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뒤를 잇는 자
* * *
내면의 번뇌에서 도망친 이들에게 화안금정을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족족 기절하기 시작하는 협회 관계자들.
미국 협회의 부패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떳떳한 놈이 어떻게 한 명도 없어.”
최고 강대국이 최하급 크립티드에게 서부를 내준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오클랜드가 먹혔을 때 제대로 된 히어로 팀을 보냈더라면 이 정도까지 몰리진 않았겠지.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냐?”
적당한 깽판을 벌여주자 공항에 나타난 녀석들.
미국의 현질 전사들, 팀 그레이트 원이 내 앞에 도착해 있다.
세계 각국의 강한 챔피언들만 아니 정확하겐 돈에 넘어간 녀석들만 쏙쏙 골라서 만들어진
미국 히어로 협회의 자랑.
내 깽판에 호출을 받고 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다 같이 덤빌 거면 빨리 와서 덤벼. 먼저 오는 놈은 특별히 살살 때려줄게.”
툭툭.
손에 든 여의봉을 회초리로 삼아 손바닥을 두들기며 녀석들을 바라보니 아무 말이 없다.
“… 우리는 당신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그레이트 원의 리더인 잭 에반스가 무거운 입을 연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은 진심인지 그의 주무기인 묠니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 뭐하러 온 건데?”
“당신 혼자서 서부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은 정말로 사실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네는 잭 에반스.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 의지의 문제지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고 답하지.”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지? 우리가 나선다면 물론 서부를 탈환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는 불가능…”
“그만.”
기껏 와서 한다는 소리가 결국엔 하소연이다.
잭 에반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의 성좌 얼굴에 먹칠하는 것도 모르고 병신같이 구는 꼴을 도저히 못 보겠다.
“내 생각엔 당신네 자식들은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아무것도 모르는 잭 에반스는 내가 자신한테 말을 하는 줄 아나 보다.
하지만 나는 놈을 보고서 말을 건넨 게 아니다.
<아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야=""/>
<그러게나 말이에요=""/>
<어디까지 추해질지="" 지켜만="" 봤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한심한 작태에="" 도저히="" 입="" 다물고="" 있지="" 못하겠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참=""/>
쿠르릉
성좌들의 등장과 함께 밀려드는 먹구름.
천둥의 신을 선두로 각자의 팀 그레이트 원의 학부모들이 줄줄이 찾아왔다.
거대한 신성의 등장에 소란스럽던 공항도 금세 조용해졌다.
천둥의 신 혼자서 왔어도 난리가 났을 텐데 그레이트 원의 담당 성좌들이 모두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하지.
“이보쇼 천둥의 신. 제안 하나 합시다.”
<흐음… 말해보게,="" 그대는="" 우리와="" 동등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니="" 말이야=""/>
“저놈들을 내게 맡겨만 준다면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뜯어고쳐 줄 테니 이 나라의 고위직 놈들이 나를 귀찮게 하지 못하게 언약 하나만 맺읍시다.”
<흐하하하!! 속세에="" 찌들어="" 버린="" 이것들을="" 자네가="" 어찌="" 교육할="" 셈인가?=""/>
알고 있었으면 적당히 개입을 했어야지 이 수염쟁이 새끼가.
우리 스승은 과하게 굴렸던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과업은 내리지 않았다.
이것들은 자신들의 신도가 망가질 때까지 뭘 한 건가.
자기 나름대로의 시련이라고 생각한 걸까? 이래서 성좌가 별난 건 알아줘야 한다.
“그건 개인 사업 비밀이니 말해줄 순 없고, 그래서 맡기실 거요?”
<흐흐 뭐="" 좋아,="" 우리야=""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니="" 말이야=""/>
먹구름 속에서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날뛴다.
아무래도 올라운더인 내가 불러온 먹구름보다 천둥의 신이 불러온 먹구름이 좀 더 진하네.
그런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면서 천둥의 신의 언약을 기다린다.
