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과산 스트리머-62화 (62/106)

〈 62화 〉 휴식

* * *

꾸역꾸역 구슬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은각이 그제야 스푼을 내려놓는다.

금각은 이미 파초선을 소환하고선 거기에 기대어 은각을 기다리는 중이다.

“만족해?”

“응. 왜 다 안 먹었어?”

“별거 없어 보이는 놈들인데 다 처리하고 먹지 뭐. 네 건 다 먹었으니 달라고 하지 않기다?”

“히히.”

“확실히 대답해.”

“헤헤.”

자신들을 무시한 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꼴 받았는지

금각의 어깨를 짚는 양키 요원.

아휴, 큰일 났다.

금각의 어깨를 짚은 놈의 미래가 그려진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놔.”

“커억!”

금각이 자신 몸집보다 큰 부채로 성인 남성을 후려 패서 날려 버리고

섣불리 나선 놈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멀찍이 날아간다.

“우진아, 죽이는 건 안 되지?”

“응. 대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만 손봐줘.”

살벌한 은각의 질문에 옳은 정답을 제시해준다.

괜히 외교적 분쟁에 휘말리는 건 사절이기에 적당히 손봐주는 걸로 끝내야지.

국가와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과는 별개로 귀찮은 건 질색이다.

“제이든이 당했어! 다 같이 공격해!”

“저기 우리가 대신 처리해 주잖아… 그러니깐.”

“으아악!”

“구슬 아이스크림 또 먹고 싶다고?”

“히히.”

“아아악!”

“아! 나도 나도!”

“알았어.”

얘기하는 도중에도 들려오는 곡소리.

자신만만하게 협박을 하던 놈들이 하늘을 향해서 아름다운 비행 연습을 하는 중이다.

성장하는 것도 아깝다는 듯 어린 모습으로 성인 남성을 두들겨 패는 중인 금각.

약속을 확답받은 은각이 참가해 황금승으로 요원들을 묶어서 금각 앞으로 대령한다.

구슬 아이스크림 두 개로 이렇게 아름다운 행위 예술을 볼 수 있다니.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쌍둥이와 양키 요원들의 합동 공연을 느긋하게 구경한다.

. . . . .

“정말 죄송합니다, 챔피언! 이 병신 같은 놈들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중년의 남성.

미국 중앙정보국, CIA의 존 터너 국장이다.

“터너 국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저것들은 요즘 시대에 미튜브도 안 본답니까?”

“…”

“설마 제가 용을 토벌했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고 하실 건 아니죠? 그 미국의 중앙정보국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쾅!

“왜! 휴일에 찾아와서 질척거리는 걸까요.”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참 터너 국장은 이래서 좋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유창한 한국어와 속담.

세계 모든 고위급 히어로와 친분을 다지기 위해 다국적 언어를 배웠다는데 천재 중에 천재다.

“지금 냉전 시대 아니죠?”

“예.”

“한국 히어로 협회와 미국 히어로 협회는 동맹 관계가 아니었나요?”

“동맹 관계가 맞습니다.”

“국장님은 제 인적 사항 모두 다 꿰뚫고 계시죠? 그렇죠?”

“예…”

“그런 양반 밑에 있는 놈들이 감히 내 친우들을 들먹여!”

케에엑…

크어어억…

무릎을 꿇고 있다가 신성이 담긴 호통을 듣고선 개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정보국 요원들.

아무리 성좌의 선택을 받은 이들로 채워두었다고 해도 결국 버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터너 국장 단 한 명을 제외하고선 모두 기절한 상황.

“이렇게 된 거 간땡이가 부은 행동을 한 이유나 들어봅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여기 두 분의 신원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 멍청한 놈들이 일반인인 두 분을 인질로 확보한다면 챔피언과 협상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다급하게 해명에 나서는 터너 국장.

이 양반이 말을 이렇게 빨리하는 건 처음 봤다.

“미합중국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점 챔피언께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절대로 저희는 챔피언과…”

“알아요, 저도 동맹국인 미국과 척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이 새끼들 처리는 국장님한테 맡겨도 되겠습니까?”

“꼭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두 해임 시키겠습니다.”

“확실하시구만, 믿고 맡기겠습니다. 실망할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네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챔피언.”

“국장님이 잘못한 건 아래 직원을 관리 못 한 것 뿐이니 그 점만 주의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터너 국장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기절한 양키 요원을 끌고 유유히 사라진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는데 용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도 인질을 잡아 협박할 생각을 하다니, 어이가 없다.

“그래서 쟤넨 대체 왜 찾아와서 맞고 간 거야?”

금각이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질문을 건넨다.

“머리가 나빠서 너희가 아이인 줄 알았데.”

“뭐? 더 세게 두들겨 패줬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쫓아갈까?”

“그래도 걔네 덕분에 아이스크림 한 번 더 먹을 수 있었잖아.”

“은각이 너는 그게 중요하냐! 어린이 취급을 당했다고.”

“뭐 어때, 녹기 전에 언니도 어서 빨리 먹는 게 좋을걸.”

“앗! 아이스크림 녹는다!”

아이들에겐 양키 요원 따위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중요한가 보다.

동물원을 적당히 돌아본 뒤 아이들과 함께 귀가하기로 하였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지상에서 쌍둥이와 휴일을 알차게 보내고 귀가하는 길.

금각과 은각의 품에는 동물원의 기념품 기린 인형과 코끼리 인형이 안겨져 있다.

