결할 수 있냐고 묻고 있잖아!”

정부의 개가 되어버린 히어로의 모습은 도저히 참고 볼 수 없었다.

“진작에 미 서부로 가서 사태를 해결하고 있었어야 할 놈들이 말이야! 병신들 같으니… 다시 생각할수록 화나네.”

[진정;;;]

[이제 화내도 붉은 눈이 아니네]

[ㅋㅋㅋㅋㅋ 방장이 화낼만 했네 ㄹㅇ]

[ㄹㅇㅋㅋ만 치라고]

[ㄹㅇㅋㅋ]

[그래서 힘 다 뺐고 보내버렸구나]

[자초한 일이였구요 ㅋㅋㅋ]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