<토르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우리의="" 언약이="" 깨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자의="" 앞을="" 가로막을="" 순="" 없다="" 맹세하는가?=""/>
“맹세한다.”
<이 언약에="" 이의가="" 있는="" 자가="" 있는가?=""/>
<저는 상관없어요=""/>
<불만은 없다=""/>
<기대되는군/>
<좋은 거래야,="" 기대하지=""/>
천둥신이 다른 성좌에게도 의중을 물어보니 불만을 가진 이들은 없나 보다.
모두 동의하는 성좌들.
“자신만의 신성을 사용하는 신도가 있습니까?”
<다섯 명="" 모두="" 우리의="" 신성을="" 사용한다=""/>
이래서 곱게 자란 강림 새끼들은 신성 귀한 줄 모른다.
이참에 본인들이 누린 힘이 얼마나 귀중했던 건지 알게 해 줘야겠다.
“이 언약이 유지될 동안엔 최소한의 신성을 제외하고 댁들의 신도들에게 내려준 신성을 거두십시오.”
<그게 의미가="" 있나?=""/>
“적어도 저것들에겐 의미가 있겠죠.”
<흐음, 알겠네.="" 그럼="" 잘="" 부탁하지=""/>
성좌들이 물러가자 거대한 위압감 또한 동시에 사라진다.
사태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인간들만이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하고 얼을 타고 있을 뿐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지닌 힘이 모두 사라졌어!”
“호루스시여! 왜 응답해주시지 않는 겁니까!”
고새를 못 참고 지랄발광 중인 놈들.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 만년 낙제생 루카스와 리차드를 단번에 합격시킨 1타 강사 손리번이 아닌가.
이미 천둥의 신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내 머릿속에는 계획을 모두 세워놨다.
나라는 스스로 지켜야지, 자주국방이 중요한 시대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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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미국 방문한 손우진 어록 모음집]
[작성자: 현지 특파원]
[서부 사태 별거 아니야, 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어
거대화한 여의봉으로 서부를 밀어 버리면 그만
현실은 좀비 영화 세상이 아니다, 치료제는 없으니 그만 정신 좀 차려라
자국민을 버린 미국 협회 수준은 한심할 지경
팀 그레이트 원, 내가 교육하겠다
생방송 뉴스 보는데 존나 살벌하더라 붉은 눈 씨발
성좌들도 오고 완전 개판이었음]
[ㅇㅇ: 지랄 맞은 성격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 www]
[재미나이: 새벽 대형 떡밥 알찬 거 봐라 안 자길 잘했다]
[ㅇㅇ: 미국이 기절하고 한국이 놀라고 세계가 뒤집혔다!]
ㄴ[ㅇㅇ: 미튜브 한편 뚝딱이네]
ㄴ[히포: 국뽕이고 지랄이고 이번엔 진짜로 해서 문제잖아 ㅋㅋ]
[쌀국거주: 진짜 현장에 있는 사람들 리스펙한다 나도 현지 살아서 그냥 중계 방송으로
보고 있었는데 붉은 눈은 진짜 화면 너머로 봐도 소름 끼쳤음]
ㄴ[ㅇㅇ: 그 정도임? 개인 방송에서 본 적은 있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었음]
ㄴ[쌀국거주: 아냐 그 동물의 왕국에서 말하는 포식자의 눈 있잖아 딱 그 느낌이었어 보고 있으면 같은 인간이라고 안 느껴진다니깐]
[커피콩: 뭔가 뭔가임... 이 정도면 거의 반 성좌 수준 아님?]
ㄴ[ㅇㅇ: 시발 호들갑은 원숭이로 국뽕 그만 좀 처 빨아라]
ㄴ[커피콩: 어떤 미친 새끼가 타국에서 저 지랄이 가능한데? 성좌하고도 대등한 수준으로 얘기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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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돼지 하나.
그 양쪽 어깨에 올라탄 쌍둥이.