“다녀왔습니다.”

“우리 왔어!”

“예은아, 유정아!”

거실에는 퇴근한 예은이와 유정이가 앉아있다.

쪼르르 달려가 동물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금각과 은각.

“동물원에 다녀오셨다고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선 예은이가 질문을 건넨다.

“응. 너희도 데려가려고 했는데 먼저 나갔더라. 그래서 그냥 쌍둥이랑 둘이서 다녀왔지.”

“사람을 때렸어? 이게 무슨 소리야?”

“응, 구경하는데 찾아와서 시비를 거는 거 있지. 그래서 언니랑 내가 혼내줬어.”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유정.

아마 은각이 민간인을 폭행한 줄 알고 오해한 모양이다.

“야 내가 보호자로 갔는데 설마 그랬겠냐. 민간인 폭행 아니야.”

“대체 누굴 때렸다는 거예요 그럼?”

상황 설명이 복잡해지기 전에 빨리 설명해줘야겠지.

CIA 요원들의 어이없는 납치 시도극을 들은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터너 국장이 책임지고 처리한다 했으니 일단은 돌려보냈어.”

“오빠, 호구야? 그걸 그냥 보내주면 어떡해!”

“아 귀찮잖아. 자기가 책임진다 했으니 일 처리가 불만이면 한 번 더 지랄하지 뭐.”

“어휴 답답해. 예은아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아저씨, 그냥 아저씨가 지닌 힘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잠자코 듣고 있던 하예은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내가 지닌 힘을 보여준다니? 어떻게?”

“그냥 영상 하나를 찍는 게 어떨까요. 예를 들어 현재 지닌 힘으로 어느 정도의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보여주거나 사람들이 궁금한 점을 답해주는 질의응답 시간을 갖자는 거죠.”

“난 대찬성. 최근 오빠 핸드폰에 틈만 나면 전화하는 게 대사관 놈들이잖아. 아예 비빌 수도 없는 수준을 보여준다면 그만 들러붙겠지.”

음…

예은이와 유정이가 꺼낸 말이 또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 일어난 것도 놈들이 내 능력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저지른 거 아닌가.

건드리면 터지는 핵폭탄으로 취급했다면?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근처에 오지도 않았을 놈들이다.

미국의 중앙정보국도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저질렀는데 다른 나라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틱틱대는 내게 앙심을 품은 놈들이 더 귀찮은 일을 저지르기 전에

서열 정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제안 같다.

“그래, 마침 터너 국장한테 빚도 지웠는데 잘됐네. 장소 협찬이나 받아야겠다.”

“미국가서 촬영하려고?”

“땅도 좁은데 괜히 한국에서 힘자랑했다가 산이라도 날려 버리면 욕이나 처먹지. 원자 폭탄보다 안전하게 실험할 테니 빌려달라고 하지 뭐.”

“그러면 가는 김에 다 같이 가는 걸로 해요. 유정이 언니랑 대혁 아저씨, 엘레나 씨 전부요.”

“그게 좋겠네! 어차피 구름이나 아퀼라 좀 빌려 타고 가면 되니깐 표도 안 끊어도 되겠다.”

“언니, 터너 국장이라는 사람이 알아서 보내오겠죠. 이번에는 편히 가봐요.”

“아하하! 그런가?”

분명 처음에는 자기 PR 영상을 찍으러 가자고 했던 것 같은데

왜 단체 해외여행 계획으로 변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당사자는 내버려 두고선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계획을 세우는 하예은과 사유정.

벌써 마음만큼은 미국에 도착한 모양이다.

“우진아, 미국이 어딘데?”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금각이 궁금했는지 질문한다.

“아까 금각이 너가 날려버린 그 코가 큰 녀석들 있지?”

“응.”

“걔네의 원래 고향이야.”

“얼마나 멀리 있는데 그래? 구름을 타고 갈 정도면 멀리 있는 나라 아니야?”

“음… 한 번 찾아볼까?”

한국과 미국의 거리를 검색해본다.

10,751 km…

하계의 단위를 모르는 이 아이에게 말해봤자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지도를 보여주기로 한다.

“대충 이곳이 우리가 있는 나라면 이쯤에 위치하고 있어.”

“뭐야 얼마 멀지도 않네?”

“금각아, 구름을 타지 않으면 적어도 한나절은 걸리는 거리야.”

“뭐하러 그렇게 가? 우진이 너가 근두운 술법을 모두에게 걸어주면 되잖아.”

“너 비행기 한 번 타보면 그런 소리 못할걸.”

터너 국장에게 뜯어낼 퍼스트 클래스를 맛본다면 구름 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적 분쟁까지 갈 뻔한 일을 덮어줬으니 전용기라도 보내라고 해야지.

“비행기가 대체 뭔데 그래?”

“그건 미래의 즐거움으로 남겨 줄게. 직접 경험해 봐.”

“몰라도 되니깐 빨리 알려줘!”

“어허. 조금만 참아.”

“히잉.”

스포일러 없이 경험하는 것이 진정한 경험 아니겠는가.

“그래서 누구 누구 가야 하지?”

“우진 아저씨, 저, 언니랑 대혁 아저씨, 엘레나 씨와 금각이 은각이 까지 해서 7명이요.”

“분신 놈은… 국내에 칠대성의 화신 놈을 상대해야 할 인물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니 안 불러도 되겠다.”

내가 경험한 일은 같이 공유하니 굳이 같이 갈 필요는 없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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