쌍둥이의 손에도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이 들려있다.
화려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우리는 묵게 될 숙소로 이동하는 중이다.
공항에서의 그 난리가 끝나고 사태를 파악한 협회 놈들은 다시 저자세로 돌아왔다.
내 손에 최고 전력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더는 까불지 못하는 거다
손바닥 뒤집듯 태세를 전환하는 것이 괘씸하긴 했지만 더 꼬투리 잡기에는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기에 그만두었다.
“그래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히어로의 생태에 대해선 문외한인 엘레나가 질문을 건네온다.
아무리 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상황에서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순수하게 지켜만 보았던 이 깐프의 담력도 심히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이 나라는 오랜 시간 동안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거든. 그 시절 버릇을 못 버리고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우진 님의 힘을 잘 알고 있는데도요?”
“가끔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것이 인간이니깐. 더는 귀찮게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
“자연재해와 같은 우진 님한테 맞서다니, 이 나라 인간들의 도전 정신은 정말 멋지네요!”
“야 엘레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어떻게 자연재해 취급하냐?”
“헤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이건 순수한 악의다.
어떤 악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악의.
깐프의 악랄한 단어선정에 아군사격을 당한 것 같다.
“오빠, 그래서 그레이트 원은 서부로 데려가서 어떻게 할 건데?”
“뭐야, 걔네들 서부로 데려갈 거 어떻게 알았어?”
“오빠라면 뻔하지.”
“아저씨라면 그럴 것 같았어요.”
내 과외 계획이 이렇게 빨리 유출되다니.
유정이와 예은이 말대로 그레이트 원은 내가 소환한 분신들에게 잡혀 서부로 끌려간 상태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신성을 강탈당한 그들로 서부를 정리할 거다.
곡소리가 나올 것이다, 몰려드는 수십, 수백, 수천만의 좀비들을 잡으려면 말이지.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훈련 방법이다.
최소한의 조건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같이 굴러야 할 거다.
“죽기 직전의 상황이 아닌 이상 개입할 생각은 없어. 어휴, 나 때는 말이야, 빨게 벗겨져서 산에 던져졌다니깐.”
다섯 명 모두에게 분신이 배정되긴 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감시와 구제뿐이다
최적의 환경에서 신성만 받아먹는 놈들이 이런 기회가 있었겠나.
다시 힘을 돌려받았을 때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을 거다.
물론 좀비가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멋도 모르고 까분 사람들이 잘못한 거긴 하지만… 불쌍하긴 하네.”
“그래도 가만히 있던 말벌집을 건든 건 미국 잘못이니깐요.”
“자연재해도 모자라서 이제는 말벌집 취급이냐…”
아이들의 머릿속에 내 이미지는 대체 어떻게 자리 잡은 건지 물어보기도 겁난다.
“일단은 숙소에 가서 짐부터 풀고 뭘 할지 계획이나 짜자.”
“형님, 저는 혼자서 움직이겠소, 찾아봤던 식당들은 전부 찾아가 보고 싶어서 말이오.”
대혁이가 개인행동을 선언한다.
미국까지 와서도 놈이 찾는 건 역시나 미식뿐이다.
“아 우리도 이 친구 따라 갈래!”
“나도!”
“시키는 대로 어깨에 태워드렸잖소! 이제는 제발 형님한테 가시면 안 되오?”
“그래, 대혁이는금각이 은각이 두 명 데리고 잘 다녀 와.”
“형님!!!”
맛있는 음식은 기가 막히게 잘 찾는 쌍둥이가 이 미식가 돼지만 따라가면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대혁이와 동행을 선언한다.
단체 여행을 와서 개인행동을 선언한 괘씸죄다.
쌍둥이의 동행 선언을 흔쾌히 허락해 준다.
“그럼 차타러 가자.”
“제발 형님!! 형님!!!”
“이랴!”
“어서 움직여!”
쌍둥이에게 호되게 당해봐라 대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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